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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화
작가 소개
류준화는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며, 가부장적 사회가 규정한 여성의 역할을 해체하고 그 속에 감춰진 억압의 굴레를 시각화해 온 작가입니다. 그의 예술 세계는 단순히 여성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거나 남성 중심적인 시각 시스템을 전복시키는 강력한 예술적 실천을 지향합니다. 초기 작업에서 그는 성폭력이나 성매매와 같은 사회적 폭력의 희생자가 된 여성들의 현실을 화폭에 담아내며 당시 사회에 무거운 경종을 울렸습니다. 특히 '매춘(賣春)'이라는 단어에서 '파는 행위'가 아닌 '사는 행위'에 주목하여 성을 구매하는 남성의 책임을 강조하는 등, 언어와 이미지를 통해 지배적인 통념을 뒤집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바비 인형과 같은 대중적 오브제나 사진, 설치 작업을 활용하여 현대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정숙한 아내'와 '성적 대상'이라는 이중적인 잣대를 비판했습니다. 관습적으로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관찰하는 시선'을 빼앗아 남성을 관찰의 대상으로 치환하거나, 기혼 여성의 개성을 지워버리는 '집사람'이라는 호칭 뒤에 숨은 폭력성을 유령 같은 형상으로 그려내기도 했습니다. 그의 활동은 개인적인 창작에 머물지 않고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그룹 '입김'을 통해 공동체적인 목소리로 확장되었습니다. 종묘라는 가부장적 상징 공간을 여성의 생명력이 깃든 '아방궁(아름답고 방자한 자궁)'으로 재해석하려 했던 시도는 한국 여성주의 미술사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저항적인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최근에는 신화 속 바리데기나 역사 속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며, 가부장제 역사관에 의해 가려졌던 여성들의 서사를 복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류준화의 작업은 과거의 상처를 고발하는 것에서 나아가, 잊힌 여성의 역사를 발굴하고 새로운 여성 주체성을 세워가는 역사적 재조명의 과정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