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올리는 것만이 미술이라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에 깨졌다. SAF 2026 출품작 354점 중 21점이 디지털아트와 혼합매체로, 이 작품들은 '예술의 재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정채희 작가의 디지털 프린트 위 옻칠·난각·자개 작업은 그 가장 선명한 사례다.
예술의 재료, 어디까지 허용되나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현대 미술을 마주한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게 예술이야?" 벽돌 더미, 형광등 하나, 텅 빈 캔버스. 그걸 앞에 두고 당혹스러워하는 건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당혹감이 바로 현대 미술이 원하는 것이다.
"예술의 재료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 선언이 등장한 건 20세기 초반이다. 피카소와 브라크가 신문지 조각과 악보를 캔버스에 붙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재료의 경계는 무너졌다. 콜라주라 불린 이 기법은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었다. 물감으로만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실제 세계의 파편'으로 직접 가져오겠다는 선언이었다.
그 이후 100여 년이 흐르면서, 예술가들이 가져온 재료는 점점 더 넓어졌다. 공장 폐기물, 자신의 피, 소리, 그리고 오늘날엔 픽셀. 디지털 데이터가 예술 재료가 된 것은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SAF 2026의 21점 — 경계에 선 작품들
SAF 2026에 출품된 354점 중 혼합매체 작품은 11점, 디지털아트는 10점이다. 합쳐서 21점, 전체의 약 5.9%다. 숫자만 보면 작은 비율이지만, 이 21점이 전시에서 가장 많은 질문을 끌어내는 작품들이다.
디지털아트 쪽에선 림지언 작가의 Digital painting 연작이 눈에 띈다. 「풀, 꽃!」(2025), 「모먼트」(2025) 등 72.7×50cm 크기의 화면에서 물감 터치의 질감과 색채 농도를 구현했다. 손으로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도구는 태블릿과 펜슬이다. 이것이 회화인지 디지털아트인지 묻는 질문 자체가, 이미 낡은 범주를 드러낸다.

김태균 작가의 「Ornament #3」(2013)은 서울과 평양 두 도시의 입체교차로 사진들을 디지털로 콜라주한 작업이다. 100×100cm 크기에 '디지털 프린트, 디아섹' 마감. 디아섹은 인화된 사진 위에 아크릴 유리를 진공 압착하는 기법으로, 색상을 더 선명하게 살리면서 내구성도 높인다. 사진인가, 회화인가, 조각인가. 어느 하나로 분류되길 거부하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