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 70년, 한국 현대미술은 서구를 흡수하고 거부하고 재해석하며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왔다. 앙포르멜에서 단색화, 민중미술에서 글로벌 무대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흐름과 작가를 짚으며, SAF 2026 출품작이 미술사의 어디에 서 있는지를 살펴본다.
폐허 위에 그림을 그리다 — 1950-60년대
1953년, 전쟁이 끝났다. 서울은 잿더미였고 미술대학 건물도 부서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그 폐허 위에서 한국 현대미술이 시작됐다.
젊은 화가들은 전후 유럽에서 태어난 앙포르멜(Art Informel)에 빠져들었다. 정형을 거부하는 추상, 물감을 던지고 긁어내고 뿌리는 격렬한 표현. 1957년 창립된 현대미술가협회를 중심으로 박서보, 김창열, 하인두 같은 작가들이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 땅에 이식하려 했다.
이 시기의 핵심 질문은 하나였다. "서양 미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전통 동양화와 서양 추상 사이에서 한국 미술의 좌표를 찾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아직 자신의 언어를 찾기 전, 외국어를 열심히 배우던 시절이다.
침묵 속의 반복 — 1970년대 단색화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격렬함이 가라앉고 고요함이 올라왔다.
단색화(모노크롬 페인팅)가 등장했다. 박서보는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연필로 선을 긋는 행위를 수없이 반복했다. 〈묘법(描法)〉 연작이다. 윤형근은 황갈색과 군청색을 캔버스에 스며들게 했다. 하종현은 캔버스 뒤에서 물감을 밀어 앞으로 배어 나오게 하는 '배압법'을 만들었다. 이우환은 점과 선만으로 여백을 건드리는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연작을 시작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뭔가를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리는 행위 자체를 작품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색을 하나로 줄이고, 반복하고, 비우고. 서양 미니멀리즘과 겹쳐 보이지만 그 뿌리는 다르다. 한국 단색화에는 수묵화의 여백, 선불교의 무(無), 도자기의 절제가 녹아 있다.
단색화는 2010년대에 국제 미술시장에서 재조명됐다. 박서보의 〈묘법〉은 경매에서 수십억 원에 낙찰되기 시작했고, "한국적 미니멀리즘"이라는 평가와 함께 세계 미술사의 한 장을 차지하게 됐다.
미술은 누구의 것인가 — 1980년대 민중미술
단색화가 캔버스 위의 명상이었다면, 1980년대는 그 명상을 깨뜨린 시대였다.
광주민주화운동(1980), 군사독재의 장기화. 거리에서 사람들이 쓰러지는데 화가들은 흰 캔버스에 선을 긋고 있어야 하나? 이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 것이 민중미술이다.
오윤(1945-1986)은 그 중심에 있었다. 서울대 조소과 출신이면서 서구 미학 대신 탈춤과 무속과 도깨비를 택한 작가. 그의 목판화 속 인물들은 억눌려 있지만 결코 약하지 않다. 〈칼노래〉의 날카로운 긴장, 〈낮도깨비〉의 풍자, 〈남녁땅뱃노래〉의 리듬감. 나무에 칼로 새긴 이 형상들은 갤러리가 아니라 공장 담벼락과 시위 현장에서 먼저 관객을 만났다. 그는 1986년 마흔한 살에 세상을 떠났고, SAF 2026에는 그의 사후판화 18점이 출품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