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라고 하자 '무직자'라고 대출담당으로부터 들었던 것." 이 한 줄 증언이 한국 예술인 84.9%가 1금융권에서 배제되는 구조적 문제를 압축한다. 예술인의 노동은 왜 이토록 쉽게 '무직'으로 읽히는가.
"연극배우라고 하자 '무직자'라고 들었습니다"
이것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SAF가 수집한 예술인 증언집에 실린 50대 배우의 실제 경험이다.
"연극배우라고 하자 '무직자'라고 대출담당으로부터 들었던 것."
짧은 한 문장이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직업을 밝혔더니 무직자로 분류됐다. 이 역설 안에 한국 예술인이 금융 시스템과 만나는 방식이 통째로 들어 있다.
대출 담당자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다. 그는 시스템이 설계된 대로 작동했다. 문제는 그 시스템이 '직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있다.
예술인의 노동 구조는 다르게 생겼다
한국의 금융 시스템이 직업인을 판별하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고용보험에 가입된 정규직 근로자이거나, 안정적 매출이 증명되는 사업자이거나.
예술인은 대부분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예술 노동의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기반 고용(project-based employment). 연극배우는 공연 기간에만 계약을 맺는다. 공연이 끝나면 계약도 끝난다. 다음 공연까지 몇 달이 걸릴 수도 있고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 공백은 금융 시스템에서 '소득 없음', 즉 무직으로 읽힌다.
화가, 사진작가, 음악인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완성하고 판매하기까지, 작곡하고 음반을 출시하기까지의 기간 동안엔 수입이 거의 없다. 그런데 그 기간이 실은 가장 강도 높게 일하는 시간이다.
이것은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다. 창작 노동의 시간 구조가 급여 노동과 다르다는 문제다.

84.9%가 배제된다는 것의 의미
SAF가 조사한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 예술인의 84.9%가 1금융권 대출에서 배제된다. 10명 중 8명이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