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90년 금호미술관 개인전으로 화단에 등장한 이호철은, 닫힘과 열림의 경계를 탐색하는 독자적 조형 언어로 30년 넘게 국내외 150여 회의 전시에 참여해온 회화 작가다. 이번 씨앗페 2026에 가장 많은 15점을 출품하며 동료 예술인을 향한 연대에 나섰다.
서랍을 열었더니 하늘이 있었다
그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식탁, 안경, 커피잔, 의자. 익숙한 일상의 물건들이다. 고요하게,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것처럼 놓여 있다. 그런데 반쯤 열린 서랍 속을 들여다보면 — 하늘이 펼쳐져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철로가 보인다. 아스라한 들판이 나타난다.
서랍 크기보다 훨씬 큰 물건이 그 안에 담겨 있기도 하다. 허공을 유유히 떠다니는 모자와 장갑.
일상의 물건들 사이로 전혀 다른 세계가 불쑥 끼어드는 것이다. 이호철(1958~)의 그림이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요란한 선언 없이
이호철은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를 졸업했다. 화단에 이름을 알린 것은 19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을 받으면서였다. 이후 1990년 몬테카를로 미술대상전, 1994년 공신미술제 대상을 연달아 수상했다.
그러나 화려한 수상 경력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작업의 지속성이다. 1990년 금호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 노화랑, 표갤러리, 아라리오, 선화랑 등에서 25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일본 교토 국제 Impact Art Festival, 도쿄 제8회 JAALA 등 국제 무대에서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국내외 단체전만 300회를 훌쩍 넘는다.
요란한 선언 없이, 자신만의 회화적 언어를 끈질기게 갈고 닦아온 작가다.
반쯤 열린 서랍의 철학
미술평론가 서성록은 그의 그림을 보며 "한 편의 일기를 읽는 느낌"이라고 했다.
일기는 사적이다. 그러나 이호철의 일기에는 기묘한 사건들이 끼어든다. 완전히 열린 서랍은 없다. 반쯤 열려 있거나, 열려 있어도 그 안쪽이 시선과 어긋난 방향으로 놓여 있다. 더 많은 서랍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이 '다 보여주지 않음'이 핵심이다. 소포를 받고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설레는 마음, 연극의 막이 오르기 직전 무대 뒤에 대한 궁금증. 그의 그림은 그런 심리를 교묘하게 자극한다. 치밀한 세필로 묘사된 창문의 그림자, 차양막, 내부 구조 같은 암시적 장치들이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온전한 것과 돌발적인 것,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 의식과 무의식. 이 충돌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속에서 보는 이는 꿈꿀 자유를 얻는다.
틀 밖으로 나아가기
이호철의 작업은 서랍과 물건에 머물지 않는다. 그림의 틀 자체로 관심을 확장해왔다.
그의 그림에는 이미 액자가 그려져 있어 별도의 액자가 필요 없다. 액자를 화면의 핵심 요소로 끌어들인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캔버스의 형태 자체를 변형하는 시도도 해왔다. 네모꼴 캔버스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변형 캔버스를 도입한 것은 화면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무는 행위다. 가상의 화면 속에서만 자유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 자유를 실제 공간으로 끌어내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