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깎고 잉크를 입히는 행위로 노동의 가치와 시대의 현장을 기록해온 이윤엽 작가. 굵은 선과 소박한 형상 속에 담긴 그의 목판화는 삶의 무게를 담담히 전한다.
공장 바닥에 까는 고무판이 있다. 미끄럼 방지용으로 쓰이는, 두껍고 거친 그것. 이윤엽은 그것을 조각도로 깎았다. 1996년의 일이다. 그렇게 첫 번째 판화가 태어났다.
파견미술가의 탄생
이윤엽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이 있다. '파견미술가'. 현장에 파견되는 사람. 스튜디오가 아닌 거리에서 일하는 사람.
그의 첫 작품 〈산드래미 최씨〉(1996)는 당시 살던 집 근처의 이웃 농민을 그린 것이다. 화가가 농민을 '소재'로 삼은 것이 아니다. 이웃을 그린 것이다. 그 차이가 이윤엽의 모든 것이다.
이후 그의 나무판은 현장을 따라다녔다. 평택 대추리, 용산, 거제 조선소, 밀양 송전탑 반대 현장, 쌍용차 파업. 사회적 갈등이 폭발하는 자리마다 이윤엽이 있었다. 판화를 찍고, 나눠주고, 함께 벽에 붙였다. 예술과 투쟁이 한 몸이었다.
2012년 구본주예술상. 노동과 삶의 현장을 직시해온 작업에 대한 인정이었다.
굵은 선, 흰 여백, 그리고 사람
목판화는 뺄셈이다. 깎아낼수록 형태가 드러난다. 이윤엽의 선은 굵고, 여백은 넓다. 과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한 획으로 농민의 허리 굽음을 그리고, 두 획으로 아이의 웃음을 새긴다.
그것이 이윤엽 판화의 힘이다. 보는 사람이 선 사이의 빈자리를 채운다. 노동의 고단함, 일상의 소박한 기쁨, 공동체의 온기. 설명하지 않아도 전달된다.
는 다색목판 60장 연작 중 한 점이다. 콩밭에 쪼그려 앉은 할머니의 뒷모습. 단순하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 삶 전체가 들어있다. 이윤엽 판화의 전형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경기도미술관, 일본 사키마 미술관,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판화, 판화, 판화》, 2019년 《광장: 미술과 사회》 등 주요 기획전에 참여했다.
씨앗페의 나무판들
씨앗페에 출품된 작품들은 이윤엽의 두 얼굴을 동시에 보여준다.
과 은 다색목판으로 완성한 대형 연작들이다. 여러 판을 겹쳐 찍는 다색목판은 단색판화와 다른 따뜻함을 지닌다. , , , , 등 풍경과 일상의 연작도 나란히 걸렸다.
현장의 뜨거운 이윤엽과, 자연과 일상을 담담히 새기는 이윤엽이 같은 칸에 있다.
연대는 늘 그의 방식이었다
파업 현장에서 판화를 나눠주던 사람이, 이번에는 동료 예술인을 위해 나무판을 내놓았다. 그에게 연대는 새로운 실천이 아니다. 늘 해오던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