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막하면서도 따뜻한 시선. 김규학은 사라져가는 고향 풍경과 눈 온 날의 들판에서 희망과 절망이 하나의 몸체에 담겨 있다는 것을 그린다.
들판 끝으로 빛이 기울었다.
한적한 시골길. 아무도 없는 마을 어귀. 그 적막 속에서 바람이 지나간다. 김규학의 그림은 그 바람의 흔적을 잡는다.
고향이라는 이름의 시간
김규학은 어린 시절의 고향 기억을 그린다.
꼭 아름다운 기억만은 아니다. 한적하고, 때로는 쓸쓸하고, 적막하다. 그러나 그 적막 속에 따뜻함이 있다. "한적한 시골 풍경과 어린 시절의 고향 기억을 적막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인천in이 그의 작업을 소개한 문장이다. 이 한 문장이 시리즈 전체를 담는다.
작품명은 '바람과 빛'. 그것이 고향 풍경에서 남는 것들이다. 건물도 사람도 아니라 바람과 빛.
눈 온 날
차가운 바람을 타고 밤사이 내린 눈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다.
— 눈 덮인 들판, 희망과 절망이 하나의 몸체
에는 작가의 노트가 달린다. "대충 옷을 걸치고서 커피 한잔을 들고 너른 들판에 펼쳐진 하얀 세상을 마주하고 앉는다." 일상의 장면이다. 그러나 그 시선 끝에서 "꿈과 희망에 대한 미련, 편하지만은 않은 삶의 지나온 흔적들이 눈 덮인 하얀 세상 속에 묻힌다."
"겨울은 절망의 계절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희망과 절망은 하나의 몸체에 담겨 있어 희망은 절망을, 절망은 희망을 품는다." 이것이 김규학이 풍경에서 읽는 철학이다.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그림
시리즈의 번호는 높아질수록 더 무거워진다.
— 고향의 기억은 계속된다
에는 붉은 황토 흙더미와 펜스가 나온다. 사람이 살던 동네가 개발의 명분으로 비워진 자리. "인적이 없는 무너진 집 더미 주변에 전에 이곳에 살았던 사람의 문패만 덩그러니 걸려 있다." 김규학은 쓴다. "나는 과거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을 떠올리며 좋아진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이 질문이 '바람과 빛' 시리즈의 핵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