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된 이미지 오버랩 작가. 김주희는 그리운 장소들을 여러 번 겹쳐, 파괴가 아닌 선명함으로 되살린다.
"'그리다'라는 말은 '그리워하다'에서 파생되었다."
김주희의 작업을 설명할 때 가장 앞에 오는 문장이다. 그녀는 그리운 장소를 여러 번 사진으로 찍고, 그 이미지들을 캔버스 위에서 반복적으로 겹쳐 그린다. 오버랩(overlap). 한 겹이 쌓일 때마다 풍경은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더 선명해진다.
동대문, 월정교, 제주 섭지코지
씨앗페 2026 출품작 세 점은 전부 지명을 제목으로 삼는다.
- — 2024, Oil on canvas, 90.9×72.7cm
- — 2020, 31.8×31.8cm
- — 2019, 53×33.3cm
서울의 동대문, 경주의 월정교, 제주의 섭지코지. 한국의 각기 다른 도시에 흩어져 있는 기억의 지점들. 그러나 화면 안에서 이 세 장소는 같은 문법으로 취급된다. 여러 번 찍고, 여러 번 겹치고, 그 겹침을 다시 유화로 기록하는 방식.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잊지 못할 추억, 기억의 순간들을 오버랩하여 작업한다. 기억을 되새기고 또 합성하여 반복적으로 겹쳐 그 순간들을 캔버스 안에서 최대한 증폭시킨다. 사랑하고 보고 싶은 것을 사진으로 찍거나 수집하여, 그것을 계속 겹쳐본다. 겹치면서 그 기억의 순간들을 반복적으로 다시 기억하고 또 기억해낸다. 이는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더 가지고 싶은 현대인의 욕망과 닮아 있다. 그림 속 이미지는 계속 중첩하여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더 선명하게 살아난다. 그래서 일부러 색을 혼합하지 않는데, 이는 빛나는 추억을 더욱 밝게 남기기 위함이다."
오버랩은 기억의 기술이다. 한 번 본 것은 잊히기 쉽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본 것은 더 또렷해진다. 김주희의 캔버스 위에서 그 원리가 물감의 문법으로 번역된다.
미술사 안의 시간, 작가의 기억
— 경주의 기억, 여러 겹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미술사의 흐름 위에 놓기도 한다.
"고대 이래로 미술은 정지되어 있는 상을 표현하였다. 한 순간의 시간을 표현한 인상주의에서 절정에 다다랐고, 미래파에 이르러서는 움직이는 물체를 온전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가 행해진다. 작가는 오버랩의 효과를 이용하여 사물과 풍경의 시간을 중첩시키고 펼쳐 보인다. 단순히 시간만이 아닌 작가의 기억까지 오버랩하여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완성한다."
인상주의와 미래파의 계보 위에 자신의 작업을 올려두는 자의식. 김주희의 오버랩은 시간만 다루는 기법이 아니라 '기억'과 '정체성'까지 한 화면에 응축하는 시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