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어붙은 강 위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으로 시작된 이야기. 이현정의 김치 시리즈는 발효와 숨, 상처와 회복이 하나의 물성 속에 얽혀 있다.
2018년 겨울, 이현정은 얼어붙은 강 위로 걸어갔다.
손에 쥔 것은 고춧가루였다. 차갑게 굳은 흰 표면 위로 붉은 가루가 번졌다. 억눌린 감정의 분출이었고, 동시에 얼어붙은 세계 속에서도 끝내 드러나는 "살아 있음"의 방식이었다. 이것이 이현정 작업의 첫 장면이었다. 이름은 《숨-길》.
김치가 자화상이 되기까지
그 장면은 2019년부터 이어지는 '김치 시리즈'로 번졌다.
이현정에게 김치는 음식이 아니다. 자화상이다. 절여지고, 버무려지고, 기다림 속에서 서서히 다른 맛과 결로 바뀌는 과정. 그것은 상처와 기억이 삶 속에서 이동하고 변화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발효는 시간이 물질을 바꾸는 일이다. 이현정의 그림은 그 변환을 캔버스 위에 눌러담는다.
— 붉음은 충격이 아니라 살아남은 시간의 온기다
강한 붉음. 생생한 물성. 그 불편함을 단지 충격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이현정은 그 안에서 "살아남은 시간"의 온기와 회복의 가능성을 붙든다. 김치처럼 심장이 있고, 심장처럼 김치가 뛴다.
숨과 심장이 만나는 곳
《숨-의미심장》에서 이현정은 숨과 심장을 생리 현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 물질과 비물질. 과거·현재·미래가 서로 닿는 지점. 그 지점을 관객이 공간 속에서 몸으로 체험하게 한다. '너와 나'의 연결이 발생하는 감각. 그것이 이 작업의 목적이다.
— 2024년작. 같은 주제를 반복하되 더 깊어진다
이현정의 작업은 회화에서 출발해 설치와 퍼포먼스로 확장된다. 〈이씨! 표류기〉 연작에서는 가족의 경험을 거즈책, 아카이브, 영상, 설치로 다시 엮었다. 말로 다 옮기기 어려운 시간을 감각의 언어로 전하는 일. 사라진 것들이 다시 감각으로 돌아오는 경로를 만드는 일.
발효는 기다림을 배우는 것
2023년, 이현정은 독일 포츠담 Kunstraum Potsdam으로 초청받았다. 《UTOPIA?! PEACE》 전시와 퍼포먼스. 붉은 물성과 발효의 시간이 유럽의 공간에서 다시 한번 번졌다.
2024년, 후쿠오카 아트 어워드 우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