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도 지옥도 아닌 중간의 자리, 연옥. 심모비는 디지털과 물리를 오가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캔버스 위에 윤회시킨다.
"하나의 생명을 낳는 것은 하나의 죽음을 낳는 것과 같다."
어릴 적의 깨달음이었다고 심모비(SIM_Moby)는 말한다. 이 한 문장에서 출발해 작가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세웠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중간의 자리. 생과 사가 결정되기 이전의 장소. 이름은 SIM_Purgatory, 연옥.
연옥, 소멸이 없는 세계
심모비에게 연옥은 형이상학의 은유가 아니다. '현실 연계형 내세'라는 구체적 세계다. 현세의 개념과 이미지들을 모티프로 끌어와, 괴수적인 형태와 전생의 상상을 융합해 만든 2D 풍경. 물리적 재료로 먼저 스케치를 한다. 그다음, 디지털에서 완성한다. 디지털에서는 소멸이 없기 때문이다.
완성된 이미지는 다시 물성으로 돌아온다. 유화나 아크릴로 채색된 작품인지, 디지털로 만들어 인쇄한 것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환영을 감상자에게 건넨다. 물리 → 디지털 → 인쇄 → 콜라주 → 다시 물리. 작가는 이 과정을 **'회화의 윤회'**라 부른다.
메가바이트의 침식 윤회
— 불투명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진실, 그럼에도 보이는 것들
심모비가 자신의 기법을 설명할 때 가장 즐겨 쓰는 말은 '메가바이트의 침식 윤회'다. 디지털에서 여러 차례 침식과 부식을 반복해 만드는 질감. 픽셀 위에 독특한 밀도감을 얹는 기술. 이 과정을 거치면 화면에는 1990년대 VHS 테이프 특유의 노이즈 질감이 올라온다. 2D 디지털 매체, JPG라는 기록형식이 도달할 수 있는 미감을 작가는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다음, 고밀도 2D 이미지들은 다양한 물성 위에 인쇄되어 다시 해체된다. 오려낸 조각들은 가톨릭 교리에서 말하는 '연옥의 불꽃' — 천국에 들어가기 전 죄를 태우는 정화의 불꽃 — 의 형상으로 카오스적으로 뒤섞인다. 아크릴 스틱으로 마감된 표면은 고밀도 콜라주 부분, 접착제, 아크릴 스틱이 함께 짜내는 독특한 결을 전한다.
탄생(스케치) → 죽음(디지털화) → 다시 탄생(인쇄) → 죽음(콜라주) → 다시 탄생. 연옥에서 생사는 순환한다.
도요타에서, 나고야에서, 서울에서
심모비의 이동은 넓다. 2021년 2월 일본 나고야 Gallery Blanka를 시작으로, 3월 도요타 RAFU Gallery Keyaki, 5월 서울 Bincan, 9월 다시 나고야. 2022년 8월에는 도요타시립미술관 갤러리에서 디지털 아티스트 최초 개인전을 열었다. 2023년에는 나고야(Gallery Sou, 미츠코시백화점 Arte Casa), 산티아고(칠레 Tapiial Virtual Gallery), 서울(MISAJANG, NOWHERE)을 가로질렀다.
2023년, 이탈리아 플로렌스 컨템퍼러리 갤러리 《50 Artists To Watch》에 선정됐다. 2024년 일본 카메야마 트리엔날레 출전작가. 2022년에는 대종상영화제·춘사국제영화제 홍보대사를 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