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taught printmaker Lee Cheolsu moved quietly from the frontlines of Minjung art toward a world of Zen spirituality. Farming and carving in equal measure today, his woodblock knife still cuts to the heart of the age's questions. The ten works he submitted to SAF 2026 offer a cross-section of that long journey.
저항에서 선으로 — 이철수 작가의 판화 세계
나무를 깎는 일은 뺄셈이다. 있는 것을 없애야 형태가 드러난다. 이철수의 판화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개 그 단순함에 먼저 당혹해하고, 그 다음 그 안에 담긴 무게에 압도된다. 선 하나, 여백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독학으로 쌓아 올린 세계
이철수는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독서에 빠진 문학 소년이었다. 화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군 제대 뒤였다. 미술 학교에 가지 않았다. 스스로 그림을 공부했다. 독학이라는 말이 흔히 낭만적으로 포장되곤 하지만, 실상은 혼자 길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정표도 없고, 가르쳐 줄 사람도 없다.
1981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해 출판한 산문집 《응달에 피는 꽃》이 보여주듯, 그는 처음부터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글을 쓰고, 생각을 나무에 새겼다. 이후 전국 곳곳에서 개인전을 이어갔고, 1989년에는 독일과 스위스의 주요 도시에서 전시를 열었다. 유럽의 미술관 관객들이 한국의 목판 앞에 멈춰 선 것이다. 이후 미국 시애틀까지 발을 넓혔다.
민중의 언어로 새긴 시절
1980년대, 이철수의 판화는 저항의 언어였다. 민중판화라는 이름 아래, 당대의 억눌린 목소리들이 그의 나무판에서 형태를 얻었다. 단순하고 날카로운 선들, 직접적인 메시지. 그 시절 그의 판화는 벽에 붙고, 거리에서 돌았다. 예술이 선동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사람들의 손에 쥐어졌다.
하지만 이철수는 민중판화가라는 딱지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시대가 그에게 건넨 언어였지, 그가 도달하려는 세계가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