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in Cheongju in 1928 and gone in 1990, Min Byungsan was known as the 'Street Philosopher' and 'Korea's Diogenes.' His lifelong craft of Min Byungsan-style calligraphy and prose writings now stand, thirty-six years after his death, on the frontlines of solidarity through SAF.
거리의 철학자 — 민병산과 민병산체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통 속에서 살았다.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했을 때, 그는 딱 한 가지를 요청했다. "햇빛 가리지 말고 비켜서시오." 민병산은 한국에서 그와 가장 닮은 사람으로 불렸다.
청주에서 온 디오게네스
민병산(閔炳山)은 1928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문필가이자 서예가였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그를 온전히 담지 못한다. '거리의 철학자'라는 별명이 더 정확할 수 있다.
그가 세속을 초월한 삶을 살았다는 말은 단순한 수식이 아니다. 실제로 그는 물질적 풍요를 거부했다. 지위나 명예에 집착하지 않았다. 글을 썼고, 붓을 들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1990년 세상을 떠났다. 62세. 충분히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살아있는 동안 충분히 자기답게 살았다.
민병산체, 한 사람의 이름이 붙은 서체
서체에 사람 이름이 붙는 경우는 드물다. 특정 서체 양식이 한 개인의 이름과 동일시될 만큼 독창적이어야 하고, 그 독창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민병산체는 그런 서체다. 자유분방하다. 규범을 따르지 않는다. 전통 서예의 법도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 일탈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선택에서 비롯된 것임을 필획(筆劃) 하나하나가 증명한다.
흔히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은 오래된 법첩(法帖)을 따라 쓰는 데서 시작한다. 왕희지나 안진경, 구양순 같은 중국 대가들의 획을 수만 번 모방하며 손에 익힌다. 그렇게 전통을 몸에 새긴 다음에야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서예 교육의 정통 노선이다.
민병산은 그 노선에서 훨씬 멀리 벗어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씨에는 무게가 있다. 배운 사람의 자유분방함이 아닌, 생각하는 사람의 자유분방함이다.
《철학의 즐거움》과 산문의 세계
민병산은 서예가이기 전에 문필가였다. 산문집 《철학의 즐거움》이 대표적이다. 제목부터가 역설적이다. 철학은 대개 어렵고 무거운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것이 즐겁다니.
하지만 민병산의 글을 읽어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산문은 어렵지 않다. 철학적 개념들을 학문의 언어로 설명하지 않고, 삶의 언어로 풀어낸다. 어렵게 쓰는 것이 지식의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글로 보여주었다.
"자유분방한 삶과 독특한 '민병산체' 서체, 그리고 '철학의 즐거움' 같은 산문집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속을 초월한 삶을 실천했던 예술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