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독립영화 감독에서 광주·LA·분단의 현장을 온몸으로 옮긴 토탈 아티스트. 2025년 겨울에 떠난 이익태를, 그가 남긴 세 점의 작품과 함께 기린다.
이익태(李益太, 1947-2025) 작가는 2025년 12월 7일 별세했다. 씨앗페 2026은 그가 살아서 동의해준 마지막 연대의 자리 중 하나가 됐다.
50여 년. 영화, 연극, 퍼포먼스, 회화, 설치, 사진 — 이익태의 작업은 장르의 경계를 끊임없이 허무는 일이었다. 그에게 예술은 목적이 아니라 "세상과 맺는 관계의 방식"이었고, 고통받는 이들과의 연대를 실천하는 수단이었다.
1970, 한국 최초의 독립영화
1970년, 서울예술대학에 다니던 스물셋의 이익태는 한국 최초의 독립영화 《아침과 저녁 사이》를 연기·연출·감독했다. 기승전결이라는 기존 영화 문법을 철저히 파괴한 이 작품은 훗날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도 상영됐다.
같은 시기 실험영화 그룹 '필름 70'을 창립했고, 70년대 중반에는 방태수·김구림과 함께 한국 최초의 전위예술 그룹 '제4집단'을 결성했다. 화폭에 머물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행위'를 매체로 삼아, 예술을 일상의 광장으로 끌어내는 일. 그의 출발점이었다.
1977-1999, LA의 22년
1977년, 작가는 미국으로 건너가 22년을 머물렀다. 뉴욕주 클라리마이너 화랑 국제전에서 1등상을 수상하며 국제 무대에 진출했고, 동시에 LA 한인타운에 거주하며 이민자들의 일상과 사회 문제를 프리랜서 기자로 기록했다. 이 경험이 그의 작업에 '코리안 디아스포라'와 '페이크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비판적 시선을 심었다.
1981년, 퍼포먼스 그룹 'Theater 1981'을 창단했다.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곡(Wailing)》 시리즈, KAL기 격추 희생자를 추모하는 《Spirit 265》 — 후자는 ABC 등 주요 방송 톱뉴스로 다뤄졌다.
1992년 LA 폭동은 그의 작업에 전환점을 만들었다. 불타버린 한인타운의 폐허, 깨진 술병, 녹아내린 가재도구들을 직접 전시장으로 옮기고, 대형 퍼포먼스 《볼케이노 아일랜드》를 연출했다. LA시 문화국 그랜트를 받아 완성한 이 작업은 NBC TV에도 소개됐다. 인종 갈등 위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의 설움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폐허 위에 흙을 깔고 씨앗을 심어 싹이 돋아나는 과정을 물질적으로 시연했다.
1999, 빙벽
1999년 귀국한 뒤 이익태는 한반도의 분단을 응시했다. 《빙벽(Ice Wall)》 시리즈는 서강대교와 통일대교에 380여 개의 노란 얼음 블록을 세우는 작업이었다. 얼음이 강물에 녹아 바다로 흘러가듯, 남북의 경직된 긴장이 해소되기를 기원하는 정치적 염원. 강렬한 햇빛 아래 얼음을 계속 쌓아올리는 물리적 행위가, 말보다 더 오래 남는 선언이 되었다.
스스로 그려지는 그림
— 한지에 얹힌 빛의 편지
2000년대 중반, 이익태의 작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성북을 거점으로 한 시골 생활, 자연의 물성 자체에 대한 천착. 마당에 한지를 펴고 물감을 뿌리고, 물로 씻어내고, 햇빛에 말린 후 다시 그려 씻어내는 행위의 반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