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의 경계를 지운
한 사람의 실험
영화, 연극, 퍼포먼스, 회화, 설치 —어떤 하나의 틀에도 머물기를 거부한 50년의 실험.
토탈 아티스트 —
보이지 않는 세계의 번역자
이익태(1947–2025)는 영화·연극·퍼포먼스·회화·설치를 넘나들며 50년 이상을 활동한 한국의 토탈 아티스트입니다. 1970년, 서울예술대학 재학 중이던 그는 한국 최초의 독립영화로 알려진 「아침과 저녁 사이」를 연기·연출·감독합니다. 기승전결이라는 기존 영화 문법을 철저히 파괴한 이 작품은 훗날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도 상영되며 국제적 인정을 받았습니다.
같은 시기 실험영화 그룹 '필름 70'을 창립하고, 1970년대 중반 방태수·김구림 등과 함께 한국의 초기 전위예술 그룹인 제4집단에 참여하며 기성 예술계의 관습에 도전했습니다. 1972년에는 프랑스 누벨바그와 뉴 아메리칸 시네마에 영향 받은 대학생·영화인들로 구성된 영상연구소 창립에도 함께했습니다.
1977년 미국으로 건너가 약 22년간 체류합니다. 본격적으로 그림에 전념하여 뉴욕 클라리마이너 화랑 국제전에서 1등상을 수상하며 국제 무대에 진출했습니다. 동시에 LA 한인타운에 거주하며 프리랜서 기자로 한국 이민자들의 일상과 사회적 문제를 취재했고, 이 경험은 '페이크 아메리칸 드림'과 코리안 디아스포라라는 비판적 시각을 작업에 담게 합니다.
LA에서 그는 퍼포먼스 그룹 Theater 1981을 창단합니다. 소리와 비주얼에 역점을 둔 실험적 퍼포먼스로,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곡(Wailing)' 시리즈는 미술전문지와 주요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KAL기 격추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퍼포먼스 'Spirit 265'는 ABC 등 주요 방송국의 뉴스로 다루어졌습니다.
1992년 LA 폭동은 새로운 전환점이 됩니다. 불타버린 한인타운의 잔해를 직접 전시장으로 옮기고, LA시 문화국의 그랜트로 대형 퍼포먼스·설치 '볼케이노 아일랜드'를 연출합니다. NBC TV에 소개된 이 작업은 인종 갈등 속 소수민족의 고통을 담으면서도 폐허 위에 씨앗을 심어 싹이 돋는 과정으로 회복과 치유를 물질적으로 시연했습니다. 이후 '허깅 엔젤스', 'The Day of Collage'로 연속 그랜트를 받고, 캘리포니아 표현주의 작가 GRONK와도 협업했습니다.
1999년 귀국 후 그는 한반도 분단을 응시합니다. 빙벽(Ice Wall) 시리즈는 서강대교와 통일대교에 380여 개의 노란 얼음 블록을 세우는 작업으로, 얼음이 강물에 녹아 바다로 흘러가듯 남북의 경직된 긴장이 해소되기를 기원했습니다. 말년에는 마당에 한지를 펴고 물감을 뿌린 후 물로 씻고 햇빛에 말리는 행위를 반복하며 '하이쿠(Aiku)' 연작으로 자연의 물성에 천착했고, '피에로(Pierrot)' 시리즈에서 인간 내면의 희비극을 담아냈습니다. 그는 “예술가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번역자”라 정의했습니다. 2025년 12월 7일 별세했습니다.
주요 테마
- 1
토탈 아트 / 장르 횡단 실험
영화·연극·퍼포먼스·회화·설치 — 어느 하나의 매체에 머무르지 않는 것 자체가 방법론이었다.
- 2
역사적 비극과 치유
광주, KAL기 격추, LA 폭동, 분단 — 집단의 상처를 애도와 회복의 물리적 행위로 번역했다.
- 3
자연·무위·비의도
말년의 화업: 마당에 편 한지, 물에 씻기는 물감, 바람과 벌레가 완성하는 그림. "그리는 그림에서 스스로 그려지는 그림으로."
작가의 시간
- 1947출생.
- 1967청년작가연립전 참여.
- 1970「아침과 저녁 사이」 연출·주연 — 한국 최초 독립영화 (16mm, 흑백, 20분). 제4집단 합류. 실험영화 그룹 필름 70 공동 창립.
- 1972영상연구소 공동 창립 — 누벨바그·뉴 아메리칸 시네마 영향 받은 대학생 영화인 모임.
- 1973연극 〈페리숑씨의 여행〉 연출; 단편영화 〈빛의 행방〉·〈시시한 오후〉 상영; 수채화 개인전.
- 1974–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 가작 입선 (1974: 〈아무도 없던 휴가〉; 1975: 〈레퀴엠〉).
- 1977미국으로 이주, 본격적인 화가 생활 시작. 뉴욕 클라리마이너 화랑 국제전 1등상 수상.
- 1981–LA에서 퍼포먼스 그룹 Theater 1981 창단. '곡(Wailing)' 시리즈(광주 추모)·'Spirit 265'(KAL기 격추 희생자 추모) 미국 주요 언론·방송 보도.
- 1992LA 폭동: 〈볼케이노 아일랜드〉 연출 (LA시 문화국 그랜트; NBC 방영); 이후 〈허깅 엔젤스〉·〈The Day of Collage〉 연속 그랜트. GRONK과 협업.
- 1999귀국. 빙벽(Ice Wall) 시리즈: 서강대교·통일대교에 노란 얼음 블록 약 380개 설치, 남북 분단 해소 기원.
- 2000s–하이쿠(아이쿠) 연작·먹그림: 물·바람·빛이 함께 완성하는 예술. 피에로 연작: 광대를 통한 인간 이중성 탐구.
- 2001「아침과 저녁 사이」 제27회 한국독립단편영화제 상영.
- 2004「아침과 저녁 사이」 제3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
- 2015「아침과 저녁 사이」 영국 테이트 모던 상영 (《Embeddedness: Artist Films and Videos from Korea 1960s to Now》).
- 20252025년 12월 7일, 서울에서 별세. 향년 78세.
바람과 물, 사라지는 손
말년의 이익태는 마당에 한지를 펴고 물감을 뿌린 뒤 물로 씻어내고, 햇빛에 말려 다시 그려 씻어내는 행위를 반복했다. 바람에 은행잎과 솔잎이 흩어지고 벌레가 날아들었다. 작업은 작가의 손보다 바람과 물, 빛과 나뭇잎이 완성했다 — 만드는 이의 손은 과정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마지막 「피에로(Pierrot)」 연작은 인간의 내면으로 돌아섰다. 위트와 페이소스의 상징인 광대를 통해 모든 삶의 이중성을 담았다. 원색의 밝은 색채가 묵직한 정서의 무게를 견디며, 웃음과 그 뒤의 슬픔을 동시에 품었다.
세 편의 에세이 —
고정된 형식 없는 실천에 관하여
1장르를 가로지른 실험 — 「아침과 저녁 사이」에서 테이트 모던까지
1970년, 서울예술대학 재학 중이던 이익태는 「아침과 저녁 사이」를 연출·각본·주연으로 제작했다. 16mm 흑백으로 찍은 20분짜리 이 작품은 영화 내러티브의 관습적 문법 — 기승전결, 인과관계, 극적 해소 — 을 의도적으로 파괴했다. 한 청년이 하루를 보내는 만남들을 따라가지만, 그 논리는 극적이 아니라 연상적이다. 한국 영화가 장르 관습과 스튜디오 통제로 운영되던 시대에 가해진 형식적 도발이었다.
같은 해 이익태는 제4집단에 합류했다. 미술가와 영화인을 하나로 묶어 해프닝과 실험적 행위로 기성 예술계에 도전했던, 한국 최초의 전위 예술 집단 중 하나였다. 그는 동시에 필름 70도 공동 창립하고, 1972년에는 프랑스 누벨바그와 뉴 아메리칸 시네마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대학생·영화인 모임인 영상연구소 창립에도 함께했다. 한 해 안에 이 집단들이 축적되는 방식은 하나의 특정한 순간을 기술한다: 1970년 한국 예술은 외부를 향해 열리고 있었고, 이익태는 그 문을 여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아침과 저녁 사이」의 긴 잔향은 한국 실험영화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를 증언한다. 제27회 한국독립단편영화제(2001), 제30회 서울독립영화제(2004)에 상영됐고, 2015년에는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 《Embeddedness: Artist Films and Videos from Korea 1960s to Now》의 일환으로 상영됐다. 1970년 한 학생이 만든 작품이 2015년 런던 미술관에 닿는 것 — 지연과 도착, 둘 다 선구자라는 것의 의미의 일부다.
2퍼포먼스는 증언이다 — Theater 1981과 볼케이노 아일랜드
1977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익태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왔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한국 디아스포라 공동체 — 그리고 거기까지 따라온 역사 — 는 그림 만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 LA에서 그는 Theater 1981을 창단했다. 소리와 시각 언어를 통해 역사적 트라우마를 집단적 신체 행위로 직면하는 퍼포먼스 그룹이었다.
'곡(Wailing)' 시리즈는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추도했다. 군사력에 의해 진압된 1980년 민주화 항쟁의 상처는, 귀국한 사람들만큼이나 LA의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함께 짊어진 것이었다. 퍼포먼스는 방법에서 실험적이었지만 의도에서 직접적이었다: 공개적으로 애도를 수행하고, 슬픔의 사유화를 거부하는 것. 미술 전문지와 주류 언론 모두에 보도됐다. 1983년 9월 소련 전투기에 격추된 KAL 007편 희생자 269명을 추모하는 퍼포먼스 'Spirit 265'는 ABC 등 주요 방송국의 주요 뉴스로 다루어졌다.
1992년 LA 폭동으로 한인타운이 초토화된 이후, 이익태의 응답은 다시금 파괴된 세계를 물리적으로 예술 공간 안으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불탄 잔해, 깨진 술병, 녹아내린 가재도구들이 직접 전시장으로 옮겨졌다. LA시 문화국의 그랜트로 제작되고 NBC에 방영된 '볼케이노 아일랜드'는 폐허만 보여주지 않았다 — 그 위에 흙을 깔고 씨앗을 심었다. 한 공간 안에 비탄과 회복의 가능성을 함께 담았다. 이후 '허깅 엔젤스', 'The Day of Collage'로 LA시 문화국의 그랜트를 연속 받고, 캘리포니아 표현주의 작가 GRONK과 협업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퍼포먼스는 형식 자체를 위해 선택된 것이 아니었다 — 어떤 순간은 눈이 아닌 몸으로 증언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3그리는 그림에서 스스로 그려지는 그림으로 — 말년의 전환
1999년 귀국하고 빙벽(Ice Wall) 시리즈 — 서울 두 다리 위의 노란 얼음 블록 380여 개, 분단 해소를 향한 조용한 기원 — 를 완성한 뒤, 이익태는 더 조용한 영역으로 향했다. 2000년대 중반, 도시 바깥에서 생활하며 그는 '하이쿠(아이쿠)' 연작을 발전시켰다: 마당에 한지를 펴고 물감을 뿌린 후 물로 씻고, 햇빛에 말리고, 다시 시작하는 작업. 바람이 나뭇잎을 화면 위로 흩었다. 벌과 나비, 잠자리가 내려앉았다 날아갔다. 작업은 작가 혼자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것으로 완성됐다 — 바람과 물과 공기, 벌레와 나뭇잎이 벌이는 잔치로.
이 전환에 대한 그 자신의 설명: “나는 오랜 동안 의미와 상징, 메시지라는 무거운 짐을 표현하려고 낑낑 거렸다. 형태나 의미, 상징을 포기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이쿠 연작은 같은 상태를 향하는 먹그림과 함께 전개됐다 — 스스로 그려지는 그림, 작가의 의도를 짐처럼 지지 않는 작업. 그는 자신의 예술가적 정체성을 “보이지 않는 세계의 번역자”로 정의했다: 시각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통로를 여는 사람.
말년을 채운 피에로 연작은 이것을 내면으로 향했다. 위트와 페이소스를 동시에 지닌 존재인 광대는 모든 사람의 이중성 — 웃음 뒤의 슬픔, 퍼포먼스 안의 진심 — 을 탐구하는 매개가 됐다. 한지에 아크릴과 오일파스텔로 그려진 작품들은 원색의 밝은 색채와 정서의 무게, 문질리고 눌린 질감, 분리할 수 없는 희극과 비극을 함께 담았다. “세상이라는 무대에 등장한 우리는 모두 광대다”라고 그는 말했다. 후배 작가들에게 전한 조언 — “유명해지기보다 너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 — 도 같은 이해에 속했다: 예술은 목적이 아니라 관계이며, 실제로 거기 있는 것에 현존하는 방식이라는.
1970년 「아침과 저녁 사이」의 16mm 프레임에서 2010년대 마당의 한지까지, 이익태의 실천은 하나의 물음을 여러 형식으로 추구해왔다: 담을 수 없는 것들 — 역사, 공동체, 빛과 물과 바람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 — 에 어떻게 현존하는가. 그는 씨앗페에 이 캠페인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과의 연대자로서 함께한다 — 다음 세대의 예술인들이 그가 짊어진 무게 없이, 그가 평생 연습한 자유로 일할 수 있도록.
주요 작품
총 3점의 작품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익태 작가는 동료 예술인을 위한 연대의 뜻으로 씨앗페에 함께했습니다. 작품 판매 수익은 전액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기금으로 이어집니다. 작품 한 점의 구매가, 오늘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 한 사람의 다음 한 달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