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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40주기 추도식

오윤 40주기 추도식

2026년 7월 5일(일) · 인사동 출발

잔여 44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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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비 합계: 30,000원

추도식 안내

  1. 09:30

    인사동 수운회관 옆 출발

  2. 11:00

    추도식 진행

  3. 12:00

    추도식 종료

  4. 13:30

    인사동 풍류사랑(구 낭만) 점심

오윤 (1946–1986) · 한국 민중미술의 거장

1946 — 1986

오윤

한국 민중미술의 거장

미술은 많은 사람이 나누어야 한다

소설가 오영수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오윤은 문학 대신 칼끝으로 시대를 기록했습니다. 1969년 「현실 동인」, 1979년 「현실과 발언」 창립에 참여하며 한국 민중미술 운동의 한복판에 섰고, 그가 새긴 목판화는 대학가와 공장 담벼락, 시장통에서 민중의 손으로 전해졌습니다.

그가 택한 목판화는 한 번 칼을 대면 되돌릴 수 없는 결기였고, 프레스기조차 없이 숟가락으로 종이를 문질러 수만 장을 찍어 나눌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그릇이었습니다. 부산 가마골의 억센 웃음, 구로공단 노동자의 땀, 짓눌린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민중의 생명력 — 그는 그 모두를 투박한 칼자국 안에 살려 두었습니다.

검열이 정면의 목소리를 막던 시절, 그는 굿판으로 들어가 칼춤과 도깨비를 새기며 가장 깊은 곳에서 저항했습니다. 그리고 1986년 7월, 첫 개인전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짧은 생애가 남긴 작품들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시대 가장 아픈 곳을 어루만집니다.

칼끝으로 새긴 시대

오윤의 판화

오윤이 평생 매달린 목판화는 한 번 칼을 대면 되돌릴 수 없는 결기이자, 누구나 나눠 가질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예술이었습니다. 그 칼끝이 새긴 우리 시대의 얼굴들.

추도식의 의의

그가 칼을 내려놓은 그 여름, 마흔 번째 해에

오윤을 기억하는 일은 한 예술가를 추억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미술은 많은 사람이 나누어야 한다’던 그의 믿음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 작품 한 점의 수익이 어려운 동료 예술인의 다음 한 달이 되는, 상호부조의 자리에서.

1986년 여름 그가 칼을 내려놓은 지 마흔 해. 7월 5일, 그의 벗과 후배, 그리고 그를 사랑한 시민이 인사동에 모여 그를 기립니다. 떠난 이를 기억하는 마음이 산 사람을 살리는 자리 — 당신과 함께이고 싶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