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g Won-chul carved the faces of comfort women survivors into lead plates, painted a landfill under red tarpaulin, and built community art in a traditional market and a home village. A reading of the 1988 woodcut "Father''s Land," offered as homage to Oh Yoon.
Korean original — English translation pending
정원철 — 얼굴을 새기는 판화가, 아버지의 땅으로 오윤 앞에 서다

검은 판을 흰 선으로 파낸 가로 화면입니다. 왼쪽에서 웃통을 벗은 사람이 등을 보이며 서 있습니다. 어깨는 무겁게 내려앉았고 고개는 숙였습니다. 그 뒤로 이랑이 굽이치는 밭이 펼쳐지고, 오른쪽에는 깊게 주름진 노인의 얼굴이 어둠에서 떠오르듯 크게 자리합니다. 얼굴의 반은 빛을 받고 나머지 반은 그늘에 잠겼습니다. 노인의 시선은 정면이 아니라 화면 바깥 어딘가를 향합니다.
정원철의 1988년 목판화 〈아버지의 땅〉입니다.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에 작가가 오마주로 내놓은 작품입니다. 오윤이 세상을 떠난 지 2년 뒤, 정원철이 스물여덟 무렵이던 해에 새겼고, 38년이 지나 오윤 앞에 다시 놓였습니다.
이 글은 그 한 점에서 출발해 정원철이라는 판화가가 40년 넘게 무엇을 새겨 왔는지를 따라갑니다. 답은 대체로 한 가지로 모입니다. 사람의 얼굴, 그리고 그 얼굴을 그렇게 만든 구조입니다.
1960년생 판화가의 이력
정원철은 1960년생입니다.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으며, 독일 카셀대학교 미술대학원 조형예술과에서 다시 석사 과정을 거쳤습니다. 김달진미술연구소의 작가 정보가 이 학력을 그렇게 기록합니다. 전공은 서양화로 시작했지만 걸어온 길은 판화입니다.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 교수로 오래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한겨레는 2023년 5월 기사에서 그를 "추계예술대에 판화과를 개설하고 교수를 지낸" 작가로 소개했습니다. 판화과는 전국 대학 가운데 홍익대와 추계예대 두 곳에만 있고, 둘 다 1988년에 생겼다고 추계예대 판화과를 소개한 인터뷰 기사는 적고 있습니다. 1988년은 〈아버지의 땅〉이 새겨진 해이기도 합니다.
판화가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인터뷰에 짧게 남아 있습니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판화에 수공 노동의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말 끝에, 그는 판화가 애초부터 인문적인 정보의 교류와 확산을 임무로 삼고 태어난 예술이라는 취지로 설명합니다. 판 하나에서 여러 장이 나오니 여러 사람에게 나눌 수 있고, 그만큼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그가 판화를 택한 이유입니다.
이 생각은 작업 이력 전체에 걸쳐 그대로 확인됩니다. 그는 목판화와 리놀륨 판화를 함께 다루며 이십대 후반부터 국내외 전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987년 한국형상미술제, 1988년 파리 그랑팔레의 비평구상전과 도쿄도미술관의 제3세계미술전, 1990년 독일의 국제판화트리엔날레가 초기 단체전 목록에 있습니다. 수상도 이어집니다. 1995년 류블랴나 국제판화비엔날레 1등상, 1997년 폴란드 크라코프 국제판화트리엔날레 우수상이 기록되어 있고, 중앙일보는 2002년 기사에서 서울 국제판화비엔날레 우수상과 서울 국제드로잉비엔날레 공모부문 대상도 그의 수상으로 전했습니다.
접어둘 수 없는 이야기 — 납판 위의 얼굴
정원철의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진 작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초상 판화입니다.
계기는 1997년의 폴란드 방문이었습니다. 동아일보 2001년 8월 기사에 따르면 그는 전시 일로 폴란드에 갔다가 유대인 집단 학살의 현장 아우슈비츠를 보고, 역사와 기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 뒤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98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옆에 일본군위안부 역사관이 문을 열자 할머니 초상화 스무 점을 그려 기증했습니다.
2001년 8월 서울 견지동 동산방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이 이 작업의 본격적인 발표였습니다. 출품작은 깊게 골이 패인 할머니들의 얼굴 서른 점이었고, 전시는 네 갈래로 짜였습니다. '구겨진 삶'은 납으로 된 얇은 판에 초상을 찍어 유리판 위에 붙이고, 유리에는 '원망'·'통곡'·'도망' 같은 단어를 적은 연작입니다. '다가가기'는 김순덕 할머니의 처녀 시절을 그린 〈못다 핀 꽃〉과, 솜방망이를 쥔 주름진 손을 한 벌로 묶었습니다. 솜방망이는 할머니들에게 전혀 힘이 되어 주지 못한 우리 사회의 제도를 뜻합니다. '접어둘 수 없는 이야기'는 초상을 새긴 납판을 일부러 구겼다 펴낸 작품들이고, '회색의 초상'은 리놀륨 판화로 찍은 초상입니다.
이듬해 2월 같은 화랑에서 열린 초대전 《접어둘 수 없는 이야기》를 두고 중앙일보는 이렇게 썼습니다. 전시가 무겁고 진지한 것은 위안부 할머니를 다뤘기 때문이 아니라, "뛰어난 초상화가가 세월의 얼굴을 정면으로 그렸을 때 드러나는 힘과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높이 1미터가 넘는 얼굴의 크기, 검은 바탕에 회색 선으로만 잡은 윤곽, 납판이라는 재료의 성질에서 오는 무게가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고 했습니다.
제작 방식도 기사에 적혀 있습니다. 압축 고무판을 치과용 드릴로 긁어 원판을 만들고, 그 원판을 납판에 흑백으로 찍었습니다. 작가는 초상 판화에 납판을 쓴 것은 처음이라며 "무거운 금속성, 회색의 톤이 작품 성격에 맞는다"고 말했습니다. 얼굴이 접혀 윤곽이 이지러지는 것은 실수도 장식도 아닙니다. 굴절된 역사를 우리가 지금 어떻게 느끼고 나누는가를 묻는 장치입니다. 중앙일보는 그 물음을 이렇게 옮겼습니다. 타인의 간난에 찬 삶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느끼는가.
정원철 자신은 이 작업의 겨냥을 일본의 범죄를 고발하는 데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 자체의 문제를 드러내려는 게 제작의도"라고 밝히고,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를 벗어나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관심과 배려를 두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전하려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동아일보 기사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작가는 우리 역사의 아픈 부분을 감싸고 위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 대목이 정원철의 작업 문법입니다. 그의 화면은 사건을 재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보는 사람을 그 사건과 관계 맺게 만듭니다. 거기서 뜻하는 관계는 죄책의 관계가 아니라 관심의 관계입니다.
한국 목판화 100년을 돌아본 2021년 KBS 보도는 2000년대에도 정원철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 판화 같은 작업으로 시대 비판이라는 한국 판화의 정신이 이어진다고 짚었습니다.
붉은 풍경 — 버려진 것이 지배하는 화면
2019년 봄 양평군립미술관에서 《판화》전이 열렸습니다. 근현대 세계 거장의 판화를 시대순으로 늘어놓은 전시였고, 경기일보는 국내 작가 가운데 정원철의 판화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전했습니다.
나란히 걸린 130호 크기의 대작 두 점, 〈붉은 풍경〉과 〈거친 풍경〉은 쓰레기 매립장을 그렸습니다. 매립장 주변 환경은 흑백으로 처리하고, 인간이 버린 정체 모를 물질을 뒤덮은 강렬한 붉은색 포장 천이 화면을 지배합니다. 기사는 자연보다 인간이 버린 물질이 자연을 지배하는 듯한 모습 그 자체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인 듯하다고 적었습니다.
위안부 초상과 매립장은 언뜻 아무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하나는 한 사람의 얼굴이고 하나는 산더미 같은 폐기물입니다. 그러나 경기일보는 두 작업을 한 문장으로 잇습니다. 정원철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초상을 제작하는 등, 사회문제와 국토와 역사가 늘 그림의 주제가 되는 화가라고. 얼굴이든 땅이든, 그가 새기는 것은 구조가 사람과 땅에 남긴 자국입니다.
그는 양평에 거주하는 판화계의 대표적 작가로도 소개됩니다.
2021년에는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국토·사람·생명》 목판화 18인전에 참여했습니다. 미술평론가 김진하가 기획한 이 전시는 대형 목판화 104점을 포함해 700여 점을 선보이며, 삶의 터전을 다룬 '국토', 역사 속 인물과 서사를 비판적 사실주의의 관점으로 보는 '사람', 자연과 사람 사이의 기운을 그리는 '생명'의 세 부로 나뉘었습니다. 참여 작가 열여덟 명 가운데 정원철의 이름이 있습니다. 이 전시의 세 낱말, 국토와 사람과 생명은 정원철의 화면이 오래 되풀이해 온 세 낱말이기도 합니다.
작업실 밖으로 — 통인시장에서 양평 칼산까지
정원철의 이력에서 판화만큼 눈에 띄는 것이 공동체미술입니다. 작가 소개문은 그 두 갈래를 나란히 놓습니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40년 넘게 판화와 공동체미술 프로젝트로 작품 활동을 해 왔고, 사회구조와 개인, 역사와 현재적 삶을 주로 다루어 왔다는 것입니다.
대표 사례는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입니다. 뉴데일리 2012년 6월 기사에 따르면 정원철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문전성시' 컨설턴트 3기 멤버로 컨설팅과 기획을 의뢰받은 것을 계기로 2011년 시장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시장을 예술의 무대로 본 까닭은 커뮤니티 아트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사에 실린 그의 말은 이렇습니다.
"작가가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커뮤니티 아트입니다. 관객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전시회는 폐쇄적이지만 시장에서 하는 전시회는 상인, 손님 등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죠." — 뉴데일리, 2012년 6월 28일
첫 프로그램은 상인들과의 상담이었습니다. 처음 어떤 인생을 살아왔느냐고 물으면 상인들은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라고만 답했다고 합니다. 교수나 작가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인간적인 대화를 이어 간 뒤에야 자기가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야기해 주었다는 것이 그의 회고입니다. 그는 시장의 빈 점포를 '꿈해소'(꿈보다 해몽 공작소)라는 전시장으로 바꾸었습니다. 그곳에서 일곱 상인의 서로 다른 인생이 작품으로 표현되었고, 2011년 9월부터 12월까지 2주 단위로 릴레이 기획전이 열렸습니다. 첫 전시는 우리농산물유통 서정숙 사장의 이야기였고, 불교대학에 입학한 그의 삶을 '생각의 방'이라는 이름의 하얀 커튼 공간과 불교 음악으로 표현했다고 기사는 전합니다. 2012년에는 갤러리 쿤스트독에서 개인전 《일곱개의 삶》도 열었습니다.
2009년 11월에는 북아현동 골목이 무대였습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판화과 학생들과 동문 작가들이 추계예대 구내와 주변 골목에서 《골목에서 '주름' 잡기》를 열었습니다. 학생들은 사라질 골목길을 미니어처로 남겼고, 개발을 앞두고 설 자리를 잃어 가는 주민의 처지를 보호판 없이 굴러다니는 달걀로 표현한 영상 작품도 나왔습니다. 프로젝트 책임자였던 정원철은 "학생들이 작업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현장으로 나와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 5월, 고향 마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에 '공동체예술공간 칼산'이 문을 열었습니다. 한겨레는 개관 기념 행사 '프레시 칼산'이 6월 4일까지 열린다고 전하며, 이 공간이 정원철이 고향 마을에서 운영하는 곳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납판 위의 얼굴, 시장 상인의 일곱 가지 삶, 사라지는 골목, 고향 마을의 예술 공간. 겉모양은 다르지만 같은 일입니다. 이름 없이 지나가는 사람의 삶을 화면 한복판으로 옮겨 놓는 일입니다.
오윤 앞에서 — 세 개의 제목
이제 〈아버지의 땅〉으로 돌아갑니다. 정원철이 이 작품에 붙인 작가의 말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윤 선생님의 작품들 중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농투산이', '농부와 아들', '밭일' 등 흙 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특별히 애틋한 시선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많다." — 작가의 말
그가 거명한 네 작품은 모두 농사짓는 사람을 그린 오윤의 판화입니다. 오윤은 1980년대 민중미술의 판화가이고, 정원철은 같은 시기에 판화가로 첫걸음을 뗀 후배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매체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습니다. 흙 위에 서 있는 사람과 그 사람이 마주한 현실입니다.
작가의 말은 이어서 이 작품이 무엇을 다루는지를 짚습니다.
"'아버지의 땅'은 아버지가 일구어 온 땅에서 그 삶을 기꺼이 이어가려는 마음조차 뒷받침하지 못하는 사회 구조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땅이 삶터인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처한 현실을 바라보는 오윤 선생님의 눈빛에 바치는 오마주이다." — 작가의 말
이 문장에서 눈여겨볼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문제가 놓인 자리입니다. 그가 짚는 것은 땅을 버리려는 자식의 마음이 아니라, 땅에서 삶을 잇겠다는 마음조차 받쳐 주지 못하는 사회 구조입니다. 잇고 싶어도 이을 수 없게 만드는 쪽에 물음을 던집니다. 위안부 판화에서 "우리 사회 자체의 문제"를 드러내겠다고 했던 것과 같은 방향입니다. 개인을 나무라지 않고 구조를 향해 묻습니다.
다른 하나는 오마주의 대상입니다. 그가 바치는 것은 오윤의 어느 작품이나 기법이 아니라 '눈빛'입니다. 땅이 삶터인 사람들과 그들이 처한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 그 애틋함에 바친다고 했습니다. 판화의 모양을 빌려 오는 대신 바라보는 태도를 이어받겠다는 선언입니다.
화면을 따라 읽기
작가의 말을 옆에 두고 화면을 다시 봅니다.
먼저 검은 바탕입니다. 이 판은 검은 면을 넓게 남기고 그 위에 흰 선을 파 올린 것처럼 보입니다. 하늘은 빽빽한 사선의 흰 획이 몰아치듯 채웠고, 밭의 이랑은 굽이치는 줄무늬로 새겼습니다. 사람의 살은 가는 선을 겹쳐 결을 만들었습니다. 같은 판 위에 하늘과 땅과 살갗을 모두 새겼는데, 선의 방향과 밀도만 달라져 서로 다른 질감이 됩니다. 목판화가 가진 힘이 이 한 장에 다 들어 있습니다.
왼쪽의 사람은 얼굴을 보이지 않습니다. 등만 보입니다. 어깨뼈와 척추의 선이 또렷하고, 팔은 힘없이 아래로 늘어졌고, 머리는 앞으로 숙어 뒤통수가 어둠에 묻혔습니다. 이 사람은 밭을 향해 서 있는 것일까요, 밭에서 돌아서고 있는 것일까요. 화면은 답하지 않습니다.
오른쪽의 노인은 정반대로 얼굴을 드러냅니다. 이마와 눈가와 입가에 파인 주름 하나하나가 흰 선의 밀도로 새겨졌고, 눈은 정면을 보지 않고 옆을 봅니다. 얼굴의 오른쪽 절반은 어둠에 묻혔습니다. 훗날 위안부 할머니들의 초상으로 이어질 세월의 얼굴을 그리는 솜씨가, 1988년의 이 남성 노인의 얼굴에 이미 있습니다.
제목을 따라 읽으면 노인은 아버지로, 등을 보인 사람은 그 땅을 잇게 될 사람으로 읽힙니다. 화면은 두 사람의 관계를 글자로 밝히지 않지만, 한 사람은 얼굴을 내밀고 한 사람은 등을 돌린 구도가 이야기를 대신합니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땅에서 산 세월이 새겨졌고, 뒤를 잇는 사람에게는 표정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어떤 얼굴로 서 있는지는 보는 사람이 채우게 남겨 둔 자리입니다.
둘 사이에는 밭이 있습니다. 이랑이 화면 중앙에서 깊게 휘어지고, 오른쪽 가장자리에서는 화면 밖으로 이어집니다. 땅은 두 사람을 갈라놓는 자리이면서 이어 주는 자리입니다. 노인의 얼굴 왼쪽으로 지나가는 이랑의 선은 그 얼굴의 주름과 닮아 보입니다. 땅의 결과 얼굴의 결이 같은 칼로 새겨졌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은 곧 아버지가 일군 땅의 얼굴입니다.
76x38cm, 정확히 2 대 1의 가로 화면입니다. 이 폭은 눈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등에서 얼굴로 천천히 옮겨 가게 합니다. 등에서 시작해 얼굴에서 멈추는 이 순서가,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돌아서는 시간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씨앗페에서 만나는 〈아버지의 땅〉
씨앗페 온라인 갤러리에 나온 정원철의 작품은 이 한 점입니다.
〈아버지의 땅〉 — 1988년, Woodcut, 76x38cm
40년 넘게 이어 온 '사회구조와 개인'이라는 주제의 초기 지점에 놓인 목판화입니다. 에디션 10부 한정입니다. 흑백 대비가 강한 가로 화면이라 벽면 한쪽을 길게 차지하며, 복도나 서재처럼 가까이서 오래 보는 자리에 잘 어울립니다.

- 76x38cm · Woodcut · 1988 · ₩3,000,000
- 작품 페이지 →
그리고 지금
정원철이 오윤에게 바친 것은 화려한 헌사가 아니라 흙 위에 선 사람을 향한 눈빛입니다. 그 눈빛은 1988년에도, 2001년 납판 위 할머니의 얼굴에서도, 2019년 매립장을 덮은 붉은 천에서도, 2023년 고향 마을의 공간에서도 같았습니다. 그가 새기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 사는 자리이고, 그 자리를 그렇게 만든 구조입니다.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은 오윤이 새긴 판화 전작 187종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전시입니다. 정원철의 〈아버지의 땅〉은 그 자리에서 오윤의 주제, 흙 위에 선 사람의 삶과 맞닿아 있습니다.
작품을 처음 만나는 분께는 순서를 권합니다. 먼저 노인의 얼굴을 한참 보십시오. 주름 하나하나가 몇 번의 칼질로 이루어졌는지 세어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다음에 등을 보인 사람으로 눈을 옮기고, 마지막으로 그 사이의 밭을 보십시오. 이 화면이 아버지의 이야기이자 아들의 이야기이고 땅의 이야기라는 것이 그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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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정원철은 어떤 작가인가요? A. 1960년생 판화가입니다.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와 같은 대학원을 마치고 독일 카셀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거쳤으며,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 교수를 지냈습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초상 판화, 쓰레기 매립장을 그린 대형 판화, 전통시장과 고향 마을에서 펼친 공동체미술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Q. 대표작은 무엇인가요? A. 2001년 서울 동산방화랑에서 발표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초상 판화 연작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납판에 초상을 찍고 접어 일그러뜨린 〈접어둘 수 없는 이야기〉 연작이 중앙일보 2002년 기사에서 평론으로 다뤄졌습니다. 2019년 양평군립미술관 《판화》전에 나온 130호 크기의 〈붉은 풍경〉·〈거친 풍경〉도 경기일보가 "압도적인 존재감"이라고 평했습니다.
Q. 〈아버지의 땅〉은 언제 만든 작품인가요? A. 1988년작 목판화입니다. 76x38cm의 가로 화면이고, 씨앗페에서는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에 오마주로 나온 작품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Q. 왜 오윤에게 오마주를 바쳤나요? A. 작가의 말에 따르면 오윤이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농투산이〉·〈농부와 아들〉·〈밭일〉처럼 흙 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애틋한 시선으로 표현한 작품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땅〉은 땅이 삶터인 사람들과 그들이 처한 현실을 바라보는 오윤의 눈빛에 바치는 오마주라고 작가는 밝혔습니다.
Q. 〈아버지의 땅〉은 무엇을 다룬 작품인가요? A. 작가에 따르면 아버지가 일구어 온 땅에서 그 삶을 기꺼이 이어 가려는 마음조차 뒷받침하지 못하는 사회 구조의 문제를 다룬 작품입니다.
Q. 공동체미술 활동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A. 2011년 통인시장에서 상인 일곱 명의 삶을 전시로 옮긴 '꿈해소' 릴레이 기획전(2011년 9월~12월), 2009년 북아현동 골목 프로젝트 《골목에서 '주름' 잡기》, 2023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에서 개관한 '공동체예술공간 칼산'이 있습니다.
Q. 정원철의 작품 가격은? A. 〈아버지의 땅〉은 ₩3,000,000입니다. 에디션 10부 한정 목판화입니다. 작품 페이지에서 현재 상태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정원철 작품은 몇 점인가요? A. 〈아버지의 땅〉(1988, Woodcut, 76x38cm) 한 점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Seed Art Festiv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