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ulptor Kang Hee-deok made Healing Hands out of gratitude after a hospital emergency, studied his teacher Song Yeong-su in a thesis, and shaped Madonnas and statues. A guide to a career spent handling the human hand, and to the bronze Winter Child.
Korean original — English translation pending
강희덕 — 손을 빚어 온 조각가, 치유의 손에서 겨울 아이까지

바위 같은 덩어리 한가운데에 아기 얼굴이 있습니다. 두건이 달린 두툼한 옷이 머리 위로 산봉우리처럼 솟아 있고, 그 그늘 아래로 얼굴만 매끄럽게 나옵니다. 입술은 살짝 내밀렸고, 눈은 정면이 아니라 곁을 봅니다. 화면 아래쪽에는 맨발 두 짝이 덩어리 밖으로 삐져나와 있습니다. 강희덕의 브론즈 〈겨울 아이〉입니다.
이 작은 조각 하나에 조각가가 반세기 가까이 해 온 일이 들어 있습니다. 거칠게 다룬 표면과 정성껏 다듬은 표면을 나란히 놓고, 사람의 몸에서 가장 작고 약한 부분을 가장 세밀하게 빚는 일입니다. 이 글은 그 일이 어디서 시작됐고 어디까지 왔는지를 따라갑니다.
김천에서 서울대 조소과로
강희덕은 1948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고, 이후 고려대학교 미술학부에서 교수로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작가가 밝힌 소개는 자기 작업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테라코타로 사람의 손을 빚는다, 손을 주제로 한 작업이 특히 많다, 재료를 다루는 방식부터 감성과 사고에 이르기까지 창작은 스스로를 비추어 보는 과정이었다.
이력은 1980년대 초에 선명하게 시작됩니다. 1981년 미술회관에서 조각전을 열었고, 1982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1983년 같은 대전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1983년에는 그로리치 화랑에서 테라코타전을 열었습니다. 아르코예술기록원의 작가 기록에는 1986년 그로리치 화랑의 개인전, 1987년 미술기자상 수상 기념전, 1999년의 조각전이 이어서 올라 있습니다. 개인전을 여러 차례 연 작가입니다.
1986년에는 대한민국 미술기자상을 받았습니다. 그해 작품전을 연 작가 가운데 가장 참신하고 역량이 두드러진 30대 작가에게 주는 상으로, 매일경제는 당시 13개 중앙 신문·방송의 기자들이 자유토론 끝에 만장일치로 수상자를 정했다고 전했습니다. 기사는 수상자를 38세, 강릉대 미술학과 조교수로 소개합니다. 같은 해 2월 말에는 현대공간회 회원으로 도쿄 한국문화원의 전시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현대공간회전과 서울조각회전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그가 꾸준히 참여한 단체전이었습니다.
미술대전과의 인연은 심사위원으로도 이어졌습니다. 고려대학교 교수 프로필에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과 서울특별시 환경장식미술 심의위원을 지냈다고 적혀 있습니다.
청동으로 남은 〈출토〉
초기작 가운데 뚜렷하게 기록에 남은 것은 〈출토 83-17〉입니다. 1983년 청동 작품으로, 크기는 150x110x38cm. 미술대전 우수상 수상 이력과 함께 한 골프장 클럽하우스의 소장 작품 목록에 올라 있습니다. 제목의 '출토'는 땅에서 무언가를 캐낸다는 뜻입니다. 같은 해 테라코타전을 연 조각가가 청동으로도 작업하고 있었다는 기록입니다.
스승 송영수, 용접 조각을 논문으로 읽다
강희덕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스승에 대한 공부입니다. 그는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에서 「송영수 용접조각의 조형세계」라는 제목의 학위논문을 썼고, 도서관 기록에는 2009년 2월로 남아 있습니다. 송영수는 용접으로 철 조각을 만든 조각가입니다.
이듬해인 2010년 10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송영수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파이낸셜뉴스는 짧은 기사로, 불꽃같은 삶을 통해 영원히 빛나는 작품을 남긴 조각가의 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고 전했습니다. 개막식에서 제자 강희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볼륨의 한계를 넘어선 스승의 작품은 유연성과 포용성을 보여주는 것" — 파이낸셜뉴스, 2010년 10월 14일
직선도 수직도 없이 모두 휘어 있고 완벽한 용접도 없는 작품에 대한 평이었습니다. 제자의 눈에 스승의 조각은 단단한 철로 만든 부드러움이었던 셈입니다. 강희덕의 조각이 테라코타와 청동으로 사람의 몸을 빚으면서도 딱딱하게 굳지 않고 어딘가 포용하는 느낌을 갖는 것은, 이 말을 거꾸로 읽으면 이해가 됩니다. 그는 스승에게서 물질이 사람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조각가로 보입니다.
〈치유의 손〉 — 감사에서 시작된 작품
강희덕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작품은 고려대 안암병원 로비에 놓인 〈치유의 손〉입니다. 크리스천투데이의 보도에 따르면 강희덕은 2003년 12월 전신마비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 갔고, 신경외과 서중근 박사의 치료로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그 감동과 감사를 담아 약 2년 만에 작품을 만들어 병원에 기증했습니다. 같은 기사는 서 박사가 40여 년간 집도한 수술이 약 3만 건에 이른다고 전합니다.
치유를 받은 사람이 치유하는 손을 조각으로 세워 두는 일. 병원 로비 중앙에 놓인 이 작품은 그 뒤로 오가는 환자와 보호자의 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있습니다. 국민일보는 서 명예원장의 수상 소식을 전하며 〈치유의 손〉을 강희덕 작가의 작품으로 소개했습니다. 작품이 사람이 아니라 병원이라는 장소에 오래 남아 이야기를 계속 만드는 방식입니다.
2011년 10월 21일에는 두 번째 기증작 〈위로의 손〉 제막식이 열렸습니다. 의료 전문지 의협신문은 이 작품이 환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희망과 의지를 불어넣기 위해 마련됐으며, 누군가를 향해 자비를 베푸는 손, 누군가를 위로하는 장면을 형용한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치유의 손〉에 이은 안암병원의 두 번째 기증이었습니다.
손이라는 주제는 여기서 병원 안의 이야기가 됩니다. 손은 치료하는 손이고, 붙잡는 손이고, 쓰다듬는 손입니다. 강희덕이 손을 오래 빚어 왔다는 작가 소개의 문장이 이 두 점 앞에서 가장 구체적인 모습을 얻습니다.
손끝으로 보는 조각
손은 조각가에게 주제이기 전에 감각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2005년 10월 경향신문은 '손끝으로 보는' 전시회를 소개했습니다. 세 번째로 열리는 이 전시에는 강희덕을 비롯해 김순옥, 박은선, 신현중, 전뢰진, 정국택, 최병상 등 36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대부분 조각가였습니다. 참여 작가 중에는 시각장애인이면서 '손으로 만지는 그림'을 그리는 일본 작가도 있었습니다. 고려대학교 교수 프로필의 전시 이력에도 '손끝으로 보는 조각전'이 들어 있습니다.
눈이 아니라 손으로 보는 전시에 조각가가 자기 작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조각이 원래 만져지는 예술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하는 일입니다. 손을 주제로 삼아 온 작가에게 이 전시는 자연스러운 자리였을 것입니다.
성당의 조각가
강희덕은 가톨릭 신앙 위에서도 작업해 온 조각가입니다. 2002년 10월 2일부터 15일까지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의 평화화랑에서 첫 성미술전을 열었습니다. 가톨릭신문은 이 전시에 화강석, 대리석, 청동으로 만든 성모상, 십자고상, 예수부활상, 14처, 감실, 촛대가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동양미가 돋보이는 성모상과, 가정에 꾸밀 수 있는 15cm 크기의 14처처럼 한국적이고 실용적인 성미술품을 선보이는 자리였습니다.
2006년에는 제11회 가톨릭미술상 조각부문 본상을 받았습니다. 동아일보는 한국인의 모습과 전통 성상의 모습을 조화시킨 공로로 선정됐다고 전했습니다. 성상이라는 오래된 도상 안에 한국 사람의 얼굴을 들여놓는 일이 조각가에게 주어진 과제였고, 그 성과가 인정된 것입니다.
2010년 2월 27일에는 창립 40주년을 맞은 서울가톨릭미술가회 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됐습니다. 그리고 2025년 9월, 가톨릭신문은 서울가톨릭미술가회 작가들의 전시를 소개하며 강희덕이 상처받은 이를 위로하는 〈위로의 손〉을 선보인다고 전했습니다. 병원 로비에서 시작된 손이 성미술의 자리로 옮겨 간 셈입니다.
일상 그리고 온유
2011년 10월 6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진화랑에서 개인전 《일상 그리고 온유》가 열렸습니다. 가톨릭신문은 3년 만에 내놓는 신작들이 자신의 일상과 신앙을 바탕으로 한다고 소개했습니다. '일상'에서는 자전적 줄거리를 소재로 했고, 사각의 프레임 속에 새와 고양이, 강아지, 인형 같은 것들을 담았습니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서성록 회장이 전시에 붙인 평문의 제목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손」이었습니다.
새와 고양이와 인형, 그리고 아이. 〈겨울 아이〉는 2020년 작품으로 이 전시와 시기가 다르지만, 작고 여린 존재를 눈높이에서 들여다보는 조각가의 시선은 이어져 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공공의 자리에 세운 조각
강희덕의 조각은 병원과 성당 밖에도 서 있습니다. 2015년 3월 국회 보도자료는 충숙공 이예 선생 동상 건립이 외교부와 울산광역시의 공동 사업으로 이뤄지고, 조각은 고려대 조형학부 명예교수 강희덕이 맡는다고 밝혔습니다. 높이 195cm, 가로 65cm, 세로 65cm의 청동 주물 입상이고, 화강석으로 만든 높이 60cm의 받침대에 세워집니다. 경상일보는 청동 주물상을 강희덕이 제작했고 화강석 선형은 울산 울주군의 이인행 조각가가 제작했으며, 동상은 한국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옮겨졌다고 전했습니다.
서울시의 공공조각 기록에는 서울 노을공원 조각공원의 작품으로 〈약속의 땅〉이 강희덕의 이름과 함께 올라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은 이숙자, 진영선, 정종미와 함께 강희덕을 고려대 교수를 지낸 작가로 소개하며 그들의 작품을 전시한 바 있습니다.
〈겨울 아이〉를 오래 들여다보기
이제 씨앗페에 나온 작품으로 돌아옵니다.
〈겨울 아이〉는 브론즈, 21x35x37cm의 조각입니다. 정면에서 보면 밑이 넓고 위가 뾰족한 삼각의 덩어리이고, 그 안에 아이가 있습니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표면의 온도 차이입니다. 옷은 거칩니다. 주름이 깊게 파이고, 표면이 꺼끌꺼끌하게 굳은 흔적이 남았고, 청동의 갈색 위에 밝은 점들이 흩뿌려져 있습니다. 눈이 쌓였다 굳은 언덕 같기도 하고, 이불을 뒤집어쓴 모양 같기도 합니다. 그 한가운데 아이의 얼굴만 다릅니다. 볼은 둥글고 매끄러워 빛을 받으면 반짝입니다. 코는 작고, 입술은 무언가 말하려는 듯 앞으로 내밀렸습니다. 눈꺼풀은 반쯤 내려와 있고 시선은 옆으로 흐릅니다. 추워서 웅크린 아이라기보다, 두툼한 옷 속에서 막 바깥을 내다보는 아이의 표정입니다.
두건의 끈이 턱 아래를 지나가는 자리는 섬세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화면 아래로는 맨발 두 짝이 나옵니다. 왼쪽 발은 덩어리 밖으로 크게 나와 있고, 오른쪽 발은 아래 가장자리에 걸쳐 있습니다. 발가락은 하나하나 나뉘고 발톱까지 표현됐습니다. 옷은 뭉뚱그리고 발가락은 세는 조각입니다. 옷 주름 사이로는 작은 손 모양도 비칩니다. 손을 빚어 온 조각가가 이 아이의 손을 옷 속에 넣어 두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밖으로 내놓은 것은 얼굴과 발이고, 손은 따뜻한 곳에 있습니다.
제목이 겨울이라는 계절을 말하지만, 조각은 추위를 그리지 않습니다. 두툼한 옷이 만드는 포근한 부피와 그 속에서 안심한 듯한 얼굴이 있을 뿐입니다. 병상에서 회복한 감사로 손을 만들고, 성당에서 위로의 손을 만든 조각가가 아이를 빚을 때도 감싸는 방식으로 빚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거친 면이 감싸고 매끈한 면이 감싸여 있는 구조는, 앞서 스승에게서 읽어 낸 '유연성과 포용성'의 다른 모습입니다.
- 21x35x37cm · 브론즈 · 2020 · ₩4,000,000
- 작품 페이지 →
옆에서 볼 때도 좋은 작품입니다. 세 방향의 크기가 21, 35, 37cm로 앞뒤 깊이가 넓이와 비슷하기 때문에, 책장 위나 창가처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자리에서 표면의 결이 달라 보입니다. 빛이 옆에서 들어오면 옷의 주름이 그림자를 만들고, 정면에서 들어오면 아이의 볼이 먼저 밝아집니다.
씨앗페에서
강희덕이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것은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낸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치유하고 위로하는 손을 오래 빚어 온 조각가가 이 일에 작은 브론즈 하나로 손을 보탠 셈입니다.
〈겨울 아이〉는 지금 씨앗페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강희덕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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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강희덕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48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난 조각가입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고 고려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를 지냈습니다. 테라코타와 청동으로 사람의 손을 주제로 한 작업을 많이 해 왔습니다.
Q. 〈치유의 손〉은 어떤 작품인가요? A. 고려대 안암병원 로비에 놓인 작품입니다. 크리스천투데이에 따르면 강희덕은 2003년 12월 전신마비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서중근 박사의 치료로 회복했고, 그 감사를 담아 약 2년 만에 작품을 만들어 기증했습니다. 2011년에는 두 번째 기증작 〈위로의 손〉이 제막됐습니다.
Q. 어떤 상을 받았나요? A. 1982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1983년 같은 대전 우수상, 1986년 대한민국 미술기자상, 2006년 제11회 가톨릭미술상 조각부문 본상을 받았습니다.
Q. 스승은 누구인가요? A. 용접 조각으로 알려진 조각가 송영수입니다. 강희덕은 「송영수 용접조각의 조형세계」(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2009)로 학위논문을 썼고,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송영수 회고전 개막식에서 제자로서 스승의 작품을 이야기했습니다.
Q. 〈겨울 아이〉는 어떤 작품인가요? A. 2020년 작품으로 브론즈, 21x35x37cm입니다. 두건 달린 두툼한 옷 속에서 얼굴을 내민 아이를 표현했고, 거칠게 다룬 옷과 매끈한 얼굴, 발가락과 발톱까지 표현된 맨발이 대비를 이룹니다.
Q. 〈겨울 아이〉 가격은 얼마인가요? A. ₩4,000,000입니다.
Q. 작품을 사면 수익은 어디로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강희덕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는 연대자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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