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is studio in Jangsu Village, Lee Seon-il paints the neighbourhood he lives in and the villages that were broken — Gangjeong, Miryang, Yongsan. A guide to the painter and his work at the Seed Art Festival.
Korean original — English translation pending
이선일 — 깨진 마을과 끊어진 선착장, 사는 자리를 그리는 화가

씨앗페에 들어온 이선일의 작품은 한 점입니다. 제목이 깁니다. 〈끊어진 선착장에서 수평선을 보다〉. 2019년, 혼합재료, 63x46cm.
제목이 긴 것은 이 작가에게 낯선 일이 아닙니다. 2016년 개인전을 취재한 기자는 전시장 벽을 보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는 시처럼 제목을 썼다. 긴 제목이 제법 많다."(오마이뉴스, 2016년 12월 9일) 〈새는 저를 잡지 않는 사람의 손 위에 내려앉는다〉 같은 제목이 그 옆에 걸려 있었습니다. 문장 하나를 통째로 제목으로 삼는 방식입니다. 그림이 장면을 보여주고, 제목이 그 장면을 보는 사람의 자리를 알려줍니다.
이 글은 그 자리가 어디인지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 자리가 이 작가의 경우에는 은유가 아니라 실제 주소라는 사실을 먼저 말해두어야 합니다.
장수마을에 작업실을 둔 사람
이선일은 국민대학교 회화과와 같은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습니다. 작업실은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에 있습니다. 낙산 자락, 서울성곽 아래의 오래된 동네입니다.
작업실이 어디 있느냐가 이 작가에게는 이력의 한 줄이 아니라 작업의 방법 자체입니다. 그는 자기가 발 딛고 사는 곳의 사람살이를 그림으로 풀어냅니다. 소재를 찾아 마을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들어가 살면서 그 마을이 소재가 된 순서입니다.
그 자리에 어떻게 닿았는지는 본인의 말로 남아 있습니다.
"결혼을 하면서, 나를 알던 내 동료들이 각시가 될 주연에게 부탁을 했었단다. '(당시엔 그림을 좀 놓고 있어서) 선일이 그림이 좋다. 꼭 다시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작업은 성북쪽에서 하고 싶었다. 인권운동을 하는 후배 민선에게 작업실을 얻어 달라 했는데, 그곳이 여기 장수마을이었다. '작업실을 얻어주면 사람들에게 미술강의도 해줄게!' 하고 약속했는데, 거기서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 — 오마이뉴스, 2016년 12월 9일
같은 기사는 그가 본디 "떠도는 사람"이었고, 정착하고 싶었던 곳은 지리산이었다고 전합니다. 산에 안겨 섬진강을 보며 살 작정으로 후배와 거처까지 탐색했는데, 집을 마련해 들어가려는 즈음에 인권활동가 정주연과 만났고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지리산 대신 낙산 자락이 그의 자리가 된 경위입니다.
마을, 그리고 깨진 마을
2016년 11월 23일부터 12월 9일까지 성북구의 전시공간 성북도원에서 개인전 《마을을 살다》가 열렸습니다. 성북예술창작터가 함께 마련한 자리였고, 작가는 낙산 장수마을 작업실을 나와 북악산 북정마을 등성이로 작품 마실을 떠난 셈이 되었습니다.
전시장에 걸린 그림들에는 그가 사는 마을만 있지 않았습니다. 강정이 있었고, 월곡이 있었습니다. 기자의 어린 아이가 "그림마다 공통점이 있어요. 모두 나무가 있네요"라고 했다는 대목에서 작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뭇가지는 기운이 끝에까지 뻗쳐있다. 그림을 배우고 그리면서 찾았던 선이었다. 장수마을에 작업실을 열고, 지역 일을 하면서 마을 지도를 그렸다. 거기 골목길이 이어진 모습에서도 나무가 보이더라. 내게 나무는 마을의 상징화된 형태이기도 하다." — 오마이뉴스, 2016년 12월 9일
골목이 나무로 보이는 눈입니다. 그러면 마을이 사라질 때는 무엇이 보일까요.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월곡을 말합니다.
"거긴 월곡마을도 있다. 학교 다닐 때 버스에서 올려다본 산동네. 재개발되면서 사라졌다. 당시 철거현장에 가보니까, 지붕 없는 집들이 많았다. 집을 지을 때는 지붕을 제일 나중에 올리는데, 집을 부술 때는 그 반대였다. 어느 경우엔 산 하나가 몽땅 사라진 적도 있다. 기억조차 사라지게 된 그때 얼마나 황망했는지…."
집을 짓는 순서와 부수는 순서가 반대라는 관찰. 이 작가가 현장에서 무엇을 보는 사람인지가 이 한 문장에 들어 있습니다. 구호가 아니라 지붕입니다.
그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 현장에 있었고, 용산에 갔고,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에도 참여했습니다. 김진숙의 한진중공업 고공농성장으로 희망버스도 탔습니다. 그 이력과 마을 그림이 어떻게 한 사람 안에 들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의 작업을 요약하는 문장이 되었습니다.
"강정이나, 밀양이나, 결국은 마을이 깨지는 일이다. 이전에 나는 국가적 아젠더를 깨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거대 시스템을 고치는 일. 그런데 장수마을에 들어가면서, 거기서 사람들과 함께, 골목 나 우리 마을로부터 시작해 바꾸면서 세상을 넓혀가는 방식도 있다는 걸 알았다." — 오마이뉴스, 2016년 12월 9일
'마을이 깨지는 일'이라는 표현은 투쟁 현장을 규모가 아니라 단위로 다시 세는 말입니다. 국가적 의제로 부르면 강정과 밀양과 용산은 서로 다른 사안이지만, 마을이라는 단위로 부르면 같은 일이 됩니다. 사람들이 이웃으로 묶여 살던 자리가 부서지는 일. 이 작가가 소박한 마을 그림과 사회참여 그림을 동시에 그릴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에게는 두 가지가 한 가지입니다.
성북예술창작터의 김소원 큐레이터는 그 점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위와 아래, 큰 것과 작은 것 등의 위계가 허물어지고 해체된 소박한 필치의 마을그림들이 지닌 역설(逆說)은 직설 못지않은 힘을 갖는다. 그가 그린 장수마을의 풍경은 달콤한 듯 쌉쌀하고, 부드러운 듯 오독거린다. 이것은 평화롭고 윤택한 듯 위장된 불안한 우리 삶의 거울이며, 해학적 방식을 통한 날 선 정신의 표출이다. '산다는 것'은 눈을 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성북예술창작터 《마을을 살다》 작품해설, 2016년
인권을 그리는 화가
이선일은 화가이면서 인권연구소 '창'의 연구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이 두 이력은 나란히 놓인 것이 아니라 겹쳐 있습니다.
2018년, 세계인권선언 제정 70돌을 맞아 인권연구소 '창'과 이선일이 공동 주최한 전시 《오늘, 인권을 그리다》가 11월 28일부터 12월 4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M에서 열렸습니다. 출품작은 13점. 차별에 맞선 여성들의 연대를 그린 〈우리는 광장으로 간다〉, 장자연 사건을 다룬 〈그녀는 무대에 서야 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을 다룬 〈가려진 정의〉가 그 안에 있었습니다.
전시회 측은 "우리 사회의 큰 화두로 자리 잡은 혐오와 차별 문제 그리고 이에 맞서는 여러 움직임들을 화폭에 담았다"고 밝혔습니다(이로운넷, 2018년 11월 26일). 전시 기간 동안 매일 오후 6시에 부대행사가 이어졌습니다. 작가와의 대화, 김영옥의 '창작에 페미니즘은 어떻게 개입하고 기여할 수 있는가', 엄기호의 '고통은 재현될 수 있는가', 서선영 변호사의 '법의 배신', 류은숙의 '그림과 인권교육'. 그림 13점이 걸린 전시가 일주일 동안 강연장이 되었습니다.
이 그림들은 서울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2월 18일부터 24일까지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갤러리 현'에서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이 공동으로 '인권그림 전시회'를 열었고, 전시 기간 중 이선일과 엄기호의 강연이 함께 마련되었습니다(가톨릭신문, 2019년 1월 27일자).
같은 시기의 보도들은 그를 한결같이 '블랙리스트 작가'로 소개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미술인이라는 사실은 비마이너(2018년 11월 21일)와 이로운넷(2018년 11월 26일)이 각각 전했고, 본인도 인터뷰에서 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그 확인의 어조가 특이합니다.
"그게…, 명단에 들어가지 못했으면 큰일날 뻔했다. '도대체 뭐 했냐?' 이런 힐난을 들을 거 아니냐. 동료 작가들 중엔, 도대체 왜 내가 명단에 들지 못했나 하고…, 억울해 하는 사람도 많다. 내가 보기에도 훨씬 더 '열심히' 한 이들도 빠져있다. 도대체 기준이 뭔가?" — 오마이뉴스, 2016년 12월 9일
농담처럼 시작한 대답은 곧 단호해집니다.
"작가에겐 100%의 자유가 필수적이다. 99%의 자유란 없다. '다른 것은 해도 되고, 이것만은 하지 마!'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
99%의 자유란 없다. 표현의 자유를 양으로 셀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한 칸만 막아도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허가가 됩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르기까지의 이력도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2015년 4월 세월호 1주기 추모전에 〈애도의 권리〉를 출품했고, 같은 해 5월 세월호 정부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는 문화예술인 594인 성명에 참여했습니다. 민족미술협의회 사람들과 함께 세월호 1주기 《망각에의 저항》전을 준비하는 데 온몸을 던져 일했지만, 정작 그 단체의 회원은 아니었다고 같은 기사는 덧붙입니다. 조직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서 조직이 하는 일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 이 작가의 자리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방식입니다.
엄마들의 그림, 그리고 노동
이선일의 그림이 놓인 자리 가운데는 전시장이 아닌 곳도 있습니다.
발달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그래, 엄마야』에는 그가 그린 삽화들이 실렸습니다. 〈길을 가꾸는 엄마〉(46x63cm), 〈새벽마실〉(65x91cm), 〈나와 마주하다〉(36x52cm), 〈그 자리에 엄마는 없다〉(67.5x50cm), 〈살아있는 날들의 하늘〉(42x30cm). 모두 2016년 혼합재료 작업입니다. 이 다섯 점은 뒷날 징검다리 미술가게의 《숨=노동》전에도 함께 걸렸습니다.
전시 해설은 〈길을 가꾸는 엄마〉를 이렇게 읽습니다. 엄마가 화분에 물을 주어 그늘을 드리울 나무를 길러내는데, 화분을 든 위치가 심장이라는 것. 그래서 가슴으로 키워낸 나무이고, 아이와 곰돌이 인형은 물론 다른 이들이 쉬어가기에도 충분한 그늘이라는 것. 〈그 자리에 엄마는 없다〉와 〈나와 마주하다〉에서는 모든 것이 둥둥 뜬 허깨비 같고, 앞에 놓인 희미한 운전대를 잡기엔 기력이 빠져버린 모습이 나옵니다.
여기서 그가 택한 것은 고발이 아니라 하루의 묘사입니다. 아이가 잠든 새벽 두 시에 부엉이처럼 마실을 나가는 장면, 커피 한 잔을 마시려 해도 생각만 굴뚝같은 장면. 앞 장에서 본 '지붕'의 관찰과 같은 종류의 눈입니다.
최근 이력도 이어집니다. 2024년에는 기후예술행동 기금마련전 《날씨가 이상해》와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보존을 위한 기금마련전 《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에 참여했습니다. 2026년 9월 18일부터 11월 14일까지는 울산노동역사관1987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노동미술2026 《노동의 미래, 아포칼립스》에 〈끝이 있긴 있을까〉를 냈습니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노동미술 작가 20명이 26점을 낸 전시입니다. 경상일보는 그의 출품작을 두고 "막연한 불안 대신 함께 붙잡고 다독이는 따뜻한 시선을 품었다"고 적었습니다(2026년 9월 18일).
막연한 불안 대신 다독이는 시선. 10년 전 마을 그림에 붙었던 평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씨앗페 출품작 읽기
〈끊어진 선착장에서 수평선을 보다〉 — 2019년, 혼합재료(Mixed media), 63x46cm
화면의 거의 전부가 물과 하늘입니다. 수평선은 아래쪽 3분의 1 지점에 낮게 걸려 있고, 그 위로 청록에서 옅은 하늘빛으로 번지는 넓은 대기가 펼쳐집니다. 바탕에 캔버스의 올이 비쳐 색이 문지른 듯 얹혀 있습니다.
그 잔잔한 화면을 부러진 것들이 가로지릅니다. 물속에 남은 말뚝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대부분 윗동이 잘려나간 토막입니다. 붉은 갈색으로 칠해진 이 기둥들은 수면 위로 조금씩 다른 높이로 솟아 있어, 한때 여기 무엇이 이어져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화면 오른쪽에는 아직 무너지지 않은 잔교 한 토막이 남아 있습니다. 다리 상판과 난간이 보이고, 상판 위에 자전거 한 대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자전거가 이 그림의 사건입니다. 화면 어디에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자전거가 있습니다. 누군가 여기까지 타고 와서 세워두었다는 말입니다. 끊어진 선착장은 배가 닿지 않는 자리인데, 그 위에 이동수단이 남아 있습니다. 그림의 제목이 '끊어진 선착장에서' 시작해 '수평선을 보다'로 끝나는 이유를 여기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끊어진 것을 보여주려는 그림이 아니라, 끊어진 자리에 서서 저 앞을 보는 사람의 시선을 빌려주려는 그림입니다.
왼쪽 앞에는 긴 기둥 하나가 화면을 세로로 가릅니다. 다른 기둥들보다 훨씬 크고 가까워서, 보는 사람이 그 기둥 곁에 서 있는 듯한 거리감을 만듭니다. 오른쪽 위에서는 흰 새 한 마리가 날개를 접으며 화면 안으로 들어옵니다. 하늘 한가운데에는 작고 붉은 표식 하나가 떠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에 '2019 이선일'이라고 쓴 서명이 있습니다.
부서진 것, 남아 있는 것, 날아가는 것이 한 화면에 함께 있습니다. 마을이 깨지는 일을 오래 그려온 작가가 그 다음에 무엇을 그리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무너진 구조물을 세밀하게 그려 놓고도 화면 전체의 인상은 고요하고 밝습니다. 격정 대신 응시가 있습니다.

- 63x46cm · 혼합재료(Mixed media) · 2019 · ₩2,300,000
- 작품 페이지 →
63x46cm는 가로로 놓이는 중간 크기입니다. 바다와 하늘이 화면의 대부분이라 벽에 걸면 그 자리의 공기가 트입니다. 거실 한쪽이나 서재처럼 오래 앉아 있는 자리, 창이 없는 벽에 특히 어울립니다.
미술사에서의 자리
이선일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는 한 줄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민중미술의 흐름을 지나온 작가들과 같은 현장에 있었지만 단체의 회원으로 움직이지 않았고, 인권 단체의 연구활동가이면서 그 단체의 활동을 그림으로 옮기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전시장과 책과 광장이 그의 작업이 놓이는 자리입니다.
굳이 계보를 그린다면 1980년대 민중미술이 만든 태도가 2010년대 이후의 인권·기후·마을 의제로 이어진 경로에 그가 서 있습니다. 다른 점은 단위입니다. 앞 세대가 민족과 민중을 말할 때 이선일은 마을을 말합니다. 그 단위가 작아서 약한 것이 아니라, 작아서 실제로 만질 수 있습니다. 강정도 밀양도 용산도 결국 누군가의 동네였다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키는 방식입니다.
본인의 뿌리에 대한 짧은 회고도 남아 있습니다.
"내가 중2때 쓴 글이 있다. 제목이 '검은색 나무가 되고 싶다'였다. 선생님이 세 번이나 거듭 물었다. '이것이 네가 쓴 것이 맞느냐고?' 그게 뭐가 중요한가? 아버지가 전쟁 당시 휴전선을 넘어오셨다. 주변에도 월남한 분들이 많았고. 해서 '빨갱이'에 대한 세상의 편견같은 걸, 일찌감치 알았다. 거기 내성도 생겼고…." — 오마이뉴스, 2016년 12월 9일
열다섯 살에 쓴 글의 제목이 '검은색 나무가 되고 싶다'였고, 그로부터 삼십몇 년 뒤 그의 그림마다 나무가 서 있습니다. 이 우연을 취재한 기자는 기사 끝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열다섯 살 소년이 꾸었던 꿈 '검은 나무'가 오십 지천명에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이선일이 씨앗페에 작품을 낸 이유는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기금마련전이라는 형식은 이 작가에게 익숙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2024년에만 기후예술행동과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보존을 위한 기금마련전 두 곳에 참여했습니다. 그림을 팔아 그림 아닌 일을 돕는 방식에 오래 참여해온 사람이 이번에는 동료 예술인의 금융 문제를 위해 한 점을 내놓았습니다.
〈끊어진 선착장에서 수평선을 보다〉를 컬렉션에 들인다는 것은, 부서진 자리에 남아 있는 자전거 한 대를 곁에 둔다는 뜻입니다. 누군가 거기까지 왔고, 아직 돌아가지 않았다는 표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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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이선일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국민대학교 회화과와 같은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한 화가입니다.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에 작업실을 두고, 자신이 발 딛고 사는 곳의 사람살이를 그림으로 풀어냅니다. 인권연구소 '창'의 연구활동가이기도 합니다.
Q. 어떤 주제를 그리나요? A. 마을과 그 안의 삶이 오랜 주제입니다. 자신이 사는 장수마을을 그리는 한편, 강정과 밀양과 용산처럼 훼손된 마을, 월곡처럼 사라진 마을을 그립니다. 본인은 "강정이나, 밀양이나, 결국은 마을이 깨지는 일이다"(오마이뉴스, 2016년 12월 9일)라고 말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추모전 같은 직접적인 사회 참여 작업과 소박한 마을 그림을 함께 그립니다.
Q. 주요 전시 이력은? A. 개인전으로 《오름짓》, 《길들여지지 않는 마음》, 《덜 미학적인 더 인간적인—스스로 풍경이 된 마을》이 있고, 2016년에는 성북도원에서 《마을을 살다》를 열었습니다. 2018년 서울 인사동 갤러리M에서 인권연구소 '창'과 공동 주최한 《오늘, 인권을 그리다》에 13점을 냈고, 2024년에는 기금마련전 《날씨가 이상해》와 《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에 참여했습니다. 2026년에는 울산노동역사관1987의 노동미술2026 《노동의 미래, 아포칼립스》에 〈끝이 있긴 있을까〉를 출품했습니다.
Q. '블랙리스트 작가'라는 수식은 무엇인가요? A. 박근혜 정부 시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미술인이라는 뜻입니다. 비마이너(2018년 11월 21일)와 이로운넷(2018년 11월 26일)이 전시 보도에서 이 사실을 전했고, 본인도 인터뷰에서 확인했습니다.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작가에겐 100%의 자유가 필수적이다. 99%의 자유란 없다"고 말했습니다.
Q. 《오늘, 인권을 그리다》에 나온 작품은 어떤 것들인가요? A. 차별에 맞선 여성들의 연대를 그린 〈우리는 광장으로 간다〉, 장자연 사건을 다룬 〈그녀는 무대에 서야 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을 다룬 〈가려진 정의〉 등 모두 13점입니다. 이 전시는 이듬해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갤러리 현'의 인권그림 전시회로도 이어졌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이선일 작품은 무엇인가요? A. 〈끊어진 선착장에서 수평선을 보다〉(2019, 혼합재료, 63x46cm) 한 점입니다. 가격은 ₩2,300,000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Q. 이선일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이선일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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