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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장섭 · 1941–2021

나무처럼, 한자리에 서서
역사를 목격하다

한국 현대사의 역사화에서 노거수의 숲으로.민중과 자연의 시간이 한 화폭에 겹겹이 새겨진다.

역사와 자연 —
한 그루 나무가 품은 시간

손장섭(1941–2021)은 전남 완도군 고금도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그는 한국 현대사의 여러 장면을 소재로 한 역사화로 작업을 시작했으며, 역사의식과 서민의 삶에 대한 변함없는 관심을 바탕으로 자신의 화풍을 다져 나갔다.

1980년 전후, 그는 ‘현실과 발언’ 창립 동인으로 참여했다. ‘현실과 발언’은 한국 민중미술 운동의 출발을 알린 효시 그룹으로 평가되며, 예술의 사회성을 복원하고자 한 모임이었다. 손장섭은 1990년 그룹이 해체될 때까지 동인전에 출품했고, 1985년에는 민족미술협의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까지 그의 작업은 치열한 역사의식과, 현실의 모순을 향한 조용한 저항을 담았다 — 역사화, 노동하는 삶의 장면, 그리고 서민의 얼굴. 「역사의 창-6.25」(1990)가 이 시기에 속한다.

1990년대 말부터 그의 소재는 한국의 자연으로 옮겨 갔다. “자연은 민중의 삶이 펼쳐지고 역사가 배어 있는 현장”이라는 것이었다. 2000년대에 그는 신목(神木) 연작과 일련의 풍경화를 구축했다. 전국의 노거수를 답사해 화폭에 담았으니 — 울릉도 향나무, 용문사 은행나무, 태백산 주목이 그것이다. 이 화면들에서 수백 년 한자리에 선 나무는 한 시대의 목격자가 되고, 자연의 강인함은 곧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을 대신한다.

2019–2020년 광주시립미술관은 회고전 《손장섭, 역사가 된 풍경》(2019.11–2020.2)을 열어, 초기 수채화부터 1980년대 민중미술, 신목·풍경 연작까지 그의 60년 작업을 망라했다. 그는 2021년 6월 1일,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주요 테마

  • 1

    역사화

    한국 현대사의 장면을 치열한 역사의식으로 그린다 — 한 시대의 모순을 증언하는 화면.

  • 2

    현실과 발언

    한국 민중미술의 효시 그룹 창립 동인. 1985년 민족미술협의회 초대 회장.

  • 3

    나무와 풍경

    신목(神木) 연작과 풍경화 — 수백 년 한자리에 선 나무가 역사의 목격자가 된다.

작가의 시간

  1. 1941전남 완도군 고금도 출생.
  2. 1980민중미술의 효시 그룹 ‘현실과 발언’ 창립 동인.
  3. 1985민족미술협의회 초대 회장.
  4. 1990「역사의 창-6.25」 제작; ‘현실과 발언’ 해체.
  5. 1990s–민중의 삶과 역사가 배어 있는 현장으로서 한국 자연·풍경으로 전환.
  6. 2000s전국의 노거수를 답사한 신목(神木) 연작 구축.
  7. 2017개인전 《역사, 그 물질적 흔적으로서의 회화》, 학고재갤러리.
  8. 2019회고전 《손장섭, 역사가 된 풍경》, 광주시립미술관(2019.11–2020.2).
  9. 20216월 1일 별세, 향년 80세.

주요 전시 및 소장

  • 개인전: 《역사, 그 물질적 흔적으로서의 회화》, 학고재갤러리 (2017)
  • 회고전: 《손장섭, 역사가 된 풍경》, 광주시립미술관 (2019.11–2020.2)
  • 국립현대미술관(MMCA)을 비롯한 주요 공공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세 편의 에세이 —
역사와 자연, 그리고 나무에 관하여

1현실과 발언 — 민중미술의 출발

1980년 전후, 화가와 비평가들이 모여 ‘현실과 발언’을 결성했다. 이 모임은 한국 민중미술 운동의 출발을 알린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 순수 형식주의에서 돌아서, 자기 사회를 향해 말할 수 있는 미술로의 전환. 손장섭은 그 창립 동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한 세대에게 물음은 ‘회화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였다. ‘현실과 발언’은 미술이 사회성을 지닌다는 것, 그리고 작가가 일상의 조건에서 눈을 돌리는 대신 그것을 응시할 수 있다는 것으로 답했다. 손장섭은 1990년 그룹이 해체될 때까지 동인전에 참여했고, 1985년에는 민족미술협의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이 흐름 안에서 손장섭의 몫은 한 묶음의 역사화였다 — 지속된 역사의식으로 쌓아 올린 한국 현대사의 장면들. 그에게 역사는 배경이 아니라 주제였다. 서민의 삶이 영위되고 기억되는 바로 그 토대였다.

2역사화에서 풍경으로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나는 동안, 손장섭의 작업은 역사에 가까이 있었다 — 노동의 장면, 서민의 얼굴, 그리고 「역사의 창-6.25」(1990)와 같은 한국 현대사의 회화.

1990년대 말부터 소재는 옮겨 갔지만, 확신은 그대로였다. “자연은 민중의 삶이 펼쳐지고 역사가 배어 있는 현장”이라고 그는 말했다. 풍경은 역사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역사를 품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산 하나, 바닷가 하나, 오래된 나무 한 그루 — 저마다 그의 이전 회화가 그렸던 바로 그 한 세기를 견뎌 온 존재였다.

이 연속성이 그의 작업을 관통한다. 초기의 역사화가 사건을 직접 바라보았다면, 후기의 풍경은 그 사건을 견뎌 낸 것을 바라보았다. 목격자는 더 이상 군중이나 인물이 아니라, 땅 그 자체였다.

3나무처럼 — 신목 연작

2000년대에 손장섭은 전국을 답사하며 노거수를 그렸다 — 울릉도 향나무, 용문사 은행나무, 태백산 주목. 그는 그것들을 신목(神木)이라 불렀다. 어떤 숭배 때문이 아니라, 수백 년 한자리에 선 나무란 말 그대로 그 아래로 흘러간 역사를 목격해 온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이 화면들에서 나무는, 한때 그의 역사화에서 인물이 짊어졌던 무게를 대신 감당한다. 뿌리내린 채 폭풍과 계절을 자리를 옮기지 않고 견뎌 내는 그 방식은, 곧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의 이미지가 된다. 비평계는 이 연작을, 역사의 진정한 주체이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결국 민중이라는 진술로 읽는다.

2019–2020년 광주시립미술관 회고전은 이 60년의 작업을 하나의 제목 아래 모았다 — 《역사가 된 풍경》. 그것은 적절한 요약이었다. 손장섭의 손에서 풍경은 결코 풍경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보이게 된 시간이다.

‘현실과 발언’의 출발에서 말년의 노거수까지, 손장섭의 작업은 하나의 확신을 추구했다 — 역사를 짊어지는 것은 힘 있는 자가 아니라 견디는 존재, 곧 민중과 그들의 시간을 품은 땅이라는 확신. 손장섭은 2021년 작고했다. 그의 작품은 그가 남긴 유산으로서 씨앗페에 함께하며, 그가 평생 견지한 민중과 역사·자연에 대한 애정의 정신은 이곳에서 동료·후배 예술인을 위한 상호부조의 뜻으로 이어진다.

주요 작품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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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상호부조

손장섭 작가는 2021년 작고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그가 남긴 유산으로서 씨앗페에 함께하며, 작품 판매 수익은 전액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기금으로 이어집니다. 그가 평생 견지한 민중과 역사·자연에 대한 애정이, 오늘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 한 사람의 다음 한 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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