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은 판화만 새기지 않았습니다. 1984년 마당극 「강쟁이 다리쟁이」의 나리 탈을 김봉준과 함께 만들었고, 그 탈로 노는 나리 마당이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의 열린 굿판에서 펼쳐집니다. 이야기의 뿌리와 탈, 그 탈이 다시 무대에 선 날들을 따라 읽습니다.
오윤이 만든 탈, 등에 지고 노는 나리들 — 마당극 「강쟁이 다리쟁이」의 나리 마당
탈은 얼굴에 쓰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오윤이 만든 탈 가운데 어떤 것은 얼굴 대신 등에 짊어지고 놀았습니다.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한국외대 가면극연구회 출신으로 그 무대에 선 심규호는 프레시안 연재 「탈춤과 나」에서 1984년 문예회관 소극장 공연과 1996년 공연 모두 나리들이 탈을 쓰지 않고 등에 맸다고 적었습니다. 크기도 했거니와, 등에 짊어지고 노는 맛이 따로 있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 대신 배우의 얼굴에는 짙은 화장을 얹었다고 합니다.
오윤(1946~1986)을 판화가로만 알고 있다면 낯선 장면입니다. 칼을 쥔 사람이 마당극 무대에 올릴 큰 탈을 깎았고, 그 탈이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무대에 오릅니다. 이 글은 그 탈이 쓰이는 대목, 마당극 「강쟁이 다리쟁이」의 '나리 마당'을 처음 듣는 분을 위해 풀어 쓴 안내입니다.
10월 2일 오후 4시, 갤러리 앞마당에서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의 연계 행사 「열린 굿판」은 10월 2일(금) 오후 4시에 시작하는 행사로 마련됐습니다. 자리는 동덕아트갤러리 바로 앞 야외 마당인 북인사마당(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62)이고, 안국역 6번 출구에서 걸어서 1분 거리입니다. 관람권 없이 누구나 올 수 있습니다.
공연은 마당극 「강쟁이 다리쟁이」 가운데 나리 마당입니다. 연출은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사단법인 민족미학연구소 소장)가 맡고, 무대에 쓰이는 탈은 오윤이 만든 것입니다. 전시는 9월 23일부터 10월 12일까지 동덕아트갤러리 지하 1층에서 이어지며, 오윤이 새긴 판화 전작 187종이 걸려 있습니다. 행사와 전시장이 걸어서 닿는 거리라 마당에서 탈을 본 눈으로 곧바로 판화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강쟁이 다리쟁이 — 아이들 물놀이에서 가져온 이름
제목부터 낯설어서 뜻을 먼저 짚습니다. 문화포털의 작품 소개에 따르면 '강쟁이 다리쟁이'는 아이들이 시냇가에서 하던 물놀이의 이름입니다. 한 편은 모랫둑을 쌓고, 다른 한 편은 자갈과 나무 조각으로 다리를 놓은 뒤 둑을 터뜨립니다. 다리가 무너지느냐 버티느냐로 승부가 갈립니다. 심규호는 둑을 쌓든 다리를 놓든 마음을 합쳐 일해야 하니 놀이가 곧 일이고 일이 곧 놀이인 놀이라고 적었습니다.
이 이름을 단 마당극은 1984년 놀이패 한두레가 만들었습니다. 소재는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마을의 물난리입니다. 문화포털에 따르면 줄다리기와 쇠머리대기로 이름난 마을이고, 부실하게 날림으로 쌓은 둑이 무너져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이를 천재지변이라 우기는 당국을 상대로 피해보상운동을 벌이던 중에 공연된 작품입니다. 심규호의 글에는 제작 과정의 한 장면이 있습니다. 영산마을의 어른에게 사연을 전해 들은 한두레 사람들이 크게 분개해 작품을 짜기 시작했고, 그 물난리가 하늘이 낸 재난이 아니라 사람이 낸 재난이었다는 점이 출발점이었다는 것입니다.
작품에는 여러 사람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심규호가 적은 명단은 1984년 한두레와 창무회가 함께 다시 꾸며 문예회관 소극장에 올린 무대의 것으로, 연출 채희완, 안무 김매자, 기획 유인택, 미술과 탈 제작 오윤·김봉준, 판소리 김명곤이고 사물놀이가 반주를 맡았습니다. 오윤은 이 작품의 포스터도 만들었습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부산역사문화대전」의 오윤 항목이 1980년대 이후 목판화에 전념하며 「강쟁이 다리쟁이」 등 창작 춤판의 포스터를 제작했다고 기록합니다.
한두레는 이 작품을 서울에서만 올리지 않았습니다. 심규호에 따르면 소재의 현장인 창녕으로 직접 내려가 창녕성당에서 공연했고, 이어 마산 여성회관에서도 무대를 열었습니다. 물난리를 겪은 사람들 앞에서 그 물난리를 놀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리 마당 — 대책회의라는 이름의 풍자
나리 마당은 이 작품의 한 대목입니다. 심규호는 물난리 이후의 대책회의를 풍자한 마당이라고 적습니다. 문화포털의 소개는 더 구체적입니다. 덧배기춤의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이장, 군수, 공사장, 복부인, 국회의원 비서가 차례로 나옵니다. 군수를 비롯한 일동은 이번 물난리를 천재지변이라 우깁니다. 국회의원 비서는 사태를 수습하는 척하며 표를 구걸하고, 아파트를 사고팔던 복부인은 내려와 담요와 라면을 돌립니다.
권세 있는 쪽 사람들이 서로 맞장구를 치며 사람이 낸 재난을 하늘의 탓으로 돌리는 장면입니다.
이 마당은 '가봇나리마당'이라고도 불립니다. 문화포털은 가봇나리를 소에 붙어 기생하는 벌레라고 풀이합니다. 소에 붙어 사는 벌레에 빗대어 나리들을 부른 이름입니다.
큰 탈, 각진 탈, 둥근 탈 — 오윤과 김봉준
이 나리들의 탈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김봉준의 회고에 남아 있습니다. 화가 김봉준은 미술동인 '두렁'을 꾸리던 1983년에 오윤을 찾아가 고문을 청했고, 오윤이 동인 결성을 축하하며 찬조 출품작으로 판화 다섯 점을 내주었다고 프레시안 연재 「탈춤과 나」에 적었습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대목이 탈 이야기입니다. 채희완으로부터 「강쟁이 다리쟁이」에 쓸 탈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오윤과 함께 창작 탈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오윤 형은 크고 각진 권력의 탈들을, 나는 둥글고 고생에 찌든 민중의 탈들을 만든 기억이 난다. 이것이 오윤 형과 함께 한 처음이자 마지막 공동작업이다." — 김봉준, 프레시안 「탈춤과 나」 20회 (2021년 9월 13일)
한 사람은 크고 각진 권력의 얼굴을, 다른 한 사람은 둥글고 고생에 찌든 민중의 얼굴을 맡았습니다. 나리 마당에 나오는 이장, 군수, 공사장, 복부인, 국회의원 비서는 권세 있는 쪽에 선 사람들입니다. 심규호의 글에는 채희완이 제공한 나리 탈 사진이 실려 있고, 사진 설명은 이장 탈, 큰손 탈, 비서관 탈, 공사장 탈이 오윤과 김봉준이 만든 것이라고 밝힙니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오윤은 1986년 7월 5일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봉준은 같은 글에서 그렇게 빨리 떠날 분이었다면 더 가까이 교류했을 것이라는 후회도 적었습니다.
판화가의 칼에서 탈로
오윤의 관심은 일찍부터 탈춤에 닿아 있었습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은 오윤이 대학 시절부터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두고 민화, 무속화, 불화, 탈춤, 굿 같은 전통 민중문화를 연구했다고 설명합니다. 탈춤은 그의 판화에도 일찍부터 들어와 있습니다.

〈탈춤〉(1973)은 검은 판이 바탕을 이룹니다. 그 검정을 칼로 파낸 자리에서 흰 선과 면이 일어나 형상이 됩니다. 위쪽에는 각이 진 얼굴이 입을 벌려 이빨을 드러내고 있고, 그 왼쪽 아래에는 새 부리처럼 길쭉하게 뻗은 또 하나의 얼굴이 놓여 있습니다. 몸통은 짧고 거친 칼자국이 털처럼 일어선 면으로 처리됐습니다. 곡선보다 꺾인 선이 앞서는 화면이라, 김봉준이 회고한 '크고 각진' 탈을 떠올리며 보게 됩니다.
- 27.0x36.8cm · 저피지(한지)에 목판화 · 1973
- 작품 페이지 →
마당극이 만들어진 1984년의 판화에도 춤이 있습니다.

〈춤Ⅰ〉(1984)의 인물은 허리를 깊이 숙이고 한 팔은 앞으로 들어 올렸으며, 다른 팔은 옆으로 길게 뻗었습니다. 붉은 윗옷과 푸른빛이 도는 보랏빛 아랫도리가 큼직한 면으로 잘려 있고, 발밑에는 분홍빛 바닥이 깔렸습니다. 검은 판의 결이 그대로 보이는 바탕 위에서 몸 전체가 한 덩어리로 기울어 장단을 타는 듯합니다. 같은 해 가을 오윤은 간경화 요양차 전라남도 진도로 내려가 씻김굿을 만나고 북춤을 배웠습니다. 진도에서 돌아온 뒤 그의 판화에는 춤추는 몸이 쏟아져 나옵니다.
- 24.5x29.5cm · 저피지(한지)에 목판화, 수채 채색 · 1984 · ₩2,000,000
- 작품 페이지 →
판화로 몸의 움직임을 새기던 칼이 같은 해에 무대 위 탈을 깎았다고 생각하면, 나리 탈의 크고 각진 면이 어디서 왔는지 짐작이 갑니다. 다만 이것은 두 작업을 나란히 놓고 본 읽기이고, 오윤이 탈을 어떤 마음으로 깎았는지는 김봉준의 짧은 회고 밖에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 탈이 무대에 선 날들
오윤의 탈은 1984년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심규호의 글에 따르면 1996년 12월 9일, 오윤 10주기를 맞아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열린 판화 전시회에서 「강쟁이 다리쟁이」 가운데 나리 마당이 다시 공연됐습니다. 그때도 나리들은 탈을 쓰지 않고 등에 맸고, 탈을 만든 사람이 오윤이라고 심규호는 덧붙입니다. 오윤과 청계천 어딘가에서 꼼장어에 소주를 나누던 기억이 새롭다는 문장이 그 대목에 이어집니다.
2023년 12월 16일에는 '은빛탈춤 열두마당'이 한국문화의 집에서 열렸습니다. 예술감독과 총연출은 채희완이었습니다. 채희완이 춤웹진에 남긴 기록에는 나리 마당 장면에 대해 사회적 개성이 독특한 나리 탈들은 고 오윤의 유작이고 김봉준이 거들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같은 기록은 이 마당의 이름으로 '가분다리'를 쓰고, 소의 몸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 같은 존재라고 풉니다.
그리고 2026년 10월 2일,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의 열린 굿판에서 같은 대목이 마당에 오릅니다. 1984년에 탈을 부탁했던 연출가가 탈을 만든 이의 판화가 걸린 전시장 앞에서 다시 연출을 맡는 자리입니다. 1984년과 2026년 사이에 사십여 년이 놓여 있지만, 이 탈은 액자에 걸리는 대신 배우의 몸에 얹혀 쓰여 왔습니다.
마당에서 전시장으로
열린 굿판과 전시는 서로를 읽는 열쇠가 됩니다. 마당에서 크고 각진 탈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나면, 지하 전시장의 판화 속 인물들이 어떤 몸짓으로 서 있는지 눈에 더 들어옵니다. 전시는 오윤의 생애를 따라 여덟 개 장으로 짜였고 그중 하나가 「진도에서 배운 춤」입니다. 〈칼노래〉(1985), 〈무호도〉, 〈춘무인 추무의〉와 〈노동의 새벽〉(1984)을 원본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전시: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 《새김에서 각인으로: 1946—1986, 오윤의 궤적》
- 기간: 2026년 9월 23일(수)부터 10월 12일(월)까지, 10:00부터 18:00까지
- 장소: 동덕아트갤러리(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68 동덕빌딩 B1)
- 관람료: 일반 12,000원, 할인 6,000원, 미취학 아동 무료. 예매는 판화전 안내 페이지에서 합니다.
- 열린 굿판: 10월 2일(금) 오후 4시, 북인사마당. 관람권 없이 누구나 올 수 있습니다.
오윤의 서울 전시를 함께 보는 순서는 오윤 40주기, 서울의 두 전시를 함께 보는 법에, 오윤의 도깨비 판화는 한국 샤머니즘 미술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씨앗페 온라인 갤러리의 오윤 작품은 오윤 작가 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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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열린 굿판은 언제, 어디에서 하나요? A. 2026년 10월 2일(금) 오후 4시에 시작하는 행사로 마련됐습니다. 동덕아트갤러리 바로 앞 야외 마당인 북인사마당(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62)에서 하고, 안국역 6번 출구에서 걸어서 1분 거리입니다. 관람권 없이 누구나 올 수 있습니다.
Q. '강쟁이 다리쟁이'는 무슨 뜻인가요? A. 아이들이 시냇가에서 하던 물놀이의 이름입니다. 한 편은 모랫둑을 쌓고 다른 한 편은 다리를 놓은 뒤 둑을 터뜨려, 다리가 무너지는지 버티는지로 승부를 가렸습니다. 1984년 놀이패 한두레가 경남 창녕군 영산마을의 물난리를 소재로 만든 마당극의 제목으로 쓰였습니다.
Q. 나리 마당은 어떤 장면인가요? A. 물난리 이후의 대책회의를 풍자한 대목입니다. 덧배기춤의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이장, 군수, 공사장, 복부인, 국회의원 비서가 나와 물난리를 천재지변이라고 우깁니다. '가봇나리마당'이라고도 하며, 가봇나리는 소에 붙어 기생하는 벌레를 뜻합니다.
Q. 이 공연에 쓰이는 탈은 누가 만들었나요? A. 오윤이 만들었습니다. 1984년 「강쟁이 다리쟁이」에서 화가 김봉준과 함께 탈을 제작했고, 김봉준은 오윤이 크고 각진 권력의 탈을, 자신이 둥글고 고생에 찌든 민중의 탈을 맡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이 일이 두 사람의 처음이자 마지막 공동 작업이었습니다.
Q. 채희완은 누구인가요? A. 마당극과 창작 탈춤을 이끌어 온 연출가입니다. 현재 부산대 명예교수이자 사단법인 민족미학연구소 소장이며, 「강쟁이 다리쟁이」를 연출했습니다. 2023년 '은빛탈춤 열두마당'에서는 예술감독과 총연출을 맡았습니다.
Q.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은 언제까지 열리나요? A. 2026년 9월 23일(수)부터 10월 12일(월)까지 동덕아트갤러리 지하 1층에서 열리며, 관람 시간은 10:00부터 18:00까지입니다. 오윤이 새긴 판화 전작 187종이 걸립니다.
참고한 글
- 심규호, 「탈마당극 '강쟁이 다리쟁이'」, 프레시안 [탈춤과 나] 심규호의 탈춤 두 번째 이야기, 2021년 11월 25일 —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12416062546251
- 김봉준, 「[탈춤과 나] 20. 김봉준의 탈춤 ②」, 프레시안, 2021년 9월 13일 —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91015492790731
- 「강쟁이 다리쟁이」, 문화포털 예술지식백과 연극 작품 소개 — https://www.culture.go.kr/portal/cltKnw/artCont/view.do?menuNo=200022&knwldgSn=8554
- 「오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부산역사문화대전」 — https://www.grandculture.net/busan/haeundaegu/toc/GC04200947
- 채희완, 「7080 대학 탈꾼들이 기획 수행한 〈은빛탈춤〉 열두 마당 기록」, 춤웹진 2024년 8월 — http://www.koreadance.kr/board/board_view.php?view_id=327&board_name=dance_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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