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콘텐츠로 이동
대위변제율 5%의 의미 — 시중은행과 씨앗페 기금은 무엇이 다른가

대위변제율 5%의 의미 — 시중은행과 씨앗페 기금은 무엇이 다른가

미술 산책 · 발행 2026년 4월 22일 · 씨앗페

씨앗페 상호부조 기금은 신용심사 없이 연 5% 고정금리로 354건을 대출했고, 상환율은 95%다. 심사 없는 대출에서 95%가 갚는다는 건 어떤 메커니즘인가 — 시중은행 비교, 국제 사례(그라민·KSK·Kiva), 규모 확대 시 한계까지.

대위변제율 5%의 의미 — 시중은행과 씨앗페 기금은 무엇이 다른가

오윤, 〈국밥과 희망〉, 저피지(한지)에 목판화·수채, 17x15cm — 한 그릇의 국밥과 한 사람의 희망, 상호부조가 지키려는 것
오윤, 〈국밥과 희망〉, 저피지(한지)에 목판화·수채, 17x15cm — 한 그릇의 국밥과 한 사람의 희망, 상호부조가 지키려는 것

씨앗페(SAF) 상호부조 기금은 2022년 12월 이후 354건의 대출을 실행해 약 7억원을 예술인에게 지원했다. 상환율은 95%, 뒤집어 말하면 대위변제율(미상환 비율)이 5%다.

이 숫자가 놀라운 이유는 하나다. 씨앗페 대출은 신용등급 심사를 하지 않는다. 프리랜서 수입, 불규칙한 소득, 연체 기록 — 시중은행이라면 당장 거절할 예술인에게 연 5% 고정금리로 빌려준다. 그런데도 95%가 갚는다.

이 5%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시중은행과 무엇이 다른지, 규모가 커져도 지속될 수 있는지를 숫자와 메커니즘으로 짚어본다.

시중은행과 비교 — 5%는 어느 정도 숫자인가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시중은행의 개인신용대출 연체율은 2024년 말 약 **0.8~1.2%**다. 5%와 나란히 놓으면 씨앗페 기금의 부실률이 4~5배 높아 보인다.

하지만 비교 조건이 다르다.

구분시중은행 개인신용대출씨앗페 상호부조 기금
대출 대상일정 신용점수 이상신용 심사 없음
소득 증빙재직증명·원천징수영수증창작 활동 증빙
연체 이력있으면 거절고려하지 않음
대위변제율0.8~1.2%5.0%

시중은행이 미리 걸러낸 대상에서 나온 1%와 씨앗페가 아무도 걸러내지 않은 대상에서 나온 5%는 전혀 다른 숫자다. 상식대로라면 심사 없이 빌려줬을 때 기대할 부실률은 20~30%가 훨씬 현실적이다. 5%는 놀라운 수준이다.

저축은행·카드론·대부업으로 내몰린 예술인 48.6%는 연 15% 이상의 고금리를 감당한다. 그 현실에 대면 5% 대위변제율은 "심사 없는 대출은 반드시 파산한다"는 기존 금융 논리를 뒤집는 증거다.

심사 없이 95%를 만든 3가지 힘

왜 이 수치가 가능한가. 세 가지 메커니즘이 동시에 작동한다.

① 정보 비대칭의 해소 — 동료가 동료를 안다

은행 대출 심사는 결국 "이 사람이 갚을지 모른다"는 정보 비대칭 문제다. 그래서 신용점수·재직기간·연소득 같은 대체 지표에 기댄다. 하지만 이 지표는 프리랜서·예술인의 실제 상환 능력과 맞지 않는다.

2021년 1월 1일부터 국내 모든 금융업권은 기존의 신용등급제(1~10등급)를 버리고 신용점수제(1~1,000점)로 전환했다. 등급 경계에서 1~2점 차이로 대출이 갈리던 문제를 고치려는 개편이었다. 다만 점수를 매기는 재료가 그대로인 한, 소득 증빙이 없는 사람의 자리는 달라지지 않는다.

씨앗페는 다른 경로로 정보 비대칭을 줄인다.

  • 대출자는 예술 생태계 안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다 (전시·공연·출판 이력이 곧 사회적 검증)
  •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은 조합원 네트워크로 대출자의 창작 지속성을 파악한다
  • 부실이 생기면 커뮤니티 차원에서 사유를 이해하고 조정할 수 있다

은행은 숫자로만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지만, 씨앗페는 이름과 활동을 아는 사람에게 빌려준다. 정보의 밀도가 다르다.

② 연대 책임의 사회적 기제

그라민은행을 세운 무함마드 유누스가 확인한 원리와 같다. "빌려준 돈이 나 자신의 신뢰를 담보로 한다"는 감각은 전통 금융이 외면하는 소득 계층에서도 상환 동기를 만든다.

씨앗페에서 대출을 받은 사람은 이런 사정을 안다.

  • 이 돈은 동료 예술인들이 작품을 내놓아 만든 기금이다
  • 내가 상환하지 않으면 다음 예술인이 이 돈을 받을 수 없다
  • 익명의 은행과 나 사이의 거래가 아니라, 얼굴을 아는 공동체와 나 사이의 약속이다

이 의식이 연체를 막는다. 심사 없는 대출이라고 해서 "갚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는 인식이 생기지 않는 이유다.

③ 금리 구조의 비약탈성

연 5% 고정금리는 시중은행 신용대출(4~8%) 수준이다. 예술인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대안인 저축은행(15%+)·카드론(18%+)·대부업(20%+)과 견주면 훨씬 낮다.

고금리 대출은 원금을 갚기도 전에 이자가 쌓여 구조적으로 상환이 불가능해진다. 연 15% 이자로 1,000만원을 빌리면 월 이자만 12만 5천원이다. 월 소득이 200만원이라면 그 6%가 원금은 건드리지도 못한 채 매달 빠져나간다. 소득이 몇 달씩 끊기는 구조에서는 이 비중이 상환 자체를 밀어낸다.

씨앗페의 연 5%는 이 악순환을 끊는다. 갚을 수 있는 수준의 이자라서 사람들은 실제로 갚는다.

국제 비교 — 비슷한 모델들의 부실률

씨앗페 모델과 비슷한 구조가 해외에도 여럿 있다. 부실률을 나란히 놓으면 의미가 더 선명해진다.

그라민 은행 (방글라데시)

저소득층 무담보 대출의 원조. 1980년대 창립 이후 대위변제율 약 2~3%를 유지한다. 다만 5~7명 그룹 연대보증 구조가 전제된다. 씨앗페는 개별 대출이라 더 단순한 구조로 5%를 달성했다.

프랑스 Intermittents du spectacle (공연예술인 실업수당)

프랑스가 운영하는 공연예술인 사회보장 제도. 마지막 계약이 끝난 날 직전 12개월 안에 507시간 이상 활동했음을 증명하면 비활동 기간에 실업수당을 지급한다. 대출이 아닌 사회보장이라 부실률 개념과는 다르지만, 예술인이 생계 위기에 놓이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모델이다. 씨앗페는 이 국가 책임을 협동조합과 시장의 결합으로 구현한 한국형 대안에 가깝다.

독일 KSK (Künstlersozialkasse)

독일 예술인 사회보험. 예술인이 보험료의 절반을 내고, 나머지 절반은 예술인의 용역을 쓰는 사업자가 내는 분담금 30%와 연방 정부 보조 20%로 채운다. 이 재원으로 건강보험·연금·요양보험을 충당한다. 역시 대출이 아닌 사회보험이지만, "예술 활동 자체로 생계가 보장된다"는 철학을 공유한다. 씨앗페는 이 철학에 시장 기반 재원(작품 판매 수익)을 결합한 형태다.

미국 Kiva (P2P 마이크로파이낸스)

개인 투자자들이 전 세계 소상공인에게 무이자로 빌려주는 플랫폼. 평균 상환율 약 96%로 씨앗페 95%와 거의 같다. 공통점은 "대출자와 빌려주는 자 사이의 이야기 연결"이다. 얼굴이 보이는 대출은 익명 대출보다 상환율이 높다.

규모가 커지면 5%가 유지될까 — 세 가지 한계

이 글이 옹호론이 되지 않으려면 한계도 정직하게 봐야 한다.

① 규모 확대 시의 도덕적 해이

지금의 95%는 354건에서 나온 숫자다. 대출 건수가 10배가 되면 조합원 네트워크가 개별 대출자를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대출자 입장에서도 "얼굴 아는 공동체"의 감각이 희미해진다. 규모가 커지면 부실률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② 경기 침체 시의 일괄 충격

지금까지는 경기 침체가 심각하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나 2020년 팬데믹처럼 예술인의 창작 활동이 경기와 같은 리듬으로 줄어드는 구간이 오면 부실률이 단기간에 두세 배 뛸 수 있다.

③ 기금 자체의 지속가능성

대출 재원의 7배 레버리지는 협약 금융기관이 기금을 담보로 대출을 늘려주는 구조다. 기금 규모가 줄거나 금융기관의 정책이 바뀌면 대출 재원도 같이 줄어든다. 작품 판매 수익이 꾸준히 들어와야 시스템이 굴러간다.

세 가지 한계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5% 대위변제율은 "심사 없는 대출은 필연적으로 파산한다"는 상식을 반증한다. 그 반증 덕분에 또 다른 예술인 금융 모델이 가능해진다.

숫자 뒤의 사람들

354건의 대출. 7억원의 지원. 95%의 상환.

이 숫자들은 예술 활동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총합이다. 대출 덕분에 전시를 이어간 사람, 공연을 취소하지 않은 사람, 작업실을 유지한 사람. 그리고 받은 돈을 다시 갚아 다음 사람이 이 기금을 받을 수 있게 만든 사람들.

5%의 부실은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이 감당한 인간적 여지다. 그 5%가 있기에 나머지 95%가 무리 없이 갚고, 다음 세대의 354건이 가능해진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연대의 맥락

한국 예술인의 84.9%가 제도 금융에서 배제된다. 씨앗페 출품 작가들이 내놓은 작품은 상호부조 기금이 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진다. 5%의 대위변제율은 이 순환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가장 구체적인 증거다.

함께 읽기

작품 사러 가기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함께 읽으면 좋은 글들을 소개합니다:

씨앗페

·

공유하기

새 작품과 이야기, 메일로 받아보세요

새 작품 소식, 작가 이야기, 상호부조 기금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구독하기를 누르면 이메일 수집·발송(뉴스레터 목적)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돼요. 개인정보처리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