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9%, 48.6%, 95% 같은 숫자는 실은 얼굴입니다. 창작을 그만두었다 다시 돌아온 다섯 사람의 목소리를 엮습니다. 숫자 뒤에 사람이 있습니다.
창작을 포기한 날 — 다섯 예술인의 증언
84.9%. 48.6%. 95%. 이 숫자들은 언론 기사 제목에 등장하지만, 실은 사람의 얼굴을 가진 숫자입니다. 한 명 한 명이 겪은 어떤 날이 누적된 결과가 저 퍼센트 기호입니다.
이 글은 다섯 예술인의 증언을 엮은 내러티브입니다. 다섯 사람은 모두 한 번은 "창작을 그만두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어떤 이는 몇 년을 쉬었고, 어떤 이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어떤 이는 가까스로 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모든 증언은 익명 동의를 전제로 수집·재구성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각색되었습니다. 그러나 각 사건의 경험적 본질은 실제 그대로입니다.
⚠️ 이 글은 생활고·채무·의료 중단에 관한 무거운 서사를 포함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분은 본문 말미의 자원 링크를 이용하세요.
첫 번째 증언 — 지연 (가명, 회화, 32세)
작업실 월세와 연 24% 대출
"대학원 졸업하고 작업실을 구한 게 2019년이었어요. 보증금 500에 월세 35만원이었고, 3년 계약을 썼죠. 첫해에는 아르바이트로 감당이 됐는데, 두 번째 해에 아빠가 아프시면서 병원비가 먼저 들어갔어요."
"월세가 밀리기 시작했어요. 은행에 갔더니 서류부터 못 맞추겠다고 했고, 두 번째 은행은 '신용점수가 낮다'고 했고, 세 번째는 답변도 안 왔어요. 결국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대부업체에 500만원을 빌렸어요. 연 24%였고, 저는 그때 그게 '법정 한도'인 줄도 몰랐어요."
"이자만 한 달에 10만원이에요. 그 10만원이 작업실 월세의 1/3이에요. 저는 그 순간부터 '돈을 갚기 위한 알바'를 하게 됐어요. 그림 그릴 시간이 사라졌어요."
"포기한 날은 비 오는 화요일이었어요. 작업실에 가서 캔버스를 말아서 벽에 세워두고, 열쇠를 놓고 나왔어요. 작업실 사장님한테 '죄송합니다'만 문자로 보냈어요. 그걸로 제 작가 생활은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2년을 쉬었어요. 그 사이에 빚은 대출을 굴리면서 1,200만원이 됐고, 제가 일하던 카페에서 알게 된 언니가 어느 날 '씨앗페라는 데 있는데 한번 얘기해볼래?'라고 했어요. 상호부조 대출로 일단 사채부터 갚았어요. 이자가 5분의 1로 줄었죠."
"요즘 다시 그림을 그려요. 작품 하나 팔렸고, 그게 상호부조 기금으로 갔어요. 제가 받았던 돈이 다른 누구의 월세가 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 울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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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증언 — 준섭 (가명, 음악/작곡, 41세)
채권 추심 전화와 공연 취소
"첫 번째 앨범을 내려고 스튜디오 대관·마스터링에 3,000만원이 들었어요. 크라우드펀딩으로 1,500을 모았고, 부족한 1,500을 카드 대출로 막았어요."
"앨범은 나쁘지 않게 나갔어요. 그런데 공연 일정이 하나 취소되면서 한 달 수입이 0이 된 달이 있었고, 카드 대금을 못 막았어요. 한 번의 연체가 연체 이자로 이어졌고, 두 달 뒤부터 추심 전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문제는 그 전화가 제 공연 시간에도 왔다는 거예요. 무대 오르기 5분 전에 전화가 울리는 거죠. '오늘까지 50만원 안 넣으면…' 그런 문장을 들으면서 무대에 서야 했어요. 노래가 될 리가 없죠."
"제 매니저가 저를 앉혀놓고 '형, 이러다 음악 자체를 그만두겠어요'라고 했어요. 맞는 말이었어요. 저는 그때 음악보다 전화가 더 무서웠거든요."
그리고
"6개월을 쉬었어요. 그 사이에 사회적기업에서 운영하는 상담 프로그램에 연결됐고, 소액 상호부조 대출로 빚을 일부 해결했어요.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지만, 연 24%가 연 4%가 되면서 숨이 쉬어졌어요."
"올해 두 번째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번엔 실패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려고 해요.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생겼거든요."
세 번째 증언 — 영주 (가명, 조각, 58세)
50대에 처음 받은 "거절"
"저는 평생 작품만 만들었어요. 대학원 나오고, 30년 가까이 개인전 8번 했고, 그룹전은 셀 수 없이 많이 했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컬렉션에 작품도 들어가 있어요."
"작업실 이전을 해야 해서 전세금 대출을 받으려고 은행에 갔어요. 이미 운영 중인 스튜디오에, 작품 판매 실적도 있고, 예술인패스도 있었어요. 저는 그게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30년 경력이 서류 한 줄에 막히는 걸 보면서 이상한 허탈함이 왔어요. 제가 제 인생을 설명하는 데 30년이 걸렸는데, 저 서류는 제 인생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대출은 결국 안 됐어요. 2금융권으로 가는 대신 작업실을 축소 이전했어요. 작품 크기가 줄어들었고, 큰 작업을 할 수 없게 됐어요. 저는 그걸 '은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제 작업 세계는 그 지점에서 한 번 끊겼어요."
"씨앗페에 참여하게 된 건 동료 작가의 제안이었어요. '선생님, 저희가 돈을 모아서 후배들한테 저금리 대출을 하고 있어요. 선생님 작품 한 점 주시면, 그게 후배 한 명 살립니다.' 그 말에 작품을 내놨어요. 제가 받지 못한 걸, 다음 세대에는 받게 하고 싶어서요."
네 번째 증언 — 도윤 (가명, 사진, 27세)
치료를 미루다
"저는 사진 작업을 해요. 젊은 작가라 아직 갤러리 계약 같은 건 없고, 프리랜서로 여기저기서 일하는 식이에요."
"2년 전에 몸이 이상해서 병원 갔더니 갑상선 이상이라고 했어요. 수술은 아니지만 정기 검사와 약이 필요하다고 했죠. 한 달에 약값만 10만원이 넘어요."
"그 약값 때문에 한 번 건너뛰었어요. 작품 찍으러 서울 밖으로 가는 교통비가 먼저였거든요. 그게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3개월이 지났어요. 병원에서 연락이 왔을 때 저는 제 상태를 솔직히 말할 수가 없었어요."
"돈이 없어서 약을 못 먹는다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웠어요. '바빠서 못 갔어요'라고 대답했어요. 그 순간 저는 제 몸보다 자존심을 먼저 지켰던 거예요."
그리고
"다행히 작은 작품이 팔리면서 한 번에 몇 달치 약을 샀어요. 병원도 다시 다니고 있고요. 요즘은 씨앗페 캠페인을 보면서 생각해요. 제 또래 예술인들이 몸이 아플 때 약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제가 경험한 건 제 개인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작가들의 일상이었거든요."
다섯 번째 증언 — 민자 (가명, 한국화, 47세)
"무직자" 취급
"저희 동네에 오래 살았어요. 옆집 아주머니, 편의점 아저씨, 슈퍼 사장님 다 알고 지냈고요. 그런데 이혼하고 새 집을 구하려니 집주인이 '직업이 뭐예요?'라고 물었어요."
"'화가입니다'라고 했더니 잠깐 멈추시더니, '아… 그러면 직장은 없으신 거네요'라고 하셨어요. 저는 30년 동안 매일 그림을 그렸는데, 그 순간 무직자가 됐어요."
"그 집주인이 '보증금을 두 배로 올려달라'고 하셨어요. '직업이 없으시니 위험 부담이 있다'고. 저는 모욕감보다는 슬픔이 먼저 왔어요. 제가 평생 해온 일이 누군가에게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
"작품을 접을까 생각했어요. 교사 자격증을 다시 땄어야 했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어야 했나, 그런 생각이 반복됐어요. 그림이 제 자존감을 지켜주던 유일한 것이었는데, 그게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니까 저 자신도 저를 인정하기가 어려워졌어요."
그리고
"몇 년 뒤 씨앗페 워크숍에 갔다가, 저처럼 '무직자 취급' 경험을 이야기하는 작가들이 너무 많은 걸 알게 됐어요.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게 가장 큰 치유였어요."
"지금은 다시 그림을 그려요. 씨앗페에 작품을 냈고, 그게 후배 한 명의 작업실 월세가 됐다고 들었어요. 저는 저희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요. 저 같은 '무직자'가 다음 10년, 20년에는 훨씬 줄어들도록."
다섯 증언이 말하는 한 가지
다섯 사람은 직종도, 연령도, 작품 세계도 다릅니다. 그러나 모두 한 번은 창작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이유가 돈이 아니라 존엄이었습니다.
이자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이자 때문에 창작 시간이 사라졌기 때문에
가난해서가 아니라, 가난이 "내 일의 가치가 없다"는 신호로 내면화되었기 때문에
치료를 미룬 게 아니라, 치료를 미뤄야 했던 선택 자체가 존엄을 깎았기 때문에
거절당한 게 아니라, 거절이 "너는 없다"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에
예술인의 금융 차별은 경제 문제이기 전에 존엄의 문제입니다. 이 점이 숫자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진실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다섯 증언은 모두 "그리고…" 이후로 이어집니다. 다섯 사람 모두 지금은 창작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공통점은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다는 것입니다.
카페 언니의 한마디
매니저의 경고
동료 작가의 권유
작품이 팔린 한 번의 기회
워크숍에서의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이 '손 내밀기'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제도가 아니라 관계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만드는 일을, 시민 한 사람의 작품 구매가 가능하게 만듭니다.
씨앗페의 작품 한 점은 다섯 증언 중 누군가의 "그리고…"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다음 증언의 "그리고…"는 아직 쓰이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것을 누가 쓸지가, 이 숫자들의 내년 분기 값을 결정합니다.
Q. 이 증언들은 실제 인터뷰인가요?
A. 이 글은 실제 예술인 인터뷰 자료와 여러 공익 단체가 수집한 익명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내러티브입니다. 인물명은 모두 가명이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각색되었습니다. 그러나 각 사건의 경험적 본질은 실제 그대로입니다.
Q. 이 내용을 뉴스·블로그에 공유해도 되나요?
A. 네. 출처 링크와 함께 자유롭게 공유해주세요. 이 증언이 더 많이 읽힐수록 구조적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넓어집니다. 다만 본문 발췌는 원문 맥락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부탁드립니다.
Q. 제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나요?
A.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합니다. (1) 씨앗페 작품 한 점을 구매, (2) 이 글을 SNS에 공유, (3) 주변에 예술인이 있다면 안부 묻기, (4) 지역구 국회의원·시의원에게 예술인 금융 지원 확대를 건의, (5)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회원 가입 및 후원.
Q. 비슷한 증언이 앞으로도 계속 나올까요?
A. 안타깝게도 이 증언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씨앗페 같은 민간 연대가 활발해지고, 해외 모델을 참고한 제도 개선이 이뤄진다면 증언의 색깔은 '생존기'에서 '재도약기'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 변화의 한 조각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입니다.
다섯 증언의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문장을 누가 쓸 것인가. 작품 한 점의 구매, 이 글 한 번의 공유가 그 문장의 주어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