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이 지나간 자리에
사람이 산다
한국의 산과 강과 사람을 나무판에 새기는 목판화가.칼 한 자루, 나무 한 판, 한 생애 — 국토와 연대에 뿌리내린 한국 목판화.
나무는 기억한다 —
한국을 새기는 목판화가
류연복(1958–)은 홍익대 회화과에서 그림을 공부하다 목판이라는 매체를 만났다 — 저항, 나뭇결, 결단을 요구하는 그 매체가 자신의 기질과 시대에 맞는다는 것을. 그는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이 가장 격렬하던 시기에 예술가로 성장했고, 그 시절 목판화는 많은 작가들에게 기법이 아니라 공적 발언의 형식이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류연복은 민중판화 운동에 참여했다 — 벽화 작업과 걸개그림으로 평범한 한국인들의 목소리를 공공 공간에 내걸었다. 이 전통에서 목판화는 스튜디오의 사물이 아니라 사회적 도구였다: 하나의 판에서 여러 장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은 예술이 배포되고, 게시되고, 공유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칼은 그 맥락에서 하나의 약속이었다 — 새긴 것은 지워지지 않는다.
1993년, 류연복은 도시를 떠나 경기도 안성에 자리를 잡았고 지금껏 그곳에 있다. 그것은 주제로부터의 후퇴가 아니라 음조의 변화였다. 1980년대의 작업이 사회·정치 현실을 직접 다뤘다면, 이후의 작업은 더 긴 시간의 눈금으로 방향을 틀었다 — 땅, 계절, 생명 그 자체. 그는 한반도를 체계적으로 순례하기 시작했다 — 백두산, 독도, 금강산, DMZ를 돌며 화첩에 담고, 작업실에 돌아와 그 풍경들을 나무판에 새겼다.
현장 스케치, 칼로 새기기, 찍어내기, 다시 도려내기, 다시 찍어내기 — 이 과정은 이중의 주의를 실천한다: 땅을 읽는 눈과, 저항을 통해 해석하는 손. 나무는 칼에 수동적으로 굴복하지 않는다. 나뭇결은 밀어내고, 대안을 제안하며, 결정을 강요한다. 류연복은 목판 작업을 시와 같다고 말해왔다 — 형태를 빚고 비워내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제거할지 선택하다 보면 본질적인 이미지가 남는다.
그의 작업은 국제적으로도 소개되었다. 하버드대학의 한국 문학·문화 학술지 Azalea(진달래)(2008)에 목판화가 수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09년에는 아랍에미리트 샤자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강의와 전시를 연 것으로 전해진다. 지극히 한국적인 그의 감성이 국경 너머로 읽힌다는 것을 증명했다. 한국현대목판화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협회의 2026년 회원전 《나무에게 묻는다》에 참여했고,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린 주요 개관전 《각인(刻印)—한국근현대목판화 100년》(2021–2022)에도 이름을 올렸다.
칼이 하는 일
- 1
국토를 주제로
백두산·독도·금강산·DMZ를 몸소 순례하며 쌓은 스케치들이 목판화로 이어진다 — 국토를 직접 건너는 행위 자체가 신체적 만남에 뿌리내린 예술 실천이 된다.
- 2
새김의 약속
붓 자국과 달리 목판의 칼선은 되돌릴 수 없다. 나뭇결의 저항 — 류연복이 시와 같다고 말하는 그 교환 — 은 취소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한다. 새긴 뒤에 남는 것이 작가가 진정으로 말하기로 한 것이다.
- 3
민중과 연대
1980년대 민중판화 운동에서 현재의 작업까지, 류연복의 판화에는 사람이 빠진 적 없다. 풍경에는 그 위에서 살아온 삶의 흔적이 담겨 있고, 생명체는 산과 같은 화면을 나눈다. 나무는 둘 다 기억한다.
작가의 시간
- 1958출생.
- 1980년대홍익대 회화과 졸업. 민중판화 운동 참여 — 벽화·걸개그림 작업.
- 1993경기도 안성에 정착. 국토와 생명을 주제로 한 목판화 작업 본격화.
- 2000년대–백두산·독도·금강산·DMZ 등 국토 현장 순례 및 스케치 수집. 대형 목판화 작업으로 이어짐.
- 2008하버드대 한국 문학·문화 학술지 《Azalea(진달래)》에 목판화 수록.
- 2009아랍에미리트 샤자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강의 및 전시.
- 2021–22경남도립미술관 《각인(刻印)—한국근현대목판화 100년》 참여.
- 2026한국현대목판화협회 회원전 《나무에게 묻는다》 참여. 동료 예술인과의 연대로 씨앗페 온라인 참여.
주요 전시 및 게재
- 《각인(刻印)—한국근현대목판화 100년》, 경남도립미술관 (2021.10–2022.02)
- 한국현대목판화협회 2026 회원전 《나무에게 묻는다》
- 하버드대 《Azalea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 Culture》 목판화 게재 (2008)
- 아랍에미리트 샤자대학교 미술대학 강의 및 전시 (2009)
- 한국현대목판화협회 회원
세 편의 에세이 —
칼과 국토와 민중에 관하여
1칼로 새긴 민중의 삶
1980년대 한국의 목판화는 주로 갤러리 예술의 매체가 아니었다. 유통의 매체였다: 하나의 판에서 여러 장을 찍어낼 수 있고, 벽에 붙이고, 운동 네트워크를 통해 배포하고, 팸플릿 안에 접어 넣을 수 있었다. 민중운동에 참여한 작가들 — 평범한 한국인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위해 말하는 예술을 만들겠다고 뜻을 모은 — 에게 이 복수성(multiplicity)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이었다.
류연복은 그 맥락에서 이 실천에 참여했다. 초기 작업의 주제들은 주변 사람들의 삶과 투쟁에서 왔고, 제작 과정 — 나무에 새기고,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고, 잉크를 묻혀 찍어내는 — 은 하나의 규율을 실천했다: 모든 흔적이 결정이고, 취소할 수 없으며, 전체 무게를 진다. 벽화와 걸개그림은 이 공공성을 더 나아가게 했다 — 사람들이 모이고, 일하고, 저항하는 공간에 이미지를 놓았다.
이 전통을 단순한 선전 예술과 구별하는 것은 그것이 요구하는 주의(注意)의 질이었다. 얼굴 하나, 손 하나, 노동하는 몸 하나를 새기려면 작가는 그것을 연구해야 했다 — 나뭇결의 저항으로 번역하기에 충분할 만큼 형태를 이해해야 했다. 재료에 맞서는 칼은 좋은 초상화가 언제나 묻는 것과 같은 질문을 물었다: 여기서 본질적인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제거하면 그 사람이 사라지는가?
2국토·자연의 목판
1993년 안성에 정착한 이후 류연복은 한국의 국토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 풍경적 배경이 아니라 역사적·정치적·생태적 무게를 담은 주제 그 자체로. 백두산·독도· 금강산·DMZ 순례는 관광이 아니라 예술적 순례였다: 현장에서 쌓인 화첩이 목판화의 원재료가 됐다.
이 과정에서 탄생하는 풍경화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새기는 행위는 해석을 강제한다: 현장에서 본 산을 나뭇결로 번역하려면 작가는 그 산의 본질적 형태에 속하는 것과 아닌 것을 결정해야 한다. DMZ 목판화는 분단의 무게를 담고, 백두산 작업은 통일의 염원을 담으며, 독도 작업은 주권의 무게를 진다. 류연복에게 국토는 결코 정치적으로 중립이지 않다 — 왜냐하면 한국의 땅은 결코 그런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안성 이후의 작업은 생물학적인 것들을 향해 열려왔다: 곤충, 식물, 흙과 나무껍질의 결, 계절의 리듬. 이것은 정치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그것의 확장이다 — 땅의 생명이 곧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생명이라는 주장, 그것을 정성스럽게 새기는 것 자체가 이미 윤리적 행위라는 주장.
31980년대 민중판화 운동
민중미술 운동은 1980년대 초 한국에서 군사 통치와 시민 사회 억압에 대응하여 등장했다 — 명시적으로 정치적이며 대중을 향한 예술을 만들기 위해. 판화, 특히 목판화는 실용적인 이유 못지않게 미학적 이유에서 운동의 주요 매체 중 하나가 됐다: 복수 찍기가 가능하고, 이동이 용이하며, 갤러리 인프라 없이도 제작할 수 있었다.
류연복의 참여는 그를 예술 제작과 사회적 헌신을 불가분하게 이해한 한국 예술가 세대에 자리 잡게 했다. 벽화와 걸개그림은 집단적 프로젝트였고, 종종 협력으로 제작되어 공장·대학 캠퍼스·저항 시위 현장에서 공개적으로 걸렸다. 이 형식들이 요구하는 규모는 목판의 일반적인 내밀함에 도전해 매체를 기념비적인 무언가로 확장했다.
이 운동의 유산은 다층적이다. 목판화를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으로 확립시켰다. 긴박함과 관객을 의식하며 작업하는 법을 배운 작가들 — 류연복을 포함해 — 의 세대를 길러냈다. 그리고 한국 판화와 평범한 한국인의 삶의 조건 사이에 연결을 만들었는데, 이는 류연복의 이후 국토 작업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심화시킬 연결이었다. 1993년 이후 그가 새긴 땅은 운동이 모든 사람의 것이라고 주장했던 바로 그 땅이었다.
1980년대의 벽화에서 안성 작업실의 산 정상과 강줄기까지 — 류연복은 같은 행위를 이어왔다: 중요한 것을 나무에 새겨, 종이에 찍어내고, 손에 쥘 수 있게 하는 일. 그는 씨앗페에 금융 차별의 당사자로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과의 연대자로서 함께한다 — 그의 손 안의 칼이 언제나 섬겨온 자유 안에서 다음 세대의 예술인들이 일할 수 있도록.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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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복 작가는 동료 예술인을 위한 연대의 뜻으로 씨앗페에 함께했습니다. 작품 판매 수익은 전액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기금으로 이어집니다. 작품 한 점의 구매가, 오늘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 한 사람의 다음 한 달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