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콘텐츠로 이동
민정기 · 1949–

한국의 산하를
기억으로 새긴
화가

반세기의 대형 화폭.사라지기 전에 기억하는 한국의 산하.

2018

2018년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평화의 집.
민정기의 「북한산 전도」가 배경에 걸렸고, 전 세계가 그 그림을 보았습니다.

저항에서 파노라마로 —
땅이 증언한다

민정기(1949-)는 1979년 말 오윤 등 작가·평론가 동인들과 함께 「현실과 발언」을 결성했습니다. 창립전은 1980년 10월 17일 문예진흥원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렸습니다. 전시 개막일 밤, 전시관 측이 전기 스위치를 내려버리자 동인들은 촛불을 들고 전시를 이어갔습니다. 그 '촛불전시'는 한 세대의 저항을 상징하는 장면이 됐습니다.

민정기의 출발에는 의도적 도발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 그는 스스로 '이발소 그림'이라 지칭하는 작업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이발소 벽에 걸려있던 세련되지 못한 키치적 그림들을 유화 물감으로 정성스럽게 재현한 이 작품들은, 국전이 주도하던 순수미술·추상미술에 대한 반미학적 공격이었습니다. 미술이 심미적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대중의 일상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는 철학적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1987년 겨울, 민정기는 경기도 양평의 한 우사를 개조해 작업실을 만들고 살림집을 차렸습니다. 이 이전은 결정적이었습니다. 한강 유역과 주변 산들과의 직접적 대면이 그의 작업을 도시적 사회 풍자에서 풍경 그 자체로 끌어당겼고, 이후 경력의 후반부를 정의하게 됩니다.

1990년대부터 민정기는 실경 산수에 뿌리를 둔 작업을 발전시켰습니다. 실제로 답사한 장소를 그리는 진경(眞景)의 전통을 이어받되, 땅의 역사와 지리를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을 더했습니다. 결과물은 지형 기록이 아닙니다 — 특정한 시간과 공간이 회화적으로 응축된 장소의 기억입니다.

그의 대표작은 파노라마식 풍경화입니다. 벽 한 면을 채우는 대형 화폭 위에 펼쳐지는 한국의 산과 들, 농촌의 마을 — 이것은 단순한 경치가 아닙니다. 빠르게 사라져가는 농촌의 풍경을 붙잡아 두려는 기억의 행위이며, 그 땅 위에서 살아온 민중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작가의 선언입니다. 그의 그림 속 땅에는 특정한 빛, 특정한 계절, 특정한 노동이 살아있습니다.

주요 테마

  • 1

    한국의 산하

    사라져가는 한국의 농촌 풍경을 파노라마 화폭에 담아 시대의 증언으로 남겼습니다.

  • 2

    민중의 삶

    땅 위에 뿌리내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진솔하게 기록했습니다.

  • 3

    현실과 기억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집단적 기억의 풍경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반세기 넘게 지속했습니다.

작가의 시간

  1. 1949서울 서대문구 출생.
  2. 1972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3. 1979오윤 등과 「현실과 발언」 창립. 창립전은 1980년 10월 17일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개최 — 전기 차단에 맞서 촛불로 전시 강행('촛불전시').
  4. 1980s'이발소 그림'으로 화단 주목 — 국전식 추상미술에 대한 반미학적 공격, 대중문화 이미지를 유화로 재현.
  5. 1984서울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수료.
  6. 1987경기도 양평으로 작업실 이전(1987년 겨울). 우사를 개조해 작업장 마련. 이후 많은 미술인이 양평에 작업장을 차리는 토대가 됨.
  7. 1990s실경(實景) 산수 전환. 진경 전통을 이어받아 땅의 역사·지리를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는 풍경화 작업 심화.
  8. 2006제18회 이중섭미술상 수상. 2007년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수상 기념전 개최.
  9. 2018「북한산 전도」(2007년 작, 국립현대미술관 소장)가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평화의 집에 전시 — 두 정상 뒤 배경으로 전 세계에 방영.
  10. 현재양평에서 작업 지속.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시립미술관 등 주요 기관에 소장.

주요 전시 및 소장

  • 금호미술관 초대전 (2016) — 임진나루·홍지문 일대를 담은 파노라마 풍경화 신작 등
  • 국제갤러리 개인전 《Min Joung-Ki》 (2019.1–3) — 구작과 신작을 아우른 40년 풍경 화업의 집약
  • 양평군립미술관 아카이브전 《놓치지 못하는 풍경》 (2024)
  • 제18회 이중섭미술상 수상 (2006); 조선일보미술관 수상 기념전 (2007)
  • 국립현대미술관(MMCA) 소장 — 「북한산 전도」(2007) 포함; 서울시립미술관 등 주요 기관 소장

판화(목판화·실크스크린) 작품은 대형 회화와 함께 비교적 접근 가능한 소장 경로입니다.

세 편의 에세이 —
작업과 그 증언에 관하여

1현실과 발언 — 1980년대, 미술이 현실을 말해야 했을 때

1979년 말, 박정희 대통령 피살 이후 12·12 군사 쿠데타로 이어지는 격변의 정세 속에서, 젊은 작가·평론가들이 하나의 확신을 공유하며 모였습니다: 한국 미술이 작업실 밖 세상에 눈을 감고 있다는 것. 이들이 결성한 단체가 「현실과 발언」이었습니다. 민정기, 오윤, 임옥상, 주재환 등 작가 12명과 평론가 4명이 동인을 이뤘습니다.

창립전은 1980년 10월 17일 서울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개막했습니다. 개막일 밤, 전시관 측은 작품들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전기 스위치를 모두 내려버렸습니다. 동인들은 촛불을 들고 전시를 이어갔습니다. 그 '촛불전시'는 한국 민중미술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 어둠 속에서도 미술을 침묵시키지 않겠다는 거부.

민정기가 초기에 내놓은 것이 이른바 '이발소 그림'이었습니다. 당시 이발소 벽에 걸려있던 세련되지 못한 키치적 그림들을 유화 물감으로 정성스럽게 재현한 이 작업은 반미학적 선언이었습니다. 국전이 주도하던 추상·순수미술의 권위에 대한 공격이자, 미술이 대중의 일상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는 철학적 주장이었습니다. 고급 미술이 세련됨을 숭배한다면, 민정기는 거리의 언어를 캔버스 안으로 끌어들이겠다고 했습니다.

「현실과 발언」은 이후로도 다양한 주제전을 이어가다 1990년 공식 해체됐습니다. 그러나 그 영향은 훨씬 오래 지속됐습니다 — 1980년대 한국 현대미술을 재형성한 민중미술 운동의 제도적 씨앗이 됐고, 아카이브는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합니다.

22018년 판문점 — 정상의 등 뒤에 걸린 「북한산 전도」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렸습니다. 세계의 카메라가 두 정상을 향했고 — 그 뒤편의 거대한 그림도 함께 포착됐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민정기의 「북한산 전도」(2007년 작)가 그 자리에 걸려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500호 이상의 대작(264.5×452.5cm)으로, 완성하는 데 6개월 이상이 걸렸습니다. 서구 풍경화가 시점을 하나로 고정하는 것과 달리, 민정기의 그림은 여러 시점과 시간에서 본 풍경을 한 화면에 겹쳐 놓습니다 — 하나의 산이 여러 방향과 계절에서 동시에 보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무슨 기법으로 그렸냐”며 호기심을 나타냈다고 전해집니다. 화면에 담긴 산은 북한산 — 서울의 북쪽 경계를 이루는 능선입니다. 북쪽에서 보면 남쪽 수도를 알리는 산이기도 합니다. 그 방에서 이 그림은 그리지 않았던 의미를 얻었습니다: 분단의 풍경이자 그 끝의 가능성.

이 에피소드는 민정기의 풍경화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바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경치가 아니라 영토로서의 땅을 그리는 것 —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지반으로서의 풍경. 양평에서 2007년에 완성된, 서울 북쪽 산을 직접 답사해 그린 작품이 2018년 판문점으로 가서 그 10년의 가장 주목받은 외교의 배경이 됐습니다. 민정기의 손에서 땅은 물감보다 무거운 것을 담습니다.

3양평 이후 — 땅을 다시 그리다

1987년 겨울, 민정기는 서울을 떠났습니다. 「현실과 발언」 시절의 도시적 사회 풍자 — 이발소 그림, 괴물 같은 도시 풍경, 대중문화 키치를 비판의 언어로 쓰는 작업 — 를 뒤로하고 양평의 우사를 작업장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머물렀습니다.

그 이후 10년은 풍경 자체와의 긴 재협상이었습니다. 양평은 한강 상류 유역에 자리하고 산으로 둘러싸인 곳입니다. 그 구체적인 지형과의 직접적 대면 — 능선을 걷고, 들판에서 스케치하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빛을 관찰하는 것 — 이 그의 작업을 사회적 알레고리에서 실경화(實景畵)로 끌어당겼습니다. 1990년대부터 그는 한국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전통을 이어받았습니다 — 이상화된 가상의 경치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를 그리는 전통.

그러나 민정기의 접근은 단순한 사실주의가 아닙니다. 그의 파노라마 구성은 여러 시점과 시간 층위를 한 화면으로 융합합니다. 캔버스에 담긴 것은 한 번의 현장 답사가 아니라 인문학적 종합입니다 — 그 장소의 역사, 지형에 새겨진 노동, 산이 바위와 빛 이상의 것이 되게 하는 시간의 느린 축적. 그의 그림 속 땅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읽히는 것입니다.

그의 이전은 자신의 작업을 넘어서는 영향을 남겼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미술인이 양평에 작업장을 차렸습니다 — 그가 닦아놓은 토대 위에서. 우사를 열고 머물렀던 그가 그 길을 열었습니다. 이 점에서도 민정기는 이 캠페인의 정신을 체현합니다 — 어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일할 조건을 만든 사람으로서.

1980년 촛불전시에서 2018년 판문점 평화의 집까지, 민정기의 작업은 거리와 산 사이를, 저항과 파노라마 사이를 오가며 항상 같은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이 땅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누가 그것을 감당해왔는가. 그는 씨앗페에 금융 어려움의 당사자가 아닌, 동료 예술인과의 연대자로서 함께합니다 — 다음 세대의 예술인들이 그가 치워야 했던 장애물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주요 작품

ARCHIVE

4점의 작품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Min Joung-ki작품을 클릭하여 상세 정보를 확인하세요
예술인 상호부조

민정기 작가는 동료 예술인을 위한 연대의 뜻으로 씨앗페에 함께했습니다. 작품 판매 수익은 전액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기금으로 이어집니다. 작품 한 점의 구매가, 오늘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 한 사람의 다음 한 달이 됩니다.

회화

2

판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