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한 사람의 몸에
수직으로 쌓인다
한 세기의 무게를 한 화면에 응축하다.인체와 사물이 기관차처럼 쌓여 올라가는 한국 근현대사.
쌓아 올린 역사 —
한 화면에 응축된 한 세기
신학철(1943–)은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1968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그는 모더니스트로 미술계에 발을 들였으며, 1970년부터 1975년까지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전에 참여하며 당대의 지배적 추상 형식주의에 물음을 던지는 세대의 현장에 섰다.
1970년대 내내 그는 오브제와 사진 콜라주 실험을 이어갔다.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이어진 서울방법전에 참여하면서, 신문·잡지에서 오려낸 사진 이미지를 원재료로 삼는 작업을 발전시켰다. 단색화가 화단을 지배하던 시대에, 그는 카메라의 기록을 안료 대신 사용했다.
전환점은 1978년이었다. 사진집 「사진으로 보는 한국 백년」을 접한 충격 이후, 그는 개인의 조형 실험을 넘어 한 세기의 집단적 기억으로 향했다. 사진은 장식이 아니라 증거였다. 신문·잡지·교과서의 이미지를 오려 붙인 포토몽타주로, 인체와 사물이 기관차처럼 수직으로 응축되는 「한국근대사」· 「한국현대사」 연작이 태어났다.
이 연작은 1980년부터 2021년까지 40년에 걸쳐 40여 점의 대작으로 이어지며, 동학 농민혁명부터 1980년대 민주화 운동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영웅이 아닌 무명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형상화한다. 그의 화면에서 역사는 평면에 나열되지 않고 수직으로 쌓인다. 한 사람의 몸이 한 시대의 단면이 되고, 그 단면들이 겹겹이 축적되어 한국 근현대사의 지층을 이룬다.
1987년 작 「모내기」가 1989년 9월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로 압수되고 작가가 구속되었을 때, 그 그림은 작품 이상의 것이 되었다 — 예술과 국가권력의 관계를 묻는 시험대. 1·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1999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2004년 UN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이 유죄 판결이 국제인권규약 제19조(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인정하고 시정을 권고했다. 작품은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위탁보관으로 옮겨졌지만 법적 복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 시대의 힘으로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 된 거장이다.
주요 테마
- 1
수직 몽타주
인체·사물이 기관차처럼 응축되는 형식미. 역사를 평면이 아닌 수직의 지층으로 그린다.
- 2
「모내기」와 표현의 자유
1987년 작 「모내기」는 1989년 국가보안법으로 압수되고 작가는 구속됐다. 1·2심 무죄에도 1999년 유죄가 확정됐으나, 2004년 UN 자유권규약위원회는 표현의 자유 침해를 인정했다.
- 3
민중미술 1세대의 역사의식
개인이 아닌 집단과 역사를 향하는 시선. 그의 작업은 한 시대의 증언이자 기록이다.
작가의 시간
- 1943경북 김천 출생.
- 1968홍익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 1970–AG(한국아방가르드협회)전 참여(~1975); 이후 서울방법전(1977–1981) 참여.
- 1970s사진 콜라주·오브제 실험 — 대중매체 이미지를 원재료로 삼는 작업 개시.
- 1978사진집 「사진으로 보는 한국 백년」을 접하고 작업 전환.
- 1980s「한국근대사」·「한국현대사」 연작 발표, 포토몽타주 양식 확립.
- 1987「모내기」 제작.
- 1989「모내기」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압수, 작가 구속.
- 1999대법원 파기환송 후 유죄 확정(징역 10개월 선고유예), 작품 몰수.
- 1991학고재갤러리 개인전 — 제1회 민족미술상 수상 기념전.
- 2004UN 자유권규약위원회, 국제인권규약 제19조 표현의 자유 침해 인정·시정 권고.
- 2018「모내기」 국립현대미술관 위탁보관. 법적 복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음.
- 2024–《신학철–시대의 몽타주》 60년 회고전, 광주시립미술관(2024.12–2025.3).
주요 전시 및 소장
- 단체전: 《민중미술 15년: 1980–1994》, 국립현대미술관 (1994)
- 학고재갤러리 개인전 (1991) — 제1회 민족미술상 수상 기념; 신학철·팡리쥔 2인전 《기념비적 몸의 풍경》, 학고재갤러리 (2016)
- 60년 회고전 《신학철–시대의 몽타주》, 광주시립미술관 (2024.12–2025.3)
-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한국근대사-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89), 「한국근대사-종합」(1982–83) 등
-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변신 5」(1981), 「부활 1」(1979) 등
세 편의 에세이 —
작업과 그 무게에 관하여
1모더니스트에서 증언자로 — 1978년의 전환
1968년 홍익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의 한국 화단은 단색화의 추상이 주도하고 있었다. 신학철은 그에 물음을 던진 세대의 일원이었다. 1970년부터 한국 아방가르드협회(AG)전에 참여하며, 그는 오브제·설치·사진 콜라주를 경유하는 1970년대를 보냈다 — 사진을 원재료로 쓴다는 것 자체가 형식적 도발이던 시대에.
전환은 이론에서 오지 않았다. 1978년, 사진집 「사진으로 보는 한국 백년」을 접하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 축적된 기록 이미지의 무게가 미학적 소재가 아니라 증거라는 것 — 식민, 전쟁, 한국 근현대사의 일상적 폭력에 대한 증거. 그 이후 신문·잡지·교과서에서 오려낸 사진 이미지가 1차 매체가 됐다. 목표는 더 이상 형식 혁신이 아니었다. 목표는 증언이었다: 일어난 일이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것.
1980년 전후 시작된 「한국근대사」 연작은 그 직접적 결과다. 동료들이 단색 화면을 다듬는 동안, 신학철은 오리고 쌓았다 — 인체, 기계, 군중 사진, 지도를 수직으로 응축하여 한 세기의 역사를 한 화면에 눌러 담았다. 모더니스트는 증언자가 됐고, 증언자는 아카이브를 구축했다.
2수직으로 쌓는 역사 — 「한국근대사·한국현대사」 연작의 형식
「한국근대사」·「한국현대사」 연작의 핵심 형식 선택은 수직 압축이다. 서양의 역사화는 시간을 수평으로 배열한다 — 시간의 프리즈. 신학철의 포토몽타주는 그것을 쌓는다. 인체가 캔버스의 전체 높이를 차지한다: 발은 19세기 말 농민 봉기에 디딘 채, 몸통은 식민 시기를 감당하고, 머리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뚫고 나온다. 하나의 몸이 여러 시대를 담는다. 시간은 서술되지 않는다 — 지층이 된다.
이 연작은 1980년부터 2021년까지 40년에 걸쳐 40여 점의 대작으로 이어진다. 그 중에서도 대표작은 「한국근대사-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8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와 「한국근대사-종합」(1982–83, 국립현대미술관). 이 화면들에서 역사의 주인공은 지도자나 영웅이 아니라 이름 없는 존재들 — 누가 역사의 무게를 짊어지는가에 대한 형식적 주장이다.
비평계는 이 연작이 한국 미술 안에서 새로운 비판적 형상성을 확립했다고 평가한다 — 포토몽타주를 실험이 아닌 정치적 아카이브로. 민중미술의 첫 파고로부터 2021년 작까지, 이 연작은 회화 매체 안에서 단독 작가가 한국 근현대사를 가장 지속적으로 대면해 온 기록으로 남는다.
3「모내기」 — 한 점의 그림이 받은 재판
1987년, 신학철은 「모내기」를 완성했다. 농부들이 몸을 굽혀 모를 심는 장면을 포토몽타주로 담은 그림으로, 집단 노동과 통일에 대한 열망이 이미지 안에 새겨진 작품이었다. 같은 해 민족미술협의회 통일전에 출품됐다.
1989년 9월, 검찰은 이 작품이 국가보안법상 북한을 찬양하는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작품은 압수됐다. 신학철은 구속됐다. 1심에서 무죄, 항소심에서도 무죄. 그러나 1998년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환송했고, 1999년 8월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 징역 10개월 선고유예, 작품 몰수.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4년, 국제인권규약(ICCPR) 이행을 감시하는 조약 기구 UN 자유권규약위원회는 대한민국이 규약 제19조(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인정하고 시정을 권고했다. UN 인권 기구가 한국 미술 작품에 대해 판정을 내린 최초의 사례였다.
작품은 2018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 위탁보관 중이다. 법적 복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내기」는 세계 미술·법률의 역사에서 유례가 드문 사례로 남는다 — 기소되고, 무죄가 났다가, 유죄가 됐고, 국제기구에 의해 잘못임이 확인된, 아직도 기다리는 그림.
1970년대 AG 화랑에서 2020년대 캔버스까지, 신학철의 작업은 하나의 물음을 추구해 왔다: 몸은 어떻게 역사의 무게를 감당하는가, 그리고 그림은 어떻게 그 몸을 감당하는가. 50년에 걸쳐 구축된 대답이 한국 미술에 유례없는 포토몽타주 아카이브다. 그는 씨앗페에 이 캠페인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과의 연대자로서 함께한다 — 다음 세대의 예술인들이 그가 짊어진 무게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주요 작품
총 3점의 작품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신학철 작가는 동료 예술인을 위한 연대의 뜻으로 씨앗페에 함께했습니다. 작품 판매 수익은 전액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기금으로 이어집니다. 작품 한 점의 구매가, 오늘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 한 사람의 다음 한 달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