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 디자이너이자 화가로, 두 권의 에세이집에 그림을 그린 최연택. 2014년 이후 다시 붓을 들었다는 화가의 이력과, 씨앗페에 나온 〈낚시하는 사람들〉·〈풀〉 두 점의 화면을 읽습니다.
최연택 — 1호 붓으로 곁에서 말을 거는 화가, 안개 속의 낚시꾼과 풀밭

〈낚시하는 사람들〉은 색이 거의 없는 그림입니다. 하늘도 물도 같은 옅은 회녹색으로 번져 있어서 어디서 하늘이 끝나고 물이 시작되는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왼쪽 위에 흰 달이 하나 떠 있고, 화면 아래쪽 오른편에 어두운 사람 셋이 모자를 쓰고 물속에 서 있습니다. 낚싯대가 가는 선으로 길게 뻗어 나가고, 사람들의 모습은 물 위에 흐릿하게 되비칩니다. 화면의 위쪽 대부분은 비어 있습니다.
최연택(Choe Yeontaek)은 화가이자 도예 디자이너입니다. 그림과 글을 결합한 에세이, 동화책 삽화, 도자기 디자인에 걸쳐 활동해 왔고, 민족미술인협회 회원입니다. 이 글은 그 이력을 따라간 뒤 씨앗페에 나온 두 점 앞에 섭니다.
그릇의 무늬에서 책의 삽화로
최연택의 이력은 캔버스보다 그릇에서 먼저 눈에 띕니다. 2017년 9월 오마이뉴스의 민미협 서울지회 '2017 조국의 산하'전 취재(세종문화회관 광화랑, 9월 20일~26일)에 따르면, 이 전시에 〈잘린 것들〉을 낸 최연택은 도예 디자이너이기도 했습니다. 본인이 밝히기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 청와대에서 쓴 식기의 무늬를 디자인했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도 그 식기를 쓰고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더불어 숲'을 디자인할 때 신영복 선생과 함께 작업하며 나눈 시간도 가슴에 담고 있다고 했습니다.
같은 기사에서 〈잘린 것들〉은 이렇게 소개됩니다. 텃밭에서 키운 야채와 과일을 그린 정물입니다.
"제가 주말마다 도시락 싸들고 가서 해 넘어갈 때까지 텃밭에서 키운 야채와 과일들이에요. 그저 예쁜 정물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보이지 않는 제가 흘린 땀도 있구요, 온전한 형태가 아닌 칼에 의해 잘린 것들이어서 아프게 느껴지기도 하죠.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다가 2014년 세월호 이 후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중고 신인이에요." — 최연택, 오마이뉴스 2017년 9월 20일 기사에서
"중고 신인"이라는 자기소개가 이 작가의 태도를 잘 보여 줍니다. 한동안 붓을 놓았다가 2014년 이후 다시 잡았다는 이야기이고, 이후의 행적도 그 말과 맞아떨어집니다. 2016년 10월 이한열기념관의 '보고 싶은 얼굴 2' 전은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여섯 사람을 여섯 작가가 그린 전시였는데, 주간경향은 여기에 나온 최연택의 〈4월〉을 캔버스에 그린 유화와 세라믹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소개했습니다. 권희정추모사업회는 그해 최연택이 이한열기념관에 전시한 작품이 권희정을 추모하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했다고 기록합니다. 이 밖에도 〈리멤버 416〉, 〈황해미술제-평화를 그리다〉, 일본 JAALA전 같은 단체전에 참여했습니다.
유화와 세라믹을 한 작품 안에서 같이 쓴다는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도자기 작업을 해 온 손이 캔버스로 돌아왔을 때 두 재료가 따로 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글 옆에 그림을 놓는 일
화가로서 최연택의 이름은 두 권의 에세이집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수호의 『하루를 더 살기로 했다』(걷는사람)와 부희령의 『무정에세이』(사월의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무정에세이』는 소설가 부희령의 눈과 기억에 새겨진 삶과 세상의 장면을 99편의 사색적 문장에 담은 책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최연택이 이 책의 삽화를 맡았습니다.
2020년 8월 11일부터 9월 13일까지 더숲갤러리에서 연 세 번째 개인전 《우리들의 안녕》은 이 삽화 작업이 중심이었습니다. 70여 점의 대부분이 『무정에세이』, 『하루를 더 살기로 했다』, 시인들의 동시 모음집 『밤새 콩알이 굴러다녔지』에 들어간 그림이었습니다. 전시를 소개한 유현아 시인의 글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작가의 작품은 텍스트와 함께여야 의미가 살고,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하나의 점이 보인다. … 최연택의 작품은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행위이다. 중심에 서지 않고 곁에서 바라보는 형식이다." — 유현아, 《우리들의 안녕》 전시 소개
같은 글에는 작가 자신의 말도 실려 있습니다. "내 직업은 1호 붓을 사용하는 일이다." 작은 그림은 1호 붓과 확대경, 제도기 등 여러 도구로 그린다고 했습니다. 가는 1호 붓에 확대경까지 쓰는 사람의 그림이라면 큰 몸짓보다 작고 정확한 선을 믿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낚시하는 사람들〉 — 곁에서 바라보는 화면
이 설명을 들고 다시 〈낚시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곁에서 바라보는 형식이라는 말이 이 화면에 꼭 맞습니다.
세 사람은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자 아래는 어두운 덩어리일 뿐이고 표정도 이름도 없습니다. 왼쪽 두 사람은 서로 고개를 돌려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하고, 오른쪽 한 사람은 조금 떨어져 낚싯대 끝을 바라봅니다. 그림은 그 대화의 내용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곁에, 조금 뒤에 서서 바라볼 뿐입니다.
색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하늘의 달은 둥근 윤곽이 남아 있지만 흰빛이 은은해서 안개 너머로 비치는 빛처럼 보입니다. 사람의 어두운 모습과 물 위의 되비침만 선명하고 나머지는 모두 흐립니다. 화면 오른쪽 아래 구석에는 작가의 낙관이 작게 놓여 있습니다. 천의 결이 그대로 비치는 바탕 위에 얇게 올린 물감이어서, 가까이서 보면 위쪽 하늘에 가로로 긋고 지나간 붓결이 남아 있습니다.
- 45.5x73.9cm · 천위에 유채 · 2025 · ₩1,900,000
- 작품 페이지 →
〈풀〉 — 안개 속 두 그루 나무와 바람

〈풀〉은 앞의 그림과 같은 안개를 쓰면서 색을 바꿉니다. 회색 하늘 아래 낮은 능선 위에 나무 두 그루가 흐릿하게 서 있습니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가 간격을 두고 나란히 있고, 둘 다 안개에 먹혀 윤곽이 풀어져 있습니다. 그 아래로 화면의 3분의 2가 넘는 자리를 노란빛 도는 초록의 풀밭이 채웁니다.
풀밭은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가 다릅니다. 멀리서는 번진 색면인데, 가까이 가면 가는 선으로 그은 풀잎이 보입니다. 아래쪽에서는 그 선들이 오른쪽 위로 비스듬히 쓸려 있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방향이 풀잎의 기울기로 읽힙니다. 하늘과 나무는 흐리게, 풀은 또렷하게 그렸기 때문에 시선이 위로 가지 못하고 풀밭 속으로 내려옵니다.
두 그림에는 같은 구성이 있습니다. 배경은 안개 속에 흐리게 두고, 시선이 머무는 사람과 풀만 또렷하게 그립니다. 텃밭의 야채를 두고 "보이지 않는 제가 흘린 땀"이 있다고 했던 작가가 풍경 앞에서도 그 시선을 이어 가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 37.9x45.5cm · 천위에 유채 · 2025 · ₩1,800,000
- 작품 페이지 →
씨앗페에서 만나는 자리
두 점 모두 씨앗페 온라인 갤러리에 걸려 있습니다. 씨앗페 출품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들이고, 작품 판매 수익은 상호부조 기금이 되어 저금리 대출로 이어집니다. 최연택이 그림을 그려 온 방식, 곧 중심에 서지 않고 곁에서 말을 거는 방식은 이 연대의 자리와 닮아 있습니다.
가까이서 오래 보시기를 권합니다. 〈낚시하는 사람들〉은 은은한 달빛과 물 위의 되비침을, 〈풀〉은 풀잎의 기울기를 찾아보세요. 최연택 작가 페이지에서 두 작품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함께 읽으면 좋은 글들을 소개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최연택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화가이자 도예 디자이너로, 에세이와 동화책 삽화, 도자기 디자인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합니다. 이수호의 『하루를 더 살기로 했다』, 부희령의 『무정에세이』에 그림을 그렸고, 민족미술인협회 회원입니다.
Q. 청와대 식기 디자인은 무엇인가요? A. 2017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최연택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 청와대에서 쓴 식기의 무늬를 디자인했다고 밝혔습니다.
Q. 『무정에세이』는 어떤 책인가요? A. 소설가 부희령이 쓴 에세이집으로, 99편의 사색적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월의책에서 나왔고, 최연택이 삽화를 그렸습니다.
Q. 《우리들의 안녕》은 어떤 전시였나요? A. 2020년 8월 11일부터 9월 13일까지 더숲갤러리에서 열린 최연택의 세 번째 개인전입니다. 70여 점 대부분이 『무정에세이』, 『하루를 더 살기로 했다』, 동시 모음집 『밤새 콩알이 굴러다녔지』에 실린 그림이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작품은 무엇인가요? A. 〈낚시하는 사람들〉(천위에 유채, 45.5x73.9cm, 2025, ₩1,900,000)과 〈풀〉(천위에 유채, 37.9x45.5cm, 2025, ₩1,800,000) 두 점입니다.
Q. 작품을 사면 어떻게 쓰이나요? A. 씨앗페 상설 온라인 갤러리 출품작의 판매 수익은 상호부조 기금이 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집니다.
관련 매거진
씨앗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