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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효섭 — 문자에 피를 입히고 그 위에 나무를 세운 국문학자의 문자도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10월 2일 · 씨앗페

서강대 국문학과 명예교수이자 기호학·신화학 연구자인 송효섭은 조선 시대 문자도의 형식을 빌려 오늘의 문자도를 그립니다. 붉은 글자 血 위로 소나무가 자라는 〈문자도 血: 민주주의 나무〉를 도판을 따라 읽습니다.

송효섭 — 문자에 피를 입히고 그 위에 나무를 세운 국문학자의 문자도

송효섭, 〈문자도 血: 민주주의 나무〉, 캔버스에 아크릴, 60.6x72.7cm — 흰 바탕 아래쪽에 붉은 붓질로 쓴 글자 血이 놓이고, 그 윗변 위에서 소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히 솟아 오른다
송효섭, 〈문자도 血: 민주주의 나무〉, 캔버스에 아크릴, 60.6x72.7cm — 흰 바탕 아래쪽에 붉은 붓질로 쓴 글자 血이 놓이고, 그 윗변 위에서 소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히 솟아 오른다

화면 아래쪽 삼분의 일을 붉은 글자 하나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 번에 힘주어 끌어 쓴 굵은 붓질이고, 글자는 한자 血, 피입니다. 획이 끝나는 자리마다 물감이 두껍게 뭉치고, 맨 아래 가로획 왼쪽 끝에서는 붉은 물감이 한 줄기 가늘게 흘러내립니다. 그 글자의 윗변, 짧은 삐침 획 바로 오른쪽에서 소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히 솟습니다. 줄기는 먹으로 꺾어 그었고 가지 끝마다 초록 솔잎이 둥글게 뭉쳐 올라갑니다. 배경은 거의 흰색에 가깝습니다. 붉은 글자와 먹빛 줄기, 초록 솔잎이 흰 바탕 위에 놓입니다.

문자를 그리는 국문학자

송효섭은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명예교수입니다. 『설화의 기호학』『신화의 질서』『뮈토세미오시스』 같은 책을 쓴 문학·신화학·기호학 연구자이고, 전시 소개문은 그가 평생 연구자로 살면서 그림을 그려 왔다고 적습니다. 민족미술인협회 회원으로 2008년 이래 「평화미술제」「통일미술대전」「조국의 산하전」 같은 기획전과 단체전에 50여 회 참여했다고 하고, 작품은 논밭예술학교, 영인문학관, 김수영문학관, 용산참사추모전시관, 우리은행 등에 소장되어 있다고 전합니다.

개인전으로는 두 번의 전시가 있습니다. 첫 전시는 2021년 3월 5일부터 21일까지 파주 헤이리의 갤러리 움에서 연 《문자의 기억》이고, 두 번째는 2023년 12월 13일부터 19일까지 서울 57th 갤러리에서 연 《환상도시기행》입니다. 《문자의 기억》에서는 김수영의 「광야」, 백석의 「膳友辭」, 에즈라 파운드의 「지하철 정거장에서」를 캔버스에 옮긴 '포에시스' 연작을 보였습니다. 《환상도시기행》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조형으로 다시 읽은 전시로, 스물세 점의 환상도시를 그렸다고 소개됩니다.

두 전시의 제목이 보여 주듯 송효섭의 그림은 늘 글에서 출발합니다. 시를 그림으로 옮기고, 소설 속 도시를 그림으로 세웁니다. 《문자의 기억》 작가노트는 그 방법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음성과는 달리 문자는 태생적 조형성을 갖기에 창조적 조형으로 나아가는 다리의 역할을 한다. 문자가 각인되면서 만들어진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을 끌어 모아 새로운 조형들을 엮어본다. 조선 시대 문자도 형식을 빌려 현대의 문자도를 그리는 것은 문자의 고현학적 탐구가 되겠다." — 송효섭, 《문자의 기억》 작가노트

문자도는 조선 시대 민화의 한 갈래로, 효제충신 같은 글자를 크게 쓰고 그 획 속에 그 글자가 뜻하는 이야기와 형상을 그려 넣는 그림입니다. 송효섭은 이 오래된 형식을 가져와 오늘의 글자를 씁니다. 같은 전시의 초대글은 이 작업을 두고 문자와 시를 다시 무장시키고 새로운 전투를 예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습니다.

〈문자도 血: 민주주의 나무〉를 읽다

작가는 이 작품을 "민주주의를 위한 값진 희생을 문자 血을 통해 표현한 작품"이라고 소개합니다. 도판에서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붉은 글자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안이 비어 있지 않습니다. 血의 가운데 네모 칸에는 짧고 굵은 붉은 획 두 개 사이로, 사람의 머리와 팔다리처럼 보이는 가는 먹선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그 위로 옅은 분홍빛이 번져 있습니다. 문자도가 글자의 획 안에 그 글자의 이야기를 그려 넣는 그림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 칸이 바로 그 이야기가 들어앉는 자리입니다. 크고 굵은 붓질이 바깥을 두르고, 작고 가는 선이 안쪽을 채웁니다. 하나의 글자가 피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로 읽힙니다.

나무는 그 글자 위에서 자랍니다. 줄기는 붉은 획 바로 뒤에서 올라와 오른쪽 위로 크게 휘고, 가지는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솔잎 덩이를 하나씩 받쳐 듭니다. 가장 높은 덩이는 화면 위쪽 오른편에 있습니다. 소나무는 흔히 변치 않는 기개를 상징하는 나무인데, 이 화면에서는 붉은 글자를 뿌리 삼아 올라간 모양새입니다. 작품 제목이 「민주주의 나무」인 이유가 이 구도에서 읽힙니다. 희생이 있었고, 그 위에서 나무가 자란다는 그림입니다.

화면 오른쪽 아래 구석, 붉은 글자의 오른쪽 끝 곁에는 작은 붉은 낙관이 찍혀 있고, 나무 줄기 밑동 옆에도 작은 붉은 글씨가 하나 보입니다. 거대한 글자 곁에서 이 작은 붉은 점들이 화면의 균형을 잡습니다.

이 작품은 2020년 11월 남양주 와부갤러리에서 열린 《2020 새로운 독립운동의 원년展 진정한 독립은 통일이다》에도 걸렸습니다. 민족미술인협회와 공공예술들로화집단이 주최한 전시였습니다.

같은 시선, 다른 글자

미술사학자 강혜승은 2025년 12월 한겨레 '문학이라는 창'에서 송효섭의 또 다른 그림을 이렇게 읽었습니다. "국문학자 송효섭은 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를 캔버스에 옮겼다." 글을 읽는 사람이 그림을 그릴 때 무엇을 그리는지가 이 문장에 들어 있습니다. 송효섭이 그리는 것은 풍경이나 인물이기 이전에 글이 남긴 기억입니다. 血 한 글자가 하나의 화면이 되는 〈문자도 血: 민주주의 나무〉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하겠습니다.

씨앗페에서 만나는 자리

〈문자도 血: 민주주의 나무〉는 씨앗페 상설 온라인 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씨앗페는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을 돕는 캠페인이고, 출품 작가들은 동료 예술인을 위해 자발적으로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은 상호부조 기금이 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집니다.

작품은 세로로 긴 화면이라 아래의 붉은 글자에서 위의 솔잎 끝까지 눈이 천천히 올라가는 그림입니다. 흰 벽 앞에서 오래 마주 서 있기 좋은 작품입니다. 송효섭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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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송효섭 작가는 어떤 분인가요? A.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명예교수로, 기호학과 신화학을 연구해 『설화의 기호학』『신화의 질서』『뮈토세미오시스』 등을 썼습니다. 민족미술인협회 회원으로 2008년 이래 여러 기획전과 단체전에 참여했고, 개인전으로 2021년 《문자의 기억》(파주 갤러리 움)과 2023년 《환상도시기행》(서울 57th 갤러리)을 열었습니다.

Q. 문자도란 무엇인가요? A. 조선 시대 민화의 한 갈래로, 글자를 크게 쓰고 그 획 속에 글자의 뜻을 담은 형상을 그려 넣는 그림입니다. 송효섭은 이 형식을 빌려 오늘의 문자도를 그린다고 작가노트에 밝혔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작품은 무엇인가요? A. 〈문자도 血: 민주주의 나무〉(2020, 캔버스에 아크릴, 60.6x72.7cm) 한 점이며 가격은 ₩600,000입니다. 씨앗페 상설 온라인 갤러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Q. 작품은 무엇을 이야기하나요? A. 작가는 민주주의를 위한 값진 희생을 문자 血을 통해 표현한 작품이라고 소개합니다. 붉은 글자 위로 소나무가 자라는 구도가 그 뜻을 그림으로 옮깁니다.

Q. 작품을 구입하면 수익은 어디에 쓰이나요? A. 씨앗페 상설 온라인 갤러리 작품의 판매 수익은 상호부조 기금이 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집니다.

씨앗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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