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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작도란? 까치호랑이 그림의 뜻 — 호랑이와 까치가 함께 있는 이유

미술 산책 · 발행 2026년 9월 15일 · 씨앗페

호작도·작호도·까치호랑이는 같은 그림입니다. 호랑이는 액막이, 까치는 좋은 소식이라는 원래 뜻 위에 19세기 민화가 탐관오리와 민초의 풍자를 얹었습니다. 임진왜란 무렵 명나라에서 건너와 정월 대문에 붙이던 세화에서 나온 이 그림의 유래와 상징, 읽는 법을 정리했습니다.

호작도란? 까치호랑이 그림의 뜻 — 호랑이와 까치가 함께 있는 이유

소나무를 배경으로 호랑이와 까치가 함께 있는 그림. 한국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이 그림의 이름이 호작도(虎鵲圖)입니다.

같은 그림을 부르는 이름이 여럿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주제를 「작호도(鵲虎圖)」라는 표제어로 싣고, 이칭으로 '까치호랑이 그림'과 '호작도'를 함께 적어 두었습니다. 호작도, 작호도, 까치호랑이 — 셋은 같은 그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왜 호랑이와 까치가 같이 있을까 — 해석은 하나가 아닙니다

이 그림에는 "호랑이는 탐관오리, 까치는 백성"이라는 설명이 흔히 따라붙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두 겹의 상징을 나란히 적습니다.

"원래 호랑이는 액막이이고 까치는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는 길상의 상징인데, 민화 까치호랑이에서는 이러한 상징과 더불어 신분간의 문제를 덧붙임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즉 먼저 있던 뜻은 액막이(호랑이)와 좋은 소식(까치)이었습니다. 그 위에 나중에 덧입혀진 뜻이 신분 간의 풍자입니다. 같은 사전은 그 풍자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호랑이는 탐관오리와 같이 힘과 권력있는 사람을 상징하고, 까치는 민초를 대표하는데, 호랑이는 바보스럽게 표현되고 까치는 당당하게 묘사되면서 호랑이가 까치에게 쩔쩔매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는 신분간의 갈등문제를 우화적이고 풍자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두 해석은 경쟁하는 게 아니라 쌓여 있는 것입니다. 액막이 그림으로 출발해, 19세기 민화에 이르러 풍자가 얹혔습니다.

임진왜란 무렵 건너와, 19세기에 한국 그림이 되다

호작도의 뿌리는 중국입니다. 같은 사전에 따르면 원·명대의 「자모호도(子母虎圖)」·「유호도(乳虎圖)」가 그 연원이고, 조선에는 임진왜란(1592) 무렵 명나라로부터 전래되었습니다.

건너온 그림이 조선 그림이 되는 데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 17세기 — "명나라식 호랑이 그림은 17세기부터 점차 조선화되는 양상이 나타났는데, 입체적인 표현이 평면화되고 사실적인 배경이 표현주의적인 경향으로 바뀌는 변화를 보였다."
  • 18세기 — 사실적인 화풍이 다시 득세하면서 입체적인 표현이 등장했지만, 배경은 더 간략해졌습니다.
  • 19세기 — "민화에서 즐겨 그려지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까치와 호랑이의 관계가 단순히 주인공과 배경의 관계를 넘어서 흥미로운 설화로 각색되었다."

우리가 '까치호랑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 익살스러운 그림은, 그러니까 19세기의 얼굴입니다.

원래는 정월 초하루에 대문에 붙이던 그림

호작도는 감상용으로 태어난 그림이 아닙니다. 새해 첫날 문에 붙이는 세화(歲畵)에서 나왔습니다.

세화는 "조선시대에 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하여 그린 그림"으로, "문짝에 주로 붙이기 때문에 문배(門排) 또는 문화(門畫)라고도" 했습니다. 민간에서는 벽사력이 있다고 믿어온 닭과 호랑이를 비롯해 해태 모양의 사자와 개를 그려 붙였습니다.

호작도가 물려받은 형식은 용호문배도(龍虎門排圖)입니다. 정월 초하루에 용과 호랑이 그림을 대문 양쪽에 붙였는데, 사전은 그 역할을 이렇게 나눕니다.

  • 호랑이 — 호축삼재(虎逐三災), 호랑이가 삼재를 쫓는 벽사의 기능
  • 용 — 용수오복(龍輸五福), 용이 오복을 가져오는 길상의 기능

민화 까치호랑이가 운룡도(雲龍圖)와 짝지어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형식에서 비롯됐습니다. 다만 호랑이의 짝이 용에서 까치로 언제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이 사전이 밝히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확인된 것까지만 적어 둡니다.

세화에는 한 가지 사정이 더 있습니다. 해마다 새로 갈아 붙였기 때문에 오래된 유물이 드뭅니다. 매년 버려지고 다시 그려지는 그림이었던 셈입니다.

그림 읽는 법 — 소나무, 호랑이의 표정, 그리고 예외

소나무는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명나라 원류의 특징을 사전은 "호랑이가 밍크담요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세밀하게 묘사되고 소나무나 까치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고 적습니다. 배경의 소나무는 조선에서 덧붙인 것이 아니라 건너올 때부터 딸려 온 요소입니다.

호랑이의 표정이 그림의 시기를 말해 줍니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호랑이라면 이른 시기 쪽이고, 바보스럽게 그려져 까치에게 쩔쩔매고 있다면 19세기 민화 쪽입니다.

까치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본 고려미술관이 소장한 이정(李楨)의 「호도」가 그 예로, "까치가 없이 호랑이만 등장한 경우로, 호랑이와 소나무 배경은 평면화되면서 서예의 필치처럼 표현주의적인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설명됩니다.

한국 민화를 대표하는 주제가 되기까지

중국에서 온 주제가 어떻게 한국을 대표하게 됐을까요. 사전의 평가는 분명합니다.

"작호도는 원래 중국에서 연원한 주제이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조선화하고 서민화하여 오히려 한국 민화를 대표하는 주제로 탈바꿈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한국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민화 까치호랑이의 호랑이가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대표작들이 어디 있는지를 보면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사전이 현황으로 드는 네 점 가운데 세 점이 일본에 있습니다 — 구라시키민예관, 일본민예관, 고려미술관 소장 「작호도」. 국내 소장처로 명시된 곳은 삼성미술관 리움 한 곳입니다.

오늘도 호작도는 그려집니다

호작도는 박물관에만 있는 그림이 아닙니다.

이문형, 〈호작도(호랑이와 까치)〉, 2022, 장지에 채색, 45.5x53cm
이문형, 〈호작도(호랑이와 까치)〉, 2022, 장지에 채색, 45.5x53cm

이문형 작가의 〈호작도(호랑이와 까치)〉는 장지에 채색으로 그린 2022년 작품입니다. 옛 민화의 도상을 오늘의 화면으로 옮겨 온 그림으로, 작가의 다른 작업과 이야기는 작가의 작품 목록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전통 회화의 어휘가 지금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한국화,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를, 호작도의 벽사 신앙과 이어지는 갈래가 궁금하다면 한국 샤머니즘 미술을 함께 보시면 좋습니다. 19세기 민화의 풍자가 20세기에 어떤 얼굴로 되살아났는지는 민중미술이란 무엇인가에서 다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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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출처

이 글의 미술사 서술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의 다음 항목에 근거합니다. 인용은 원문 그대로입니다.

까치의 구체적인 배치 관습(가지 위 위치·방향 등), 호랑이의 짝이 용에서 까치로 바뀐 경위, 풍자적 해석이 학계에서 정설로 굳은 시점은 위 출처에서 확인되지 않아 이 글에서도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씨앗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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