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콘텐츠로 이동

장희진 — 48시간 쌓아 올린 요철 위에 색을 앉히는 회화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10월 1일 · 씨앗페

모델링 페이스트를 수십 차례 펴 바르고 떼어내 요철 캔버스부터 직접 만드는 장희진. 이 작가의 회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씨앗페 출품작 〈folded tint〉의 화면에서 읽습니다.

장희진 — 48시간 쌓아 올린 요철 위에 색을 앉히는 회화

장희진, 〈folded tint〉, Acrylic, gouache, gel on modeling made canvas, 61x61cm, 2021 — 청록·자주·살구색 면이 계단식 입방체로 맞물리고 가는 가로 이랑이 화면 전체를 가로지른다
장희진, 〈folded tint〉, Acrylic, gouache, gel on modeling made canvas, 61x61cm, 2021 — 청록·자주·살구색 면이 계단식 입방체로 맞물리고 가는 가로 이랑이 화면 전체를 가로지른다

〈folded tint〉의 도판을 열면 먼저 색이 들어옵니다. 청록, 짙은 자주, 살구색, 그리고 오른쪽 가운데와 왼쪽 아래에 놓인 어두운 초록. 이 네 색의 면이 계단처럼 꺾이며 맞물려서, 위에서 내려다본 입방체가 층층이 쌓인 것처럼 보입니다. 같은 모양이 되풀이되는데 면마다 색이 달라서 어느 쪽이 솟고 어느 쪽이 꺼졌는지 눈이 자꾸 뒤바뀝니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색 아래에서 다른 것이 보입니다. 아주 가는 가로 이랑이 화면 전체에 촘촘히 지나갑니다. 이랑은 색이 바뀌는 경계에서도 끊기지 않고 면에서 면으로 이어지며, 색면의 꺾임과 상관없이 완만한 물결을 그립니다. 색을 칠하기 전에 이미 표면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 화면의 첫 단계는 그림이 아니라 바탕 만들기입니다.

캔버스부터 만드는 사람

장희진의 작업은 캔버스 표면을 직접 만드는 데서 시작합니다. 일요신문이 전한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공정은 이렇습니다. 특수 제작한 물결 모양의 대형 곡선자로 캔버스에 9mm 간격의 선을 긋고, 선을 따라 0.4mm 라인 테이프를 붙입니다. 그 위에 나이프로 모델링 페이스트를 수십 차례 펴 바르기를 반복하고, 이 과정이 48시간가량 이어집니다. 표면층이 0.5mm쯤 되면 하루를 말린 뒤 라인 테이프를 조심스럽게 뗍니다. 테이프와 함께 떨어진 자리는 음각이 되고 남은 자리는 양각이 됩니다.

매일경제는 2020년 이 공정을 소개하면서 모델링 페이스트를 다루는 일이 "케이크 만드는 과정과 흡사하다"고 적었습니다. 이랑이 생긴 뒤에는 사포질과 다듬기, 칠을 거쳐 묵직한 매스감의 사각 캔버스가 됩니다. 같은 기사는 100호 기준으로 4리터의 점액질 물감이 든다고 전하며, 이 캔버스 작업을 "그 자체로 수도자의 수행과도 같고 카타르시스를 해소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삼원갤러리의 작가 소개는 이 작업의 성격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조수에게 맡기거나 공방에 위탁하는 작업이 아니라 작가의 손과 의도와 시간으로 만들어지는 "느림의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작가가 이 방식을 2001년 무렵부터 이어 왔다는 점에서, 〈folded tint〉의 이랑은 20년 넘게 다듬어 온 작업의 한 장면입니다.

이랑 위에서 색이 하는 일

요철 캔버스의 이랑은 빛을 흡수하고 반사합니다. 스틸데일리는 2025년 전시를 소개하며 같은 색이라도 보는 각도와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변주된다고 적었습니다. 〈folded tint〉의 도판에서도 한 색면 안에서 이랑의 볼록한 자리는 밝게, 오목한 자리는 어둡게 잡혀 색이 한 톤으로 고르지 않습니다.

뉴스핌의 이영란 편집위원은 2022년 개인전 평에서 이 작업을 이렇게 풀었습니다. "사각의 색종이를 접어 학(鶴)이라든가 배를 만든 다음, 이를 다시 펼치면 '아, 이게 입체였구나' 하고 고개를 끄떡이게 되듯" 장희진의 신작에는 입체가 품었던 흔적이 색면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작품 제목의 'folded'와 'tint'가 그렇게 읽히는 대목입니다. 접힌 자국이 남은 종이처럼, 표면의 요철과 색의 분할이 서로의 흔적이 됩니다.

작가의 말도 이 방향을 가리킵니다. 뉴스핌 기사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장희진은 "나의 그리기는 나무의 잔가지 사이 사이로 비추는 빛의 면적, 즉 사이 공간을 그리는 것"이라고 했고, 허공에 해당하는 부분에 채색을 가해 이미지를 드러내는 역 페인팅 방식을 추구한다고 했습니다. 일요시사는 2025년 기사에서 초기에 나무와 숲의 여백을 담던 화면이 점차 구체적인 대상을 지우고 순수한 색채 쪽으로 나아갔으며, 이후 기하학적 분할과 규칙적인 색의 반복으로 화면을 구성해 왔다고 정리했습니다. 〈folded tint〉의 맞물린 면들은 그 흐름이 닿은 자리로 읽힙니다.

색의 뿌리로는 한복이 꼽힙니다. 매일경제는 장희진의 색감이 한국적이라는 평을 받는다고 전하며, 프랑스에서 유학한 의상 디자이너로 현대적인 한복도 많이 지은 어머니와 어린 시절 각인된 한복 원단의 색감을 짚었습니다. 뉴스핌도 한복의 하늘하늘한 소재와 색감에서 모티프를 얻어 물감의 질료가 피부에 흡수되는 듯하다고 썼습니다.

개인전으로 이어 온 길

작가의 이력은 개인전을 따라 읽으면 선명합니다. 삼원갤러리의 이력에는 2002년 예술의전당 MANIF8!02 《사이》에서 시작해 2010년 갤러리 서화 《Wind of tree》, 2016년 서화갤러리 《Slow pigment》, 2017년 갤러리H 《by degrees, scene》, 2019년 갤러리 세인 《otherside of colour》, 2020년 갤러리 오스퀘어 《WELLE》, 2021년 갤러리 위 《NEVER HUE ENDING》이 이어집니다. 전시 제목만 훑어도 작가가 '사이', 파동, 바람, 색의 단계를 꾸준히 붙들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22년 11월에는 토포하우스에서 개인전 《색, 삶을 사유하다》를 열었습니다. 매일경제는 이 전시에 맞춰 2002년부터 2022년까지 17회의 개인전을 치렀다고 전했습니다. 같은 기사는 한국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기린 화백이 작가의 외할아버지라는 사실도 함께 소개했습니다. 해외 무대에서는 2015년 SCOPE Miami와 ArtHamptons, 2018년 VOLTA BASEL과 ART Zurich 같은 아트페어에 참여한 이력이 있습니다. 2019년에는 서울미술협회 모던아트쇼에서 우수작가상을 받았습니다.

2021년에는 삼성전자가 비스포크 아뜰리에 프로젝트의 하나로 장희진의 작품 〈색의 이면〉을 공개했습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현대미술 작가 네 사람의 작품을 소개한 '서울의 취향' 기획의 한 자리였습니다.

2025년 가을에는 하이스틸과 충무로갤러리가 함께 마련한 《HUEFOLD》(9월 19일~10월 17일)가 열렸습니다. 제목 그대로 색(Hue)이 겹치고 접히며(Fold) 만드는 깊이와 흐름을 주제로, 작가가 20여 년간 탐구해 온 색면 추상을 모은 전시입니다.

씨앗페에서 만나는 〈folded tint〉

장희진은 씨앗페 상설 온라인 갤러리에 〈folded tint〉 한 점을 내놓았습니다. 작품 판매 수익은 상호부조 기금이 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집니다. 동료 예술인의 어려움을 함께 풀겠다는 연대의 뜻으로 작가가 참여한 작품입니다.

  • 61x61cm · Acrylic, gouache, gel on modeling made canvas · 2021 · ₩3,000,000
  • 작품 페이지 →

화면에 직접 서면 두 가지를 번갈아 보게 됩니다. 멀리서는 맞물린 입방체의 색 구성이, 가까이서는 이랑 위에 얹힌 물감의 두께와 이랑이 휘는 자리의 결이 눈에 들어옵니다. 같은 61cm 정사각 안에서 거리에 따라 두 개의 그림이 나오는 셈입니다. 장희진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함께 읽으면 좋은 글들을 소개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장희진 작가는 어떤 작업을 하나요? A. 모델링 페이스트로 요철 캔버스를 직접 만들고, 그 위에 선과 색 분할로 화면을 구성하는 색면 추상 회화를 합니다. 이 방식을 2001년 무렵부터 발전시켜 '모델링 메이드 캔버스(Modeling made canvas)'라 부릅니다.

Q. 요철 캔버스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A.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곡선자로 9mm 간격의 선을 긋고 라인 테이프를 붙인 뒤 모델링 페이스트를 나이프로 수십 차례 펴 바릅니다. 하루 말린 뒤 테이프를 떼면 떨어진 부분은 음각, 남은 부분은 양각이 됩니다. 이 바탕 작업에만 48시간가량이 듭니다.

Q. 'folded tint'는 무슨 뜻인가요? A. 접힌(folded) 색조(tint)라는 뜻으로, 작가가 이어 온 시리즈 이름입니다. 뉴스핌은 접었다 펼친 색종이에 남은 자국처럼, 입체가 품었던 흔적이 색면으로 드러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작품은 무엇인가요? A. 〈folded tint〉(2021, Acrylic, gouache, gel on modeling made canvas, 61x61cm) 한 점이며 가격은 ₩3,000,000입니다. 판매 수익은 상호부조 기금이 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집니다.

Q. 최근 개인전은 어디서 열렸나요? A. 2025년 9월 19일부터 10월 17일까지 하이스틸·충무로갤러리에서 《HUEFOLD》가 열렸습니다. 2022년 11월에는 토포하우스에서 《색, 삶을 사유하다》를 열었습니다.

씨앗페

공유하기

새 작품과 이야기, 메일로 받아보세요

새 작품 소식, 작가 이야기, 상호부조 기금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구독하기를 누르면 이메일 수집·발송(뉴스레터 목적)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돼요. 개인정보처리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