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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용 — 동양화를 전공하고 용접기를 든 사람, 철로 그리는 화가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9월 21일 · 씨앗페

동양화를 전공하고 공단 철공소에서 일하다 스테인리스와 용접기에 매료된 조각가 김기용. "철로 만든 동양화"라 불리는 그의 작업 세계와 씨앗페 출품작 〈붓의 유영〉을 읽습니다.

김기용 — 동양화를 전공하고 용접기를 든 사람, 철로 그리는 화가

김기용, 〈붓의 유영〉, 캔버스에 페인트, 41x53cm — 검푸른 안료가 소용돌이치다 화면 아래에서 가늘게 흘러내린 자국을 남긴 작품
김기용, 〈붓의 유영〉, 캔버스에 페인트, 41x53cm — 검푸른 안료가 소용돌이치다 화면 아래에서 가늘게 흘러내린 자국을 남긴 작품

김기용은 스테인리스로 작업하는 조각가입니다. 소나무를 세우고 사과를 빚고, 스테인리스 판을 용접 불꽃으로 녹여 붙여가며 그림 같은 표면을 만듭니다. 그런데 씨앗페에 그가 내놓은 작품은 캔버스에 페인트로 그린 〈붓의 유영〉 한 점입니다. 쇠를 다루던 손이 다시 붓을 쥔 자리입니다.

이 사람을 이해하려면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원래 화가였습니다. 그것도 동양화를 전공한 화가였습니다. 캔버스도 물감도 낯설지 않은 사람이, 어쩌다 스테인리스와 용접기를 손에 쥐게 됐는지부터 짚어야 〈붓의 유영〉이 왜 그의 작업에서 갑작스러운 이탈이 아니라 원래 자리로의 잠깐의 귀환인지가 보입니다.

공단의 철공소에서 시작된 조각

김기용은 1967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습니다. 1986년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학과에 입학해 한국화를 전공했습니다. 붓과 먹, 화선지를 다루는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생업이 그를 다른 길로 데려갔습니다. 공단의 철공소에 들어가 일하게 된 것입니다. 경북일보(2020년 9월 14일)는 이 전환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 철공소에서 일하며 "새로운 재료와 입체작업에 매료돼 현재는 붓 대신 용접기로 작업하는 작가"가 되었다고. 동양화를 그리던 손이 쇠를 자르고 두드리고 용접하는 손이 된 것은, 미술관이 아니라 공장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이 이력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쇠를 다루는 방식에 동양화 전공자의 감각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대구신문(2022년 11월 10일)은 그를 "동양화가인 김기용의 조각은 동양화의 미덕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방향성이 있다"고 소개하며, "동양화는 자연친화주의와 인문주의 미학을 구현하면서 우리를 깊은 사유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고 덧붙입니다. 재료는 바뀌었지만 화면을 대하는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작업하는 과정을 유교의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경북일보는 그의 말을 이렇게 전합니다 — "작품을 구상하면서부터 완성할 때까지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은 중용(Good sense)을 취하게 된다"고. 논어에서 중용을 덕이자 최고의 가치로 보고, 역경에서는 기(氣)가 덕을 만나 형체를 이뤘다고 설명하는 논리를 빌려와, "작업 중에 중용을 찾으므로 덕이 실현되어 형태가 이뤄지고 충이 발현돼 정성을 다하고 나면 예가 이뤄져서 예술이 됨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의·예·지·신과 성선설의 선을 근간으로 삼는다는 설명입니다. 용접기로 쇠를 녹이는 작업 앞에서 나온 말치고는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애초에 이 작가에게는 재료가 바뀌었다고 사유의 틀까지 바뀔 이유가 없었습니다.

용융의 방법론 — 쇠와 불이 만나 그림이 된다

김기용의 작업을 관통하는 단어는 '용융(鎔融)'입니다. 쇠가 액체로 변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갤러리 청라에서 열린 개인전 '쇠의 마음 불의 정신'을 소개하며 경북일보(2024년 5월 12일)는 그의 방법론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스테인리스로 프레임을 짜고 철사로 주제를 드로잉한 다음, 그것을 수평으로 뒤집고 뒤에서 섭씨 5,000도를 넘나드는 용접 불꽃으로 녹입니다. 액체가 된 쇳물방울은 우연성에 기대어 서로 엉겨붙거나 중력에 의해 흘러내리면서 응고됩니다. 작가가 전부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녹은 쇠가 흘러가는 대로 일부를 맡기는 방식입니다.

기사는 이 방법론이 만들어내는 평면 작업을 두고 "한국 단색화의 새로운 전개 양상을 이어나갈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평가합니다. "스테인레스는 캔버스며, 용접봉은 불붓(Fire brush/火筆)이다"라는 문장이 이 방법론을 가장 정확하게 요약합니다. 재료의 물성과 창작 매커니즘으로 보면 조각이지만, 쇠와 용접 불꽃을 통해 완성된 작품은 심오한 정신주의가 구현된 단색화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불 붓〉(스테인리스 스틸, 116x91cm)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이 방법론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짙은 남색에 가까운 표면 전체에 용접봉으로 그은 가는 선들이 촘촘히 새겨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나이테나 지문을 연상시키는 동심원 무늬가 여러 겹 겹쳐 있습니다. 붓으로 그은 획이 아니라 불로 그은 획입니다. 캔버스 대신 쇠판 위에서, 물감 대신 녹은 금속으로 그려낸 결이 화면 전체를 채웁니다.

소나무, 사과, 황소 — 생명을 세우다

용융의 방법론이 평면 작업의 문법이라면, 김기용의 입체 작업은 생명을 상징하는 몇 가지 모티프를 반복해 왔습니다. 대구신문과 뉴스1이 함께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20여 년 전부터 소나무와 사과를 생명을 상징하는 모티브로 삼아 '뿌리 깊은 나무' 연작과 '골든 딜리셔스' 연작을 발표해 왔고, 이중섭의 '소'를 모티브로 한 부조 '황소'도 만들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 연작은 소나무의 기상을 뿜어내고, '골든 딜리셔스' 연작은 리얼리즘 조각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갤러리 청라 김선굉 대표는 그의 작업 과정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 "김기용은 스테인레스를 자르고 두드리고 용접하고 연마하는 어려운 과정을 통해 대상의 표정과 거기에 깃든 정신을 섬세하게 작품에 아로새겼다."(뉴스1, 2022년 11월 18일)

2020년 방천예가에서 연 개인전의 제목이 '철로 만든 동양화-Good Sense'였습니다. 대표작 〈Good Sense〉는 스테인리스 스틸에 우레탄페인트를 입힌 2750x2600x2100mm의 대형 작업으로, 관객이 가까이 다가가면 스스로 회전해 사면을 보여주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경북일보가 실은 사진을 보면 가지 끝에 초록빛 잎사귀 두 장이 매달린 검은 나뭇가지 아래, 붉게 익은 사과 한 알이 놓여 있습니다. 사과의 아랫부분은 매끈한 광택 대신 벌레 먹은 자국처럼 촘촘한 구멍이 뚫려 있어, 스테인리스라는 차가운 금속 위에 부패와 상처의 흔적을 새겨 넣었습니다. 작가는 사과를 두고 "성경에 나오듯 인류의 선과 악의 근간이 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쇠로 만든 사과가 썩어가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단단한 재료로 무른 것의 연약함을 말하려는 선택으로 읽힙니다.

이력을 살펴보면 이 작가가 오랫동안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도 드러납니다. 2014년 세계청년비엔날레-환경과 생명(대구문화예술회관, 울산광역시문화예술관)에 참여했고, 2015년에는 연지갤러리 개인 초대전(경북 청도)을 열었습니다. 민족미술인협회를 거쳐 대구 현대미술가협회로 활동을 이어왔고, 2024년 갤러리 청라 초대전 '쇠의 마음 불의 정신', 2026년 국제현대작가협회 정기전 초대출품까지 이력이 최근까지 계속됩니다. 손장섭 화백 1주기 추모전(2022) 같은 동료 작가를 기리는 자리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씨앗페 출품작 — 〈붓의 유영〉

씨앗페에 김기용이 내놓은 작품은 한 점, 〈붓의 유영〉입니다. 2025년, 캔버스에 페인트, 41x53cm. 앞서 살펴본 스테인리스 작업들과는 재료부터 다릅니다.

김기용, 〈붓의 유영〉, 캔버스에 페인트, 41x53cm, ₩2,000,000
김기용, 〈붓의 유영〉, 캔버스에 페인트, 41x53cm, ₩2,000,000

화면을 직접 보면 이렇습니다. 짙은 코발트블루와 검정이 뒤엉켜 화면 위쪽을 채우고, 그 사이로 은회색에 가까운 옅은 색이 물결처럼 번져 나갑니다. 색과 색이 부드럽게 섞이지 않고 서로의 경계를 유지한 채 소용돌이치듯 휘감긴 자국이 표면 전체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화면 아래쪽으로 갈수록 이 소용돌이는 풀려서, 여러 갈래의 가는 줄무늬가 세로로 곧게 흘러내리다 화면 하단에서 멈춰 있습니다. 안료가 중력을 따라 흘러내린 궤적이 그대로 굳어 남은 모양입니다.

이 궤적은 작가가 붙인 작품 설명과 정확히 겹칩니다.

"이 작업은 의도를 설명하기보다 흐름을 드러내는 데서 출발한다. 붓질은 계획된 구성이라기보다 이미 축적된 감각이 한 호흡으로 표면화된 결과이다. 기운이 손을 통과해 나온 순간이다. 형태는 목적이 아니며 기(氣)가 움직인 흔적일 뿐이다. 여기서 멈추는 것이 도(道)라고 판단된 자리이며, 기운이 형을 벗고 허(虛)로 되돌아간 공간이다. 이 작업은 완결을 지향하지 않는다. 멈춤을 통해 가능성을 남기고, 흔적을 통해 시간과 호흡을 고정한다. 한 번의 붓질 안에 축적된 사유와 침묵이 함께 놓여 있다."

화면 아래에서 색이 흐르다 멈춘 자리가 작가가 말하는 '멈춤'이고, 색과 색이 서로 섞이지 않은 채 경계를 유지한 채 굳어 있는 지점이 '기가 형을 벗고 허로 되돌아간 공간'입니다. 설명을 먼저 읽고 그림을 보면 관념적으로 들릴 수 있는 문장이, 그림을 먼저 보고 설명을 읽으면 화면에 실제로 있는 것을 가리키는 문장이 됩니다.

이 작품을 스테인리스 연작과 나란히 놓으면 재료를 건너뛰는 공통점이 하나 보입니다. 스테인리스 작업에서 그는 녹은 쇳물이 중력과 우연에 따라 흘러가도록 두고, 그것이 굳는 지점에서 작업을 완성합니다. 〈붓의 유영〉에서는 안료가 같은 일을 합니다. 재료는 쇠에서 물감으로 바뀌었지만, 무언가를 흐르게 하고 그것이 멈추는 자리를 작품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그대로입니다. 동양화 전공자가 용접기를 들었을 때 잃지 않았던 감각이, 다시 붓을 들었을 때도 그대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김기용 작가 페이지에서 이 작품을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김기용이 씨앗페에 작품을 낸 것은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김기용은 그 구조에 그림 한 점으로 참여했습니다.

공단의 철공소에서 붓 대신 용접기를 쥐고, 다시 녹은 쇠에서 흘러내리는 것과 캔버스 위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같은 눈으로 지켜봐 온 사람입니다. 〈붓의 유영〉은 그가 가장 오래 다뤄온 재료가 아니라, 가장 먼저 배운 재료로 돌아가 남긴 작품입니다.

"형태는 목적이 아니며 기(氣)가 움직인 흔적일 뿐이다."

작가의 말입니다. 그 흔적이 쇠 위에 남든 캔버스 위에 남든, 흘러가는 것을 흘러가게 두고 멈추는 자리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다르지 않습니다.

김기용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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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김기용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67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1986년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학과에 입학해 한국화를 전공했습니다. 이후 생업으로 공단의 철공소에서 일하다 새로운 재료와 입체작업에 매료돼, 현재는 붓 대신 용접기로 스테인리스를 다루는 조각가가 되었습니다. 민족미술인협회·대구미술협회·대구 현대미술가협회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철로 만든 동양화'라는 표현은 무슨 뜻인가요? A. 2020년 방천예가에서 연 개인전의 제목 '철로 만든 동양화-Good Sense'에서 온 표현입니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가 캔버스 대신 스테인리스를, 붓 대신 용접기를 도구로 삼아 작업한다는 역설을 가리킵니다. 재료는 쇠로 바뀌었지만 작업을 대하는 태도는 동양화 전공자의 감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Q. 작업 방식(용융의 방법론)은 무엇인가요? A. 스테인리스로 프레임을 짜고 철사로 주제를 드로잉한 다음, 수평으로 뒤집어 섭씨 5,000도를 넘나드는 용접 불꽃으로 녹이는 방식입니다. 녹은 쇳물방울이 우연성에 기대어 엉겨붙거나 중력에 의해 흘러내리며 응고되는 과정을 작품으로 삼습니다. 이 방법론으로 만든 평면 작업은 "한국 단색화의 새로운 전개 양상"으로 평가받았습니다(경북일보, 2024년 5월 12일).

Q. 대표적인 연작과 작품은 무엇인가요? A. 소나무를 모티브로 한 '뿌리 깊은 나무' 연작, 사과를 모티브로 한 '골든 딜리셔스' 연작, 이중섭의 '소'를 모티브로 한 부조 '황소', 그리고 대형 회전 조각 〈Good Sense〉(스테인리스 스틸·우레탄페인트, 2750x2600x2100mm)가 있습니다. 평면 작업으로는 용접봉으로 그은 선과 동심원 무늬가 새겨진 〈불 붓〉(스테인리스 스틸, 116x91cm)이 있습니다.

Q. 씨앗페 출품작 〈붓의 유영〉은 어떤 작품인가요? A. 2025년작, 캔버스에 페인트, 41x53cm입니다. 짙은 블루와 검정이 소용돌이치다 화면 아래쪽에서 가는 줄무늬로 풀려 흘러내린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작업을 "의도를 설명하기보다 흐름을 드러내는" 것이라 설명하며, 붓질을 "이미 축적된 감각이 한 호흡으로 표면화된 결과"로 봅니다. 스테인리스 작업에서 녹은 쇠가 흘러가도록 두는 방식과 같은 태도가, 캔버스 위 물감에도 이어집니다.

Q. 김기용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김기용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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