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회화과·대학원 동양화과를 거쳐 간송미술관에서 초상화와 진경산수를 익힌 금릉 김현철. 겸재정선미술관 초대전과 제주 연작, 남원 《춘향영정》까지 이력을 짚고, 린넨에 먹으로 그린 〈산〉을 도판으로 읽습니다.
김현철 — 초상과 진경 사이, 쪽빛 산수를 그리는 동양화가

〈산〉의 화면은 두 가지 바탕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왼쪽은 물을 머금은 옅은 하늘빛이 번진 자리이고, 나머지는 린넨 바탕 그대로의 흰색입니다. 그 위에 먹선이 위로 솟습니다. 굵은 붓이 길게 끌려 올라가 절벽의 모서리가 되고, 그 사이로 짙은 먹을 눌러 찍은 소나무들이 층층이 가지를 뻗습니다. 화면 위쪽 한가운데에는 지붕으로 보이는 형태가 먹선 사이에 얹혀 있고,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붉은 인장 네 방이 위아래로 찍혀 있습니다.
바위의 면을 칠해 채우지 않고 윤곽선만 세워 둔 것이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선 안쪽은 바탕의 흰색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흰색이 곧 바위이면서 안개이면서 허공입니다. 이 글은 이 한 점에서 출발해, 김현철이 어떤 길을 지나 이런 화면에 닿았는지 따라가 봅니다.
초상화와 산수, 두 갈래의 공부
김현철은 '금릉 김현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서울대학교 회화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습니다. 1959년에 태어나 곧바로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김천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냈다고, 미술사학자 조인수는 2025년 도록 글에 적었습니다. 같은 글에 따르면 전공을 동양화로 정하고 1987년 대학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한국화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당시 새로운 세대의 화풍이 유행하던 화단에서 황창배의 파격적인 그림에 끌려 실험적인 작업을 시도하던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김현철은 간송미술관에서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와 초상화를 공부했고, 지금은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으로 소개됩니다. 한겨레는 2016년 기사에서 그를 "간송미술관 연구원으로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와 초상화를 공부한 작가"라고 전했습니다.
2025년 2월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1990년대의 김현철은 중국의 곽희와 심주, 조선의 겸재 정선과 김홍도 같은 옛 대가의 정신과 기법을 학습했습니다. 겸재정선미술관 송희경 관장은 매체 실험과 다변화가 이루어지던 당시 동양화단의 흐름을 고려하면 이 행보가 "파격적"이라고 평했습니다. 옛 그림을 배우는 일이 오히려 눈에 띄는 선택이던 시기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작업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같은 보도는 2004년 작가가 진경산수화에서 궁궐과 목조건물을 그리는 계화의 영역으로 작업 세계를 확장했다고 정리했습니다. 꼴깍미술관 블로그가 소개한 〈창덕궁 인정전〉(2012, 린넨에 진채)과 〈병산서원 만대루〉(2013)가 이 계열에 놓입니다.
초상: 법정, 윤두서, 한용운
김현철을 이야기할 때 산수만큼 자주 나오는 것이 초상입니다. 조인수의 글에 따르면 2013년 그는 승려 법정(1932~2010)의 상반신 초상을 그렸습니다. 법정을 생전에 두 번 본 적이 있었고, 누가 청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그리기로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화가가 택한 모습은 증명사진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습니다. 꼴깍미술관 블로그는 이 작품을 〈법정초상〉(2013, 비단에 진채, 91x71cm)으로 적었습니다.
2016년에는 해남 녹우당의 공재 윤두서 자화상을 둘러싼 현대미술 전시에 〈공재 윤두서 초상〉을 냈습니다. 한겨레는 이 작품을 전시의 "쌍벽"으로 꼽을 만하다고 쓰며, 옷 부분이 사라진 자화상의 이미지를 바탕에 두고 공재의 자화상에 얽힌 옛 기록을 분석해 도포에 동파관을 쓴 선비의 온전한 전신상을 만들어 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인연은 녹우당이라는 공간으로 이어졌습니다. 2020년 안산문화재단 단원미술관은 Gallery A 개관 기념 초대전으로 《금릉 김현철 녹우당의 기억》을 온라인으로 열었고, 녹우당 사람들의 초상과 전경, 주변 풍경이 함께 소개됐습니다. 강원일보는 2025년 '님의 침묵' 탈고 100주년 기획 기사에서 김현철이 그린 만해 한용운의 초상화를 사진으로 실었습니다.
2025년 겸재정선미술관은 새해 첫 초대 개인전으로 김현철의 《전신(傳神)》을 열었습니다. 뉴시스는 그의 초상이 객관적 묘사를 넘어 인물의 성격과 생각, 감정과 내면세계까지 시각화하려 한다고 소개했습니다. 전신은 겉모습을 그리되 그 사람의 정신까지 옮긴다는 뜻의 옛 초상화 용어입니다. 이 전시는 2부 《진경(眞景)》으로 이어져 2월 28일부터 4월 12일까지 열렸고, 2월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을 임모한 〈금강내산도〉(비단에 수묵채색)가 함께 소개됐습니다. 초상이 사람을 보는 공부라면 진경은 땅을 보는 공부이고, 이 전시는 그 두 갈래를 한 사람의 작업으로 나란히 보여 줬습니다.
제주에서 얻은 푸른빛
산수 쪽에서 김현철의 이름을 가장 또렷하게 한 것은 제주였습니다. 문화제주에 따르면 그는 2011년 제주현대미술관 입주작가로 머물며 제주의 자연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과감한 수평선과 짙은 푸른빛, 이른바 '금릉블루'가 자리 잡았습니다. 제주도민일보는 그가 120일 동안 제주의 바다와 산을 돌아다닌 뒤 제주의 진경을 화폭에 담았다고 소개했습니다. 같은 기사에서 미술비평가 박은주는 성산 일출봉을 쪽빛 바다 위에서 하나하나 읽어 나가게 한다고 썼고, 화면의 여백을 "그만의 방식으로 재정립한 용기 있는 무(無)의 형상화"라고 평했습니다.
뉴시스는 이 시기를 "김현철 특유의 ‘쪽빛 산수’"가 만들어진 때로 적었습니다. 사생에 기반해 같은 장소를 여러 차례 답사했다는 설명도 같은 기사에 있습니다. 꼴깍미술관 블로그는 초기 산수의 소재가 산과 구름이었고, 작가가 여백으로 남는 구름을 그리려 했다고 전합니다. 같은 글은 하늘뿐 아니라 바다도 여백으로 다뤘다고 설명하고, 2018년 개인전 제목은 《누구나 자신만의 바다를 품고 있다》였습니다.
2025년 7월 4일부터 9월 14일까지 서귀포공립미술관 소암기념관에서 특별초대전 《겹겹의 서사》가 열렸습니다. 신작 4점을 포함해 30점이 걸렸고, 〈한라산 영실〉(2025, 린넨에 수묵채색, 227.3x363.6cm), 〈제주 범섬〉 같은 작품이 소개됐습니다.
〈산〉에서 볼 수 있는 것들
그 흐름 위에 놓으면 이 작품의 푸른 번짐이 읽힙니다. 하늘빛은 왼쪽에만 옅게 깔리고, 먹은 오른쪽으로 모입니다. 푸른 쪽은 비어 있고 먹의 쪽이 채워져 있어, 비어 있는 자리가 허공이자 화면의 숨구멍처럼 작동합니다. 앞서 소개한 평들이 그의 여백을 두고 말한 것이 이 구도에도 닿아 있습니다.
바탕이 린넨이라는 점도 눈에 띕니다. 앞서 나온 〈창덕궁 인정전〉, 〈한라산 영실〉, 〈산〉이 모두 린넨 위에 그려졌습니다. 도판에서도 굵은 붓선의 가장자리가 매끈하지 않고 군데군데 끊겨 있습니다. 짙은 소나무 군은 붓을 눌러 찍듯이 쌓았고, 절벽선은 붓을 길게 끌어 올렸습니다. 같은 먹이 두 가지 속도로 쓰였습니다.
- 45.5x27.5cm · 린넨에 수묵채색 · 2024
- 작품 페이지 →
〈산〉은 이미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씨앗페에 출품된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상설 온라인 갤러리에서 소개됐고, 씨앗페는 출품 작가들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연대하는 자리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은 상호부조 기금이 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집니다.
남원 《춘향영정》
김현철의 이력에서 가장 많은 논의를 불러온 작업은 남원 광한루원의 춘향 영정입니다. 경과를 사실 순서대로 적습니다.
춘향 영정은 1931년 처음 봉안됐고, 1961년 김은호가 그린 영정이 이를 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 1961년 영정이 친일 논란으로 62년 만에 새로 제작됐다고 전했습니다. 새 영정은 2023년 5월 25일 제93회 춘향제(주제 '춘향, 빛을 그리다')에서 봉안됐고, MBC는 같은 날 영정의 작가 김현철의 말을 전했습니다. 비녀가 대나무 마디 모양의 죽절이라는 것, 이를 꽂아 춘향의 절개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죽절이죠, 대나무 마디 모양의 비녀를 꽂아서 상징적으로 (춘향이의) 절개를 표현했습니다."
봉안 이후 의견이 갈렸습니다. 조선일보는 2024년 7월 국악인들이 새 영정을 바꾸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전북일보는 2024년 8월 도의회 토론회에서 "춘향같지 않다"는 의견과 "완성도 높아"라는 의견이 맞섰고, 작품 완성도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모이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2026년 4월과 8월에도 1931년 최초 영정, 1961년 김은호 영정, 2023년 김현철 영정을 둘러싼 지역사회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초상화가 다루는 것이 누군가의 얼굴이 아니라 한 공동체가 기억하려는 인물이라는 점을 이 사례가 보여 줍니다. 법정이나 윤두서처럼 실재한 인물을 그릴 때와 달리, 춘향은 이야기 속 인물이고 영정은 모두가 각자 떠올리는 얼굴과 겨루게 됩니다.
가르치는 자리
김현철은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법고창신 아카데미' 캠프의 담임강사를 맡아 필묵법과 모사 실습을 지도했다고 경인일보가 전했습니다. 옛 그림을 직접 임모하고 가르치는 일이 그의 작업의 바탕에 있다는 점은, 겸재 그림을 임모한 〈금강내산도〉와도 이어집니다.
지금 만나는 자리
〈산〉은 새 주인에게 갔지만, 김현철의 작가 페이지에서 씨앗페에 소개된 작업을 볼 수 있습니다. 초상과 진경을 모두 오래 공부한 화가가 린넨 위에 먹선으로 산을 세운 한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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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김현철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서울대 회화과와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양화가입니다. '금릉 김현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초상화와 진경산수화를 함께 작업합니다.
Q. '금릉블루'는 무엇인가요? A. 문화제주는 김현철이 2011년 제주현대미술관 입주작가로 제주의 자연을 그리면서 자리 잡은 작가 특유의 짙은 푸른빛을 이렇게 불렀다고 소개했습니다. 뉴시스는 같은 시기를 '쪽빛 산수'가 만들어진 때로 적었습니다.
Q. 최근 어떤 전시를 했나요? A. 2025년 겸재정선미술관 초대 개인전 《전신(傳神)과 진경(眞景)》과, 같은 해 7월부터 9월까지 서귀포공립미술관 소암기념관에서 열린 특별초대전 《겹겹의 서사》가 있습니다.
Q. 춘향 영정은 무엇인가요? A. 남원 광한루원의 춘향 영정으로, 1961년 영정을 대체해 2023년 5월 새로 봉안됐습니다. 김현철이 그렸고, 봉안 이후 교체를 요구하는 의견과 완성도를 높게 보는 의견이 함께 나왔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작품은 무엇인가요? A. 〈산〉(2024, 린넨에 수묵채색, 45.5x27.5cm)이며 이미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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