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콘텐츠로 이동

김남진 — 이태원의 밤에서 폴라로이드 누드까지, 사진가가 갤러리를 지킨 사십 년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9월 21일 · 씨앗페

1980년대 이태원의 밤을 흑백 필름에 담았던 사진가 김남진. 폴라로이드 전사기법으로 실험한 누드 사진에서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의 관장 자리까지, 카메라를 든 사람이 전시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까지의 길을 따라 읽습니다.

김남진 — 이태원의 밤에서 폴라로이드 누드까지, 사진가가 갤러리를 지킨 사십 년

김남진, 〈누드〉, 1/5 프린트, 1992 — 폴라로이드 전사기법 특유의 뜯긴 가장자리와 색 보정용 컬러바가 화면 위쪽에 그대로 찍혀 있다
김남진, 〈누드〉, 1/5 프린트, 1992 — 폴라로이드 전사기법 특유의 뜯긴 가장자리와 색 보정용 컬러바가 화면 위쪽에 그대로 찍혀 있다

씨앗페에 들어온 김남진의 작품은 〈누드〉 한 점입니다. 1992년, 1/5 프린트.

  • 크기 확인 중 · 1/5 프린트 · 1992 · ₩500,000
  • 작품 페이지 → 사진을 열어 보면 인물의 목선에서 골반까지 이어지는 등이 붉은 호박색으로 물들어 있고, 화면 위쪽 절반쯤 되는 자리에 파랑·초록·노랑·빨강 네 색이 나란히 놓인 얇은 띠가 가로지릅니다. 인화 과정에서 색을 맞추는 데 쓰는 컬러바가 실수로 찍힌 것이 아니라 화면 안에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고, 종이 가장자리는 칼로 자른 것이 아니라 뜯어낸 듯 너덜너덜합니다. 폴라로이드 필름의 유제를 다른 표면으로 옮기는 전사기법 특유의 흔적입니다. 이 한 장을 이해하려면 이 작가가 그 이전에 무엇을 찍고 있었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이태원으로 가기 전

김남진은 1957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사진과 처음 마주친 것은 서울 배재고등학교 사진반 시절이었습니다.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전기공학과에 적을 두었지만 정작 마음이 간 곳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수학을 잘해 이과 계열로 갔으나 철학에 더 관심이 있었고, 사진 서클 '호영회'에 들어가 제대로 된 암실을 처음 만났습니다. 공대 캠퍼스가 본교와 떨어져 있었는데도 사진 동아리가 있는 안암 학생회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훗날 밝혔습니다. 당시를 그는 이렇게 돌아봅니다.

"우리 땐 대학사단이라고 할 정도로 대학 사진동아리가 셌다. 숙대 '숙미회', 연대 '연영회', 홍대 '모래알' 등등. 서울대의 '영상'이 컨템퍼러리를 적극적으로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일본 잡지를 번역하여 대학사단 연합회 모임에서 현대사진에 대해 발제도 하고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인 나는 책을 보는 게 일이었고 사진에 빠져 있었다." — 한겨레, 2017년 9월 12일

전공 수업보다 사진 잡지 번역과 발제에 몰두하던 학생이었습니다. 1984년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직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한 유력 일간지에서 사진기자로 특별채용하겠다는 제안이 왔지만, 시험까지 보고서도 결국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술을 즐기지도 않던 그를 다른 방향으로 이끈 것은 이태원이었습니다.

이태원의 밤

첫 촬영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 여성과 함께 있던 미군에게 허락도 없이 플래시를 터뜨렸다가 쫓기고 간신히 몸을 피한 일이 있었습니다. 낙심해 있던 그 앞에 업소에서 공연하던 '품바'들이 서 있었고, 찍어도 되냐는 물음에 그들은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해줬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본인은 그 무렵의 마음가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호기심도 있었지만 소심한 나에 대한 자기 도전이기도 했다. 그곳에 가면 깡패도 있고 밑바닥 사람들도 많다는데 한번 찍어보자!" — 한겨레, 2017년 9월 12일

"그때 포기했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 — 한겨레, 2017년 9월 12일

1984년부터 1986년까지,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이태원의 밤을 찾았습니다. 몰래 찍는 방식이 아니라 말을 붙이고 친해진 뒤에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업소의 여자 종업원들에게 기념사진을 찍어주며 경계심을 풀었고, 그렇게 쌓인 2년치 필름이 <이태원의 밤>이 됐습니다. 당시 이태원은 서울 주둔 미군기지를 낀 이국적인 장소로, 정부의 집중 단속이 시작되기 전 미군전용클럽과 스트립클럽이 늘어선 환락가의 마지막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작업을 세상에 처음 내놓은 것은 1987년 파인힐 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이었습니다.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쉽게 공개하기 힘든 소재였지만, 그는 용기 내어 전시를 열었습니다. 당시 사진계의 원로였던 이명동 선생은 이 작업을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김남진의 포토 르포르타주는 한마디로 무척 어려운 주제의 선택이었고 접근이었다.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 이명동, 한겨레(2017년 9월 12일) 인용

원로 사진가의 극찬을 받았음에도 그는 이 작업을 계속 이어가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밝힌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태원은 변할 것이다. 이건 일시적인 기록이다. 이 사진들은 그들을 불행하게 할 수도 있겠다." — 한겨레, 2017년 9월 12일

자신이 담은 사람들에게 사진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서자, 그는 스스로 그 작업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전시 이후 필름을 모두 분실하는 일까지 겹쳤습니다. 이 시기의 작업은 2015년에야 다시 세상에 나옵니다. 당시 전시 때 인화했던 사진을 스캔해 눈빛출판사가 사진집 『이태원의 밤, 1984-1986』으로 묶어 펴냈고, 서지주기에 작가연보가 실렸습니다. 이 사진집은 현재 아르코예술기록원에 소장되어 있습니다(청구기호 668.45 김19ㅇ). 필름 없이 인화본의 스캔만으로 30년 가까이 지나 책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접었던 작업이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카메라를 접고 공방을 열다

이태원 작업을 그만둔 뒤 그가 택한 자리는 촬영 현장이 아니라 독립문 근처의 작은 암실이었습니다. '김남진 사진공방'의 시작이었습니다. 합정동, 양재동을 거쳐 포이동으로 옮기며 10년 넘게 공방을 운영했고, 취미가 아니라 사진 전공으로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사람만 받았습니다. 그렇게 거쳐 간 사람이 수십 명에 달했고, 당시 경쟁률이 높았던 대학원들이 매 학기 '김남진 사진공방' 출신들이 입학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공방을 운영하는 동안 그는 사진이론 번역서도 여러 권 냈습니다. 1993년에 내놓은 『현대사진의 이해』는 사진전공자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통했습니다. 찍는 사람에서 이론과 기법을 체계화해 가르치는 사람으로, 자리가 옮겨 가고 있었습니다.

폴라로이드로 다시 찍은 몸

이 시기에 그가 다시 카메라를 든 방식은 이태원 때와 전혀 달랐습니다. 인화지에 인화하는 방식에 염증을 느낀 그는 1993년 바탕골예술관에서 '폴라로이드 누드'전을 열었습니다. 폴라로이드 필름의 이미지를 다른 표면으로 옮기는 전사기법으로 누드를 찍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였습니다. 씨앗페에 나온 〈누드〉가 바로 이 시기, 1993년 전시를 한 해 앞둔 1992년에 제작된 작품입니다. 인화가 아니라 전사이기 때문에 화면 가장자리가 매끈하게 잘리지 않고 찢겨 나가고, 필름 안쪽에 있던 색 보정용 컬러바까지 그대로 화면에 얹혀 나옵니다. 결과를 예측하고 통제하는 인화 방식과는 다른, 우연과 흔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작업 방식입니다.

1996년에는 코닥포토살롱에서 '신체와 의식'전을 기획합니다. 기존의 누드 사진과 대립하는, 몸에 대한 새로운 형식과 미의식을 목적으로 내건 전시였고, 이것이 그가 처음으로 기획자 이름을 걸고 만든 사진전이었습니다. 사진계에서 '전시기획'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던 시절의 일입니다. 2005년 인사동 쌈지길에서 연 '몽유도원'전은 사진을 슬라이드쇼로 상영하고 클럽 디제이가 음악을 트는,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형식이었습니다. 찍는 사람에서 이론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다시 전시를 만드는 사람으로 — 자리는 계속 옮겨 갔지만 매번 아직 자리 잡지 않은 형식을 골랐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전시기획자, 그리고 갤러리 브레송

2006년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 사무총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2008년과 2009년에도 같은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지냈고, 2011년에는 서울사진축제 총감독을 맡았습니다. 2012년 한 차례 연 충무로사진축제는 당시 장안의 화제가 됐습니다. 극동빌딩 로비에 칸막이를 세워 전시 공간으로 만들었는데, 완성도가 높아 사진계의 한 원로가 상설 갤러리로 착각하고 "나도 이 전시장에서 전시하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충무로 골목 하늘에는 사진을 현수막으로 걸어 저녁 조명 아래 장관을 이뤘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지금 몸담고 있는 갤러리 브레송과 만난 것은 2000년대 초반입니다. 서울 중구 퇴계로의 충무로는 카메라 매장과 현상소, 인쇄소, 액자 가게가 몰려 있는 사진의 거리이기도 합니다. 그중 사진전문 갤러리로 남아 있던 브레송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시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 싫어 인수를 결정했습니다. 그 뒤로 이곳에서 열린 개인전과 단체전을 합하면 약 400회가 넘고, 전시를 연 작가는 1천 명에 이릅니다. 대관료를 받지 않은 전시가 더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누적 적자가 얼마인지 묻는 질문에는 "몸으로 때웠다"는 말로 답을 아꼈습니다.

2017년, 환갑을 맞은 그는 숙원이던 갤러리 리모델링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이 해에 1987년 '이태원의 밤' 개인전을 연 지 정확히 30년 만에, 이태원을 다시 찾아 찍은 사진들로 개인전 《호모나이트쿠스》를 스페이스22에서 열었습니다. 2년에 걸쳐 열일곱 번 촬영한 결과물이었고, 흑백 필름 대신 디지털 컬러로 찍었습니다. 전시 서문은 이렇게 이 작업을 소개합니다.

"84년부터 86년까지 흑백 필름에 담은 <이태원의 밤>의 작업을 떠올리며 사진가 김남진은 30여 년 만에 다시 이태원을 찾았다. 2년여에 걸쳐 17번의 촬영을 진행하면서 몰라보게 변한 이태원과 그 가운데 변하지 않은 이태원을 함께 들여다보았으리라. […] 밤의 이태원에서 만난 청춘들, 외국인, 성 소수자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부류의 사람임을 확인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고 사진가는 말한다." — 이희인, 《호모나이트쿠스》 전시 서문(스페이스22, 2017)

30년 전 필름을 잃어버리고 접었던 작업을,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같은 장소에서 다시 시작한 셈입니다. 이번에는 촬영한 작품을 세트로 묶어 판매했고, 그 수익 대부분을 갤러리 리모델링 비용으로 썼습니다. 그는 이 무렵의 소회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관객과 작가의 소통 공간을 만든 것이 뿌듯하다. 어떻게 하다 보니 다큐멘터리사진 전시의 비중이 조금 높았던 모양이라서 내년부터는 파인아트 쪽을 많이 소개해 균형 잡힌 사진갤러리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 10년 더 갤러리를 끌고 가고 싶다." — 한겨레, 2017년 9월 12일

사진전문 출판사 눈빛의 이규상 대표는 그가 지켜온 갤러리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갤러리 브레송은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사진전문 갤러리 중 하나이다. 프랑스 사진가 브레송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나 사진의 본질을 이어간다는 측면에서 그 상호는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다." — 이규상, 한겨레(2017년 9월 12일) 인용

지금의 김남진

현재 김남진은 사진문화포럼 대표이자 갤러리 브레송의 대표 겸 관장입니다. 갤러리는 서울 중구 퇴계로 163에 있고, 10일 단위로 전시 공간을 대관하며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을 갤러리의 임무로 내걸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사진가의 풍경사진'(2015), 여러 사진가의 작가론을 전시와 접목한 '사진인을 찾아서'(2016),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을 조명한 'Next Generation'(2017) 같은 기획전을 이어오며 사진의 지평을 넓히는 중입니다.

찍는 사람에서 가르치는 사람으로, 기획하는 사람으로, 다시 공간을 지키는 사람으로 — 김남진의 사십 년은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이동에는 하나의 축이 있습니다. 1987년 스스로 접은 이태원 작업을 2017년 같은 장소에서 다시 시작했던 것처럼, 그는 한번 떠난 자리로도 다시 돌아옵니다. 필름을 잃어버렸다고 그 밤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김남진이 씨앗페에 작품을 낸 이유는 본인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후배 사진가들을 양성하고, 문을 닫을 뻔한 갤러리를 인수해 신진 작가의 전시 공간으로 지켜온 사람이 이 구조에 동참하는 일은, 그의 이력을 알고 나면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누드〉 한 점을 컬렉션에 들이는 것은, 이태원의 밤을 찍던 사진가가 필름과 인화지를 넘어 전사라는 우연의 기법으로 옮겨 갔던 한 시기를 들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화면 위를 가로지르는 색 보정 띠와 뜯겨 나간 가장자리는 실수가 아니라, 결과를 완벽하게 통제하지 않는 방식을 택한 작가의 흔적입니다.

김남진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 보기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함께 읽으면 좋은 글들을 소개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김남진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57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난 사진가이자 전시기획자입니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했고,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서울 이태원의 밤을 흑백 필름으로 기록한 다큐멘터리 작업 '이태원의 밤'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는 사진문화포럼 대표이자 서울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의 대표 겸 관장입니다.

Q. '이태원의 밤'은 어떤 작업인가요? A. 1984년부터 1986년까지 김남진이 흑백 필름으로 촬영한 다큐멘터리 작업입니다. 정부의 집중 단속이 시작되기 전, 미군전용클럽과 스트립클럽이 늘어섰던 마지막 시기의 이태원을 담았습니다. 1987년 파인힐 갤러리에서 개인전으로 처음 공개됐고, 사진계 원로 이명동 선생이 "무척 어려운 주제의 선택이었고 접근이었다.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한겨레, 2017년 9월 12일 인용)고 평했습니다. 이후 필름을 분실했으나 2015년 당시 인화본을 스캔해 눈빛출판사에서 사진집으로 재발간됐고, 아르코예술기록원에 소장돼 있습니다.

Q. 씨앗페 출품작 〈누드〉는 어떤 작품인가요? A. 1992년 제작된 1/5 프린트입니다. 1993년 바탕골예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폴라로이드 누드'와 같은 시기의 작업으로, 폴라로이드 필름의 이미지를 다른 표면으로 옮기는 전사기법을 사용했습니다. 화면에는 인화 과정에서 쓰는 색 보정용 컬러바가 그대로 찍혀 있고, 가장자리는 칼로 자른 것이 아니라 뜯긴 듯한 질감을 하고 있습니다.

Q. 갤러리 브레송은 어떤 곳인가요? A. 서울 중구 퇴계로 163에 있는 사진전문 갤러리로, 김남진이 2000년대 초반 폐관 위기에 놓였던 이곳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개인전·단체전을 합해 약 400회 이상의 전시가 열렸고 전시를 연 작가는 1천 명에 달합니다. 신진 작가 발굴과 지원을 갤러리의 임무로 내걸고 있습니다.

Q. 전시기획자로서는 어떤 이력이 있나요? A. 1996년 코닥포토살롱 '신체와 의식'전을 시작으로, 2005년 인사동 쌈지길 '몽유도원'전(슬라이드쇼+클럽 디제이 공연), 2006·2008·2009년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 2011년 서울사진축제 총감독, 2012년 충무로사진축제를 기획했습니다.

Q.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했나요? A. 2017년, 1987년 첫 '이태원의 밤' 개인전으로부터 30년 만에 이태원을 다시 찾아 디지털 컬러로 촬영한 개인전 《호모나이트쿠스》를 스페이스22에서 열었습니다. 2년에 걸쳐 열일곱 번 촬영한 결과물이었습니다.

Q. 김남진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김남진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씨앗페

공유하기

새 작품과 이야기, 메일로 받아보세요

새 작품 소식, 작가 이야기, 상호부조 기금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구독하기를 누르면 이메일 수집·발송(뉴스레터 목적)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돼요. 개인정보처리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