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에 낸 판화 한 점 〈사람으로 지키는 것들은 결국,〉을 도판으로 읽습니다. 판화가 김량원이 흑과 백의 대비로 남긴 질문을 따라갑니다.
김량원 — 검은 덩어리 한가운데 남겨둔 흰 자리

김량원은 판화를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입니다. 씨앗페에는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 온라인관에 걸린 〈사람으로 지키는 것들은 결국,〉 한 점으로 참여합니다.
왜 판화인가
작가는 자신을 소개하며 판화를 고집하는 이유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회화처럼 손길 하나하나가 곧바로 선이 되지 않고, 재료의 성질과 협업해야 하는 분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가끔 제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제멋대로 이미지를 바꾸는 게 저에게는 판화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판을 만들고 찍어내는 과정에서 재료가 손을 배반하는 순간이 있고, 그 배반을 작가는 결함이 아니라 매력으로 받아들입니다. 판화를 "천천히 단계를 쌓아가는" 작업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태도에서 나옵니다. 한 번에 완성되는 선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치며 재료와 주고받은 결과가 화면에 남는다는 뜻입니다.
도판을 보고
〈사람으로 지키는 것들은 결국,〉은 흑과 백만으로 이루어진 화면입니다. 화면 전체를 짙은 검은 덩어리가 에워싸고, 그 한가운데 세로로 긴 타원의 흰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이 흰 자리의 테두리가 이 작품에서 가장 눈이 오래 머무는 부분입니다. 매끈한 윤곽선이 아니라, 가늘고 구불구불한 선들이 촘촘하게 겹쳐 만든 들쭉날쭉한 경계입니다. 뿌리가 뒤엉킨 모양 같기도 하고, 무언가 타고 남은 자리의 그을린 가장자리 같기도 합니다. 그 경계를 지나면 안쪽은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순전한 흰 여백입니다.
바깥을 채운 검은 덩어리는 균일하지 않습니다. 어느 자리는 잉크가 두껍게 뭉쳐 광택이 도는 매끈한 면이고, 어느 자리는 거친 입자가 살아 있는 면이며, 화면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세로로 흘러내린 듯한 줄무늬가 남아 있습니다. 검은 면 곳곳에 작고 흰 점들이 마치 구멍처럼 흩뿌려져 있어, 잉크가 균일하게 덮이지 않고 종이의 결이 그대로 드러난 자리들이 남았음을 보여줍니다. 한 톤의 검정이 아니라 여러 겹의 인쇄가 서로 다른 질감으로 쌓인 결과로 보입니다. 화면 왼쪽 아래에는 중앙의 흰 자리와 같은 들쭉날쭉한 윤곽선을 가진 작은 덩어리가 하나 더 찍혀 있는데, 중심의 형태가 한 번 더 되풀이된 자리처럼 보입니다. 화면 좌우 가장자리는 매끈하게 재단되지 않고 판의 결이 그대로 드러나는 거친 선으로 남아 있어, 판 전체를 눌러 찍은 흔적이 화면 안까지 이어집니다.
이 화면은 제목의 질문과 맞물립니다. 작가는 "사람이" 지키는 것과 "사람들로" 지키는 것의 차이를 묻는다고 적었습니다. 개인을 희생시켜 유지된 사회는 결국 그 사회를 이루는 사람을 잃고 알맹이 없이 텅 빈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입니다. 화면 한가운데를 가득 채운 검은 덩어리와, 그 안에 억지로 비워둔 듯한 흰 자리 — 채워진 것과 비워진 것이 한 화면 안에서 서로를 밀어내는 이 구도가, 그 질문을 그대로 옮긴 이미지로 읽힙니다.
씨앗페에서
김량원은 오윤이 사람과 민중의 삶을 중심에 두고 현실을 바라보았던 정신을 오마주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사람을 중심에 두고 제작된 화면이 흑과 백의 대비로만 남은 것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매일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작가의 질문과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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