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차 들렀던 섬에 마음을 빼앗겨 눌러앉은 사진가 이재정. 7년의 기록을 접고 ‘이중초상화’ 연작으로 제주의 슬픈 자화상을 찍어온 그의 렌즈를 따라 읽습니다.
이재정 — 제주로 간 이주 사진가, 두 겹의 초상을 찍다

씨앗페에 들어온 이재정의 작품은 한 점, 〈이중초상화〉입니다. 2020년, 피그먼트 프린트, 50x60cm. 제목 그대로 두 장의 사진이 한 화면 안에 겹쳐 있습니다. 목이 좁고 몸통이 둥근 옹기 한 점이 화면 가운데 서 있고, 그 표면 위로 붉은 꽃 한 송이가 겹쳐 인화되어 있습니다. 꽃술에서 뻗어 나온 자주색 선들이 옹기의 몸통을 타고 번지듯 퍼지고, 어깨 위쪽은 원래의 흙빛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의 표면에 두 개의 시간, 두 개의 사물이 함께 찍혀 있는 사진입니다.
이 작가를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먼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재정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닙니다. 2012년 취재차 제주를 찾았다가 섬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겨 그대로 눌러앉은 사진가입니다. 그 뒤로 10년 넘게 제주를 찍어온 이 작가의 렌즈를 따라가면, 옹기 위에 겹쳐진 저 꽃 한 송이가 왜 하필 '이중초상화'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취재로 갔다가 눌러앉은 섬
이재정은 사회와 풍경, 신화와 일상 사이를 사진으로 횡단해 온 작가입니다. 2012년 제주를 방문한 것은 취재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섬의 서사에 마음을 빼앗겨 그대로 머물게 됩니다. 이후 7년 동안 제주신화, 제주 4·3, 제주의 예술가들을 보도사진의 시각으로 기록했습니다.
작가 스스로도 이 처지를 정확히 짚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제주가 뜬다'는 것은 아이러니의 극치다. 7년여 동안 섬에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경계가 만들어지고 떠밀리고 넘치는 사정들에 민감해지는 가운데 정작 작가는 이주민이라는 계급장을 얻게 된다." — 게임톡, 2019년 6월 5일
'이주민이라는 계급장'이라는 표현이 이 작가의 위치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제주를 찍는 일을 오래 했어도, 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 거리를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들고 작업하는 것이 이재정의 방식이었습니다.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도 같은 자리를 밝혔습니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라지 않았지만 제주를 지키고 싶은 바람을 담았다." — 뉴스1, 2019년 6월 7일
2016년 제주에서 첫 개인전을 연 뒤로, 이재정은 제주신화전(2016), 박근혜 하야전(2017), 이중초상화 연작전(2019), 마을극장 DMZ레지던시전(2020), 새들은 펜데믹을 두려워하지 않는다(2022), 화산도(2023), 칠실파려안(2024), 천 개의 카메라(2025) 등 다수의 개인전과 기획전을 열었습니다. 대구사진비엔날레, 수원국제사진축제, 화산섬국제사진제,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 같은 사진 페스티벌에도 활발히 참여하며 한국 사회의 결을 사진으로 기록해 왔습니다.
이중초상화 — 난개발의 초상, 섬의 자화상
이재정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것은 2019년의 '이중초상화(double portraits)' 연작전입니다. 대구 김광석거리의 예술공간 '바나나 프로젝트'(5월 29일 개막), 파주 헤이리예술인마을 '사진공간 크레타'(6월 3일~7월 15일), 서울 성북구 성북로 '텝하우스 f64'(6월 7일~13일)를 차례로 옮겨 다니며 열린 순회전으로, 모두 육십여 점이 걸렸습니다.
이 전시가 다룬 것은 강정해군기지, 성산 제2공항, 영리병원 문제처럼 제주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던 현안들이었습니다. 작가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나는 제주 4.3, 제주신화, 성산 제2공항 문제 등 섬의 서사(敍事, narrative)를 통해 함께 이방군대의 침탈을 극복하려는 섬사람들의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결국 관람자들과의 호흡을 원한다." — 게임톡, 2019년 6월 5일
전시 제목이 왜 '이중초상화'인지도 작가의 말에 담겨 있습니다.
"이 전시는 제주에 대한 난개발에 관한 보고서,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명주 1동이 모자라 뭍과 연결되지 못한 아름다운 신화가 사라지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 게임톡, 2019년 6월 5일
보고서이자 자화상. 기록이면서 동시에 초상이라는 이 이중의 성격이, 씨앗페에 들어온 〈이중초상화〉 한 점에도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옹기라는 오래된 생활의 사물 위에, 붉은 꽃이라는 순간의 것이 겹쳐 인화됩니다. 하나는 시간이 쌓아 만든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피고 지는 것입니다. 두 장의 필름이 한 인화지 위에서 만나 서로의 몸에 서로의 흔적을 남기는 방식, 그것이 이 작가가 말하는 '이중초상'입니다.
사라지는 것들을 향한 카메라
'이중초상화'로 시작된 작업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2022년 갤러리브레송(관장 김남진)에서 열린 개인전 '새들은 펜데믹을 비켜 가지 않아'는 제주 이주 10년째를 맞아 연 일곱 번째 개인전이었습니다. 2016년 이후 파주 헤이리 크레타, 대구 초록우체부, 서울 청파동 마다가스카르, 신촌 허쉬드, 성북동 f64, 가양동 올브갤러리를 거쳐 온 걸음의 연장선입니다. 이 무렵 이재정은 '이중초상화' 외에도 'About the Size-사라진 정원(庭園)'과 '통증연대기' 시리즈를 통해 상실되어 가는 제주의 모습과 제주 사람들의 아픔을 담아 왔습니다.
전시장에는 사진가 볼프강 틸만스의 '콩코드 그리드' 설치 방식을 빌려온 백여 점의 작품이 걸렸습니다. 작가는 이 작업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의 사진은 시간을 매개로 얼마나 진화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됐다. 개인적으로 사진의 속성인 빛의 변주를 통해 개인적 진화는 물론 더디지만 스스로 지켜 나가는 섬의 생태와 사람들의 노력까지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 게임톡, 2022년 7월 25일
채수호 시인은 이 시기의 작업을 두고 이렇게 평했습니다.
"섬에 살면서부터 새파랗지만 뜨거운 온도감을 가진 사진을 찍고 싶어했다. 덕분에 시대적 정의감과 사람 냄새 나는 사진 사이를 절충해 나가는 작가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 게임톡, 2022년 7월 25일
정의감과 사람 냄새를 함께 담는다는 평은, 보도사진의 시선에서 출발했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은 이 작가의 자리를 정확히 짚습니다. 이재정은 이보다 앞서 2017년 제주국제관악제 특별전 'WINDHADA, 제주문화를 소비하다'에도 참여했는데, 이때는 문화기획가 겸 사진작가로 소개되며 〈제주영등굿〉(60x40cm, Pigment Print on Korean Paper)을 출품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전시를 기획한 취지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오래전 태초에는 제주의 자연이 예술가를 낳고 길렀으나 이제는 예술가가 자연을 치유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 제주의소리, 2017년
2025년에는 서울 인사동 아지트미술관에서 열린 공동 작가전 '기록 : 화산도,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예의'에 제주 시너지 사진 그룹의 일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제주 생태 파괴를 기록하고 생태 보호에 관심과 동참을 이끌어내려는 전시였습니다. 취재가 아니라 이제는 이 섬의 문제를 함께 짊어지는 자리에 서 있다는 점에서, 2012년 취재차 들렀던 이방인과는 다른 위치입니다. 최근에는 두 매체에 문화칼럼을 연재하고 시집도 한 권 펴내며, 사진 바깥으로도 작업을 넓히고 있습니다.
씨앗페 출품작 — 〈이중초상화〉 읽기
씨앗페에 나온 작품은 2020년작 〈이중초상화〉 한 점입니다. 피그먼트 프린트, 50x60cm.
화면을 채운 것은 목이 좁고 어깨가 둥글게 벌어진 옹기 한 점입니다. 몸통 윗부분에는 새끼줄을 눌러 찍은 듯한 띠무늬가 남아 있고, 옹기 표면 자체의 흙빛 질감도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 위에 두 번째 이미지가 겹쳐집니다. 별 모양으로 벌어진 꽃잎 한 송이가 옹기의 배 부분 정중앙에 자리 잡고, 꽃술에서 뻗어 나온 자주색과 분홍색 선들이 옹기의 몸통 전체로 얼룩처럼 번져 나갑니다. 옹기의 오른쪽 어깨 위쪽은 원래의 흙빛이 그대로 남아 있어, 꽃의 색이 어디까지 번지고 어디서 멈췄는지가 화면 안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견고한 옹기의 형태와 순간에 피었다 지는 꽃의 형태가 한 인화지 위에서 만나, 어느 쪽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서로의 몸 위에 남아 있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씨앗페에 내놓으며 짧게 이유를 밝혔습니다.
"오윤 작가님 작품 보존과 화산섬 제주 생태 보존에 동참"
오윤의 판화 작업을 지키는 일과 제주의 생태를 지키는 일을 나란히 놓은 문장입니다. 취재차 왔다가 섬에 마음을 빼앗겨 10년 넘게 그 섬을 찍어온 사진가에게는, 사라져 가는 것을 지키려는 마음이 낯설지 않은 동기였을 것입니다.

- 50x60cm · pigment print · 2020
- 작품 페이지 →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이재정이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이유는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이재정은 그 구조에 작품으로 참여했습니다.
취재차 들렀던 섬에 남아 10년 넘게 그 섬의 상실을 기록해 온 사진가입니다. 제주가 아니었어도, 오윤의 판화가 아니었어도, 사라져 가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료 예술인이 겪는 금융 차별을 향해서도 이 작가는 같은 방식으로 카메라 대신 작품 한 점을 내놓았습니다.
이재정을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먼저 〈이중초상화〉 속 옹기와 꽃을 나란히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견고한 것과 순간적인 것이 한 표면에서 만나는 방식이 이 작가의 오랜 방법입니다. 그 방법이 제주라는 섬을 만났을 때 무엇을 찍어냈는지 더 알고 싶다면, '이중초상화' 연작전을 다룬 기사들에 남은 작가의 말들을 따라가 보시길 권합니다. 보고서이자 자화상이라는 말이, 사진 한 장 한 장에 왜 그렇게 붙어 있는지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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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이재정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사회와 풍경, 신화와 일상 사이를 사진으로 횡단해 온 사진가입니다. 2012년 취재차 제주를 방문했다가 섬의 서사에 마음을 빼앗겨 그대로 눌러앉아, 이후 10년 넘게 제주를 기록해 왔습니다. 2016년 제주에서 첫 개인전을 연 뒤 다수의 개인전과 기획전, 사진 페스티벌에 참여해 왔습니다.
Q. '이중초상화'는 무엇을 뜻하나요? A. 이재정이 2019년부터 이어온 연작이자 개인전 제목입니다. 한 인화지 위에 서로 다른 두 장의 이미지를 겹쳐, 견고한 사물과 순간적인 것이 한 표면에서 만나도록 하는 작업입니다. 작가는 이 연작을 "제주에 대한 난개발에 관한 보고서, 우리의 슬픈 자화상"(게임톡, 2019년 6월 5일)이라고 밝혔습니다.
Q. 어떤 전시에 참여해 왔나요? A. 제주신화전(2016), 박근혜 하야전(2017), 이중초상화 연작전(2019), 마을극장 DMZ레지던시전(2020), 새들은 펜데믹을 두려워하지 않는다(2022), 화산도(2023), 칠실파려안(2024), 천 개의 카메라(2025) 등입니다. 대구사진비엔날레, 수원국제사진축제, 화산섬국제사진제,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 같은 사진 페스티벌에도 참여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이재정 작품은 무엇인가요? A. 〈이중초상화〉(2020, 피그먼트 프린트, 50x60cm) 한 점입니다. 옹기 위에 붉은 꽃 한 송이가 이중 노출로 겹쳐 인화된 사진으로, 작가 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Q. 이재정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이재정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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