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정원을 소재로 자아와 세상의 이치를 탐구해 온 작가 고자영. '이동식 정원' 연작이 20년 넘게 이어지는 이유와 그 69번째 화면에서 사라지고 있는 사람을 따라 읽습니다.
고자영 — 20년째 이동 중인 정원, 그 안에서 사라지는 사람

한 변이 60센티미터인 정사각형 화면입니다.
바탕은 오래 묵은 종이 같은 황토빛이고, 그 위에 붉은 갈색 반점이 불규칙하게 번져 있습니다. 화면 위쪽에는 마디가 굵은 덩굴 가지가 좌우로 뻗으며 얽혀 있고, 거기에 회청색 꽃들이 무겁게 매달려 있습니다. 왼쪽 가지 위에는 등에 돌기가 솟은 도마뱀 한 마리가 네 발로 매달려 아래를 봅니다.
그리고 오른쪽 아래, 흰옷을 입은 사람이 정면을 보고 서 있습니다. 얼굴은 또렷한데 어깨 아래로 내려갈수록 윤곽이 흐려지다가, 옷자락 끝에 이르면 바탕과 구분되지 않습니다. 제목에 붙은 '사라지는'이라는 말이 이 상태를 가리킵니다.
식물에서 시작해 정원이 되고 식물원이 되는
고자영은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했습니다(더리포트, 2025년 8월 5일). 작가가 씨앗페에 제출한 이력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고, 2001년에는 「식물을 소재로 한 다층적 시각체험의 표현연구」라는 논문을 썼습니다. 제목이 이미 이후 20여 년의 작업을 예고합니다.
2017년 서울 리나갤러리에서 열린 2인전 《지극히 사적인》을 소개한 문화경제는 그의 화면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고자영 작가의 작품은 식물에서 시작돼 정원이 되고 식물원이 된다. 작품의 화면은 한 폭의 동양적 산수화 또는 해초들과 해파리들이 함께 보이는 물속의 풍경 같기도 하다. 이것은 작가가 다양한 시점에 따라서 단편적으로 포착된 식물의 이미지를 화면상에서 재조합하거나, 자아를 투영시켜 인공적이면서 동시에 자연적인 정원,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 결과다." — 문화경제, 2017년 4월 7일
같은 기사는 작업의 단계적 변화도 정리했습니다. 초반에는 꾸밈없이 일상에 존재하는 자연을 소재로 삼았고, 이후에는 동양 산수화의 사유 공간으로 자연 풍경을 풀어냈으며, 그 무렵에는 사계절의 풍경을 통해 인생의 순환을 은유하는 작업을 이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 전시를 함께 보도한 이코노미톡뉴스는 같은 시기 출품작으로 〈사계정원7〉과 〈사계정원3-2〉(각각 97x97cm, 캔버스에 유채, 2017)를 꼽았습니다(2017년 4월 4일). 그해 9월 서울 종로의 갤러리 너트에서 열린 개인전 제목도 《사계정원》이었습니다.
전시를 주최한 리나갤러리 쪽이 남긴 한 문장은 이 작가와 소재의 관계를 압축합니다.
"작가는 외적으로 연약하지만 강인한 내면이 엿보이는 식물과 닮아 있다. 식물에 자아를 투영하거나 식물의 시선을 통해 관통되는 세상을 바라보며 주관적인 시각으로 자연을 표현한다." — 리나갤러리, 문화경제 2017년 4월 7일 자 인용
식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식물을 통해 본다는 뜻입니다. 씨앗페 출품작에서 화면 위쪽을 덩굴과 도마뱀이 차지하고 사람이 아래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배치도 그 시선의 결과로 읽힙니다.
'이동식 정원'이라는 연작
정원은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땅에 붙어 있고, 한번 만들면 그 자리에 있습니다. 고자영은 그 앞에 '이동식'이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씨앗페에 들어온 작품의 번호는 69번이고 제작 연도는 2012년입니다. 그리고 2025년 서울 종로 떼아트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이름 없는 정원》을 보도한 더리포트의 기사에는 〈이동식정원 1-3〉(2024)과 〈이동식정원 174(선인장과 다현)〉(2025)이 도판으로 실렸습니다. 번호가 174번까지 올라가 있고, 연작이 13년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2025년 전시에서 작가가 다룬 것은 학교의 정원이었습니다. 기사는 이렇게 전합니다. "작가는 익명의 씨앗들이 무작위로 뿌려지고 자라난 학교 정원을 관찰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규범이나 명명 체계에 수렴되지 않는 세계의 질서에 주목한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인용합니다.
"무질서하게 보이는 것 안에서도 나름의 질서가 존재한다." — 더리포트, 2025년 8월 5일
같은 기사에 따르면 고자영은 현재 예원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며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험에서 비롯된 사유가 '정원'이라는 은유를 통해 개인적 체험과 회화적 표현을 연결한다고 기사는 적었습니다. 전시 제목 《이름 없는 정원》은 그 익명성과 자생성을 가리킵니다.
"정원의 이름은 남지 않아도 그 풍경은 관람자 안에서 계속 자라나길 바란다." — 더리포트, 2025년 8월 5일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을 그리는 사람이 자기 연작에는 일련번호를 매긴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름 대신 번호. 그것도 정원의 논리에 가깝습니다.
판화에서 온 화가
고자영의 이력을 처음 보면 회화 작가치고 판화 관련 기록이 유난히 많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작가가 씨앗페에 제출한 이력에 따르면 2000년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공모전 특선, 이듬해 같은 공모전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2003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의 《한국현대판화전·국제판화교류전》, 2005~2006년의 《서울판화》 연속 참여, 2006년 공간 국제 판화 비엔날레 선정, 2007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미술대전 — 판화》와 러시아 순회전 《스펙트럼 오브 더 코리안 컨템포러리 프린트》,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한국현대판화 1958-2008》까지 이어집니다.
판화는 같은 판에서 여러 장을 찍는 매체이고, 한 이미지가 조금씩 다르게 반복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번호를 매겨 가며 같은 제목의 정원을 100점 넘게 그려 온 작업 방식이 그 감각과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회화 쪽 평가도 같은 시기에 함께 쌓였습니다. 2007년 세오갤러리의 제1회 영아티스트에 선정됐고, 같은 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과 신진 예술가 지원에 선정됐습니다. 2008년 제30회 중앙미술대전 선정작가, 2009년 송은미술대상 선정작가에 이름을 올렸으며, 그해 인사아트센터 송은미술대상전에도 참여했습니다.
작품은 여러 기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작가가 제출한 이력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병원 암센터, 기업은행, 서울중앙지방법원, 남서울대학교, 세오갤러리가 적혀 있습니다. 2008년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신소장품전에 작품이 포함됐습니다.
2000년대 후반은 특히 밀도가 높았습니다. 2007년 한 해에만 인천국제여성미술비엔날레,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미술대전 — 판화》, 대전시립미술관 금강미술대전, 미국 PS 35 갤러리의 《헬로우 첼시! 2007》, 예화랑 《뽁뽁이》, 닥터박갤러리 《개성&열정》 등에 이름을 올렸고, 2008년에는 닥터박갤러리 개인전과 양평환경미술제, 2009년에는 인사아트센터 송은미술대상전, 63스카이아트 《꽃밭에서》,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The Flower》로 이어졌습니다. 전시 제목만 훑어도 이 작가가 어느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는지가 보입니다 — 꽃, 꽃밭, 정원.
가르치는 일도 그 시기에 시작됐습니다. 작가가 제출한 이력에 따르면 2003년부터 상명대학교에, 2007년에는 백석대학교에 출강했고,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지금 예원학교에서 이어 가고 있는 일의 앞자락입니다. 2025년 전시의 소재가 '학교 정원'이었던 것은 그러니까 2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오가며 본 풍경입니다.
병원과 학교에 걸린 정원
이 작가의 전시 장소 목록에는 미술관과 화랑만 있지 않습니다.
2018년 1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2동 로비층의 갤러리 스페이스 유(Space-U)에서 《마음의 정원》전이 열렸습니다. 고자영과 이정은 두 작가의 작품이 걸렸고, 전시는 1월 31일까지 이어졌습니다. 내일신문은 이 갤러리가 "갤러리를 의미하는 Space와 환자 유(병 나을 유)를 결합한 것으로 환자들의 빠른 쾌유를 기원하면서 병원을 드나드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도록 조성된 갤러리"라고 전했습니다(2018년 1월 23일). 기사 제목은 「당신의 마음속에 작은 정원을 분양해 드립니다」였습니다.
병원 복도, 학교 정원, 화랑. 세 장소에서 같은 소재가 서로 다르게 작동합니다. 정원이 '이동식'인 이유 하나가 여기에도 있습니다.
씨앗페 출품작 읽기
〈이동식 정원 69-사라지는 3〉 — 2012년,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60x60cm
씨앗페에 들어온 고자영의 작품은 이 한 점입니다. 연작 69번이고, '사라지는'이라는 부제가 붙은 세 번째 화면입니다.
앞에서 본 대로 화면은 두 층으로 나뉩니다. 위쪽에는 덩굴과 꽃과 도마뱀이, 아래쪽에는 흐려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식물은 선명하고 사람은 지워집니다. 문화경제가 정리한 "식물에 자아를 투영하거나 식물의 시선을 통해 관통되는 세상을 바라보며"라는 문장을 이 한 점이 그림으로 보여 줍니다. 보는 쪽이 식물이고, 흐려지는 쪽이 사람입니다.
바탕의 붉은 반점은 균일하지 않게 번져 있어 오래된 종이나 벽면의 얼룩처럼 보입니다. 덩굴의 마디와 꽃잎은 유화의 두께가 느껴질 만큼 쌓여 있는 반면, 인물은 얇게 비쳐 나옵니다. 같은 화면 안에서 재료의 밀도가 다르고, 그 차이가 곧 존재의 차이로 읽힙니다.
한 변 60센티미터의 정사각형이라 벽 하나를 채우기보다 시선이 머무는 한 지점을 만드는 크기입니다. 서재, 침실, 복도 끝처럼 가까이서 오래 보는 자리에 맞습니다.

- 60x60cm ·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 2012 · ₩3,000,000
- 작품 페이지 →
고자영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연작을 산다는 것
번호가 붙은 연작 가운데 한 점을 들이는 일에는 특별한 데가 있습니다. 그 점이 혼자 완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69번은 연작의 중간입니다. 2012년에 그려졌고, 그 뒤로도 정원은 100점 넘게 이어졌습니다. 2017년에는 사계절의 순환으로, 2025년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학교 정원으로. 이 한 점을 벽에 걸면, 그 뒤로 계속 자라난 정원 전체가 뒤에 붙어 옵니다.
'사라지는'이라는 부제도 다시 읽힙니다. 화면 안에서 흐려지는 사람은 같은 연작 안에서 번호로 남습니다. 이름은 지워지고 번호는 남는 구조를, 작가는 2025년에 "정원의 이름은 남지 않아도 그 풍경은 관람자 안에서 계속 자라나길 바란다"는 말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씨앗페에 작품을 낸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고자영은 그 구조에 작품 한 점으로 참여했습니다.
무작위로 뿌려진 익명의 씨앗들 사이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고 말해 온 작가입니다. 누가 심었는지 모르는 씨앗이 자라는 정원을 20년 넘게 그려 온 사람이, 서로 이름을 다 알지 못하는 동료들을 위해 작품을 내놓는 일은 그 문장의 연장으로 읽힙니다.
이 작가를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화면을 두 번 보시길 권합니다. 처음에는 위쪽의 덩굴과 꽃과 도마뱀을 보십시오. 그러고 나서 오른쪽 아래를 보십시오. 처음에 못 보고 지나쳤다면, 그것이 이 그림이 의도한 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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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고자영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작가로, '정원'과 '식물'을 소재로 자아와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는 작업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현재 예원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며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더리포트, 2025년 8월 5일).
Q. '이동식 정원'은 어떤 연작인가요? A. 식물과 정원을 소재로 번호를 붙여 이어 가는 연작입니다. 씨앗페 출품작은 2012년에 그린 69번이고, 2025년 개인전 《이름 없는 정원》에는 174번까지 나왔습니다. 13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연작입니다.
Q. 주요 개인전은? A. 2017년 서울 종로 갤러리 너트에서 《사계정원》을, 2025년 서울 종로 떼아트갤러리에서 《이름 없는 정원》을 열었습니다. 2017년에는 리나갤러리에서 하이경 작가와 2인전 《지극히 사적인》을, 2018년에는 분당서울대병원 갤러리 스페이스 유에서 《마음의 정원》을 함께 열었습니다.
Q. 판화 이력이 많던데, 판화 작가인가요? A. 회화를 주로 하지만 판화 이력이 두텁습니다. 작가가 씨앗페에 제출한 이력에 따르면 2000년과 2001년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공모전에서 특선과 우수상을 받았고,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한국현대판화 1958-2008》, 2007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미술대전 — 판화》 등에 참여했습니다.
Q. 작품 소장처는? A. 작가가 씨앗페에 제출한 이력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병원 암센터, 기업은행, 서울중앙지방법원, 남서울대학교, 세오갤러리가 적혀 있습니다. 2008년 서울시립미술관 신소장품전에도 작품이 포함됐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고자영 작품은 무엇인가요? A. 〈이동식 정원 69-사라지는 3〉(2012, 캔버스에 유채·아크릴채색, 60x60cm) 한 점입니다.
Q. 고자영 작품 가격은? A. 〈이동식 정원 69-사라지는 3〉은 ₩3,000,000입니다.
Q. 고자영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고자영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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