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콘텐츠로 이동

전정호 — 걸개그림에서 밥그릇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은 판각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9월 21일 · 씨앗페

신안 하의도에서 나고 조선대에서 미술운동에 뛰어든 판화가 전정호. 1987년의 걸개그림부터 하의3도 농민항쟁 연작 85점까지, 40년 동안 현장을 떠나지 않은 작업과 씨앗페 출품작 두 점을 읽습니다.

전정호 — 걸개그림에서 밥그릇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은 판각

전정호, 〈살구꽃피면〉, 목판화·종이, 40x30cm — 커다란 밥그릇 안쪽에 씨 뿌리는 농부가, 바깥면에는 살구꽃이 새겨져 있다
전정호, 〈살구꽃피면〉, 목판화·종이, 40x30cm — 커다란 밥그릇 안쪽에 씨 뿌리는 농부가, 바깥면에는 살구꽃이 새겨져 있다

화면 한가운데 커다란 그릇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본 밥그릇입니다. 그릇의 입구 안쪽은 하얗게 비어 있고, 그 흰 면 위에 밭고랑이 그어져 있습니다. 밭 한가운데에 등을 굽힌 사람이 서서 한 손으로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뿌려진 씨앗은 검은 점이 되어 오른쪽으로 흩어집니다.

그릇의 바깥면에는 살구꽃이 가득합니다. 흰 꽃잎이 그릇 전체를 덮고, 가운데 부분에는 붉은 꽃이 섞여 있습니다. 그릇 뒤쪽 배경은 황토색으로 판 밭이랑입니다.

밥그릇 안에 밭이 있고, 밭 안에 사람이 있고, 그릇 바깥에는 꽃이 핍니다. 전정호라는 작가가 40년 동안 새겨온 것들이 한 장에 겹쳐 있는 화면입니다.

섬에서 나와, 광주에서 판을 들다

전정호는 전남 신안 하의도에서 태어났습니다. 광주미술문화연구소의 작가 자료와 은암미술관·저녁노을미술관 전시 보도가 출생지를 같게 적습니다. 목포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조선대학교 미술대학과 같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것이 1980년대였습니다. 그는 재학 중 미술패 활동에 참여하며 걸개그림, 판화, 만장, 깃발그림 같은 시각매체 작업을 했습니다. 전시장에 거는 작품이 아니라 거리에서 펼치고 세우고 흔드는 물건들입니다.

광주인은 그 시기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 당시 거리에서 독재에 저항하며 그렸던 수많은 현수막, 피켓 글씨와 걸개그림들은 경찰에게 빼앗기고 현장에서 대부분 사라졌지만, 고통받는 민중 곁에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림으로 함께 투쟁했던 기억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이라고요. 작품이 남지 않는 것이 전제인 작업이었다는 뜻입니다.

광주미술문화연구소의 작가 자료에 따르면 그는 이 시기에 〈혁명광주〉(1985), 〈삼민헌법쟁취〉(1986), 〈반미자주열사 이철규〉(1989) 같은 걸개그림을 — 공동작업을 포함해 — 제작했습니다. 이후에도 〈원전반대〉(1992), 〈오월의 문 윤상원의 눈〉(2000), 〈1923암태도〉(2020), 〈홍어장수 문순득〉(2021), 〈장산도 만세운동〉(2022)으로 목록이 이어집니다. 제작 연도만 훑어도 40년이 끊기지 않습니다.

1987년의 걸개그림

전정호의 이름 앞에 가장 자주 붙는 이력은 1987년의 일입니다.

그해 그는 조선대 미술패 공동작업으로 이상호와 함께 걸개그림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를 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 작품을 제작한 일로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표현물 제작)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광주미술문화연구소 자료, 광남신문, 광주인, 뉴스1이 모두 같은 사실을 전하며, 여러 매체가 두 사람을 "미술인 최초" 또는 "국가보안법 1호 예술가"로 부릅니다.

작품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두 작가 본인의 설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광남신문에 따르면 원본은 1987년 6월 항쟁 뒤 광주 북구 유동 YWCA에서 열린 대동한마당에서 처음 선보였고, 이어 서울 인사동 그림마당 민에서 열린 《민중해방과 민족통일 큰 그림 잔치》에 출품됐다가 이적표현물로 지정됐습니다. 그 뒤 제주에서 전시 중 작품을 빼앗겼고, 나중에 원본을 찾으려 했을 때 돌아온 답은 소각 처리됐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제주 신탁은행에서 작품을 탈취를 당하는 동시에 수배가 떨어져 무방비 상태에서 검거가 됐는데 그것이 최초로 국가보안법 사건이 됐다." — 광남신문, 2024년 5월

같은 자리에서 그들은 작품의 본래 뜻도 밝혔습니다. "애초 제작했던 의도는 미륵세상을 염원한 것으로 미륵 동자가 나타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적표현물로 분류된 그림이 실은 미륵을 부른 그림이었다는 설명입니다.

이 작품은 2005년에 다시 제작됐습니다. 지금 전시에 걸리는 것은 그 복원본입니다. 공동작업자인 이상호는 "이한열의 죽음과 6월 항쟁의 열기 속에 공동제작됐으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수감되면서 이적표현물로 판결받아 소각되었다"며 "전시 작품은 2005년에 다시 제작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2024년 6월 14일부터 7월 7일까지 독일 베를린 마인블라우 프로젝트라움에서 열린 이상호·전정호 2인전 《저항으로서 민중미술(MINJUNG ART RESISTANCE)》의 대표작이 바로 이 복원본이었습니다. 광주인에 따르면 복원본과 이후 두 작가의 민중미술 작품 20여 점이 함께 걸렸고, 현지 미술 웹매거진 '아트 인 베를린'은 1970~80년대 한국의 시대 배경과 이 작품의 제작 과정, 두 작가가 학생 시절 구속된 경위까지 다루며 그 역사적 서사와 예술성에 주목했다고 합니다. 전시는 독일 Art5예술협회 공동대표 유재현, 베를린의 베른하르트 드라즈, 광주의 독립큐레이터 정현주가 함께 기획했습니다.

두 사람의 2인전은 그 전에도 있었습니다. 2017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이상호 전정호 2인전 — 응답하라 1987》이 열렸습니다. 30년을 사이에 둔 제목입니다.

하의3도 — 350년을 85점으로

공동작업이 많은 작가이지만, 단독 개인전에서 그는 전혀 다른 크기의 일을 벌였습니다.

2022년 개인전 《바다를 건넌 사람들》은 전남 신안군 하의3도 농민들이 조선 후기부터 해방까지 350년에 걸쳐 벌인 농지 탈환의 역사를 연작판화 85점으로 새긴 전시였습니다. 하의3도는 하의면 하의도와 신의면 상태도·하태도 세 개의 섬을 가리킵니다. 작가가 태어난 섬입니다.

남도일보에 따르면 이 작품들은 2019년부터 약 4년에 걸쳐 작업한 목판화이고, 전시는 다섯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봉건권력과의 투쟁', '일제강점기 농토 탈환투쟁', '미군정시기 농민항쟁', '간척, 바다와의 싸움', 그리고 '밥 시리즈'입니다.

작가 본인은 전시의 목적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인전 의미를 떠나 350년간 하의3도에서 일어났던 농민투쟁 사실을 신안군민에게 신안군 섬사람들의 위대한 저항의 역사를 보여주고자 한다." — 남도일보, 2022년 11월

주목할 것은 마지막 갈래입니다. 항쟁의 역사를 다섯 단계로 새긴 연작의 끝이 '밥'입니다. 미술평론가 김종길은 2022년 개인전 서문에서 이 구성을 이렇게 읽었습니다.

"전정호의 연작판화는 기억의 지배에 저항하는 기억투쟁의 미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중략) 전정호가 〈하의도 7·7농민항쟁〉 연작판화로 보여주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밥'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항쟁사 연작판화와 별도로 밥 작품을 8점 제작했다. 짧고 간결한 시처럼 밥 작품들도 한편 한편이 다 시화다." — 김종길(미술평론), 2022년 전정호 개인전 전시서문

땅을 되찾는 싸움의 목적이 결국 밥이라는 독해입니다. 씨앗페에 나온 두 점이 왜 밥그릇과 밥 한 술인지를 이해하는 데 이보다 나은 안내는 없습니다.

목판을 대하는 방식

전정호가 다루는 것은 나무와 금속입니다. 은암미술관은 그를 두고 "목판에 조각도와 미속을 적용해 이미지를 깎고 다듬어 찍어내는 방식으로 역사적 사건, 서사적 이미지의 형상을 나타낸다"고 소개했습니다. 같은 미술관은 그가 30여 년간 판화를 매체로 평화·인권·상생에 관한 주제를 작업해 왔다고 정리하며, 2022년 6월 그의 판화 시연과 체험 프로그램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가 목판을 놓지 않은 이유는 연작이라는 형식과도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은암미술관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시각화하는 판화연작은 역사적 사건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적었습니다. 85점으로 350년을 새긴 작업이 정확히 그 예입니다.

작가의 자리도 화실만은 아닙니다. 광주미술문화연구소 자료는 그가 시각매체연구회, 광주민중문화운동협의회, 민족미술협의회, 광주민족민중미술운동연합, 현장미술연구소 회원이었고, 지금은 생명평화미술행동 회원이자 아시아목판화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한다고 전합니다. 남도일보는 그가 동아시아인권과평화미술관 건립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단체전 목록도 성격이 분명합니다. 《민중미술 15년전: 1980~1994》(1994, 국립현대미술관), 《80년대 광주 민중미술》(2013, 광주시립미술관), 《MaytoDay — 1980년대 목판화》(2020), 《탈핵미술행동2020전》(2020), 《오월판화전 — 전언》(2021), 《새겨찍은 시대정신》(2024, 광주시립미술관) 등입니다. 미술관과 현장이 번갈아 나옵니다.

작가가 씨앗페에 제출한 이력에는 최근 활동도 적혀 있습니다. 2025년 일본 교토 우토로 아트페스티벌 걸개그림, 2024년 독일 메인블라우미술관 2인 기획초대전, 2026년 탈핵생명평화미술행동(삼척)과 동학혁명미술전(전주) 등입니다. 2026년 현재도 생명평화미술행동과 아시아목판화연구소에서 활동 중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씨앗페 출품작 두 점 읽기

씨앗페에 들어온 전정호의 작품은 두 점입니다. 둘 다 2021년에 종이에 찍은 목판화이고, 값은 각각 ₩500,000으로 같습니다. 한 점은 흑백이고 한 점은 색을 입혔습니다. 두 점 모두 제목이 밥에 걸려 있습니다.

〈밥〉 — 2021년, 목판화·종이, 30x37cm

여백이 넓은 흑백 화면입니다. 한 사람이 오른쪽에 크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머리에는 수건을 질끈 동여맸고, 얼굴은 수염이 덥수룩하며, 주름과 그늘이 굵은 칼자국으로 파여 있습니다.

한 손에는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숟가락 위에 밥 한 덩이가 고봉으로 올라와 있고, 그 밥이 지금 입 앞에 와 있습니다. 다른 손은 아래쪽에서 밥그릇을 받치고 있습니다. 그릇 안에도 밥이 소복합니다. 손등의 힘줄까지 선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배경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밥을 뜨는 동작 하나만 잘라내 흰 종이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먹는 장면을 그린 그림은 흔하지만, 이 화면에서 시선을 붙드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밥을 쥔 손과 그 손의 주인입니다. 밥이 주어이고 사람이 주어인 화면입니다.

앞 장에서 읽은 대로, 전정호의 작업에서 '밥'은 하의3도 농민항쟁 연작의 끝자리에 놓인 낱말이었습니다. 350년 동안 땅을 되찾으려 한 싸움의 결론으로 그가 새긴 것이 밥이었습니다.

전정호, 〈밥〉, 목판화·종이, 30x37cm, ₩500,000
전정호, 〈밥〉, 목판화·종이, 30x37cm, ₩500,000

〈살구꽃피면〉 — 2021년, 목판화·종이, 40x30cm

도입부에서 본 작품입니다. 두 점 가운데 유일하게 색이 들어간 화면이고, 황토와 주황, 그리고 붉은색이 겹쳐 찍혀 있습니다.

화면 구조가 특이합니다. 밥그릇을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본 형태인데, 그릇의 열린 입구가 화면의 절반을 차지하고 그 안이 하얀 밭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밭고랑이 가로로 그어져 있고, 그 한가운데 사람이 서서 씨를 뿌립니다. 뿌려진 씨앗이 검은 점으로 흩어져 있어서, 정지한 화면인데 동작의 방향이 읽힙니다.

그릇의 바깥면은 살구꽃으로 덮여 있습니다. 흰 꽃이 그릇 전체에 피고, 가운데는 붉게 물들었습니다. 그릇 뒤 배경은 황토색으로 판 밭이랑입니다. 밥그릇 안에도 밭이 있고 밖에도 밭이 있는데, 그릇 자체는 꽃이 피는 나무가 됩니다.

제목 뒤에는 말줄임표가 붙어 있습니다. 화면 아래 왼쪽에 연필로 "14/30"이라는 에디션 번호와 "살구꽃피면…"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고, 오른쪽 아래에는 "2021"과 작가의 서명, 붉은 낙관이 찍혀 있습니다. 30점을 찍은 에디션 가운데 열네 번째 장입니다.

살구꽃이 피면 씨를 뿌리는 때라는 농사의 시간 감각과, 꽃이 피면 무엇을 하겠다는 사람의 약속이 제목 하나에 겹쳐 있습니다. 말줄임표가 그 뒤를 비워둡니다.

전정호, 〈살구꽃피면〉, 목판화·종이, 40x30cm, ₩500,000
전정호, 〈살구꽃피면〉, 목판화·종이, 40x30cm, ₩500,000
  • 40x30cm · 목판화, 종이 · 2021 · 에디션 30점 중 14번 · ₩500,000
  • 작품 페이지 →

두 점을 나란히 놓으면 밥의 앞과 뒤가 됩니다. 한쪽은 씨를 뿌리는 장면이고, 한쪽은 그 밥을 먹는 장면입니다. 크기도 값도 같으니 한 점만 고르실 이유는 사실 없습니다. 전정호 작가 페이지에서 두 작품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미술사에서의 자리

전정호를 어디에 놓을지는 비교적 분명합니다. 1980년대 광주에서 시작된 민중미술의 현장 계열, 그중에서도 걸개그림과 목판화를 다루는 쪽입니다.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민중미술 15년전: 1980~1994》에 참여했고, 2013년 광주시립미술관의 《80년대 광주 민중미술》과 2024년 같은 미술관의 《새겨찍은 시대정신》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다만 그를 1980년대에만 고정하면 절반만 읽는 셈입니다. 2020년의 탈핵, 2021년의 하의3도와 환경, 2022년의 섬 역사, 2024년의 동학, 2026년의 탈핵·동학·노동으로 이어지는 목록은 대상이 계속 바뀐 기록입니다. 바뀌지 않은 것은 방식입니다. 벌어지고 있는 일이 있는 자리로 가서, 그 자리의 이야기를 판에 새기는 것.

《저항으로서 민중미술》이라는 베를린 전시 제목이 이 점을 잘 요약합니다. 저항이 주제가 아니라, 저항 '으로서'의 미술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전정호가 씨앗페에 두 점을 낸 이유는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40년 동안 걸개그림과 판화로 현장을 따라다닌 작가가 이 구조에 참여하는 일에는 설명이 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새겨온 것이 대체로 "사람들이 함께 무엇을 되찾는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하의3도 연작이 350년에 걸친 공동의 싸움이었던 것처럼요.

전정호를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순서를 이렇게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밥〉의 손을 보십시오. 숟가락을 쥔 손과 그릇을 받친 손, 두 손에 파인 선의 굵기가 다릅니다. 다음으로 〈살구꽃피면〉의 그릇 안쪽을 보십시오. 그릇 안이 밭으로 바뀌는 자리가 이 작가의 상상력입니다. 그리고 두 화면의 흰 여백을 비교해 보십시오. 한쪽의 여백은 아무것도 없는 배경이고, 다른 쪽의 여백은 밭입니다.

"나는 '밥'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평론가 김종길이 그의 연작을 읽어낸 문장입니다. 씨앗페에 나온 두 점은 바로 그 세상의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전정호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 두 점 보기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함께 읽으면 좋은 글들을 소개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전정호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전남 신안 하의도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조선대학교 미술대학과 같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한 민중미술가입니다. 걸개그림과 목판화로 현장을 기록해 왔고, 현재 생명평화미술행동 회원이자 아시아목판화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1987년 걸개그림 사건은 무엇인가요? A. 1987년 조선대 미술패 공동작업으로 이상호와 함께 걸개그림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를 제작한 일로 두 사람이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표현물 제작) 혐의로 구속된 일을 말합니다. 여러 매체가 두 사람을 미술인 최초의 국가보안법 사건 당사자로 기록합니다. 원본은 압수돼 소각됐고, 2005년에 다시 제작됐습니다.

Q. 어떤 작업이 공동작업이고 어떤 것이 단독 작업인가요? A.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1987)는 이상호와의 공동작업이고, 베를린 《저항으로서 민중미술》(2024)과 광주시립미술관 《응답하라 1987》(2017)도 두 사람의 2인전입니다. 반면 개인전 《조선의 아침》(2010)과 《바다를 건넌 사람들》(2022), 하의3도 연작판화 85점은 단독 작업입니다. 1980년대 걸개그림 목록은 광주미술문화연구소 자료가 "공동작업 포함"으로 묶어 적고 있습니다.

Q. 《바다를 건넌 사람들》은 어떤 전시인가요? A. 2022년 광주 은암미술관과 신안 저녁노을미술관에서 연 개인전으로, 전남 신안군 하의3도 농민들이 조선 후기부터 해방까지 350년에 걸쳐 벌인 농지 탈환의 역사를 연작판화 85점으로 새겼습니다. 2019년부터 약 4년에 걸쳐 작업한 목판화이고, '봉건권력과의 투쟁'·'일제강점기 농토 탈환투쟁'·'미군정시기 농민항쟁'·'간척, 바다와의 싸움'·'밥 시리즈' 다섯 갈래로 구성됐습니다(남도일보).

Q. 왜 '밥'이 계속 나오나요? A. 미술평론가 김종길은 2022년 개인전 서문에서 "전정호가 〈하의도 7·7농민항쟁〉 연작판화로 보여주고자 한 것"을 "'밥' 세상"이라고 읽었습니다. 그는 항쟁사 연작과 별도로 밥 작품 여덟 점을 제작했다고도 적었습니다. 땅을 되찾는 싸움의 목적이 결국 밥이라는 독해입니다.

Q. 씨앗페에 나온 전정호 작품은 몇 점이고 가격은? A. 두 점이고 각각 ₩500,000입니다. 〈밥〉(2021, 목판화·종이, 30x37cm)과 〈살구꽃피면〉(2021, 목판화·종이, 40x30cm)입니다. 〈살구꽃피면〉은 30점을 찍은 에디션 가운데 14번입니다.

Q. 전정호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전정호는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관련 매거진

씨앗페

공유하기

새 작품과 이야기, 메일로 받아보세요

새 작품 소식, 작가 이야기, 상호부조 기금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구독하기를 누르면 이메일 수집·발송(뉴스레터 목적)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돼요. 개인정보처리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