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여 권의 책에 그림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풍자 카툰 작가 박향미. 씨앗페에 들어온 해바라기 두 점은 꽃 한 송이 안에 밭과 바다를 통째로 옮겨 놓았습니다.
박향미 — 해바라기 한 송이 안에 마을을 그려 넣는 사람

멀리서 보면 해바라기 한 송이입니다. 파란 바탕에 노란 꽃잎이 화면 밖으로 밀려날 만큼 크게 피어 있고, 아래쪽 귀퉁이에 초록 잎이 몇 장 붙어 있습니다.
가까이 가면 그림이 바뀝니다. 씨앗이 박혀 있어야 할 꽃판 안쪽이 통째로 밭입니다. 배추밭 고랑이 줄지어 뻗어 있고, 그 옆으로 대파와 옥수수가 서 있습니다. 가운데에는 가마솥이 걸려 있고 앞치마를 두른 사람이 솥뚜껑을 열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아이가 수레에 고구마를 싣고, 다른 쪽에서는 누군가 배추를 한 아름 안고 걸어 나옵니다. 위쪽 절반은 누렇게 익은 논입니다.
꽃 한 송이 안에 마을 하나가 들어앉아 있습니다. 작가가 이 작품에 붙인 설명은 짧습니다.
"희망을 상징하는 해바라기와 그 씨앗은 생명의 근원이다. 생명의 근원이 되는 만물의 태어남과 수확의 과정을 땅을 중심으로 그림." — 박향미, 씨앗페 출품작에 붙인 작업 노트
씨앗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말을 문장으로 설명하는 대신, 씨앗 자리에 실제로 먹을 것이 자라는 장면을 그려 넣은 것입니다.
150여 권의 책에 그림을 그린 사람
박향미는 오랫동안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광주일보와 전남일보가 모두 확인한 이력에 따르면, 그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어린이 동화책과 실용서 등 150여 권에 그림을 그렸으며 한겨레·내일신문·여성신문에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습니다.
전남일보는 그의 출발점을 좀 더 자세히 전합니다. 광주 출신이고, 중학교 2학년 때 5·18을 겪었으며, 서울에서 미대를 졸업했다는 것. 회화를 전공했지만 "스토리가 있는 그림을 추구하다 보니 일러스트, 카툰, 만화 등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고 적었습니다(2023년 1월).
한 장으로 끝나는 그림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은 그림 쪽으로 계속 움직였다는 뜻입니다. 씨앗페에 들어온 해바라기 두 점이 그 성향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꽃을 그리되 꽃의 형태만 그리지 않고, 그 안에 일어나는 일을 그립니다.
카툰이라는 자리
2023년 1월, 박향미의 풍자 카툰전 《세상이 이상해》가 광주 동구 오월미술관에서 열렸습니다. 같은 달 동구 갤러리27번가에서도 같은 제목의 개인전이 이어졌습니다. 오월미술관 전시에는 카툰 20여 점이, 갤러리27번가 전시에는 50여 점이 걸렸습니다.
전시는 두 개의 묶음으로 구성됐습니다. 첫 묶음은 선거 뒤에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의 일상 회복을 응원하는 그림들이었고, 두 번째 묶음은 한 세대의 성장기를 다룬 카툰들이었습니다. 전남일보는 두 번째 묶음이 1970년대 젊은이들의 고된 삶을 "카툰으로 경쾌하게 담아냈다"고 전했습니다.
작가가 이 작업을 설명하며 쓴 말이 몇 차례 인용됐습니다.
"예술가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위트와 유머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잠시 맑게 하는 정신 비타민은 쏘아올릴 수 있다." — 광주일보, 2023년 1월 16일
전시가 끝날 무렵 그는 같은 비유를 한 번 더 썼습니다.
"2023년에도 나는 작은 비타민 카툰을 쏘아 올릴 것이다. 누군가 위안받길 바라며, 마음 따뜻하게 함께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림 그리는 나도 위안받고 이 시대를 잘 버티며 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 전남일보, 2023년 1월
'비타민'이라는 낱말이 이 작가의 태도를 요약합니다. 약이 아니라 비타민입니다. 병을 고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데 보탬이 되겠다는 것이고, 남뿐 아니라 자기도 그 보탬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전시에는 사회적 사건을 다룬 그림도 포함됐습니다. 남도일보는 이태원 참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 함께 걸렸다고 전했습니다. 작가가 씨앗페에 제출한 소개에도 2023년에 이태원 희생자를 기억하는 그림을 기획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작가는 자기 작업의 재료를 이렇게 정리해 두었습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골목에서 직접 보고 겪은 것을 토대로 오래 곁에 두고 싶은 그림을 그립니다." 앞의 절반은 취재에 가깝고, 뒤의 절반은 회화에 가깝습니다. 씨앗페에 들어온 세 점이 그 두 절반에 나뉘어 놓여 있습니다.
씨앗페 출품작 세 점 읽기
세 점 가운데 둘은 2024년의 해바라기 회화이고, 하나는 2022년의 카툰 작업입니다. 매체가 다르고 값의 폭도 넓습니다.
〈땅해바라기〉 — 2024년, 광목천에 아크릴, 53x40cm
앞에서 본 그림입니다. 지지체가 캔버스가 아니라 광목천이라는 점을 먼저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불 홑청이나 행주로 쓰이던 그 천 위에 밭과 가마솥을 그렸습니다. 재료가 이미 살림의 물건입니다.
화면을 읽는 순서도 정해져 있습니다. 노란 꽃잎 → 꽃판 → 밭고랑 → 사람. 크게 시작해서 점점 작아지고, 마지막에 가장 작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배추를 안은 사람, 솥을 젓는 사람, 수레를 미는 사람. 모두 무언가를 거두는 중입니다.

- 53x40cm · 광목천에 아크릴 · ₩1,500,000
- 작품 페이지 →
〈바다해바라기〉 — 2024년, 광목천에 아크릴, 53x40cm
같은 해, 같은 크기, 같은 재료의 짝입니다. 구성도 같습니다. 다만 꽃판 안이 밭이 아니라 바다입니다.
화면 위쪽 멀리 초록 섬이 보이고, 그 앞으로 파도가 밀려옵니다. 붉은 돛을 단 작은 배 한 척이 물살을 가르고, 가운데에서는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낚싯줄에 걸려 수면 위로 솟구칩니다. 오른쪽 바위에서는 누군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다른 사람은 사진을 찍습니다. 아래쪽 모래밭에서는 아이들이 조개를 줍고, 노란 모자를 쓴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아 무언가를 캐고 있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도 끼어 있습니다.
작가의 설명은 한 문장입니다. "희망의 해바라기와 씨앗 부분에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바다 이야기를 그려 넣었다." 땅과 바다, 두 개의 근원을 같은 꽃 안에 하나씩 넣어 둔 셈입니다.

- 53x40cm · 광목천에 아크릴 · ₩1,000,000
- 작품 페이지 →
〈이재명의 어린시절〉 — 2022년, 컴퓨터그래픽, 42x29.7cm(A3)
카툰 작업입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가난한 어린시절을 카툰으로 코믹하고 서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앞 장에서 본 전시의 두 번째 묶음, 1970년대 한 소년공의 성장기를 다룬 카툰 연작이 이 작업의 계통입니다. 박향미는 2022년 그 소년공 시절을 카툰으로 그려 화제가 됐다고 광주일보가 전했고, 작가 본인의 이력에는 그해 카툰집 『흙수저 이재명의 꿈』을 펴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책은 이후 절판됐고, 전시에는 수록작 가운데 일부가 다시 걸렸습니다.
A3 크기의 컴퓨터그래픽 작업이고, 값은 ₩200,000입니다. 세 점 가운데 가장 작고 가장 부담이 적습니다.

- 42x29.7cm(A3) · 컴퓨터그래픽 · ₩200,000
- 작품 페이지 →
세 점을 나란히 놓으면 한 사람이 그림으로 하는 두 가지 일이 보입니다. 하나는 이야기를 압축해 한 칸에 넣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이야기를 꽃 한 송이 안에 펼치는 일입니다. 박향미 작가 페이지에서 세 점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삽화가의 눈으로 그린 회화
해바라기 두 점을 보면 이 작가가 오래 해 온 일이 화면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동화책 삽화는 한 장면 안에 정보를 여러 겹 넣어야 합니다. 주인공이 무엇을 하는지, 주변에 누가 있는지, 배경이 어떤 곳인지를 한 장으로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땅해바라기〉의 꽃판 안이 정확히 그 방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인물마다 다른 동작을 하고 있고, 각각이 작은 이야기 한 토막씩을 맡습니다.
다른 점은 액자입니다. 삽화에는 글이 곁에 있어 그림이 설명을 나눠 가집니다. 이 그림에는 글이 없고, 대신 해바라기라는 형태가 글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꽃 한 송이가 화면을 묶어 주기 때문에 안쪽이 아무리 복잡해도 흩어지지 않습니다.
광목천이라는 재료도 같은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매끈하게 도포한 캔버스와 달리 올이 굵게 드러나는 천이라, 노란 꽃잎 면에도 결이 비칩니다. 인쇄물로 돌아다니던 그림이 물성을 얻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씨앗페에 작품을 낸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박향미는 그 구조에 작품 세 점으로 참여했습니다.
"누군가 위안받길 바라며, 마음 따뜻하게 함께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자기 작업의 이유를 적어 둔 작가입니다. 동료 예술인의 사정을 덜자는 자리에 그림을 내놓는 일은 그 문장의 연장으로 읽힙니다.
처음 그림을 들이려는 분께는 해바라기 두 점을 권합니다. 크기가 같고 짝을 이루는 구성이라 나란히 걸면 한 벽이 완성되고, 한 점만 골라도 이야기가 닫히지 않습니다. 부엌이나 식탁 쪽이라면 〈땅해바라기〉, 아이 방이나 거실이라면 〈바다해바라기〉 쪽이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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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박향미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카툰 작가입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어린이 동화책과 실용서 등 150여 권에 그림을 그렸으며 한겨레·내일신문·여성신문에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습니다(광주일보·전남일보, 2023년 1월). 회화와 일러스트, 카툰을 넘나들며 작업해 왔습니다.
Q. 《세상이 이상해》는 어떤 전시였나요? A. 2023년 1월 광주 동구 오월미술관과 갤러리27번가에서 열린 박향미의 풍자 카툰 개인전입니다. 오월미술관에는 20여 점이, 갤러리27번가에는 50여 점이 걸렸습니다. 전시 취지에 대해 작가는 "예술가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위트와 유머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잠시 맑게 하는 정신 비타민은 쏘아올릴 수 있다"(광주일보, 2023년 1월 16일)고 말했습니다.
Q. 해바라기 두 점은 어떻게 다른가요? A. 크기(53x40cm)와 재료(광목천에 아크릴), 제작 연도(2024년)가 같고 구성도 같습니다. 꽃판 안에 들어간 내용이 다릅니다. 〈땅해바라기〉는 밭과 논, 수확하는 사람들이고 〈바다해바라기〉는 바다와 배, 조개를 줍는 사람들입니다.
Q. '광목천에 아크릴'은 어떤 재료인가요? A. 광목은 굵게 짠 면직물로, 살림에서 흔히 쓰이던 천입니다. 도포한 캔버스보다 올이 굵게 드러나 색을 올려도 결이 비칩니다. 박향미는 이 천 위에 아크릴로 해바라기 두 점을 그렸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박향미 작품은 몇 점이고 어떤 것인가요? A. 세 점입니다. 〈땅해바라기〉(2024, 광목천에 아크릴, 53x40cm), 〈바다해바라기〉(2024, 광목천에 아크릴, 53x40cm), 〈이재명의 어린시절〉(2022, 컴퓨터그래픽, 42x29.7cm).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Q. 박향미 작품 가격대는? A. 〈땅해바라기〉가 ₩1,500,000, 〈바다해바라기〉가 ₩1,000,000, 〈이재명의 어린시절〉이 ₩200,000입니다.
Q. 박향미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박향미는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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