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에서 노동자와 민초의 얼굴을 그려온 화가 신미란. 감 따는 손에서 세월호의 바다까지, 그가 30년 가까이 같은 자리에 두고 온 질문을 씨앗페 출품작 세 점으로 따라 읽습니다.
신미란 — 감나무 아래에서 광장까지, 곁에 있는 사람을 그리는 화가

감 두 알이 놓여 있습니다. 가로 35센티미터, 세로 27센티미터의 작은 화면입니다. 잎이 달린 가지째 뉘어 놓았고, 배경은 짙푸른 하늘빛, 바닥은 연둣빛입니다. 과일의 표면에는 붉은 주홍과 노랑이 뒤섞여 있고, 오른쪽 아래에 2015라는 연도와 서명이 적혀 있습니다.
정물화로 보아도 무방한 그림입니다. 그런데 작가가 이 그림에 붙여 둔 글을 읽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10대부터 온갖 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결혼을 하고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 몸만 믿고 살아 오신 60대 젊은 할머니가 있다. 여름에는 쌀농사, 겨울에는 수박하우스 이모작을 한다. 사계절 돌본 단감 과수원 수입이 고작 300만원이라는데, 그게 어디냐며 아픈 허리 동여매고 일을 하신다." — 신미란, 씨앗페 출품작에 붙인 작업 노트
그리고 같은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습니다.
"나는 몇 년 전 부터 해마다 가을이면 단감 과수원에 가서 노동을 한다. 일손이 빠른데다 몸을 아끼지 않고 일을 한다며 해마다 불러 주신다네. 두 여자는 말없이 감을 따며 서로 마음을 온전히 나눈다."
그림을 그리러 간 것이 아니라 일을 하러 간 자리에서 나온 그림입니다. 이 한 문장이 신미란이라는 화가를 설명하는 가장 짧은 방법입니다. 대상을 관찰하러 가지 않고, 그 자리에 함께 있다가 그립니다.
창원에 사는 화가
신미란은 1971년에 태어났습니다. 창원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했고, 화실 '푸른별미술'을 운영하며 전시기획과 미술교육을 병행해 왔습니다. 2013년 부산 프랑스문화원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개인전 《마른 풀들의 노래》의 전시 페이지에 그의 약력이 그렇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 개인전의 소개문은 당시 작업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앙상한 가지, 눈 덮인 들녘, 황량한 들판은 보는 것 만으로도 시리다. 하지만 곧 봄이 오고 새순들이 돋아 우리와 자연에 풍요로움을 줄 것이다. 작가는 황량한 캔버스 속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희망을 찾고자 했다." 마른 풀을 그리면서 마른 풀만 그리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활동의 중심은 줄곧 경남이었습니다. 2022년에는 창원민족미술인협회 지부장으로 협회전 《내 안의 종횡무진》을 주최했고(지리산힐링신문, 2022년 9월 2일), 2025년에는 경남민족미술인협회 지회장으로 창립 20주년 회원전 《다시, 20년》을 열었습니다(경남도민일보, 2025년 9월 8일). 지금은 민족미술인협회 창원지부 회원으로 작업하며, 개인전 네 차례와 국내외 그룹전 200여 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주년 전시에서 그가 남긴 말은 이 단체와 자기 작업을 함께 설명합니다.
"예술은 대사 없는 침묵으로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수많은 장면의 진실을 표현하고 때로는 나누는 소통의 창구이기도 하다. 사회 변혁의 에너지를 함의하고 새로운 길을 재촉한다. 녹록지 않은 예술인의 삶이지만 지체하거나 멈출 수 없는 이유다." — 경남도민일보, 2025년 9월 8일
"녹록지 않은 예술인의 삶." 이 말은 뒤에서 다시 나옵니다.
작업실에서 나온 얼굴들
2021년 여름, 경남도민일보 정현수 기자가 창원시 용호동 작업실로 신미란을 찾아갔습니다. 그 기사에는 이 화가의 작업 방식이 구체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작업실 한쪽에 걸린 대형 그림 속에는 두툼한 빨간 겨울옷을 껴입은 할머니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앉아 있었습니다. 반송시장 노점상 할머니였고, 제목은 〈한겨울, 깊은 상념〉이었습니다. 왜 이 사람을 그렸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 반송시장에서 할머니 모습을 보고는 서민의 애잔함도 있지만 그 가운데 힘든 겨울을 견디며 극복해나가는 강인함을 보았어요. 그런 양면성을 지닌 게 우리 서민의 모습이 아닐까요." — 경남도민일보, 2021년 8월 9일
같은 작업실에는 용접된 철판 가운데 난 네모난 구멍 속에서 보호대를 쓴 용접공이 가스용접을 하고 있는 그림도 있었습니다. 폐지를 수레에 가득 싣고 나르는 할머니, 전태일 열사를 그린 그림도 나왔습니다. 대상은 다르지만 고르는 방식은 하나입니다. 가장 먼저 지치는 자리에 있는 사람.
같은 기사에서 그는 오래전 개인전 작업노트를 다시 읽어 줍니다.
"들판과 소외된 후미진 대상들에 천착해 온 것은 우연한 선택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내면과 분리될 수 없는 심상표현의 대표적인 은유물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는 지점'. 감 따는 손을 그린 화가가 그 과수원에서 함께 일했다는 사실과 이 문장은 같은 이야기입니다.
마을로, 화첩으로, 벽으로
신미란의 작업은 전시장 안에만 있지 않습니다.
2021년 1월에는 마산 성호동 마을재생 프로젝트 '성호창발'을 통해 그림책 《성호화첩》을 기획해 냈습니다. 그림은 신미란이 그리고, 글은 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 윤은주 관장과 창동아지매 김경년 씨가 맡았습니다. 책을 펼치면 성호초등학교가 나오고, 위쪽에는 현재 모습이 컬러로, 아래쪽에는 과거 모습이 흑백으로 배치되어 하나의 정경을 이룹니다. 그 위로 이 학교 출신 독립운동가 김명시 장군이 백마를 타고 달려옵니다.
책 속 추산정 그림에는 이런 장치가 숨어 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과녁의 빨간 원에서 피가 흐르고 있어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가 품은 민족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해봤어요. 하지만 이 장치는 눈에 잘 띄지 않아 아는 사람만 알아요. 하하하." — 경남도민일보, 2021년 8월 9일
《성호화첩》은 양면으로 펼쳐 보는 그림책입니다. 한쪽에서 넘기면 성호동의 역사가, 반대쪽 《城湖話畵》에서 넘기면 그 동네에서 오래 살아온 주민 다섯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구점을 하는 1941년생, 연탄장사를 하며 뿌리내린 여든여섯 살 주민, 1988년부터 지금까지 이발관을 지키는 사람. 역사책이 기록하지 않는 이름들입니다.
2026년 들어서는 매체에 직접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통일뉴스에 [신미란의 그림읽기]를 연재하며 자신과 동료의 그림을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9월에 실린 3회에서는 경남 함안 좌촌마을의 낡은 외벽에 나비 벽화를 그린 과정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짧게나마 들은 옛이야기 속에서 벽화의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중략) 다들 '이런 벽에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했지만, 예술가의 눈에는 새로운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 통일뉴스, 2026년 9월 18일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벽에 그림을 그리는 일. 이 화가가 반복해 온 동작이 거기에도 있습니다.
재난과 광장 앞에서
2014년 세월호 참사 뒤, 경남민족미술인협회는 참사를 주제로 한 협회전 《천개의 바람》을 창원 3·15 아트센터에서 열었습니다. 당시 이 전시를 보도한 경남도민일보 기사는 출품작들을 한 점씩 소개하면서 신미란의 작품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신미란 화가의 '최후의 보루'는 아슬아슬한 난간에 앉아 있는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 담겼다. 공포에 질리거나 무서워서 어쩔 줄 몰라하기보다는 오히려 담담하게 풀어냈다."(2014년 6월 12일)
2025년 4월에는 민족미술인협회 창원지부 회원전 《치유의 순간》에 참여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신미란이 라면 겉봉투 형식을 빌린 풍자 작업을 내놓으면서 "전시 기간 동안 10개 한정해서 나누어 줄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습니다(2025년 4월 11일). 같은 전시에 그는 산청·하동 산불 현장의 아픔을 다룬 작품도 함께 냈습니다.
민중미술의 흐름 전반에서 보면 이 궤적은 낯설지 않습니다. 다만 신미란의 경우 눈에 띄는 것은 규모입니다. 그는 큰 사건을 큰 화면으로 받아내는 쪽이 아니라, 그 사건을 사는 한 사람의 크기로 줄여 그립니다. 난간에 앉은 아이 하나, 시장 좌판의 할머니 하나, 감 따는 두 여자.
씨앗페 출품작 세 점 읽기
씨앗페에 들어온 신미란의 작품은 세 점입니다. 2015년작 두 점과 2022년작 한 점. 크기는 35x27cm의 소품부터 180x80cm의 긴 화면까지 걸쳐 있고, 매체는 캔버스에 유채 두 점과 캔버스에 아크릴릭 한 점입니다.
〈두 개의 감〉 — 2015년, 캔버스에 유채, 35x27cm
앞에서 읽은 그 그림입니다. 세 점 가운데 가장 작고, 가장 조용합니다. 푸른 배경과 연둣빛 바닥 사이에 잎 달린 감 두 알이 놓여 있을 뿐입니다. 작업 노트를 모르고 보면 잘 그린 정물이고, 알고 보면 한 사람의 1년치 노동이 담긴 그림입니다. 두 해석을 다 허용한다는 점이 이 작품의 크기입니다. 서재나 침실처럼 가까이서 오래 보는 자리에 맞는 소품입니다.

- 35x27cm · 캔버스에 유채 · ₩1,200,000
- 작품 페이지 →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 2022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91x116x3cm
제목에 마침표가 찍혀 있습니다. 묻는 형식이지만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문장입니다.
화면은 분홍 바탕입니다. 위쪽에는 정장 차림의 인물들과 군복 차림의 인물이 나란히 서 있고, 그 주위로 전투기와 무인기, 미사일이 날아듭니다. 왼쪽에서는 구조물 하나가 흰 연기를 뿜으며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래쪽 절반은 층층이 짜인 초록빛 철제 구조물이 차지하는데, 그 칸 사이로 한 사람의 얼굴과 굳게 움켜쥔 주먹이 밖으로 내밀어져 있습니다. 구조물 위에는 작은 사람이 엎드려 있고, 옆에는 노란 좌석이 놓여 있습니다. 바닥에는 마른 짚이 두껍게 깔려 있습니다.
작가가 붙인 설명은 단 한 줄입니다.
"노동자의 절규, 생존,투쟁,사회,정치,외세,부조리, 부당함에 대하여" — 신미란, 씨앗페 출품작에 붙인 작업 노트
세 점 가운데 유일한 아크릴릭 작업이고, 분홍이라는 예상 밖의 바탕색이 그림의 내용과 정면으로 부딪칩니다. 그 충돌 자체가 이 작품의 장치입니다.

- 91x116x3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 ₩3,500,000
- 작품 페이지 →
〈푸른 들판〉 — 2015년, 캔버스에 유채, 180x80x3cm
세 점 중 가장 큰 화면이고, 한 변이 180센티미터에 이르는 가로로 긴 구성입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 짧은 설명을 붙였습니다.
"세월호를 뉴스로 대하며 깊은 슬픔을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 신미란, 씨앗페 출품작에 붙인 작업 노트
앞서 본 2014년 《천개의 바람》 이후로도 그가 이 사건을 계속 그려 왔다는 사실을 이 한 점이 알려줍니다. 제목은 '푸른 들판'입니다. 바다가 아니라 들판이고, 검은 들판이 아니라 푸른 들판입니다. 긴 벽면 하나를 감당하는 크기이니, 거실이나 접견 공간의 주벽을 생각하는 분께 맞습니다.

- 180x80x3cm · 캔버스에 유채 · ₩4,500,000
- 작품 페이지 →
세 점을 나란히 놓으면 이 화가가 오가는 폭이 보입니다. 과수원의 감 두 알에서 광장의 절규까지. 가장 작은 화면과 가장 큰 화면 사이에 놓인 것은 같은 관심입니다. 신미란 작가 페이지에서 세 점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지역에서 오래 한다는 것
한국 미술에서 '지역 작가'라는 말은 종종 규모의 문제로 오해됩니다. 신미란의 이력을 보면 그것이 규모가 아니라 방법의 문제임을 알게 됩니다.
그는 창원에 살면서 창원의 시장과 공장과 마을을 그렸고, 그 마을의 재생 프로젝트에 화첩으로 참여했으며, 함안의 낡은 외벽에 벽화를 그렸습니다. 협회의 지부장과 지회장을 맡아 동료들의 전시를 조직했고, 세월호와 산불처럼 그 지역을 통과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전시로 응답했습니다. 200여 회의 그룹전이라는 숫자는 유명세의 기록이 아니라 출석의 기록에 가깝습니다.
2026년에 그가 통일뉴스 칼럼에서 다룬 소재는 분단, 벽화, 마을입니다. 규모가 다른 세 가지처럼 보이지만 관심은 같습니다. 갈라진 것과 낡은 것과 잊힌 것.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씨앗페에 작품을 낸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신미란은 그 구조에 작품 세 점으로 참여했습니다.
"녹록지 않은 예술인의 삶이지만 지체하거나 멈출 수 없는 이유"라고 그는 20주년 전시에서 말했습니다. 그 문장을 자기 동료들에게 한 사람이 동료를 위해 작품을 내놓는 일에는 설명을 더 붙일 것이 없어 보입니다.
이 작가를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순서를 이렇게 잡아 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두 개의 감〉을 보십시오. 그리고 작업 노트를 읽으십시오. 정물이 노동으로 바뀌는 순간이 이 화가의 전부입니다. 그다음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를 보시면, 같은 시선이 화면을 가득 채웠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푸른 들판〉입니다. 가장 큰 화면에 가장 짧은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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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신미란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71년에 태어나 창원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한 화가입니다. 창원에 거주하며 지역의 풍경과 노동자의 얼굴, 민초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 왔습니다. 개인전 네 차례와 국내외 그룹전 200여 회를 기록하고 있으며, 화실 '푸른별미술'을 운영하며 전시기획과 미술교육을 병행합니다.
Q. 어떤 단체에서 활동하나요? A. 민족미술인협회 창원지부 회원입니다. 2022년에는 창원민족미술인협회 지부장으로 협회전을 주최했고(지리산힐링신문, 2022년 9월 2일), 2025년에는 경남민족미술인협회 지회장으로 창립 20주년 회원전 《다시, 20년》을 열었습니다(경남도민일보, 2025년 9월 8일).
Q. 《성호화첩》은 무엇인가요? A. 2021년 1월 마산 성호동 마을재생 프로젝트 '성호창발'을 통해 제작된 그림책입니다. 그림은 신미란이, 글은 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 윤은주 관장과 창동아지매 김경년 씨가 맡았습니다. 양면으로 펼쳐 보는 형식으로, 한쪽에는 성호동의 역사가, 반대쪽에는 그곳에서 오래 살아온 주민 다섯 사람의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Q. 최근에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A. 2026년부터 통일뉴스에 [신미란의 그림읽기]를 연재하며 그림을 글로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9월에는 경남 함안 좌촌마을의 외벽에 그린 나비 벽화 작업 과정을 직접 기고했습니다(통일뉴스, 2026년 9월 18일).
Q. 씨앗페에 나온 신미란 작품은 몇 점이고 어떤 것인가요? A. 세 점입니다. 〈두 개의 감〉(2015, 캔버스에 유채, 35x27cm),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91x116x3cm), 〈푸른 들판〉(2015, 캔버스에 유채, 180x80x3cm).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Q. 신미란 작품 가격대는? A. 씨앗페에 나온 세 점은 〈두 개의 감〉 ₩1,200,000,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3,500,000, 〈푸른 들판〉 ₩4,500,000입니다. 화면 크기 순서와 같습니다.
Q. 신미란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신미란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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