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미술을 배우고 철학을 전공한 화가가 옻칠과 유채로 원과 사각형만 남겼습니다. 둘 이상이 마주 볼 때에만 무엇이 보인다는 생각 하나로 20년을 그려온 양운철의 화면을 따라 읽습니다.
양운철 — 옻칠로 그린 두 개의 하늘, 마주 보아야 보이는 것들

화면에 있는 것은 둘뿐입니다. 하늘색 바탕, 그리고 살구빛 반원 두 개. 위쪽 반원은 아래를 향해 둥글게 파여 있고 아래쪽 반원은 위를 향해 부풀어 있습니다. 둘은 닿지 않고, 한가운데에서 얇은 틈을 두고 멈춰 섭니다.
가까이 보면 두 반원이 같은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위쪽 면은 표면 전체가 좁쌀처럼 오돌토돌하게 일어나 빛을 잘게 부수고, 아래쪽 면은 붓자국만 얕게 남은 채 매끈합니다. 같은 색, 같은 곡선인데 만져질 감촉이 다릅니다. 닮았으나 같지는 않은 것 둘이 서로를 향해 서 있는 상태 — 양운철의 작업을 한 장면으로 줄이면 대체로 이 모습입니다.
이 글은 그 화면이 어떤 생각에서 나왔는지를, 작가가 배워온 길과 함께 읽습니다. 씨앗페에는 그의 작품 세 점이 들어와 있고, 셋은 2022년부터 2026년까지 4년에 걸쳐 있습니다.
종교미술에서 철학으로
양운철은 인천가톨릭대학교 전통종교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전문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를 마쳤습니다. 작가가 씨앗페에 제출한 이력과 소속 화랑인 갤러리 빛(Gallery Vit)의 작가 페이지가 같은 내용을 싣고 있습니다.
두 전공을 나란히 놓으면 이후의 작업이 조금 덜 낯설어집니다. 전통종교미술은 재료와 기법의 학문입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만드는가, 그 물성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다룹니다. 철학은 그 반대편에서 묻습니다 — 무엇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금 그의 화면은 정확히 그 두 질문이 겹치는 자리에 있습니다. 옻칠이라는 오래된 재료를 쓰면서, 그 위에 존재에 관한 물음을 올립니다.
개인전은 넉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2008년 일본 도쿄 갤러리호시에서 《clean, Cloud》, 2013년 서울 갤러리더케이에서 《empty interval》, 2020년 양출서울에서 《c ; summer》, 2024년 갤러리오우도에서 《c ; stand up for yourself, ㅁ》. 제목만 훑어도 시기별로 무엇이 관심사였는지가 보입니다. 구름과 빈 간격에서 출발해, 언젠가부터 제목이 알파벳 한 글자와 한글 자모 한 글자로 줄어듭니다.
레지던시는 2008년 강원도 하대리 여름숲속미술제, 2009년 광주시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에 참여했습니다. 광주시립미술관 전시 자료에는 〈Within〉과 〈Without〉 두 점이 그의 출품작으로 올라 있습니다. 안과 밖 — 이 역시 둘을 나란히 놓고 보게 만드는 제목입니다.
국외 단체전은 이른 시기부터 이어졌습니다. 2008년 중국 베이징 좌우미술관 《99Tents, 99 Dreams, One World》, 2009년 벨기에 앤트워프 Love2arts Gallery 《THE FORGOTTEN TIME》, 2022년 캐나다 몬트리올 Edition 개관전, 같은 해 인도네시아 메트로 《Selasart International Visual Art Exhibition》. 2020년에는 일본 도쿄 신와옥션의 트라이세라 프로모션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작업의 문법 — 상대(相對)와 유비(類比)
양운철의 화면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단어 두 개는 그의 화랑이 정리해 두었습니다. 상대(相對)와 유비(類比)입니다.
갤러리 빛의 작가 소개는 이렇게 씁니다. 그에게 세계는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이루어진 곳이 아니라 처음부터 둘 이상의 존재가 함께 있는 공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마주하고 인식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는 둘 이상이 서로 마주하는 상태를, '유비'는 그 존재들이 서로 닮았으면서도 각자의 차이를 지닌 채 존재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같은 생각을 작가 자신의 문장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씨앗페 출품작에 붙인 작업 노트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제 작업은, 여기에 저와 더불어 누가, 무엇이, 어떻게 그러한 모습으로 있을 수 있냐는 물음에 대한 대화입니다. 누가, 무엇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있다는 것은, 둘 이상 있어 서로 마주하기에 상대적이고, 서로 닮고도 달라 유비적입니다."
'대화'라는 단어를 눈여겨볼 만합니다. 작가는 자기 작업을 진술이 아니라 대화라고 부릅니다. 한쪽이 말하고 끝나는 구조가 아니라 마주 선 둘 사이에서만 생기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화면에 두 형태가 거리를 두고 놓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만 있으면 크기도 색도 비교할 대상이 없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이 문법은 두 갈래 연작으로 갈라집니다. 갤러리 빛의 설명에 따르면, 〈c〉 연작에서는 닮았지만 서로 다른 원형과 색면이 화면 위아래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주 서며, 같은 원형도 크기와 주변의 색에 따라 다르게 인식됩니다. 〈ㅁ〉 연작에서는 하나의 색이 여러 겹으로 중첩되며 바깥으로 갈수록 농도를 달리합니다. 같은 색조차 무엇과 함께 놓이고 어떻게 마주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구성입니다.
재료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의 캔버스에는 유채와 함께 옻칠이 올라갑니다. 갤러리 빛은 그가 "존재와 우주의 근원적 질서를 기하학적 형상과 옻칠의 물성으로 탐구"한다고 정리합니다. 앞서 본 두 반원의 감촉 차이 — 한쪽은 좁쌀처럼 일어나고 한쪽은 매끈한 — 가 화면 안에서 유일하게 '만져지는' 차이로 남는 것도 이 재료 때문입니다. 색과 형태를 최소한으로 줄인 화면에서, 표면의 물성이 마지막 변별 수단이 됩니다.
2026년 2월 갤러리 빛에서 열린 2인전 《Minimal x Puffy》의 소개글은 그의 출발점을 한 문장으로 옮겼습니다. 그가 "누가, 무엇이,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작업을 시작하며, 존재를 혼자가 아닌 '마주함' 속에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보는 이와 보이는 것, 나와 타자는 서로를 전제로 하며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고 이 글은 덧붙입니다.
공간을 장소로 바꾸는 일
작업이 늘 캔버스 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전시 아카이브 아트허브의 기록에 따르면, 2023년 8월 26일부터 9월 10일까지 서울 성동구 장안평중고차시장 2층의 피그헤드랩(Pighead Lab)에서 그의 개인전 《공,장,상 / 간,소,상》이 열렸습니다. 예약제로 운영된 전시였습니다.
전시 서문은 작가가 직접 쓴 것으로 실려 있고, 문장이 대화체입니다.
"비어 있지. / 누구도, 무엇도 없는 곳, 공간이라고 해. / 그런 곳에 / 우리가 관계할 게 있도록 하려고 해. (······) / 먼저 내가 이곳에 있을게. / 그리고 너도 이곳에 와." — 《공,장,상 / 간,소,상》 전시 서문, 아트허브 아카이브
제목의 여섯 글자는 '공간·장소·상상'을 앞글자와 뒷글자로 갈라놓은 것입니다. 빈 공간이 대화를 거쳐 장소가 된다는 말을, 낱말 자체를 둘로 쪼개서 보여줍니다. 함께 실린 '작가와의 대화' 순서 다섯 가지도 같은 방향입니다 — 공간이 어디 있는지 보기, 안과 밖을 살펴보기, 무엇으로 어떻게 전시하면 좋을지 대화하기, 그 상상을 말이나 글로 기록하기, 함께 전시 만들어 가기.
캔버스에서 두 형태를 마주 세우던 사람이, 전시장에서는 자기와 관객을 마주 세웠습니다. 화면의 문법과 전시의 문법이 같습니다.
화면 바깥으로 나간 그림들
양운철의 작품은 미술관과 화랑 바깥에서도 제법 눈에 띄었습니다.
2023년 1월, 커피 프랜차이즈 탐앤탐스가 매장 세 곳에서 연 전시에 그의 〈c ; before spring, winter〉가 걸렸습니다. 메트로신문과 문화경제가 같은 내용을 전하며, 그를 "대비와 유사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의 입체성을 철학적으로 고찰한" 작가로 소개했습니다. 대비와 유사성 — 상대와 유비를 다른 말로 옮긴 표현입니다.
2021년 11월에는 인터컨티넨탈 서울 34층 클럽라운지의 자선 아트전시에 참여했습니다. 아시아경제와 파이낸셜신문이 함께 다뤘고, 2주마다 작품을 교체하며 모바일 옥션으로 구매에 참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12월 1일부터 15일까지의 주제는 '따뜻한 포옹'이었습니다.
2023년 10월에는 서울 갤러리그라프에서 방석영·오흥배와 함께 3인전 《Eternal Moments》를 열었습니다. 아트&컬처의 전시 소개는 세 작가의 공통점을 '본질을 향해 끝없이 순간을 찾고 기록하는 과정'으로 묶으며, 양운철에 대해서는 "차이에 기인하는 본질에 천착하며 그를 캔버스 위에 얹어낸 순간의 색(色)으로 표현한다"고 적었습니다. 같은 매체는 그를 1979년생으로 소개합니다.
씨앗페 출품작 세 점 읽기
씨앗페에 들어온 양운철의 작품은 세 점입니다. 모두 소품이고, 〈c〉 연작 둘과 〈ㅁ〉 연작 하나로 나뉩니다. 앞에서 읽은 두 갈래의 문법을 한 화면씩 확인할 수 있는 구성입니다.
〈c ; 작은하늘〉 — 2026년, 캔버스에 옻칠·유채, 34.8x27.3cm
앞머리에서 본 그 화면입니다. 하늘색 바탕 위에 살구빛 반원 둘이 위아래로 마주 서고, 위쪽은 오돌토돌하게 일어난 표면, 아래쪽은 매끈한 표면입니다. 같은 색과 같은 곡선을 가진 둘이 촉감으로만 갈라지는 장면이라, 〈c〉 연작이 말하는 '닮고도 다름'을 가장 짧은 거리에서 보여줍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 이런 노트를 붙였습니다.
"하늘의 모습입니다. / 자신에게 빛이 다르게 푸르고도 붉은 두 모습을 가졌지만 두 모습 모두 하늘이라고 합니다. / 자신의 키 만큼 마주하는 그 높이 우리는 하늘에 있습니다." — 작가가 씨앗페 출품작에 붙인 작업 노트
푸른 바탕과 붉은 기운이 도는 반원이 둘 다 하늘이라는 말입니다. 그림 앞에 서면 반원 사이의 틈이 눈높이쯤에 놓입니다.

- 34.8x27.3cm · 캔버스에 옻칠, 유채 · 2026년 · ₩1,000,000
- 작품 페이지 →
〈ㅁ〉 — 2024년, 캔버스에 옻칠·유채, 31.8x40.9cm
〈c〉와 정반대의 구성입니다. 형태가 둘로 나뉘지 않고, 연한 노란빛 테두리 안쪽에 살구빛 사각 면이 한 겹씩 번지듯 들어앉습니다. 경계가 칼로 자른 듯 끊기지 않고 안개처럼 흐려서, 어디까지가 바탕이고 어디부터가 면인지 눈으로 딱 집기 어렵습니다. 화면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가느다란 주황색 선 하나가 수직으로 내려오다 중간쯤에서 멈추는데, 이 한 획이 없으면 화면은 방향을 잃습니다.
갤러리 빛이 정리한 〈ㅁ〉 연작의 설명 — 하나의 색이 여러 겹으로 중첩되며 바깥으로 갈수록 농도를 달리한다는 — 이 그대로 보이는 화면입니다.
이 작품에 붙은 작가의 노트는 세 줄입니다.
"지금 마음이 어떠한지 보면 좋겠습니다. / 자신의 마음에서 어떤 모습이 보이는지 알고 싶습니다. / 마주하는 몸, 작품과 어떤 모습으로 마음이 있는지 다가가 봅니다." — 작가가 씨앗페 출품작에 붙인 작업 노트

- 31.8x40.9cm · 캔버스에 옻칠, 유채 · 2024년 · ₩1,200,000
- 작품 페이지 →
〈c ; 작은 하늘〉 — 2022년, Ottchil, Oil on canvas, 33.4x24.2cm
세 점 가운데 가장 이른 작품이고, 제목이 2026년작과 거의 같습니다. 띄어쓰기 하나만 다릅니다. 구성도 같습니다 — 하늘색 바탕 위에 반원 둘이 위아래로 마주 서고, 위쪽은 점이 오돌토돌 돋은 면, 아래쪽은 매끈한 면입니다. 다만 살구빛이 2026년작보다 훨씬 짙고 반원이 화면을 더 크게 채워, 둘 사이의 틈이 좁습니다. 같은 제목을 4년 간격으로 다시 쓴 셈이니, 두 점을 나란히 놓으면 '작은 하늘'이라는 한 주제의 농도가 그 사이에 어떻게 달라졌는지가 보입니다. 판매 완료된 작품입니다.

- 33.4x24.2cm · Ottchil, Oil on canvas · 2022년 · 판매 완료
- 작품 페이지 →
세 점 모두 A4 종이만 한 크기입니다. 큰 벽을 감당하는 그림은 아니지만, 이 작가의 화면은 원래 멀리서 압도하는 쪽이 아니라 가까이서 오래 보게 만드는 쪽입니다. 책상 앞이나 복도처럼 눈높이에서 자주 마주치는 자리가 어울립니다. 양운철 작가 페이지에서 세 점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그림이 놓이는 자리
원과 사각형만 남은 화면은 언뜻 미니멀리즘 계열로 읽히기 쉽습니다. 하지만 양운철의 절제는 형식 실험의 결과가 아닙니다. 갤러리 빛의 설명대로 그의 화면에는 특정한 중심이나 위계가 없고, 서로 다른 존재들이 동등한 상태로 함께 세계를 이루어가는 모습을 최소한의 색과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무엇을 빼려고 뺀 것이 아니라, 둘이 마주 선 관계만 남기려다 보니 나머지가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그림들은 조용하지만 주장이 있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크기도 색도 옆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같은 원이 주변 색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화면을 오래 보고 있으면, 그 말이 사람 사이의 이야기로도 읽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양운철이 씨앗페에 세 점을 낸 이유는 자기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둘 이상이 마주해야 무엇이 보인다는 생각으로 20년 가까이 그려온 사람이 동료를 위해 작품을 내놓는 일은, 따로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그의 화면이 줄곧 말해온 것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 혼자 있는 것은 인식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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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양운철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인천가톨릭대학교 전통종교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전문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를 마친 화가입니다. 캔버스에 옻칠과 유채를 함께 써서 원과 사각형만 남긴 추상 화면을 그리며, 2008년 도쿄 갤러리호시를 시작으로 갤러리더케이(2013)·양출서울(2020)·갤러리오우도(2024)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Q. '상대'와 '유비'가 무슨 뜻인가요? A. 그의 소속 화랑인 갤러리 빛의 설명에 따르면, '상대(相對)'는 둘 이상의 존재가 서로 마주하는 상태를, '유비(類比)'는 그 존재들이 서로 닮았으면서도 각자의 차이를 지닌 채 존재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작가 본인도 씨앗페 출품작 노트에서 "둘 이상 있어 서로 마주하기에 상대적이고, 서로 닮고도 달라 유비적"이라고 썼습니다.
Q. 〈c〉 연작과 〈ㅁ〉 연작은 어떻게 다른가요? A. 〈c〉 연작은 닮았지만 서로 다른 원형과 색면이 화면 위아래에서 거리를 두고 마주 서는 구성이고, 〈ㅁ〉 연작은 하나의 색이 여러 겹으로 중첩되며 바깥으로 갈수록 농도를 달리하는 구성입니다(갤러리 빛 작가 소개).
Q. 왜 옻칠을 쓰나요? A. 갤러리 빛은 그가 존재와 우주의 근원적 질서를 기하학적 형상과 옻칠의 물성으로 탐구한다고 정리합니다. 씨앗페 출품작 세 점도 모두 옻칠과 유채를 함께 쓴 작품이며, 같은 색과 같은 형태 안에서 표면의 질감 차이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Q. 씨앗페에 나온 양운철 작품은 몇 점이고 어떤 것인가요? A. 세 점입니다. 〈c ; 작은하늘〉(2026, 캔버스에 옻칠·유채, 34.8x27.3cm), 〈ㅁ〉(2024, 캔버스에 옻칠·유채, 31.8x40.9cm), 〈c ; 작은 하늘〉(2022, Ottchil, Oil on canvas, 33.4x24.2cm)이며 2022년작은 판매 완료됐습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Q. 양운철 작품 가격대는? A. 구매 가능한 두 점은 ₩1,000,000(〈c ; 작은하늘〉)과 ₩1,200,000(〈ㅁ〉)입니다. 〈c ; 작은 하늘〉(2022)은 판매 완료됐습니다.
Q. 양운철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양운철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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