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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선 — 보는 각도에 따라 바뀌는 그림, 렌티큘러로 그린 이중의 존재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9월 29일 · 씨앗페

로마국립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렌티큘러라는 낯선 매체로 작업해온 박은선.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장면이 나타나는 그림들과 씨앗페 출품작 5점을 도판과 함께 읽습니다.

박은선 — 보는 각도에 따라 바뀌는 그림, 렌티큘러로 그린 이중의 존재

박은선, 〈이중존재-공간 Double Existence-Space〉, lenticular, 30x42cm — 황토색 방 안, 두 개의 문틀 사이로 마주 선 두 마리의 푸른 말
박은선, 〈이중존재-공간 Double Existence-Space〉, lenticular, 30x42cm — 황토색 방 안, 두 개의 문틀 사이로 마주 선 두 마리의 푸른 말

씨앗페에 들어온 박은선의 작품은 모두 같은 재료로 되어 있습니다. 매체란에 적힌 단어는 "lenticular". 사진이나 유화처럼 흔히 보는 표기가 아닙니다. 렌티큘러는 표면에 가는 렌즈 줄무늬를 새겨, 보는 위치를 옮기면 그 아래 깔린 여러 장의 그림이 번갈아 나타나게 만드는 인쇄 방식입니다. 어릴 적 책받침이나 필통에서 각도를 바꾸면 그림이 바뀌던 그 물건과 원리가 같습니다. 박은선은 그 물건의 원리를 회화의 도구로 씁니다.

이 글은 그 매체를 쓰는 작가 한 명의 작업을 읽습니다.

로마에서 배우고 돌아온 사람

박은선은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이탈리아로 건너가 로마국립아카데미를 졸업했습니다. 사내에 등록된 작가 소개에 따른 이력입니다.

개인전은 아트파크, 아트사이드, 가나인사아트센터, 가나아트스페이스, 갤러리현대윈도우, 갤러리 룩스, 조선일보사 갤러리 One을 비롯해 국내에서 여러 차례 열렸고, 프랑스의 Cité Internationale des Arts 갤러리와 Passages 현대예술센터에서도 열렸습니다. 같은 소개는 개인전 18회, 국내외 기획전·단체전 200회 이상 참여를 밝히고 있습니다.

입주작가 이력도 여러 갈래입니다. 'D'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대명 스튜디오), 가나아뜰리에 입주 2기, 창동미술스튜디오 입주 1기를 지냈고, 해외로는 인도 캘커타·샨티니케탄의 Birla Academy of Art and Culture 레지던스, 프랑스 트로아의 Passages, 그리고 파리의 국제예술공동체 Cité Internationale des Arts에 입주해 활동했습니다. 로마에서 아카데미를 마친 작가가 그 뒤로도 인도와 프랑스를 오가며 작업해온 이력입니다.

2024년 세브란스, 렌티큘러·라인테이프·거울이 만난 자리

2024년 9월, 아트파크(ARTPARK)가 세브란스 아트스페이스에서 박은선의 개인전 《Line Walking》을 열었습니다. 전시를 소개한 기사는 이 전시를 "라인 테이프와 거울, 렌티큘러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시공간을 넘나드는 설치 전시"라고 적었습니다. 같은 기사에 실린 도판 캡션에는 "박은선, People Tree, 2022, lenticular, 149x105cm"라는 정보가 붙어 있습니다. 씨앗페에 나온 〈People Tree〉(2021, 30x42cm)와 제목은 같지만 제작연도와 크기가 다른, 같은 제목을 단 또 다른 작업입니다.

세브란스병원은 이 전시와 별개로 박은선의 작품을 상설로 소장하고 있습니다. 병원이 운영하는 공식 아트투어 블로그는 1층 주차장용 엘리베이터 홀에 걸린 작품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 "박은선, 〈3 Stairs〉, 2003, 혼합재료, 210x85cm". 씨앗페 출품작보다 20년 가까이 앞선 2003년 작업이 그 자리에 상설 전시되어 있다는 기록입니다.

2025년 서천, 감시탑이 사유의 공간이 되다

2025년 5월부터 12월까지 충남 서천군 장항에서는 〈장항1931, 움직이는 경계 Moving Boundary〉라는 야외 설치전이 열렸습니다. 서천군이 주최하고 달빵 크리에이티브가 주관한 이 전시에 박은선은 14명의 참여작가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장소는 도시탐험역 일원에 있는 옛 삼선초소입니다.

작가는 이 설치의 바탕이 되는 생각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의 작업은 시간과 시선 속에서 존재의 불확실성과 의미를 탐구한다. 환경과 인식의 변화는 공간의 기능과 존재의 가치를 바꾸고,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은 존재를 규정하며 우리는 여전히 또 다른 시선의 경계 안에서 살아간다. 삼선초소는 '시간·시선·존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감시의 장소가 관계와 사유의 공간으로 전환되는 곳이다." — 작가 노트, 2025년

미술비평가 고충환은 이 작업을 평론에서 이렇게 짚었습니다.

"작가는 그림 속에 또 다른 그림이 들어있는 이중그림에, 소설로 치자면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이 들어있는 액자소설에, 그러므로 이중적이고 다중적인 서사에 관심이 많다. 작가의 작업을 그림에서 랜티큘러로, 그리고 재차 현실 공간과 가상공간이 경계를 허물어 넘나드는 설치작업으로 확장하는 핵심 개념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 고충환, 2025년

이중그림, 액자소설, 다중적인 서사. 회화의 화면 안에 또 다른 화면을 넣는 방식을 렌티큘러라는 매체로, 다시 설치라는 공간으로 넓혀왔다는 평입니다. 이 설치전에서 작가는 렌티큘러를 넘어선 신작도 선보였습니다. 거울로 방을 채운 〈움직이는 시선〉, 벽돌 사이 시멘트 부위에 거울을 붙인 〈틈〉, 유리에 시트지를 붙인 〈움직이는 시간〉 — 씨앗페에 없는 작업이지만, 렌티큘러가 이 작가에게 여러 도구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씨앗페 출품작 다섯 점 — 도판이 보여주는 것

씨앗페에 들어온 박은선의 작품은 다섯 점입니다. 모두 렌티큘러이고, 모두 ₩2,000,000입니다. 제작연도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걸쳐 있습니다.

〈People Tree〉 — 2021년, lenticular, 30x42cm

주황색 배경 위에 사람의 윤곽이 서 있습니다. 다리와 신발은 사람의 것이 분명한데, 머리와 상체 자리에는 보랏빛과 초록빛이 섞인 꽃덤불이 얹혀 있습니다. 배경은 짙은 남색 하늘과 주황색 언덕으로 나뉘고, 그 위로 가는 대각선들과 초록·보라색 점들이 격자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사람의 몸에 나무의 머리를 붙인 합성 이미지 —

박은선, 〈People Tree〉, lenticular, 30x42cm, ₩2,000,000
박은선, 〈People Tree〉, lenticular, 30x42cm, ₩2,000,000

〈이중존재-공간 Double Existence-Space〉 — 2021년, lenticular, 30x42cm

황토색과 회색이 섞인 방 안 풍경입니다. 정면에 액자 같은 문틀이 겹겹이 있고, 그 안쪽에 또 하나의 하얀 방이 들여다보입니다. 왼쪽 벽감에는 푸른 말 한 마리가 뒷모습으로 서 있고, 오른쪽 벽 틈에는 같은 색의 말이 걸어 나오는 자세로 서 있습니다. 제목의 '이중존재'가 화면 구성과 그대로 맞물립니다. 방 안에 또 다른 방이 있고, 말 한 마리가 두 자리에 나뉘어 있습니다.

박은선, 〈이중존재-공간 Double Existence-Space〉, lenticular, 30x42cm, ₩2,000,000
박은선, 〈이중존재-공간 Double Existence-Space〉, lenticular, 30x42cm, ₩2,000,000

〈Meet〉 — 2021년, lenticular, 42x30.31cm

노란 들판을 가로지르는 검은 다리 위로 두 사람이 걸어옵니다. 양쪽 모두 〈People Tree〉와 같은 방식으로 머리 자리에 꽃덤불이 얹혀 있습니다. 한쪽은 주황빛 꽃, 다른 한쪽은 보랏빛 꽃입니다. 두 사람은 화면 양끝에서 다리 위로 걸어와 가운데 어디쯤에서 마주치는 동선입니다. 제목이 '만남'인 이유가 화면에 그대로 그려져 있습니다.

박은선, 〈Meet〉, lenticular, 42x30.31cm, ₩2,000,000
박은선, 〈Meet〉, lenticular, 42x30.31cm, ₩2,000,000

〈Window〉 — 2022년, Lenticular, 34x42cm

침실에서 바다를 내다보는 창을 그린 그림입니다. 등록된 도판에는 이 창이 두 가지 상태로 나란히 실려 있습니다. 위쪽 장면은 커튼이 활짝 열려 돛단배 세 척이 떠 있는 바다가 그대로 드러나고, 아래쪽 장면은 커튼이 거의 닫혀 좁은 틈으로만 바다가 보입니다. 침대보 위에도 작은 돛단배 무늬가 그려져 있습니다. 렌티큘러가 각도에 따라 다른 장면을 보여준다는 원리를, 이 도판만큼은 한 장 안에 두 장면을 나란히 놓아 짐작하게 해줍니다.

박은선, 〈Window〉, Lenticular, 34x42cm, ₩2,000,000
박은선, 〈Window〉, Lenticular, 34x42cm, ₩2,000,000

〈Double Existence & Space〉 — 2025년, Lenticular, 29.76x42cm

〈이중존재-공간〉과 같은 황토색 문틀 공간, 같은 푸른 말이 다시 등장합니다. 등록된 도판은 이 장면을 네 칸으로 나눠 보여줍니다 — 왼쪽 벽감에만 말이 있는 칸, 오른쪽 문틀 안으로 말이 걸어 들어가는 칸, 말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빈 칸,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 모두에 말이 있는 칸. 2021년작 〈이중존재-공간〉이 한 장면으로 보여준 것을, 2025년작은 같은 배경 안에서 말의 위치가 바뀌는 네 개의 순간으로 나눠 보여줍니다. 렌티큘러가 보는 각도마다 다른 그림을 담는다는 사실이, 이 넉 장의 비교 도판을 통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박은선, 〈Double Existence & Space〉, Lenticular, 29.76x42cm, ₩2,000,000
박은선, 〈Double Existence & Space〉, Lenticular, 29.76x42cm, ₩2,000,000

다섯 점을 나란히 보면 하나의 골격이 드러납니다. 사람이든 말이든, 화면 속 존재가 한 자리에만 있지 않습니다. 몸이 있고 그 위에 다른 무엇이 얹히거나(People Tree, Meet), 같은 존재가 두 공간에 나뉘어 있거나(이중존재-공간, Double Existence & Space), 하나의 창이 두 가지 얼굴을 가집니다(Window). 그리고 이 골격을 화면 안에서만이 아니라 매체 자체로 구현하는 것이 렌티큘러입니다 — 종이 한 장이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존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재료가 이미 주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박은선 작가 페이지에서 다섯 작품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박은선이 씨앗페에 작품을 낸 이유는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로마에서 배우고 세브란스병원에 작품을 남기고 서천의 옛 초소를 사유의 공간으로 바꿔온 작가가, 이번에는 그 구조에 작품으로 참여했습니다.

박은선을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이 순서를 권합니다. 먼저 〈이중존재-공간〉을 보고 말이 두 자리에 나뉘어 있는 구성을 확인하십시오. 다음으로 〈Double Existence & Space〉의 네 칸 도판을 보면, 같은 구성이 2025년에는 어떻게 각도에 따른 네 개의 순간으로 나뉘는지가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Window〉를 보십시오. 커튼이 열린 장면과 닫힌 장면이 한 그림 안에 같이 담겨 있다는 것이, 이 작가가 렌티큘러라는 매체를 왜 선택했는지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답입니다.

박은선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 다섯 점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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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박은선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동국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로마국립아카데미를 졸업한 작가입니다. 아트파크·아트사이드·가나인사아트센터 등 국내 화랑과 프랑스 Cité Internationale des Arts·Passages 현대예술센터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국내외 기획전·단체전에 200회 이상 참여했습니다.

Q. 렌티큘러가 무엇인가요? A. 표면에 가는 렌즈 줄무늬를 새겨, 보는 각도를 옮기면 그 아래 깔린 여러 장의 그림이 번갈아 나타나게 만드는 인쇄 방식입니다. 박은선은 이 매체를 회화의 도구로 씁니다.

Q. 어떤 전시에 참여했나요? A. 2024년 세브란스 아트스페이스 개인전 《Line Walking》(아트파크 주최), 2025년 충남 서천군 장항의 야외 설치전 〈장항1931, 움직이는 경계〉(서천군 주최, 참여작가 14인 중 1인)에 참여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은 2003년작 〈3 Stairs〉를 1층 주차장용 엘리베이터 홀에 상설 소장하고 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박은선 작품은 몇 점이고 어떤 것인가요? A. 다섯 점입니다. 〈People Tree〉(2021), 〈이중존재-공간 Double Existence-Space〉(2021), 〈Meet〉(2021), 〈Window〉(2022), 〈Double Existence & Space〉(2025)이며 전부 lenticular, ₩2,000,000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Q. 박은선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박은선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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