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여대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공부한 리호. 장지에 연필과 분채로 쌓아 올린 연둣빛 산과 분홍빛 지층, 씨앗페 출품작 〈머물고 싶은 순간〉을 가까이 들여다봅니다.
리호 — 장지 위에 연필과 분채로 쌓아 올린 산, 〈머물고 싶은 순간〉

이 글은 짧은 노트입니다. 씨앗페에 들어온 리호의 작품 한 점과, 그 작품을 낸 작가의 확인된 이력만을 다룹니다. 화면에 담긴 것이 많아 말을 길게 붙이기보다 가까이서 보는 편이 나은 그림이기도 합니다.
동양화를 공부한 사람
리호는 2020년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했습니다. 이어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에서 2022년 석사를 마쳤고, 같은 해부터 같은 대학원 동양화과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개인전은 2022년 서울 사이아트도큐먼트에서 연 《보이지 않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같은 해 GS건설 갤러리시선의 2인 공모기획전에 참여했고, 프랑스 파리 카루젤 뒤 루브르에서 열린 FOCUS ART FAIR PARIS – Art Boom에 나갔습니다. 2023년에는 부산 벡스코의 BAMA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 2024년에는 인사센트럴뮤지엄의 인사동 YOUNG & FUTURE Art Fair에 참여했습니다.
단체전 목록은 매년 이어집니다. 2022년 갤러리시선 2인 공모기획전, 2023년 에이라운지갤러리 《사색 속에는 각자의 소리가 존재하고》, K현대미술관 《Greekyland 이상한 나라의 괴짜들 2023》, 갤러리모스 《Art Alliance 2023》, 광화문광장 《현대미술과 세종의 만남 – 세종이야기 미디어전시》. 2024년 갤러리호호 《관계전환지점》, 갤러리일호 《꿈과 마주치다》, 갤러리자유 《Landscape Liberation》. 2025년 플로우앤비트 《만류귀종》, N2 아트스페이스 《NO MATTER》.
전시 제목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한 방향이 보입니다. 《Landscape Liberation》, 《관계전환지점》, 《만류귀종》. 풍경을 해방한다는 말, 관계가 전환되는 지점이라는 말, 만 갈래가 한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말. 고정된 풍경을 그리는 자리가 아니라 풍경의 상태를 바꾸는 자리에 이 작가가 초대되어 왔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재료를 먼저 보기 — 장지에 연필과 분채
〈머물고 싶은 순간〉의 재료는 '장지에 연필, 분채'입니다. 이 표기부터 읽어두면 화면이 다르게 보입니다.
장지는 닥으로 여러 겹 떠서 만든 두꺼운 한지입니다. 물감을 여러 번 올려도 종이가 무르지 않아 동양화의 채색 작업에 쓰입니다. 분채는 가루 형태의 안료로, 아교물에 개어 쓰는 전통 채색 재료입니다. 한 번에 진하게 덮는 대신 얇게 여러 번 올려 색을 쌓습니다. 그래서 같은 색이라도 붓질이 겹친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의 깊이가 다릅니다.
여기에 연필이 함께 적혀 있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입니다. 전통 채색 재료와 가장 평범한 필기구가 한 화면에 놓였습니다. 화면을 가까이 보면 그 이유가 보입니다.
출품작 읽기 — 〈머물고 싶은 순간〉
2023년, 장지에 연필·분채, 50x72.7cm
세로로 긴 화면 전체가 연둣빛입니다. 민트에 가까운 이 색이 바탕이 되고, 그 위에 서로 다른 성질의 덩어리들이 층층이 쌓입니다.
화면 위쪽에는 흰 구름 같은 덩어리들이 부풀어 있습니다. 윤곽선이 부드럽게 말려 있어 구름으로도 보이고 활짝 벌어진 꽃송이로도 보입니다. 그 사이로 가느다란 회색 아치 하나가 화면 위를 가로지르며 지나갑니다. 아치 아래로는 사선으로 짧은 빗줄기 같은 자국들이 흩뿌려져 있습니다.
화면 한가운데에는 청록과 보랏빛이 뒤섞인 산봉우리가 솟아 있습니다. 봉우리의 면은 단색이 아닙니다. 초록 줄기와 흰 결이 갈라지듯 흐르고, 중턱에는 흰 덩어리가 꽃처럼 얹혀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청록빛 물줄기가 비스듬히 뻗어 나옵니다. 왼쪽에도 작은 봉우리 하나가 따로 서 있습니다.
산 아래쪽은 완전히 다른 색입니다. 분홍입니다. 산의 뿌리가 닿는 자리부터 화면 아래까지가 연분홍과 황토빛의 층으로 덮여 있고, 그 경계가 톱니처럼 뾰족하게 갈라집니다. 지층의 단면을 잘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산이 분홍빛 천 위에 얹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분홍 지층 위에 작고 둥근 것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소용돌이처럼 말려 있는 덩어리들입니다. 어떤 것은 흰색, 어떤 것은 회색, 어떤 것은 초록입니다. 나선을 따라 가늘고 촘촘한 선이 그어져 있는데, 이 선들이 연필입니다. 분채로 올린 색 위에 연필심으로 결을 새겨 넣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색 덩어리지만 가까이 가면 손으로 그은 선이 드러나는 구조입니다. 재료 표기에 연필이 함께 적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화면을 세로로 관통하는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회색과 푸른빛의 가늘고 긴 줄기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립니다. 나무줄기처럼도 보이고 흘러내리는 물감 자국처럼도 보이는데, 이 줄기가 위쪽의 구름 덩어리와 아래쪽의 분홍 지층을 잇습니다. 하늘과 땅이 따로 놀지 않게 붙들어 두는 장치입니다.
색을 전부 세어보면 연둣빛 바탕, 청록과 보라의 산, 분홍과 황토의 지층, 흰 구름, 그리고 점점이 박힌 초록과 회색의 소용돌이입니다. 이만큼의 색을 쓰면서도 화면이 요란하지 않은 것은 분채를 얇게 여러 번 올린 결과로 보입니다. 채도가 높은데 무겁지 않습니다.
제목은 〈머물고 싶은 순간〉입니다. 풍경의 이름이 아니라 시간의 이름입니다. 그림 속 어디에도 사람이 없는데 제목에는 '싶다'는 바람이 들어 있습니다. 그 바람의 주어는 보는 사람 쪽에 비워져 있습니다.

- 50x72.7cm · 장지에 연필, 분채 · 2023 · ₩1,500,000
- 작품 페이지 →
50x72.7cm의 세로 화면입니다. 파스텔 계열의 밝은 색으로 채워져 있어 흰 벽이나 밝은 나무 가구 곁에 잘 놓입니다. 연필로 새긴 결이 가까이서만 보이므로, 지나가며 보는 복도보다 앉거나 서서 잠시 머무는 자리 — 침실, 작업 책상 옆, 식탁이 보이는 벽 — 가 이 그림에 맞습니다. 처음 그림을 사는 분께 드리는 안내도 함께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리호가 씨앗페에 작품을 낸 이유는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머물고 싶은 순간〉을 가까이서 보는 방법을 하나만 권합니다. 먼저 한 걸음 떨어져 전체 색을 보십시오. 연둣빛과 분홍이 어떻게 만나는지가 먼저 들어옵니다. 그다음 분홍 지층 위의 작고 둥근 것들 앞으로 다가가십시오. 색인 줄 알았던 것이 선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이 화면에 들어간 시간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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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리호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동양화를 공부한 작가입니다. 2020년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2022년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에서 석사를 마친 뒤 같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2022년 서울 사이아트도큐먼트에서 개인전 《보이지 않는 프로젝트》를 열었습니다.
Q. 어떤 전시와 아트페어에 참여했나요? A. 2022년 FOCUS ART FAIR PARIS – Art Boom(카루젤 뒤 루브르, 프랑스), 2023년 BAMA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벡스코), 2024년 인사동 YOUNG & FUTURE Art Fair(인사센트럴뮤지엄)에 참여했습니다. 단체전으로는 《Landscape Liberation》(갤러리자유), 《관계전환지점》(갤러리호호), 《꿈과 마주치다》(갤러리일호), 《만류귀종》(플로우앤비트), 《NO MATTER》(N2 아트스페이스) 등이 있습니다.
Q. '장지에 연필, 분채'는 어떤 재료인가요? A. 장지는 닥으로 여러 겹 떠서 만든 두꺼운 한지로, 채색을 여러 번 올려도 견딥니다. 분채는 가루 안료를 아교물에 개어 쓰는 전통 채색 재료로, 얇게 여러 번 칠해 색을 쌓습니다. 〈머물고 싶은 순간〉은 여기에 연필을 더해, 색을 올린 위에 연필선으로 결을 새겨 넣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리호 작품은 무엇인가요? A. 〈머물고 싶은 순간〉(2023, 장지에 연필·분채, 50x72.7cm) 한 점입니다. 가격은 ₩1,500,000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Q. 리호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리호는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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