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마치고 화실 청소부터 민화를 배운 김제 과수원집 딸. 가루를 빻아 아교에 개는 일로 시작해 호랑이 그림 300여 점, 열 개 넘는 나라의 한국문화원 전시에 이른 서공임의 40여 년을 〈영웅〉 두 화면과 함께 읽습니다.
서공임 — 호랑이를 사람의 얼굴로 그린 현대 민화가

붉은 바탕 위의 호랑이는 맹수라기보다 잔뜩 신이 난 동네 아이처럼 보입니다. 등을 활처럼 휘고, 꼬리를 S자로 길게 들어 올리고, 노란 눈을 굴리며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이빨은 드러났는데 위협적이기보다 익살스럽습니다. 발은 둥글고 도톰한 네 개의 덩어리로 땅을 딛고, 소나무 가지에는 까치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서공임이 40년 넘게 그려 온 민화의 얼굴이 이 한 장에 들어 있습니다. 서공임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화 속 호랑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들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같다."
김제 과수원집 딸, 화실 청소부터
서공임은 전북 김제의 작은 복숭아 과수원집에서 자랐습니다. 동네 이름이 '화동골'일 정도로 봄이면 복숭아꽃이 만발했다고 아주경제 인터뷰에서 떠올렸습니다.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통학길에는 평야와 연못, 보리밭, 들꽃이 있었고, 비가 오면 연못의 연잎을 우산 삼아 썼다고 합니다. 형제가 많은 집이었고 끼니가 늘 넉넉하지는 않았습니다. 방과 후에 청소를 더 하면 선생님이 주던 큰 옥수수빵을 먹으며 한 시간 넘는 길을 걸어 집에 돌아온 기억을 헤럴드경제 인터뷰에서 들려주었습니다.
그림은 일찍부터 곁에 있었습니다. 소풍을 가서도 친구들이 숲에서 뛰어놀 때 방아깨비와 벌을 연습장에 옮겨 그렸고, 스케치북이 귀하던 시절이라 누런 갱지가 화폭이었습니다. 민화와의 첫 만남도 어린 날의 풍경입니다. 마을 잔치에 병풍이 서고, 집 벽장 앞에는 부잣집에 머물며 그림을 그려 주던 '환쟁이'에게 받아 온 그림이 붙어 있었습니다. 서공임은 그 그림이 민화였다고 말했습니다. "지독히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예술은 그렇게 우리 생활 속에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가족이 경기도 성남으로 옮겼고, 서공임은 국전을 보러 덕수궁까지 찾아가 팸플릿을 사 와서 들춰 보며 화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집안 형편상 미대 진학은 어려웠습니다. 졸업할 즈음 물감을 사러 간 화방에서 화실 직원을 구한다는 전단을 보았고, 거기가 민화와 불화를 그려 국내외에 파는 화실이었습니다. 이튿날부터 출근해 청소와 잡일을 하며 도제식으로 밑그림부터 채색까지 배웠습니다. 그때가 열아홉이었습니다.
조선일보 톱클래스 인터뷰에는 이 시절의 갈림길이 나옵니다. 지방 방송국에 다니던 이종사촌이 전통 산수화를 그리는 선생을 소개해 주었는데, 선생은 "양다리 걸칠 생각은 말아라. 세필을 버리고 와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삼일을 고민한 끝에 서공임은 자신이 정말 민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릴 적 마을 잔치의 병풍, 벽장 문의 그림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인사동이라는 신세계
화실이 경기도에서 인사동으로 옮기면서 서공임의 세계도 넓어졌습니다. "인사동은 신세계였어요." 매주 수요일이면 전시를 보러 다니고, 퇴근길에는 청계천 헌책방에서 민화 관련 책을 구했습니다. 조선 화가들의 교과서였던 중국의 《개자원화보》를 구해 매일 연습했고, 민화에 도움이 될까 싶어 수묵화도 따로 배웠다고 합니다. 그 시절 인사동에서 서공임은 '미스 서'로 통했다고 조선일보 톱클래스는 전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인사동에 자기 작업실을 열었습니다. 톱클래스는 이를 1985년으로, 아주경제는 1986년 '서공임 민화연구실'이라는 이름으로 적었고,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10만 원이었다고 합니다. 붓 몇 자루와 책 몇 권으로 시작한 젊은 작가의 작품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일을 맡겨 주는 사람이 하나둘 생겼고, 건설 경기가 좋을 때는 아파트에 입주하는 사람들이 걸어 둘 그림이나 선물용 그림 주문이 많았습니다. 주문 날짜를 맞추느라 이틀에 한 번 밤을 새우며 그린 적도 있고, "살갗이 닳아 피가 나도 모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쓴맛도 있습니다. 미술계에서는 "어디 나왔어요?", "민화? 아, 베끼는 그림 하시는구나" 하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서공임은 그 말에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인사동 화랑에서 전시를 볼 때마다 "그림 그리는 장사꾼으로 남고 싶지는 않다. 나도 성장하고 싶다. 전시장에 내 그림을 걸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첫 개인전, 그리고 호랑이
1996년 10월 백상기념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경향신문은 민화 작가로는 처음 연 개인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서공임은 유명 광고회사에 카탈로그를 맡기고 언론사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전시 소개를 부탁했습니다. 민화를 멋지고 품위 있게 보여 주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림은 모두 팔렸고, 전시 첫날 아침에는 검은 세단에서 내린 사람이 호텔에서 필요하다며 병풍 몇 점을 곧바로 사 갔다고 합니다.
전시 뒤에는 한국을 방문한 스페인 국왕 부부가 인사동을 찾았고, 소피아 왕비가 서공임의 호랑이 그림 한 점을 받아 갔다는 이야기가 아주경제와 파이낸셜뉴스 기사에 실렸습니다. 아주경제 2017년 인터뷰에서 서공임은 이 만남이 이어져 해마다 전시를 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림 속 호랑이는 이때부터 서공임의 이름과 함께 따라다녔습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2010년 1월 '100마리 호랑이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그린 호랑이가 300여 점입니다. 서공임은 호랑이를 두고 "호랑이는 민화에서 상징하는 해학과 익살이 가장 잘 표현된 동물"이라며 "호랑이를 그릴수록 편안하고 친근하게 느껴져 분신 같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호랑이가 사람을 닮은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서공임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표정의 사람들을 보면 호랑이 얼굴과 닮은 점들이 떠오른다"고 말했습니다. 조선일보 톱클래스 인터뷰에서는 같은 생각을 이렇게 풀었습니다. 호랑이 그림에는 한국인의 얼굴처럼 슬프고 행복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이 모두 있고, 민화 속 호랑이는 맹수라기보다 편안하고 친근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가루를 빻는 일에서 시작하는 그림
민화는 붓을 들기 전의 시간이 깁니다. 서공임은 색 가루를 직접 빻아 체로 걸러 곱게 만들고, 아교에 개어 종이에 여러 번 입혀 바탕을 만듭니다. 헤럴드경제와 아주경제 인터뷰에는 이 밑작업이 그리는 시간보다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석회 반죽을 개다가 열에 손을 데인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 위에 꽃 한 송이, 새 한 마리에도 수백, 수천 개의 점을 찍고 수만 개의 선을 긋습니다.
서공임은 조수를 두라는 권유에도 모든 과정을 직접 한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몸이 상했습니다. 목 디스크와 관절염을 얻었고, 한동안은 붓을 쥘 수 없을 만큼 아팠습니다. "그야말로 등골이 휘고, 삭신이 쑤시는 작업이지요." 그런데도 서공임은 인터뷰에서 민화가 한없이 좋다고 했습니다. 아주경제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인내와 노력으로 그림을 그려 왔다. 무지하리 만큼 참을성이 있었다."
전통을 베끼지 않는 민화
서공임이 가장 듣기 싫어했다는 말은 "전통 민화하는 사람이야" 하는 소리였습니다. 아주경제 인터뷰에서 서공임은 "과거와 똑같은" 민화를 그리는 사람으로 불리는 것이 싫었고, 그래서 원래의 그림을 재해석하거나 재료를 바꿔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 보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시도의 폭이 넓습니다. 헤럴드경제와 파이낸셜뉴스는 한지만이 아니라 스테인리스 스틸 판에 자동차 도료로 그리고, 캔버스 표면을 특수 처리해 수간분채로 그리고, 프레스코와 커피 추출물로도 그렸다고 전했습니다. 의상과 도자기, 스카프 같은 제품에도 그림을 옮겼습니다. 서공임은 파이낸셜뉴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화 고유의 상징성은 유지하되 소재, 재료, 기법 등에서 현대적 상황에 맞춰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유는 생활의 변화에 있습니다. 2014년 아주경제 인터뷰에서 서공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아파트에 살잖아요. 아파트에는 기존의 민화보다 색깔이 있고 단순한 민화가 훨씬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헤럴드경제 인터뷰에서는 한옥에서 아파트와 빌라로 바뀐 주거 공간에는 새로운 민화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판판하게 칠한 선명한 바탕 위에 까치와 나비, 석류나무를 단순하게 얹은 화면은 아주경제가 "그래픽같은 느낌"이라고 쓴 모습입니다. 톱클래스에 따르면 최근에는 강렬한 원색으로 바탕을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의 첫 도판인 붉은 〈영웅〉에서 보이는 바탕색이 그렇습니다.
민화에 대한 서공임의 생각은 밝은 쪽에 서 있습니다. 경향신문 인터뷰의 한 대목입니다. "까치는 기쁜 소식, 모란은 부귀 등 민화에는 그림마다 각기 다른 상징성이 있는데 우울한 것은 없고 모두 다 행복한 상징이에요. 색감도 굉장히 해맑고 경쾌해 '행복을 담은 그림'이라고 볼 수 있어요."
한국문화원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서공임의 전시 이력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해외 한국문화원 초대전입니다. 뉴스아트가 소개한 연보에 따르면 2010년 베이징의 주중 한국문화원을 시작으로 파리(2011), 바르샤바(2011), 부에노스아이레스(2012), 부다페스트(2013), 베를린(2015), 마드리드(2016), 로마(2017), 브뤼셀(2017), 앙카라(2017), 방콕(2019), 모스크바(2019)에서 전시가 이어졌습니다. 서공임의 공식 사이트 연보에는 2024년 1월 오스트리아 빈 한국문화원에서 연 《신년대길》이 기록돼 있습니다.
2012년에는 한국과 아르헨티나 수교 50주년을 맞아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도서박람회 한국관에서 전시하고 그림 시연을 했습니다. 서공임은 헤럴드경제에서 외국에서는 전시만이 아니라 체험 행사를 꼭 해 달라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에코백이나 부채에 민화를 그려 주면 몇 시간씩 기다렸다가 받아 간다는 것입니다. 2017년 5월 브뤼셀의 주벨기에유럽연합 한국문화원 개막식에서는 관객들이 작품 속 소품마다 담긴 뜻을 작가에게 직접 물었고, 부채에 민화를 그려 보는 워크숍은 사전 예약이 마감됐다고 뉴스천지가 전했습니다. 서공임은 이 자리에서 민화에는 전통적으로 성공, 건강, 가정의 평화, 부귀영화 등을 기원하는 한국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해외에서 돌아와서는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헤럴드경제 인터뷰에서 서공임은 "지구 정반대편의 사람들이 한국의 예술과 정서에 이렇게 열광하는데 정작 우리 안방에선 민화가 서양그림에 비해 너무 홀대받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라고 했습니다.
협업도 이어졌습니다. 아주경제 2014년 인터뷰에 따르면 디자이너 장광효의 의상에 꽃 그림을 그렸고, 이희호 여사와 권양숙 여사의 해외 순방 한복에도 꽃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받아먹던 옥수수빵이 유니세프가 나눠 준 것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서공임은 "언젠가 나도 유니세프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했고, 훗날 유니세프에서 카드 제작을 제안해 오자 기쁘게 응했다고 합니다. 헤럴드경제에는 그 감회가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30여년이 지나 고마움을 되갚았으니 우리 인생, 참으로 오묘하지 않나요?"
경향신문에 따르면 서공임은 2007년부터 우리민화협회 대표이사를 맡았고, 연세대 미래교육원에서 일반인에게 민화를 가르쳐 왔습니다. 2014년 12월에는 직접 그리고 고른 민화 44점을 담은 《민화 컬러링 위시북》이 나왔습니다. CNB뉴스는 개와 고양이 같은 친숙한 소재부터 〈십장생도〉와 〈일월오봉도〉까지 난이도가 다양하고, 책 끝에는 그림마다의 의미를 풀이한 '민화 위시 가이드'와 직접 색칠해 선물할 수 있는 엽서가 붙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책으로 민화를 색칠하게 하는 일도 민화를 널리 알리려는 같은 마음에서 나온 작업입니다.
씨앗페에서 만나는 〈영웅〉
서공임은 2022년 1월 하남 유니온아트센터 갤러리오엔의 '호랑이 민화전'에서 기개 넘치는 호랑이를 담은 '영웅' 시리즈와 다채로운 표정의 호랑이 '우리들의 초상' 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경향신문은 전시된 호랑이 그림 30여 점이 무섭기보다 친근하고 유쾌하다고 썼습니다. 서공임의 공식 사이트 연보에도 이 전시는 《HERO, 영웅을 기리며》라는 이름으로 올라 있습니다.
씨앗페 온라인 갤러리에 걸린 작품은 호랑이 그림 〈영웅〉입니다. 같은 제목, 같은 크기, 같은 재료로 두 화면이 나란히 올라 있습니다. 하나는 붉은 바탕, 하나는 푸른 바탕입니다.
붉은 화면은 이 글의 첫머리에서 본 그림입니다. 호랑이는 몸 전체를 옆으로 길게 펼쳐 놓고 머리만 이쪽으로 돌렸습니다. 노란 눈 둘레에는 흰 선이 눈썹처럼 둘러 있고, 벌린 입안은 바탕보다 짙은 붉은색입니다. 등줄기의 검은 줄무늬는 굵고 느리게 휘고, 옆구리와 다리에는 작은 점무늬가 흩어져 있습니다. 화면 왼쪽 위에서는 소나무 가지에 까치가 앉아 있습니다. 서공임이 "기쁜 소식"이라고 읽은 그 까치입니다.

푸른 화면에서는 흰 호랑이가 전혀 다른 분위기로 서 있습니다. 짙은 군청 바탕에 호랑이가 뒷발 하나를 들고 있고, 꼬리는 길게 치켜 올라 끝만 검습니다. 얼굴에는 표범처럼 둥근 점무늬가 모여 있고 노란 눈과 붉은 입이 웃는 듯합니다. 화면 위쪽에는 붉은 모란 세 송이가 떠 있고, 호랑이 등 위에도 한 송이가 올라앉았습니다. 호랑이 밑으로는 바탕과 비슷한 푸른색의 화병이 희미하게 비칩니다. 모란을 두고 서공임은 "부귀"라고 말했습니다. 붉은 화면이 활기로 가득하다면 푸른 화면은 고요하게 축하하는 쪽입니다.
두 화면은 서공임이 "호랑이는 복을 부르고 액운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고 한 말을 서로 다른 색으로 풀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호랑이가 위압하기보다 곁에 와서 웃는 모습인 것도 같습니다.
- 65x95cm · 한지, 수간분채 · 2020 · ₩7,000,000
- 작품 페이지 (붉은 바탕) →
- 작품 페이지 (푸른 바탕) →
상호부조 기금으로 이어지는 연대
〈영웅〉은 씨앗페 상설 온라인 갤러리 출품작입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겠다는 뜻으로 참여한 연대자이고, 작품이 팔리면 그 수익이 상호부조 기금이 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집니다. 40여 년 민화를 지켜 온 서공임이 〈영웅〉을 내놓은 것도 같은 연대의 한 자리입니다.
서공임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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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서공임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고등학교를 마친 열아홉 살에 민화 화실에서 도제식으로 민화를 배우기 시작해 40년 넘게 민화를 그려 온 현대 민화 작가입니다. 1996년 10월 백상기념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경향신문에 따르면 2007년부터 우리민화협회 대표이사를 맡았습니다.
Q. 호랑이 그림은 몇 점이나 그렸나요? A. 경향신문은 2010년 1월 '100마리 호랑이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그린 호랑이 그림이 300여 점이라고 전했습니다.
Q. 어느 나라에서 전시했나요? A. 중국, 프랑스, 폴란드, 아르헨티나, 헝가리,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튀르키예, 태국, 러시아 등의 한국문화원과 공공 전시장에서 전시했습니다. 공식 사이트 연보에는 2024년 1월 오스트리아 빈 한국문화원 전시도 올라 있습니다.
Q. 서공임의 민화는 전통 민화와 어떻게 다른가요? A. 민화 고유의 상징성은 이어 가면서 재료와 기법, 색을 바꿉니다. 헤럴드경제와 파이낸셜뉴스에 따르면 한지뿐 아니라 캔버스와 스테인리스 스틸 판에도 그렸고, 조선일보 톱클래스는 강렬한 원색으로 바탕을 칠하기 시작했다고 전했습니다.
Q. 〈영웅〉에는 어떤 재료가 쓰였나요? A. 한지에 수간분채로 그렸습니다. 수간분채는 가루 안료를 아교에 개어 물로 풀어 쓰는 채색 방식으로, 서공임은 색 가루를 직접 빻아 체로 걸러 아교와 섞는 밑작업을 직접 한다고 헤럴드경제에서 말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작품은 무엇인가요? A. 〈영웅〉(2020, 한지·수간분채, 65x95cm, ₩7,000,000)이며 붉은 바탕과 푸른 바탕 두 화면이 올라 있습니다. 씨앗페 상설 온라인 갤러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씨앗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