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여대에서 동양화와 판화를 잇달아 공부하고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현대판화 1958-2008》에 이름을 올린 판화가 한경화. 두 발로 선 짐승을 새긴 목판화 한 점으로 그가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읽습니다.
한경화 — 목판 위에 선 짐승, 오십대를 지나는 사람의 초상

호랑이 한 마리가 사람처럼 서 있습니다. 앞다리 대신 팔이 허리에 얹혀 있고, 두 뒷다리로 땅을 딛고, 꼬리만 짐승의 것으로 동그랗게 말려 있습니다. 얼굴은 정면을 향합니다. 검은 먹으로 눌러 판 줄무늬가 몸통을 타고 굵게 흘러내립니다. 한경화가 씨앗페에 낸 유일한 작품, 〈작은 땅의 야수들〉입니다.
두 개의 학과를 지나온 사람
한경화는 1972년생입니다. 성신여자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다시 조형판화과를 마쳤습니다. 그림을 먼저 배우고 판화로 건너간 이력입니다.
이 이력이 이력서 한 줄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후의 활동으로 확인됩니다.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현대판화 1958-2008》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반세기 동안의 한국 판화를 정리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보다 앞선 2002년에는 미국 데이턴 비주얼 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현대판화 2인전에 참여했습니다. 국내 미술관의 회고적 기획과 해외의 작은 2인전, 성격이 다른 두 자리에 모두 선 이력입니다.
현대판화가협회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2018년에는 춘천의 복합문화공간 5NOTE에서 개인전 '13월의 피안'을 열었습니다. 강원일보와 강원도민일보가 이 전시를 다뤘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열세 번째 달을 제목에 넣은 이 개인전에서, 그는 인간의 존재와 현대인의 심리를 판화로 다뤘다고 두 매체는 전합니다.
"판화 작가인 한경화 작가는 '인간의 존재'에 관심을 갖고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이중적이고 부조리한 삶 속에서 우유부단한 주체에 짙게 드리운 그림자처럼 현대인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을 통한 순수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함께 표현한다." — 강원일보, 2018년 5월 27일
세상에 피안이나 유토피아는 없다는 사실을 암시하려 어린아이와 토끼 같은 순수의 상징을 등장시켜 그것들이 맞닥뜨리는 암울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그렸다고, 강원도민일보는 같은 전시를 두고 적었습니다. 순수한 존재를 그려 넣어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성신여대 판화과 동문들이 모인 '성신판화 30주년' 기념전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조영숙을 비롯한 마흔 명 남짓의 동문이 함께 출품한 전시로, 그가 졸업 이후로도 판화과 네트워크 안에 계속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짐승의 자리를 빌려
〈작은 땅의 야수들〉은 목판화입니다. 나무를 파낸 자리와 남긴 자리가 그대로 흑백의 대비가 됩니다. 굵고 거친 칼자국이 살아 있는 이 매체는, 앞서 살펴본 강원 지역 전시에서 그가 다뤘다는 '이중적이고 부조리한 삶', '우유부단한 주체에 짙게 드리운 그림자'라는 주제의식과 이어지는 자리에 있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 붙인 글에서, 화면 속 짐승을 그리게 된 이유를 직접 밝혀 두었습니다. 쉰을 넘긴 자신의 시간을 하루의 한 지점에 빗대는 것으로 글은 시작합니다.
"1시에서 2시 사이를 지나고 있다. 나는 지금, 인생의 한낮을 지나고 있다. 50대의 시간이다."
한낮의 해는 가장 뜨겁습니다. 그늘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아직 멈출 수 없다고, 작가는 적습니다. 목이 마르고 몸이 지쳐도 다시 일어서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어깨에 남은 책임과 지켜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발걸음은 무겁고, 그 무게를 이끌고 또 하루를 앞으로 밀어갑니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이 작업이 향하는 자리가 좀 더 또렷해집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과 능력이 있어도 세상은 언제든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 익숙한 자리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입니다. 작가는 이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고 씁니다. 많이 지쳤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 수없이 흔들리고 상처를 입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놓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이름을 붙입니다.
"나는 그들을 야수라 부른다. 야수는 두려움이 없는 존재가 아니다. 두려움을 안고도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다. 상처를 숨기지 않고 지친 몸을 이끌면서도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잃지 않는다."
이 글을 읽고 다시 판화를 보면, 두 다리로 선 호랑이가 다르게 보입니다. 네 발로 뛰는 맹수가 아니라 두 발로 버티고 서 있는 존재입니다. 허리에 얹은 팔은 여유가 아니라 자세를 지탱하는 힘으로 읽힙니다. 정면을 향한 눈은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피하지 않고 있어서 그렇게 보입니다.
이 짐승이 짐승의 모습을 완전히 벗지 않은 채로 사람의 자세를 취한다는 점이 이 작업의 핵심입니다. 인간의 존재를 정면으로 다룬다고 했던 2018년 전시의 문제의식이, 여기서는 인간의 자리에 짐승을 세우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야수라는 이름을 빌린 것은 그 존재가 사람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두려움을 안은 채로도 방향을 잃지 않는 모습이 야수라는 말에 더 정확히 담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30x40cm의 크지 않은 화면에, 작가는 오십대를 지나는 자신의 시간과 비슷한 시간을 지나는 사람들 모두를 함께 세워 두었습니다.
- 30x40cm · 목판화 · ₩1,200,000
- 작품 페이지 →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에서
〈작은 땅의 야수들〉은 씨앗페 온라인 갤러리와 함께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 온라인관에도 걸려 있습니다. 판화가 오윤을 기리는 이 특별전에, 한경화는 같은 매체를 오래 다뤄 온 동료 판화가로서 작품을 냈습니다.
목판을 파고 찍어내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칼끝으로 나무를 떠내는 순간마다 되돌릴 수 없는 선이 남습니다. 한경화가 성신여대에서 판화를 공부한 뒤 20년 넘게 이 매체를 붙들고 있었던 이유를, 이 작품의 굵고 단호한 칼자국에서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두려움을 안고도 나아가는 존재를 새긴 작가의 판화 한 점을, 오윤을 기리는 자리에서 함께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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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한경화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72년생 판화가입니다. 성신여자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조형판화과를 마쳤습니다.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현대판화 1958-2008》, 2002년 미국 데이턴 비주얼 아트센터 한국현대판화 2인전에 참여했고, 현대판화가협회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한경화 작품은 무엇인가요? A. 목판화 〈작은 땅의 야수들〉(2026, 30x40cm) 한 점입니다. 두 발로 서서 정면을 응시하는 호랑이를 새긴 작품으로, 작가는 이 짐승을 "두려움을 안고도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라고 설명했습니다.
Q. 이 작품은 어디에 전시돼 있나요? A. 씨앗페 온라인 갤러리와 함께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 온라인관에 걸려 있습니다.
Q. 한경화 작가의 다른 전시 이력은? A. 2018년 춘천 복합문화공간 5NOTE에서 개인전 '13월의 피안'을 열었습니다(강원일보·강원도민일보 보도). 성신여대 판화과 동문들이 함께한 '성신판화 30주년' 기념전에도 출품했습니다.
Q. 한경화 작품 가격은? A. 〈작은 땅의 야수들〉은 ₩1,200,00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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