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에서 조각을 공부하고 돌아온 시각예술가 최혜수. 시멘트와 유사 금박으로 뒤덮은 화면 안에 놀이기구의 실루엣만 남긴 연작 〈놀이터〉 두 점을, 도판을 직접 들여다보며 읽습니다.
최혜수 — 금박 아래 파묻힌 놀이터, 두 점의 〈놀이터〉를 읽다

씨앗페에 들어온 최혜수의 작품은 두 점입니다. 〈놀이터 (Playground) n'2〉와 〈놀이터 (Playground) n'3〉, 둘 다 2023년, 시멘트에 유사 금박·왁스·아크릴을 쓴 91x72.7cm 화면입니다. 제목만 보면 그네와 미끄럼틀이 보일 것 같지만, 화면을 열면 놀이기구는 어디에도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대신 화면 전체를 뒤덮은 금빛 문양과, 그 문양이 비껴가며 남긴 밋밋한 회색 도형들이 있습니다. 이 글은 그 도형이 무엇의 자리인지를 두 점을 나란히 놓고 읽는 일입니다.
놀이터라는 이름, 그리고 화면에 없는 것
〈놀이터 n'2〉의 화면 가운데에는 가로로 긴 회색 직사각형이 놓여 있습니다. 그 오른쪽으로 세로로 긴 직사각형 두 개가 나란히 서 있고, 아래쪽에는 양 끝이 둥글게 마무리된 긴 막대 모양이 반원 받침 위에 얹혀 있습니다. 왼쪽 가장자리에도 폭이 좁은 회색 기둥이 하나 더 있습니다. 형태만 따라가면 이것은 놀이터의 도면입니다. 가운데의 큰 사각형은 미끄럼틀의 발판, 오른쪽의 나란한 두 기둥은 정글짐이나 그네의 지지대, 아래의 둥근 막대는 시소나 벤치로 읽힙니다. 그러나 이 형태들은 그려진 것이 아니라 비워진 것입니다. 화면의 나머지 전부를 채운 금빛 문양이 딱 이 자리들만 피해 지나갑니다.
〈놀이터 n'3〉에서는 같은 방식이 더 촘촘하게 적용됩니다. 바탕이 갈색 기조의 n'2보다 짙은 검은빛으로 가라앉아 있고, 회색 도형의 수도 늘었습니다. 뾰족한 지붕 모양의 세로 형태 하나를 중심으로, 그 양옆에 길쭉한 기둥들이 늘어서 있고, 화면 곳곳에 크고 작은 원이 흩어져 있습니다. 공 모양으로도, 바퀴 모양으로도 읽히는 원들입니다. 오른쪽 아래에는 초승달처럼 휘어진 좁은 도형이 하나 끼어 있어, 그네의 좌석판이나 미끄럼틀의 곡면을 연상시킵니다. n'2가 성긴 뼈대만 남긴 놀이터라면, n'3은 그 뼈대에 공과 바퀴 같은 부속물까지 더해 조금 더 번잡한 놀이터입니다.
표면을 뒤덮은 것 — 금박 아래 새겨진 문양
두 점 모두에서 눈길이 먼저 가는 곳은 사실 회색 도형이 아니라 그 도형을 둘러싼 금빛 표면입니다. 가까이서 보면 이 표면은 균일한 금색 면이 아니라, 가는 선으로 빼곡하게 새긴 문양들의 집합입니다. 잎맥처럼 뻗은 식물 줄기, 소용돌이치는 곡선, 작은 별 모양의 반짝임, 새나 짐승을 닮은 실루엣, 알아볼 수 없는 기하학적 기호들이 서로 겹치고 얽혀 화면 전체를 채웁니다. 문양의 밀도가 워낙 높아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하나의 형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지점도 많습니다. 마치 오래된 유물의 표면, 시간이 지나며 부식되고 그 위에 다시 다른 손길이 새겨 넣은 고고학적 유물의 표면을 보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재료 목록에 있는 '유사 금박'이라는 표기가 이 인상을 뒷받침합니다. 진짜 금박이 아니라 금박을 흉내 낸 재료라는 뜻입니다. 시멘트라는, 건축과 보도블록에 쓰이는 값싸고 단단한 재료 위에 금을 흉내 낸 표면을 입히고, 그 위에 다시 왁스로 광을 낸 뒤 아크릴로 세부를 그려 넣었을 이 화면은, 귀한 것과 흔한 것이 한 몸에 겹쳐 있습니다. 놀이터라는, 어느 동네에나 있고 특별할 것 없는 공간의 도면이 귀금속의 광택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점도 같은 결의 대비입니다.
n'2와 n'3, 나란히 놓고 보면
같은 재료, 같은 크기, 같은 해에 제작된 두 점이지만 인상은 꽤 다릅니다. n'2는 바탕이 갈색에 가까운 밝은 금색이어서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열린 느낌을 줍니다. 회색 도형의 수도 상대적으로 적고 형태도 단순한 직사각형 위주입니다. n'3은 바탕이 검은빛으로 가라앉아 있고, 원과 초승달 모양이 섞여 들며 화면이 더 복잡하고 어두운 인상을 줍니다. 낮의 놀이터와 밤의 놀이터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같은 도면을 다른 시간에 놓고 본 것 같은 차이입니다.
이 글이 짚는 것은 화면에 실제로 있는 것 — 형태와 재료와 색의 관계 — 입니다. 다만 최혜수가 본인의 작업 전반을 소개하는 글에서, 반복되는 일상 속에 숨은 충만과 결핍, 연결과 단절의 순간을 드러내는 일을 자기 작업의 방법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은 함께 읽을 만합니다.
"최혜수는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예술로 기록하는 시각 예술가이다. 그의 작업은 유한한 생을 관찰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 숨은 충만과 결핍, 연결과 단절의 순간들을 드러낸다."
놀이터는 반복되는 일상의 공간 가운데서도 유난히 아이들의 것으로 정해진 자리입니다. 그 자리의 기구들이 화면에서 형태의 윤곽으로만, 즉 비어 있는 자리로만 남아 있다는 점은 이 소개글의 '결핍'이라는 단어와 나란히 놓고 볼 여지를 남깁니다.
벨기에에서 돌아오기까지
최혜수는 벨기에 브뤼셀 왕립 미술 대학교 조각과에서 공부했습니다. 2016년 학사, 2019년 석사를 마쳤습니다. 그전인 2015년에는 프랑스 뚤롱 보자르 예술학부에서 학사(DNAP)를 마쳤습니다. 프랑스에서 미술을 시작해 벨기에에서 조각을 전공으로 심화한 이력입니다.
조각을 전공했지만 씨앗페에 걸린 두 점은 캔버스에 준하는 평면 작업입니다. 재료 목록의 시멘트와 왁스는 평면 위에서도 조각적 질감을 다루려는 흔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화면 표면의 요철감, 문양을 파낸 듯한 선의 깊이는 붓으로만 그린 그림과는 다른 손의 개입을 짐작하게 합니다.
돌아온 뒤의 이력에는 국내외 기관의 인정이 이어집니다. 2017년 벨기에 현지에서 'Young Belgian Talents'로 선정됐고(Affordable Art Fair Brussels), 귀국 후에는 2020년 마포구 우리동네아트테리어 사업, 2021년 포르쉐 코리아 '드리머스 온 아트 어워드' 선정과 제7회 가송예술상(동화약품 가송재단) 우수상, 2023년 노원문화재단 경춘선숲길 갤러리&문화공간 정담 시각예술 전시지원사업, 그리고 2024년 안젤리미술관상을 받았습니다. 작품은 동화약품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전시 이력 — CICA에서 갤러리허브까지
최혜수의 첫 개인전은 2023년 김포 CICA미술관에서 연 〈자취의 기록 n'1〉입니다. CICA미술관은 2014년 설립된 국제전 전문 미술관입니다. 같은 미술관에서 2024년 열린 단체전 〈Drawing now 2024〉에도 참여했습니다.
2026년에는 두 번째 개인전 〈사이에서 자라는 것들〉을 성동문화재단 허브갤러리(갤러리허브)에서 열었습니다. 같은 해 봄 이 전시를 다녀간 한 관람객은 블로그에 "#최혜수개인전 #사이에서자라는것들 #전시기록"이라는 태그와 함께 관람 후기를 남겼습니다. 단체전으로는 2024년 제19회 광화문국제아트페스티벌(세종문화회관미술관)과 안젤리미술관에서 열린 〈AAC 아름다운 동행〉, 2022년 포르쉐 코리아가 연 〈THE HOUSE OF MACAN〉, 202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Dreamers.On by 포르쉐 코리아〉와 인사아트센터의 제7회 여름생색, 2020년 공주 금강자연미술센터의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2020, 그리고 2018년 벨기에 아트(Ath)에서 열린 〈Festival Triennale de l'art et du Vegetal〉을 비롯해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활동한 이력이 다수 있습니다.
2026년에는 이 밖에도 성수아뜰리에의 〈침묵이 닿는 곳〉, 합정 메세나폴리스의 〈모이니, 보이고 들리는〉에 참여했고,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씨앗페 2026〉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씨앗페 출품작 두 점
〈놀이터 (Playground) n'2〉 — 2023년, 시멘트에 유사 금박·왁스·아크릴, 91x72.7cm
바탕이 갈색 기조로 밝고, 화면 가운데 큰 직사각형을 중심으로 비교적 성긴 회색 도형들이 놓여 있습니다. 두 점 가운데 더 열려 보이는 쪽입니다.

- 91x72.7cm · 시멘트, 유사 금박, 왁스, 아크릴 · 2023 · 확인 중
- 작품 페이지 →
〈놀이터 (Playground) n'3〉 — 2023년, 시멘트에 유사 금박·왁스·아크릴, 91x72.7cm
바탕이 검은빛으로 가라앉아 있고, 원과 초승달 모양이 섞여 들며 화면이 더 촘촘합니다. n'2와 같은 해, 같은 재료, 같은 크기로 제작된 짝입니다.

- 91x72.7cm · 시멘트, 유사 금박, 왁스, 아크릴 · 2023 · 확인 중
- 작품 페이지 →
두 점을 나란히 걸면 같은 도면이 낮과 밤으로 갈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최혜수 작가 페이지에서 두 작품을 함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최혜수가 씨앗페에 두 점을 낸 이유는 본인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배우고 돌아와 시멘트와 금박으로 놀이터의 뼈대를 그려온 이 신진 작가가 지금 씨앗페에 걸어 놓은 것은, 화면 가득 새긴 문양 아래 비워둔 자리 두 개입니다. 그 자리를 채우는 일은 이제 이 작품을 컬렉션에 들이는 분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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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최혜수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벨기에 브뤼셀 왕립 미술 대학교 조각과에서 학사(2016)·석사(2019)를 마치고, 그전에는 프랑스 뚤롱 보자르에서 학사(2015)를 마친 시각예술가입니다.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반복되는 일상의 관찰을 통해 다루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놀이터〉 연작은 어떤 작품인가요? A. 〈놀이터 (Playground) n'2〉·〈놀이터 (Playground) n'3〉 두 점으로, 둘 다 2023년 시멘트에 유사 금박·왁스·아크릴을 써서 91x72.7cm로 제작됐습니다. 화면 전체를 빼곡한 금빛 문양으로 덮고, 놀이기구의 윤곽만 회색 여백으로 비워 두는 방식이 두 점에 공통됩니다.
Q. 두 작품은 어떻게 다른가요? A. n'2는 갈색 기조의 밝은 바탕에 직사각형 위주의 성긴 도형이, n'3은 검은빛으로 가라앉은 바탕에 원과 초승달 모양이 섞인 더 촘촘한 도형이 놓여 있습니다.
Q. 전시 이력은 어떻게 되나요? A. 2023년 김포 CICA미술관에서 첫 개인전 〈자취의 기록 n'1〉을, 2026년 성동문화재단 허브갤러리에서 두 번째 개인전 〈사이에서 자라는 것들〉을 열었습니다. 2024년 안젤리미술관상, 2021년 포르쉐 코리아 '드리머스 온 아트 어워드'와 제7회 가송예술상 우수상 등을 받았고, 작품은 동화약품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Q. 최혜수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최혜수는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씨앗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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