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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선 — 사라진 풍경 자리에 남은 동물과 식물을 상상하는 작가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9월 18일 · 씨앗페

"한때는 나와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큰 위안을 주었던 풍경들이 사라지고 있음을 문득 깨닫게 될 때가 있다." 사라진 장소의 지층을 되짚는 황의선의 씨앗페 출품작 두 점을 안내합니다.

황의선 — 사라진 풍경 자리에 남은 동물과 식물을 상상하는 작가

황의선, 〈너무 늦은 안녕 Hello too late〉, 캔버스에 아크릴, 40x40cm — 짙은 초록과 노랑이 번진 화면 안에 흰 짐승과 갈색 짐승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황의선, 〈너무 늦은 안녕 Hello too late〉, 캔버스에 아크릴, 40x40cm — 짙은 초록과 노랑이 번진 화면 안에 흰 짐승과 갈색 짐승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씨앗페에 들어온 황의선의 작품은 두 점입니다. 둘 다 2020년 작이고, 둘 다 캔버스에 아크릴입니다. 제목은 〈공간의 기억 memory of space〉과 〈너무 늦은 안녕 Hello too late〉.

두 작품에 작가가 붙인 설명은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같은 글입니다. 연작이라는 뜻입니다.

"장소들은 어떤 변화들을 거쳐 지금 우리가 보는 곳으로 변화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지질학자들이 증명해 내는 어떤 지층의 변화나 하는 그런 종류의 궁금증을 넘어서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동물들과 식물들에 대한 것이다. 나의 작업은 그 오래된 시간 속의 어떤 지점에 존재했던 동물들과 식물들에 대한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 황의선, 씨앗페 출품작에 붙인 작업 노트

'지질학자들이 증명해 내는 지층의 변화'를 넘어선다고 그는 썼습니다. 땅이 어떻게 쌓였는가가 아니라, 그 지층의 어느 한 지점에 무엇이 살고 있었는가를 묻는다는 뜻입니다. 증명이 아니라 상상이라고 스스로 못 박은 것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사라지는 풍경에서 시작한 작업

작가가 씨앗페에 제출한 소개에 따르면, 그의 작업은 이런 순간에서 출발했습니다.

"한때는 나와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큰 위안을 주었던 풍경들이 사라지고 있음을 문득 깨닫게 될 때가 있다. 그 자리에는 커다란 건물들과 구조물이 들어서면서 낯선 공간으로 대체되어 있다." — 황의선, 씨앗페에 제출한 작가 소개

같은 글에서 그는 그 풍경이 개인의 것만이 아니라고 덧붙입니다. 오래 익숙했던 풍경은 "나 개인의 기억을 넘어 그곳에 정주했던 공동체의 일원들에게도 많은 기억과 경험들을 공유하게 해" 주었고, 더 넓게 보면 "한 시대의 어떤 사건과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역사적인 공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라지는 풍경을 애도하는 작업은 드물지 않습니다. 이 작가가 조금 다른 자리에 서는 것은, 애도의 대상을 사람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가 되살리려는 목록에는 사람과 함께 동물과 식물이 나란히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에 실제로 나타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입니다.

2020년 — 바다 괴물이 돌아오다

황의선은 경성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개인전은 2012년 E.T 갤러리 《공간의 기억》, 2014년 을숙도문화회관 《고독한 미메시스 그리고 낯선 풍경》, 2015년 해안통 갤러리 《다시 봄, 그리고 또 다른 봄...》, 2016년 사이아트 스페이스 《먼 곳으로부터 온》, 2020년 예술공간 봄 《리바이어던 그 바다괴물의 귀환》으로 이어집니다.

이 가운데 언론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2020년 개인전입니다. 경기일보는 그해 4월 이 전시를 이렇게 전했습니다.

"바다에 사는 괴물 리바이어던으로 불렸던 모비딕을 주제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고찰한 전시 〈리바이어던 그 바다괴물의 귀환〉이 오는 30일부터 수원 예술공간 봄에서 열린다." — 경기일보, 2020년 4월 26일

전시는 5월 7일까지 이어졌습니다. 기사가 정리한 전시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자연을 극복하고 지배하려는 인간의 욕망, 그리고 인간에게 결코 굴복하지 않는 자연의 힘을 보이면서" 동시에 "어느 한 쪽이 승리하더라도 투쟁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것.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서 흰 고래는 작살 자국과 흉터를 몸에 가득 달고도 매번 포경선을 침몰시킵니다. 기사는 이 고래를 "인간이 자연을 공포와 숭고의 대상이자 정복과 착취의 대상으로 여겼음을 드러내는 존재"로 읽었습니다.

전시 작품들은 모두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려졌고, "직접적인 형상보다는 추상적인 형태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특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시의 대표작으로 기사가 지목한 것이 바로 씨앗페 출품작과 같은 이름의 연작입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공간의 기억' 시리즈가 있다. 이 시리즈는 다양한 색깔로 배경을 만들어 낸 뒤 물감을 흐트려뜨린 듯한 기법으로 형상을 표현했다. 이는 과거 특정한 형태를 갖고 있지 않았던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개별적인 형태를 드러낸 셈이다." — 경기일보, 2020년 4월 26일

'다양한 색깔로 배경을 만들어 낸 뒤 물감을 흐트려뜨린 듯한 기법'. 씨앗페 출품작 두 점이 정확히 그 화면입니다.

같은 기사에서 작가는 그해의 코로나 사태를 전시의 의의와 연결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자연이 망가진 200여 년은 지구 전체 역사에서는 극히 짧은 기간이지만 생태계 위기라는 측면에서는 유례없는 사태를 맞았고, 코로나에 따른 대안적 삶의 방식이 "인간과 자연이 서로 유기적 관계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됐다"는 점을 그는 강조했습니다.

그해 11월, 남양주 와부갤러리

같은 2020년 11월 11일부터 17일까지, 남양주시 와부·조안 행정복지센터 안의 와부갤러리에서 《2020, 새로운 독립운동의 원년, 진정한 독립은 통일이다》 전이 열렸습니다. 공공예술들로화집단과 민족미술인협회가 공동 주최하고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후원한 전시였고, 황의선은 참여 작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뉴스웍스·열린뉴스통신·신아일보가 같은 명단을 보도했습니다.

전시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1부는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와 3·1운동, 2부는 2019년 독립운동 100주년, 3부는 2020년 이후의 새로운 독립운동. 회화·조각·만화·옻칠화·뜨개질까지 장르가 뒤섞인 자리였습니다.

같은 해에 열린 두 전시가 성격이 꽤 다릅니다. 한쪽은 인간과 자연의 싸움을 추상으로 그린 개인전이고, 다른 한쪽은 분단과 통일을 주제로 한 단체전입니다. 이 작가가 어느 한 갈래로만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 기록이 함께 보여줍니다. 실제로 그의 단체전 이력에는 《아시아의 쌀전》(전북도립미술관, 2019·2022), 《이 시대의 리얼리즘을 위하여》(인사아트센터, 2020), 《어쩌다 에코 페미니즘》(갤러리 정 강남, 2023) 같은 전시가 섞여 있습니다.

씨앗페 출품작 두 점 읽기

〈공간의 기억 memory of space〉 — 2020년, 캔버스에 아크릴

경기일보가 전시 대표작으로 꼽은 그 연작의 제목을 그대로 단 작품입니다. 그리고 작가의 2012년 첫 개인전 제목이기도 합니다. 8년 사이를 잇는 이름인 셈입니다.

화면은 색면과 붓질이 부딪히는 자리입니다. 진분홍·자주·붉은색이 큰 면으로 깔리고, 그 위에 초록·노랑·회백색·파랑이 사각형 띠와 삼각형으로 끼어듭니다. 화면 아래쪽 절반은 세로로 긴 띠들이 나란히 서 있어, 나무 기둥이 늘어선 것처럼도 보이고 색 견본을 세워 둔 것처럼도 보입니다.

그 위를 형광 분홍과 검정, 초록의 굵은 붓질이 크게 휘돌아 지나갑니다. 물감이 흘러내린 자국과 흩뿌려진 점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밑에 깔린 색면은 차분히 정렬되어 있는데 위에 얹힌 붓질은 통제를 벗어나 있습니다. 두 층이 서로 다른 시간에 속한 것처럼 보이는 화면입니다. 기사가 적은 "과거 특정한 형태를 갖고 있지 않았던 인간과 자연의 관계"라는 문장이 이 이중 구조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힙니다.

작품 크기는 아직 확인 중입니다.

황의선, 〈공간의 기억 memory of space〉, 캔버스에 아크릴, ₩350,000
황의선, 〈공간의 기억 memory of space〉, 캔버스에 아크릴, ₩350,000

〈너무 늦은 안녕 Hello too late〉 — 2020년, 캔버스에 아크릴, 40x40cm

한 변 40cm의 정사각형입니다. 앞의 작품과 같은 해, 같은 재료인데 화면은 훨씬 조용합니다.

바탕은 짙은 초록입니다. 그 안에 노란빛과 붉은 점들이 번져 있어, 물속이나 이끼 낀 숲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깊이가 생깁니다. 형광 노랑과 붉은 얼룩이 군데군데 떠 있습니다.

그 안에 짐승 두 마리가 있습니다. 화면 왼쪽 중간에 흰 짐승 한 마리가 오른쪽을 향해 걷고 있고, 오른쪽 아래에 황갈색 짐승 한 마리가 왼쪽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개나 여우처럼 보이는 네발짐승이고, 옆모습으로만 그려져 있습니다. 둘은 서로를 향해 오는 것처럼 배치되어 있지만 시선이 마주치지는 않습니다. 배경의 물감이 번지고 흘러내린 것과 달리 두 짐승만은 또렷한 실루엣으로 떠 있어, 그림 위에 오려 붙인 것처럼 분리되어 보입니다.

제목이 〈너무 늦은 안녕〉입니다. 안녕이라는 말은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씁니다. 영문 제목이 'Goodbye too late'가 아니라 'Hello too late'이므로, 늦은 쪽은 작별이 아니라 인사입니다. 사라진 자리에 살았던 것들에게 이제야 건네는 첫인사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작가가 작업 노트에 쓴 "그 오래된 시간 속의 어떤 지점에 존재했던 동물들과 식물들에 대한 상상"이 화면에서 두 마리 짐승으로 나타난 셈입니다.

황의선, 〈너무 늦은 안녕 Hello too late〉, 캔버스에 아크릴, 40x40cm, ₩350,000
황의선, 〈너무 늦은 안녕 Hello too late〉, 캔버스에 아크릴, 40x40cm, ₩350,000

두 점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작가의 두 얼굴이 보입니다. 하나는 색과 붓질이 부딪히는 소란한 화면이고, 다른 하나는 짙은 초록 안에 짐승 두 마리만 떠 있는 고요한 화면입니다. 같은 해에 그린 두 점입니다. 황의선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황의선이 씨앗페에 두 점을 낸 이유는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사라지고 나서야 사라진 줄 아는 것들을 계속 그려온 작가가 동료 예술인이 밀려나는 자리에 작품을 내놓았다는 사실은, 그의 작업 노트와 따로 읽히지 않습니다. 너무 늦은 안녕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늦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황의선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 두 점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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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황의선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경성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한 화가입니다. 사라져 가는 장소와 그곳에 살았던 동물·식물을 소재로 캔버스에 아크릴로 작업합니다. 2012년 E.T 갤러리를 시작으로 을숙도문화회관, 해안통 갤러리, 사이아트 스페이스, 예술공간 봄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Q. '공간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A. 작가의 대표 연작 이름이자 2012년 첫 개인전의 제목입니다. 2020년 수원 예술공간 봄에서 열린 개인전 《리바이어던 그 바다괴물의 귀환》에서도 대표작으로 소개됐습니다. 경기일보는 이 연작을 "다양한 색깔로 배경을 만들어 낸 뒤 물감을 흐트려뜨린 듯한 기법으로 형상을 표현했다"고 전했습니다(2020년 4월 26일).

Q. 《리바이어던 그 바다괴물의 귀환》은 어떤 전시였나요? A. 2020년 4월 30일부터 5월 7일까지 수원 예술공간 봄에서 열린 개인전입니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의 흰 고래를 실마리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뤘으며, "어느 한 쪽이 승리하더라도 투쟁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경기일보, 2020년 4월 26일).

Q. 단체전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A. 2020년 11월 남양주 와부갤러리에서 열린 《2020, 새로운 독립운동의 원년, 진정한 독립은 통일이다》 전에 참여했습니다. 공공예술들로화집단과 민족미술인협회가 공동 주최하고 경기도·경기문화재단이 후원한 전시입니다. 그 밖에 《아시아의 쌀전》(전북도립미술관), 《이 시대의 리얼리즘을 위하여》(인사아트센터), 《어쩌다 에코 페미니즘》(갤러리 정 강남), JAALA 국제전(도쿄도 미술관) 등에 참여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황의선 작품은 몇 점이고 가격은 얼마인가요? A. 두 점입니다. 〈공간의 기억 memory of space〉(2020, 캔버스에 아크릴, 크기 확인 중)과 〈너무 늦은 안녕 Hello too late〉(2020, 캔버스에 아크릴, 40x40cm)이며 두 점 모두 ₩350,000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Q. 작품을 사면 수익은 어디로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황의선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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