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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 다 그리지 않은 것들, 부엌에서 불이 켜져 있다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9월 18일 · 씨앗페

볼티모어에서 그림을 배운 회화 작가 이채원. 한 화면 안에서 어떤 것은 두껍게 칠하고 어떤 것은 선만 남깁니다. 세 가지 한자를 한 제목에 담은 씨앗페 출품작 〈소화〉를, 작가 본인의 글과 화면으로 읽습니다.

이채원 — 다 그리지 않은 것들, 부엌에서 불이 켜져 있다

이채원, 〈소화 : 消化, 消火, 燒火〉, 린넨에 유채, 72.7x90.9cm — 부엌에서 칼질하는 인물, 뒤편 가스레인지에 파란 불꽃이 켜져 있고 그 위 냄비와 꽃다발은 보라색 선으로만 그려져 있다
이채원, 〈소화 : 消化, 消火, 燒火〉, 린넨에 유채, 72.7x90.9cm — 부엌에서 칼질하는 인물, 뒤편 가스레인지에 파란 불꽃이 켜져 있고 그 위 냄비와 꽃다발은 보라색 선으로만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걸리는 것은 그려진 것이 아니라 덜 그려진 것입니다.

인물은 두껍게 칠해져 있습니다. 붉은 스웨터, 도마 위로 내려온 두 손, 눈꺼풀을 내리깐 얼굴. 앞쪽의 물건들도 그렇습니다 — 올리브유 병, 간장병, 민트색 손잡이 가위, 유리컵, 붓과 숟가락이 꽂힌 분홍 컵. 색이 들어가고 그림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화면 왼쪽 가스레인지 위의 냄비는 보라색 윤곽선뿐입니다. 그 안에서 피어오르는 꽃다발도 선만 있습니다.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오른쪽 벽의 커다란 꽃무늬는 아예 연필 자국처럼 희미하게 긁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파란 가스 불꽃이 혼자 켜져 있습니다.

작업의 문법 — 옮기고, 미루고, 다시 놓는다

이채원이 씨앗페에 제출한 작가 노트를 읽으면 이 화면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가 풀립니다.

"나는 개인적 경험에서 생겨나는 감정의 잔여를 외부로 옮기려는 방식에 주목한다. 내면에 고정되지 못하는 감정들은 쉽게 해소되지 않고, 다른 구조로 이동하며 머무른다. 이러한 흐름은 해결이나 종결을 향해 나아가기보다, 반복과 지연 속에서 다른 상태로 변형된다." — 작가가 씨앗페에 제출한 작가 노트

핵심어는 '지연'입니다. 해결이 아니라 미뤄짐. 작가는 자기 회화를 "이 불안정한 상태들을 잠시 붙잡는 장치"라고 부릅니다. 완결이 아니라 정지 화면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화면에서 어떤 것은 완전히 칠해져 있고 어떤 것은 선만 남아 있는 것이 마감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태의 차이입니다. 같은 부엌 안에서 어떤 사물은 지금 여기에 확실히 있고, 어떤 사물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거나 이미 떠나는 중입니다. 작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전이, 보류, 재배치의 실험"입니다.

노트의 다음 대목은 이 장면의 배치를 설명합니다.

"서로 다른 요소들을 캔버스 위에 배치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이 연결되거나 충돌하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어떤 것은 원래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것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붓과 숟가락이 한 컵에 같이 꽂혀 있는 것이 그렇습니다. 요리 도구와 그림 도구가 구분 없이 섞여 있습니다. 작업실과 부엌이 같은 곳이거나, 적어도 이 사람의 기억 안에서는 구분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작가는 마지막에 이렇게 씁니다.

"특정 감정이나 사건을 하나로 규정하기보다, 그것이 옮겨지는 방식과 그 과정에서 남는 흔적에 집중한다. 작업은 완결을 향해 닫히기보다, 아직 머무르고 변하는 상태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하나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태도는 이 작가의 제목 짓는 방식에도 그대로 나옵니다.

제목이 세 개인 한 작품

〈소화 : 消化, 消火, 燒火〉.

같은 소리를 내는 한자가 셋입니다. 消化는 먹은 것을 삭이는 일, 消火는 불을 끄는 일, 燒火는 태우는 일입니다. 삼키기·끄기·태우기. 작가는 셋 중 하나를 고르는 대신 셋을 다 제목에 걸어 두었습니다.

화면을 다시 보면 셋이 전부 들어 있습니다. 인물은 도마 위에서 무언가를 썰고 있고(消化), 가스 불은 켜져 있으며(燒火), 그 불 위에 올라간 것은 냄비가 아니라 꽃다발입니다 — 태우는 중인지 끄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消火). 그런데 그 냄비와 꽃은 선으로만 있어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인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인지 구분되지 않습니다.

앞서 읽은 노트의 문장이 여기서 화면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내면에 고정되지 못하는 감정들은 (…) 다른 구조로 이동하며 머무른다." 감정이 부엌의 사물로 옮겨 앉아 있는 것입니다. 삭이지도 끄지도 못한 것이 파란 불꽃 하나로 남아 계속 켜져 있습니다.

밖에서 확인되는 것

이채원에 관해 외부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은 한 건입니다. 미국 메릴랜드 볼티모어의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MICA) 공식 웹사이트가 2024년 11월 21일부터 12월 8일까지 Fox 3 Gallery에서 열린 졸업반 전시 《Spotlight: Graduating Seniors in Focus》 참여 작가 명단에 "Chaewon Lee"를 올려 두었습니다. 회화(Painting)·드로잉·일반미술 전공 졸업반 전시입니다.

그 밖의 이력 — 2024년 MICA 회화과 summa cum laude 졸업, 같은 해 볼티모어 Lazarus Hall Gallery에서 연 첫 개인전 〈To Be Continued〉, 워싱턴DC 한국 영사관 전시 〈Summer Comes to My Hometown, Seoul〉, 교내 Distinguished International Student Award 등 — 은 작가가 제출한 이력에 있는 내용이고, 별도의 외부 보도로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첫 개인전 제목이 〈To Be Continued〉, '계속됨'이라는 점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완결로 닫지 않겠다는 작가의 말과 같은 자리에 있는 제목이기 때문입니다.

씨앗페 출품작 읽기

〈소화 : 消化, 消火, 燒火〉 — 2026년, 린넨에 유채, 72.7x90.9cm

캔버스가 아니라 린넨입니다. 결이 굵은 바탕 위에 얇게 흘러내린 자국이 여러 군데 남아 있습니다 — 특히 인물의 손과 도마 주변, 오른쪽 벽면에서 물감이 아래로 흐른 흔적이 그대로 보입니다. 지우고 다시 칠한 자리를 덮지 않고 남겨둔 것으로 읽힙니다. "남는 흔적에 집중한다"는 노트의 문장이 표면에서 확인됩니다.

색은 크게 두 덩어리로 갈립니다. 앞쪽 조리대의 주황·노랑이 따뜻하게 깔리고, 뒤쪽 벽과 타일은 차가운 회청색입니다. 인물의 붉은 스웨터가 그 두 덩어리 사이에 걸쳐 있습니다.

씨앗페에 나온 이채원의 작품은 이 한 점입니다.

이채원, 〈소화 : 消化, 消火, 燒火〉, 린넨에 유채, 72.7x90.9cm, ₩1,100,000
이채원, 〈소화 : 消化, 消火, 燒火〉, 린넨에 유채, 72.7x90.9cm, ₩1,100,000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가가 큰 화면 한 점을 그 구조에 내놓았습니다. 아직 자기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먼저 내놓는 쪽에 선다는 것이 어떤 선택인지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채원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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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이채원 작가는 어떤 작업을 하나요? A. 개인적 경험에서 남은 감정이 외부의 사물과 장면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회화로 다룹니다. 본인은 이를 "전이, 보류, 재배치의 실험"이라 부르며, 작업이 "완결을 향해 닫히기보다, 아직 머무르고 변하는 상태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고 작가 노트에 썼습니다.

Q. 제목의 한자 세 개는 각각 무슨 뜻인가요? A. 消化는 삭이는 일, 消火는 불을 끄는 일, 燒火는 태우는 일입니다. 셋 다 우리말로 '소화'로 읽힙니다. 작가는 하나를 고르는 대신 셋을 모두 제목에 두었습니다.

Q. 화면에 선으로만 그려진 부분은 미완성인가요? A. 작가의 노트에 비추어 읽으면 마감의 문제가 아니라 상태의 차이로 보입니다. 같은 화면 안에서 어떤 사물은 두껍게 칠해져 있고 어떤 사물은 윤곽선만 남아 있어, 확실히 있는 것과 아직 머무는 중인 것이 함께 놓입니다.

Q. 어디서 공부했나요? A. 미국 메릴랜드 볼티모어의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MICA)에서 회화를 전공했습니다. MICA 공식 웹사이트가 2024년 졸업반 전시 《Spotlight: Graduating Seniors in Focus》(Fox 3 Gallery, 2024.11.21~12.8) 참여 작가로 "Chaewon Lee"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학내 수상·개인전 이력은 작가가 제출한 이력에 따른 것입니다.

Q. 〈소화〉 가격은? A. ₩1,100,000입니다. 린넨에 유채, 72.7x90.9cm, 2026년작입니다.

Q.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이채원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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