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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훈 — 뼈와 총으로 새긴 제주 4·3, 40년의 판각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9월 21일 · 씨앗페

1985년 첫 판화전 이래 제주 4·3을 목판에 새겨온 작가 박경훈. 백골과 총으로 「애도의 차별」을 물은 《백골난감》과, 씨앗페 출품작 두 점을 읽습니다.

박경훈 — 뼈와 총으로 새긴 제주 4·3, 40년의 판각

박경훈, 〈키세스 시위대_ 죽은 자가 산 자와 과거가 현재와〉, Woodcut on Hanji, 100x70cm — 눈 내리는 검은 바탕에 백골과 은박 담요를 쓴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다
박경훈, 〈키세스 시위대_ 죽은 자가 산 자와 과거가 현재와〉, Woodcut on Hanji, 100x70cm — 눈 내리는 검은 바탕에 백골과 은박 담요를 쓴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다

화면 전체가 검습니다. 그 검은 바탕에 흰 점이 빼곡히 박혀 있는데, 눈입니다. 눈 속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왼쪽은 백골입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팻말을 들고 있습니다. 오른쪽은 담요를 뒤집어쓴 사람입니다. 목 앞에서 매듭을 지어 묶었고, 얼굴은 두건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눈을 맞고 있습니다. 목판화 한 장에 새겨진 이 구도가 박경훈이라는 작가가 40년 동안 해온 일을 거의 그대로 요약합니다.

제주에서 나고, 제주에서 새기다

박경훈은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광주일보와 광남신문은 그가 "제주에서 태어나 군복무 27개월을 제외한 현재까지 제주에서 살고 있다"고 전합니다. 작업의 주제가 제주인 작가가 한평생 제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의 작업을 취재의 결과가 아니라 거주의 결과로 읽게 만듭니다.

1980년대 군부독재 시대에 대학을 다니며 "예술의 쓸모 있음"을 고민했고, 졸업 후 미술 동인 '그림패 바람코지'를 결성해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이 시기의 주된 매체가 목판화였고, 주제는 4·3이었습니다. 같은 보도는 그가 이때부터 현실참여·역사 미술·현장 미술에 천착했다고 적습니다.

1985년에 첫 판화전을 열었습니다. 그 뒤로 열한 번의 개인전을 열었는데,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그는 4월을 "영원히 잊지 않을 '기억'"이라고 말합니다. 개인전마다 4월을 품은 작품이 걸렸습니다.

작업 바깥의 이력도 4·3에 붙어 있습니다. 광주일보·광남신문은 그가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운동에 동참해 4·3도민연대 정책실장으로 4·3특별법 제정 투쟁에 참여했고, 제주도4·3실무위원회 위원과 4·3평화공원 조성·4·3평화기념관 건립 전시기획팀장으로 일했다고 전합니다.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도 지냈습니다(제주매일·제주의소리).

소전미술관이 정리한 작가 소개에는 그가 탐라미술인협회를 창립하고 해마다 열리는 4·3미술제를 주도해 왔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과 제도를 만드는 일이 한 사람 안에서 나란히 갔다는 뜻입니다.

왜 목판인가

박경훈의 매체는 목판화입니다. 씨앗페에 나온 두 점의 재료 표기도 "Woodcut on Hanji" — 한지에 찍은 목판화입니다.

목판은 그릴 수 없습니다. 파내야 합니다. 흰 부분은 칼이 깎아낸 자리이고, 검은 부분은 남긴 자리입니다. 중간 톤을 만들려면 가는 선을 촘촘히 새겨 넣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주도민일보는 《백골난감》 전시를 두고 "거칠고 강렬한 흑백 대비는 목판이 가진 물성과 4·3이라는 역사적 무게를 그대로 전하며 조용한 애도보다는 적극적인 질문과 저항의 감정을 전달한다"고 썼습니다.

그의 판화를 오래 본 사람들은 대체로 음영을 먼저 말합니다. 울산에서 그의 전시를 연 관계자는 "박경훈 작가는 무거운 주제와 달리 매우 유쾌한 거장의 풍모를 지녔다. 특히 판화가 지닌 음영을 너무 영리하게 사용하니 절로 감탄이 터진다"고 했고, "흑백의 단조로움 뒤로 층층이 겹쳐진 서사가 은은히 돋보인다. 그러니 우리의 현대사가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느낌을 준다"고 덧붙였습니다(오마이뉴스).

판화의 또 다른 성질도 그의 작업 방식에 맞아떨어집니다. 하나의 원판으로 여러 점을 찍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2025년 《백골난감》이 제주·서울·광주 세 도시에서 동시에 열릴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라일보는 "하나의 원판으로 여러 점을 찍어내는 판화이기에 같은 작품을 다른 지역에서도 볼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점이 한 곳에만 걸리는 회화였다면 불가능한 구성입니다.

《백골난감》 — 애도의 차별을 묻다

2025년, 4·3 77주년에 맞춰 열린 개인전 《백골난감 — 이름 잃은 항쟁에 바치는 때늦은 조사(弔辭)》는 그의 열한 번째 개인전이자, 제주로서는 10년 만의 개인전이었습니다. 2년을 준비해 4·3 목판화 신작만으로 채웠다고 제주매일은 전합니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 나무아트, 제주 포지션민제주, 광주 오월미술관에서 4~5월에 걸쳐 동시에 열렸습니다(연합뉴스).

제목부터 낯섭니다. 광주일보는 그 낯섦을 이렇게 풀었습니다. 익숙한 말은 백골난망(白骨難忘)으로 "죽어 뼈만 남아도 잊을 수 없다", 곧 큰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박경훈이 쓴 백골난감(白骨難堪)은 글자 그대로 "죽어 뼈만 남은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뜻입니다. 한 글자를 바꿔 감사의 말을 곤경의 말로 돌려놓은 것입니다.

전시의 상징은 뼈와 총 두 가지였습니다. 한라일보는 "'뼈'는 70년의 시간 속에서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법테두리 밖에서 예외자로 존재하는 4·3항쟁의 영혼을, '총'은 항쟁을 상징하는 소재"라고 정리했습니다.

작가가 이 전시로 겨눈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였습니다.

"동일한 희생자임에도 추모되고 복권된 이들과 끝내 외면받은 이들 사이의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 — 제주도민일보, 2025년 4월

그는 이것을 '애도의 차별'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77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위패에 오르지 못하고 '수괴'로 낙인찍힌 채 망각 속에 남겨진 이들을 위한 늦은 조사(弔辭)를 예술로 바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화면 속 백골들은 가만히 누워 있지 않습니다. 제주도민일보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작품 속 백골들은 유골의 형상으로 재현돼 법정에 서고 사라진 위패를 찾고 무덤 속에서 재심을 청구한다. 백골은 피해자의 형상이 아닌 지금 이 시대에 말을 건네는 '행동하는 존재'로 그려졌다." 〈201호 법정〉, 〈우리는 죄 없는 사람〉, 〈마지막 재심청구〉,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 — 위패봉안실2〉 같은 제목들이 그 상태를 그대로 가리킵니다.

미술평론가 김준기는 "박경훈의 목판화는 애도의 권리조차 박탈당한 존재들을 위해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되묻는다"며 "뼈와 총이라는 상징은 4·3을 학살이 아닌 항쟁으로 다시 정의하려는 작가의 기획"이라고 평했습니다(제주도민일보).

오마이뉴스가 전한 대로, 같은 전시의 신작 판화에서 백골들은 살아남은 이들의 슬픈 표정과 달리 미소를 깊게 머금고 있습니다. 죽은 쪽이 산 쪽을 위로하는 구도입니다. 씨앗페에 나온 두 점을 읽는 열쇠가 여기 있습니다.

제주 바깥으로, 그리고 광장으로

박경훈의 작업은 제주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2023년 광주시립미술관은 그를 초청해 《박경훈: 4·3 기억투쟁, 새김과 그림》을 열었습니다. 3월 30일 개막해 7월 2일까지 이어진 이 전시에서 관장 김준기는 "제주 4·3의 75주년에 열린 이번 전시는 제주 4·3 사건의 기억을 소환하고, 연대의 가치를 살필 수 있는 기회"라고 밝혔습니다. 미술관은 이 전시의 의미를 "제주4·3과 광주5·18 정신을 관통하는 민주화의 가치를 공유하는 목적이자, 예술을 통한 지속적 연대의 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부대 행사로 전남대 철학과 박구용 교수와의 작가 대담도 열렸습니다.

2025년에는 울산으로 갔습니다. 울산노동역사관이 울산민주화운동기념계승사업회와 공동주최한 《백골난감》 초대전이 4월 7일부터 5월 31일까지 열렸고, 목판화 50점이 걸렸습니다.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전시를 치른 작가였지만 울산에서 여는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주최 측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기록하며 미래를 그려온 민중미술의 거장을 울산에 모시게 되어 기쁘다"고 밝혔습니다(오마이뉴스).

2025년 12월에는 서울 용산구 민주화운동기념관 특별전 《빛의 연대기》에 참여했습니다. 한국일보는 그가 낸 목판화 〈동학, 일백삼십년만에 남태령을 넘다〉를 두고 "과거와 현재의 민주화운동을 잇는다는 전시의 주제의식을 직관적으로 표현한다"고 썼습니다. 트랙터를 몰고 상경하다 남태령에서 가로막힌 '전봉준투쟁단' 행렬에 옛 의병단과 지금의 응원봉 시위대가 함께 어울린 장면이라는 설명입니다. 소전미술관이 정리한 소개는 이 작품을 "동학농민군, 4·3항쟁민, 5·18시민군이 함께 '빛의혁명'으로 나아가는 4미터 대작판화"라고 적었습니다.

4·3에서 시작한 판각이 동학과 5·18과 최근의 광장까지 한 화면에 올라온 셈입니다. 2026년에는 경기 시흥 소전미술관 기획전(5월 14일~8월 14일)에 임옥상·민정기·이종구·박진화·이철수·김준권 등과 함께 참여했습니다. 작가가 씨앗페에 제출한 소개에는 2025년 경기도미술관 《한국현대목판화 70년: 판을 뒤집다》 참여도 적혀 있습니다.

씨앗페 출품작 두 점 읽기

씨앗페에 들어온 박경훈의 작품은 두 점입니다. 둘 다 2025년에 한지에 찍은 목판화이고, 앞 장에서 읽은 두 갈래 — 4·3의 유해와 오늘의 광장 — 가 한 점씩 나뉘어 있습니다.

〈70년만의 귀가〉 — 2025년, Woodcut on Hanji, 80x55cm

여백이 화면의 대부분입니다. 아무것도 새기지 않은 한지의 흰 바닥 위에, 두 개의 형상만 놓여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한 사람이 바닥에 앉아 있습니다. 등을 보이고 앉아 고개만 옆으로 돌렸습니다. 굵고 검은 치마가 바닥에 퍼져 있고, 저고리의 등판과 어깨에는 판각의 거친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왼쪽에는 천을 깔고 그 위에 놓인 흰 상자 하나가 있습니다. 유골함입니다.

사람과 상자 사이의 거리가 이 그림의 전부입니다. 붙어 있지도 않고 아주 멀지도 않은,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서 두 형상이 마주 봅니다. 앞서 본 《백골난감》의 검은 화면과 정반대로, 여기서는 흰 여백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새기지 않은 자리가 70년의 길이를 맡고 있는 셈입니다.

작가가 이 작품에 직접 붙인 설명이 있습니다.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어 생사를 모르던 남편의 유골이 돌아왔다. 이미 70여 년 기다림의 시간 속에 더 흘릴 눈물도 메말라 버린 아내. (…) 길고 긴 망각의 시간 속에서도 기다림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버텨온 아내에게 70년 만의 귀가는 무슨 의미를 가질까?" — 작가가 씨앗페 출품작에 붙인 작업 노트

같은 노트에서 작가는 배경이 된 사실도 적어두었습니다. 제주국제공항 유해 발굴이 끝난 뒤 2006년부터 380여 구의 발굴 유해 가운데 140여 구의 신원이 DNA 검사로 밝혀졌고, "육신은 재가 되어 한 갑자가 지나고도 10년이 더 지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셈"이라는 것입니다.

제목의 '귀가'라는 말이 무겁게 읽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돌아온 것은 사람이 아니라 뼈이고, 기다린 사람은 이미 눈물이 마른 뒤입니다.

박경훈, 〈70년만의 귀가〉, Woodcut on Hanji, 80x55cm, ₩3,000,000
박경훈, 〈70년만의 귀가〉, Woodcut on Hanji, 80x55cm, ₩3,000,000

〈키세스 시위대_ 죽은 자가 산 자와 과거가 현재와〉 — 2025년, Woodcut on Hanji, 100x70cm

도입부에서 본 작품입니다. 두 점 가운데 큰 쪽이고, 흑백의 비율이 앞 작품과 뒤집혀 있습니다. 바탕을 검게 남기고 눈을 흰 점으로 파냈습니다. 가부좌를 튼 백골과 담요를 둘러쓴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있고, 백골의 무릎 위에는 손팻말이 놓여 있습니다.

'키세스 시위대'라는 이름의 유래는 작가가 직접 적어두었습니다.

"'키세스' — 은박지로 감싼 초콜릿 이름. '키세스 시위대' — 탄핵의 겨울을 지나며 얻은 역사적 이름." — 작가가 씨앗페 출품작에 붙인 작업 노트

한국일보는 이 시위대를 "대통령 관저 앞에서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밤새 버틴" 사람들로 설명합니다. 은박 담요를 뒤집어쓴 모습이 초콜릿 포장을 닮아 붙은 별명입니다.

부제 "죽은 자가 산 자와 과거가 현재와"의 출처 역시 작가의 노트에 있습니다.

"한강이 말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을까?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을까? 눈보라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는 키세스 시위대와 과거가, 죽은 자가 함께 했다." — 작가가 씨앗페 출품작에 붙인 작업 노트

질문은 소설가의 것이고, 대답은 판화가의 것입니다. 작가는 물음에 문장으로 답하는 대신 백골을 시위대 옆자리에 앉혔습니다. 함께 있다는 것이 대답입니다.

앞 작품의 유골함과 이 작품의 백골을 나란히 놓으면 한 사람의 작업 안에서 뼈가 하는 일이 달라지는 것이 보입니다. 〈70년만의 귀가〉에서 뼈는 상자 안에 들어와 돌아온 것이고, 여기서는 상자 밖으로 나와 앉은 것입니다.

박경훈, 〈키세스 시위대_ 죽은 자가 산 자와 과거가 현재와〉, Woodcut on Hanji, 100x70cm, ₩5,000,000
박경훈, 〈키세스 시위대_ 죽은 자가 산 자와 과거가 현재와〉, Woodcut on Hanji, 100x70cm, ₩5,000,000

두 점을 나란히 놓으면 흑과 백의 비율이 정확히 뒤집혀 있습니다. 한쪽은 여백이 대부분이고 한쪽은 먹이 대부분인데, 새겨진 것은 같은 질문입니다. 박경훈 작가 페이지에서 두 작품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박경훈이 씨앗페에 낸 두 점은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의 온라인관에 걸려 있습니다. 오윤의 판화와 함께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이 한 점씩 놓인 구성입니다.

목판화를 40년 새겨온 작가의 작품이 그 자리에 놓인다는 사실은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오윤이 1980년대에 칼로 파낸 선과, 박경훈이 2025년에 파낸 선은 같은 도구의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박경훈을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순서를 이렇게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70년만의 귀가〉의 여백을 보십시오. 사람과 상자 사이의 빈 자리가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은 말을 합니다. 다음으로 〈키세스 시위대〉의 눈을 보십시오. 흰 점 하나하나가 칼로 파낸 자리입니다. 그리고 두 화면에서 사람이 앉아 있는 자세를 비교해 보십시오. 한쪽은 등을 돌렸고, 한쪽은 정면을 보고 있습니다.

"국가가 허락한 방식으로만 애도하고 기억하는 것이 과연 온전한 추모일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 제주도민일보, 2025년 4월

작가의 말입니다. 그의 판화를 볼 때 던져야 할 질문도 결국 같은 것입니다. 누가 기억되고 누가 남겨졌는가.

박경훈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 두 점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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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박경훈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난 목판화가입니다. 1980년대 미술 동인 '그림패 바람코지'를 결성해 민중미술 운동에 참여했고, 1985년 첫 판화전 이후 열한 번의 개인전을 열며 제주 4·3을 일관된 화두로 삼아 왔습니다.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을 지냈습니다.

Q. 《백골난감》은 무슨 뜻인가요? A. 백골난망(白骨難忘)이 "죽어 뼈만 남아도 잊을 수 없다"는 감사의 표현이라면, 작가가 만든 백골난감(白骨難堪)은 "죽어 뼈만 남은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뜻입니다(광주일보). 2025년 4·3 77주년에 맞춰 제주·서울·광주에서 동시에 열린 개인전의 제목입니다.

Q. '애도의 차별'이란 무엇인가요? A. 작가가 《백골난감》에서 쓴 말입니다. 그는 "동일한 희생자임에도 추모되고 복권된 이들과 끝내 외면받은 이들 사이의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제주도민일보). 뼈와 총이라는 두 상징이 이 문제의식을 떠받칩니다.

Q. 4·3 관련 활동 이력이 있나요? A. 광주일보·광남신문에 따르면 4·3도민연대 정책실장으로 4·3특별법 제정 운동에 참여했고, 제주도4·3실무위원회 위원과 4·3평화공원 조성·4·3평화기념관 건립 전시기획팀장으로 일했습니다. 소전미술관이 정리한 소개에는 탐라미술인협회 창립과 4·3미술제 주도도 적혀 있습니다.

Q. 주요 전시는 무엇인가요? A. 2023년 광주시립미술관 초청전 《박경훈: 4·3 기억투쟁, 새김과 그림》, 2025년 개인전 《백골난감》(제주 포지션민제주·서울 갤러리 나무아트·광주 오월미술관 동시 개최)과 울산노동역사관 초대전, 같은 해 12월 서울 민주화운동기념관 특별전 《빛의 연대기》 등이 있습니다.

Q. 〈키세스 시위대〉의 '키세스'는 무슨 뜻인가요? A. 작가는 작업 노트에서 "은박지로 감싼 초콜릿 이름"이자 "탄핵의 겨울을 지나며 얻은 역사적 이름"이라고 적었습니다. 은박 담요를 뒤집어쓰고 밤을 새운 시위대의 모습에서 붙은 별명입니다.

Q. 씨앗페에 나온 박경훈 작품은 몇 점이고 가격은? A. 두 점입니다. 〈70년만의 귀가〉(2025, Woodcut on Hanji, 80x55cm)가 ₩3,000,000, 〈키세스 시위대_ 죽은 자가 산 자와 과거가 현재와〉(2025, Woodcut on Hanji, 100x70cm)가 ₩5,000,000입니다.

Q. 박경훈 작품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A.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의 온라인관에 걸려 있습니다. 오윤의 판화와 함께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이 한 점씩 놓인 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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