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보스턴·뉴욕을 오가는 조형예술가 박소형. 버려진 부산물과 자연 재료를 결합해 사라지는 조형을 만들고, 조각에서 쓰던 박스를 회화의 화면으로 옮긴다. 씨앗페 2026 출품 세 점.

박소형의 조형물 안에서 꽃은 시든다.
말라 죽어가는 꽃이 구조물의 일부다. 작가는 이 상태를 "아슬아슬하게 살아있는 듯 죽어가는"이라고 적었다. 조형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감추는 대신, 그것을 재료로 쓴다.
조각으로 학위를 받고, 매체를 넘어가다
박소형은 서울과 보스턴, 뉴욕을 오가며 작업하는 조형예술가다.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에서 순수예술 학사(SVA BFA '21)를, 보스턴대학교에서 조형예술 석사(BU MFA Sculpture '23)를 받았다. 학위는 조각이지만 작업은 한 매체에 머물지 않는다. 조각과 설치, 비디오, AI를 결합한 미디어 작업, 식물과 버섯 포자를 다루는 생태예술까지 오간다.
소속을 보면 그 폭이 그대로 드러난다. 뉴잉글랜드 스컬프처 어소시에이션(NESA), 보스턴의 기후위기 아티스트 그룹 I3C(Inspiring Climate Change), 한국여성 아티스트 그룹 그린 레시피 랩. 조각가 단체와 기후 그룹과 여성 작가 그룹에 동시에 이름이 있다.
2022년 에머슨 칼리지 미디어 아트 갤러리의 《What's Next: Perspectives, Micro to Macro》에 선정되며 보스턴에서 주목할 신진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2023년에는 매사추세츠 문화위원회의 문화예술 회복 지원금(Cultural Sector Recovery Grant)을 받았고, 같은 해부터 이듬해까지 보스턴 디지털 수프(Digital Soup)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미국에서 쌓고, 한국으로 건너오다
전시 목록을 시간순으로 놓으면 무대가 옮겨온 자리가 보인다.
2021년 뉴욕 바우어 유니온을 시작으로 2022년 녹다운 센터, 보스턴의 피아노 크래프트 갤러리까지 미국 안에서 발표가 이어졌다. 2023년과 2024년에는 디지털 수프 레지던시를 거치며 사이버 아트 갤러리와 파운틴 스트리트 아트 사이드워크 갤러리에서, 2025년에는 808 커먼웰스 갤러리와 홉킨턴 예술센터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같은 2025년, 무대가 한국으로 옮겨온다. 부산 어라이즈 아트스페이스의 《도시의 저항》에 참여했고, 강릉 갤러리 청풍에서 첫 초대 개인전 《과거의 파편과 미래의 조각이 스쳐 지나가는 그날을 기록하다》를 열었다. 2026년에는 강원도 고성의 아트케이션 레지던시에 들어가고, 씨앗페 2026에 세 점을 냈다.
발표만 한 것은 아니다. 2022년 보스턴대학교 '여성과 가면' 컨퍼런스, 2023년 NESA의 스컬프처슬램, 2025년 그린 레시피 랩의 '한국 생태미술의 역사와 현재'에서 발언했다.
쓸모를 잃은 것들로 짓기
〈어린왕자의 장미〉는 버려진 인간의 부산물을 모아 조합한 구조물이다. 거기에 자연 재료가 결합된다.
작가의 설명이 이 결합의 성격을 짚는다. 꽃이 말라 죽어감으로써 조형은 "영속하지 않은 형태, 변화하는, 사라지는, 잠시 동안 생생함을 유지하는 아이러닉한 유머"를 갖는다. 석고와 박스는 남고 꽃은 사라진다. 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한 구조물 안에 세워두는 방식이다.
버려진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은 기후위기 그룹과 생태예술이라는 이력과 겹쳐 읽힌다.
사이를 채우는 회화

조각가의 회화는 어떤 자리에 놓일까. 작가는 그 자리를 "간격"이라고 부른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 천천히 흘러가는 사고 사이에 괴리가 있고, 회화는 그 간격을 채우는 공간이 된다는 것이다. 일상의 경험과 감정을 순간마다 붙잡아 추상으로 옮긴다. 작가는 이를 "현실의 공간과 작가의 사념 그리고 영적인 세계의 연결점"이라고 썼다.
〈Botanical Garden, 식물정원〉은 수채화와 잉크 드로잉에 박스와 한지가 함께 들어간 125×75cm 작업이다. 조각에서 쓰던 박스가 회화의 화면으로 넘어와 있다.

〈스쳐지나가는 감각들〉은 연작으로 선보이는 작업이다. 각각이 독립된 한 점이면서 전체를 이루는 조각이기도 하다. 강릉 개인전 제목에 들어간 '스쳐 지나가는'이라는 말이 작품 제목에서 다시 나온다.
씨앗페에 내놓은 세 점
박소형은 씨앗페 2026에 조형물 한 점과 회화 두 점을 냈다. 매체를 가로지르는 작업 방식이 출품 구성에도 그대로 있다.
출품작 설명에 작가가 직접 적어둔 문장이 있다. "오윤 작가님 벽화 살리기 기금마련에 동참합니다."
한국 예술인의 84.9%가 제도 금융에서 배제된다. 씨앗페 출품 작가들이 내놓은 작품이 판매되어 만드는 상호부조 기금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진다. 박소형이 적은 한 줄은 그 구조에 자기 작품을 걸겠다는 말이다.
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
석고는 남고 꽃은 마른다. 박소형의 조형은 그 둘을 한자리에 세워둔다.
작업을 이어가는 일도 비슷한 데가 있다. 재료비와 작업실을 감당할 수 있으면 이어지고, 그렇지 못하면 멈춘다. 그 갈림이 작업의 질이 아니라 대출 심사에서 결정될 때, 씨앗페 같은 구조가 필요해진다.
박소형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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