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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석 — 사진을 만지는 사람, 그리고 휘어져 있는 볼펜 한 자루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9월 18일 · 씨앗페

라인석은 사진을 촉각적 매체라고 말합니다. 인화지를 긁고 잉크가 마르기 전에 손을 대는 이 작가의 화면에는, 볼펜 한 자루가 활처럼 휘어 있습니다. 씨앗페 출품작 세 점을 실제로 들여다봅니다.

라인석 — 사진을 만지는 사람, 그리고 휘어져 있는 볼펜 한 자루

라인석, 〈휘어진 세계로부터_모나미볼펜 1〉, Pigment based inkjet on matte paper·알루미늄 액자, 58x42cm — 흰 바닥 위에 활처럼 휘어 놓인 흰 볼펜 한 자루
라인석, 〈휘어진 세계로부터_모나미볼펜 1〉, Pigment based inkjet on matte paper·알루미늄 액자, 58x42cm — 흰 바닥 위에 활처럼 휘어 놓인 흰 볼펜 한 자루

화면에 볼펜 한 자루가 있습니다. 흰 몸통에 검은 뚜껑, 옆구리에 작은 클립. 누구나 책상 서랍에서 꺼내 쓰는 그 볼펜입니다. 배경도 흰색이라 그림자만 옅게 깔려 있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볼펜이 휘어 있습니다.

부러진 것이 아니라 활처럼 완만하게 굽어 있습니다. 볼펜은 곧은 물건입니다. 곧아야 쓸 수 있는 물건입니다. 그러니 이 사진은 우리가 곧다고 믿고 쓰는 물건이 실은 곧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한 자루의 볼펜으로 합니다. 제목은 〈휘어진 세계로부터_모나미볼펜 1〉, 2015년 작입니다.

이 글은 라인석의 사진 세 점을 화면 그대로 들여다보는 글입니다. 작가의 이력을 늘어놓기보다, 실제로 무엇이 찍혀 있는지를 먼저 보려 합니다. 이 작가의 경우 그 편이 훨씬 빠릅니다.

사진은 촉각적 매체다 — 작가 본인의 설명

2026년 3월 5일부터 22일까지 전주 서학동예술마을의 갤러리 AP-9에서 라인석의 개인전 〈사건들로부터(From the Events)〉가 열렸습니다. 전북도민일보·전라일보·전북중앙신문이 함께 다룬 전시입니다. 이 전시에서 그는 인화지 표면을 긁거나, 잉크가 마르기 전에 손을 대어 형태를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사진의 물성과 질감을 드러냈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작가 본인의 말로 남아 있습니다.

"사진은 세계와 접촉한다. 사진이 갖는 힘은 대상과의 접촉에 있다. 사진은 피사체에 부딪혀 되돌아온 빛으로 만들어진다. 사진은 촉각적 매체인 것이다. 사진이 세계를 만지는 것처럼 나도 사진을 만지고 싶었다." — 전북도민일보, 2026년 3월 9일

이 네 문장은 순서대로 읽어야 뜻이 통합니다. 첫째, 사진은 대상에 닿는다. 둘째, 그 힘은 닿는 데서 나온다. 셋째, 물리적으로도 빛이 피사체에 '부딪혀' 돌아온 것이 사진이다. 그러므로 넷째, 사진은 시각의 매체이기 전에 접촉의 매체다.

여기까지는 사진론입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그것이 작업 방법으로 바뀝니다. "사진이 세계를 만지는 것처럼 나도 사진을 만지고 싶었다." 사진이 세계를 만져서 만들어진 물건이라면, 사진을 만지는 일은 그 접촉을 한 겹 더 쌓는 일입니다. 인화지를 긁는 손은 세계를 훼손하는 손이 아니라, 세계를 만진 표면을 다시 만지는 손입니다.

그래서 이 작가의 사진에는 인화지 자체가 남습니다. 뒤에서 보게 될 〈서울타워로부터〉의 표면에 가로로 이어진 결도 그 흔적입니다.

전시를 연 갤러리 AP9의 박승환 관장은 라인석의 화면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라인석의 사진 속 풍경은 어디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일상의 조각들임에도 그의 시선을 통과한 장면은 익숙함을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진 세계를 보여준다" — 박승환 갤러리 AP9 관장, 전북도민일보, 2026년 3월 9일

'기울어진 세계'. 볼펜 한 자루를 떠올리면 이 표현이 비유가 아니라 묘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직선을 곡선으로 보는 시선

라인석이 씨앗페에 제출한 작가 소개에는 이 시선의 내력이 농담처럼 적혀 있습니다. 초능력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다가, 구부러지고 휘어진 세계를 포착하는 능력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선도 곡선으로 본다고, 이름하여 '반듯한 곡선'이라고 그는 적었습니다.

농담의 형식을 빌렸을 뿐 말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여러 매체가 이 작가의 작업을 "반듯한 직선은 미묘한 곡선으로 흔들린다"는 같은 취지로 서술해 왔습니다. 카메라에 포착된 직선이 곧 휘어진 세계라는 것.

물리적으로 틀린 말도 아닙니다. 충분히 긴 시야에서 곧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길이를 견딜 만큼 오래 보지 않을 뿐입니다. 라인석의 사진은 그 시야를 사진 한 장 안으로 접어 넣습니다.

씨앗페에 들어온 세 점의 제목을 나란히 읽으면 이 시선이 문법으로 굳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 〈서울타워로부터
  • 〈곡선운동의 궤적으로부터 롯데월드타워 230817〉
  • 〈휘어진 세계로부터_모나미볼펜 1〉

세 점 모두 '~로부터'입니다. 2026년 전주 개인전의 제목도 〈사건들로부터〉였습니다. '~를 찍었다'가 아니라 '~로부터'라고 말하는 순간, 사진은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대상에서 출발해 도착한 무엇이 됩니다. 앞서 본 작가의 말 — 빛이 피사체에 부딪혀 되돌아온다 — 과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제목이 이미 작업론입니다.

화면을 열어 보기 — 세 점

〈휘어진 세계로부터_모나미볼펜 1〉 — 2015년, 58x42cm

앞에서 먼저 본 그 볼펜입니다. 화면에는 볼펜 하나와 옅은 그림자뿐이고, 몸통에 인쇄된 잔글씨는 읽히지 않을 만큼 흐릿하게 남아 있습니다. 배경이 비어 있어 시선이 갈 데가 없습니다. 볼펜의 굽은 선 말고는 볼 것이 없도록 만들어진 화면입니다.

이 작가를 처음 만나는 분께는 이 한 점을 권합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알루미늄 액자로 마감되어 있습니다.

라인석, 〈휘어진 세계로부터_모나미볼펜 1〉, Pigment based inkjet on matte paper·알루미늄 액자, 58x42cm, ₩1,200,000
라인석, 〈휘어진 세계로부터_모나미볼펜 1〉, Pigment based inkjet on matte paper·알루미늄 액자, 58x42cm, ₩1,200,000
  • 58x42cm · Pigment based inkjet on matte paper, 알루미늄 액자 · ₩1,200,000
  • 작품 페이지 →

〈서울타워로부터〉 — 2019년, 77.5x107.5cm

화면 가운데에 서울타워의 상부만 세로로 서 있습니다. 붉은 띠가 세 줄 감긴 첨탑, 그 아래 층층이 접힌 전망대, 그리고 아래로 곧게 내려가는 기둥. 배경은 구름 한 점 없는 단색의 하늘색입니다.

주목할 곳은 표면입니다. 하늘 부분에 가로 방향의 결이 잔잔하게 이어져, 매끄러운 사진이 아니라 손이 지나간 종이처럼 보입니다. 앞에서 읽은 "나도 사진을 만지고 싶었다"가 여기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또 하나, 화면 가장자리에 흰 여백이 넉넉히 남아 있어 이미지가 종이 위에 놓인 물건처럼 보입니다.

세 점 중 가장 큰 화면이고, 하얀색 원목 액자로 마감되어 있습니다. 거실이나 접견 공간의 중심 자리를 감당하는 크기입니다.

라인석, 〈서울타워로부터〉, Pigment based inkjet on touched paper·하얀색 원목액자, 77.5x107.5cm, ₩5,000,000
라인석, 〈서울타워로부터〉, Pigment based inkjet on touched paper·하얀색 원목액자, 77.5x107.5cm, ₩5,000,000
  • 77.5x107.5cm · Pigment based inkjet on touched paper, 하얀색 원목액자 · ₩5,000,000
  • 작품 페이지 →

재료 표기를 한 번 더 보십시오. touched paper. 매트지에 인쇄한 다른 두 점과 달리, 이 한 점만 지지체 이름에 '만졌다'는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곡선운동의 궤적으로부터 롯데월드타워 230817〉 — 2023년, 30x50cm

제목에 '곡선운동의 궤적'이 들어가 있습니다. 세 점 가운데 시선의 원리를 제목에 직접 써 넣은 유일한 작품이고, 뒤에 붙은 230817은 2023년 8월 17일이라는 날짜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으로 읽힙니다. 관념이 아니라 그날 그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표시입니다.

30x50cm의 세로 화면으로, 세 점 중 가장 작습니다. 서재나 복도처럼 가까이에서 보는 자리에 어울립니다.

라인석, 〈곡선운동의 궤적으로부터 롯데월드타워 230817〉, Pigment based inkjet on matte paper, 30x50cm, ₩700,000
라인석, 〈곡선운동의 궤적으로부터 롯데월드타워 230817〉, Pigment based inkjet on matte paper, 30x50cm, ₩700,000

세 점을 나란히 놓으면 대상의 크기가 극단적으로 다릅니다. 손바닥 안의 볼펜 한 자루, 그리고 도시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 둘. 그런데 화면에서 셋은 같은 대접을 받습니다. 배경은 비고, 대상은 하나이고, 시선은 그것이 곧은지 휘었는지만 묻습니다. 라인석 작가 페이지에서 세 점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는가

라인석은 한자리에 머무는 작가가 아닙니다.

2026년 9월, 조선대학교 미술관 기획전 〈인간이라는 종이 머무는 보편적 순간: 그럴듯하게, 사진으로 벽을 허물다〉에 참여했습니다. 글로컬 대학교 비엔날레 기간에 열린 이 전시에 그는 애플리케이션과 AI를 활용한 이미지 작업을 냈습니다.

인화지를 손으로 긁던 작가가 AI로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 모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의 문장을 다시 읽으면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가 문제 삼아 온 것은 늘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였습니다. 인화지를 긁는 일도, 애플리케이션을 쓰는 일도, 이미지의 제작 과정 자체를 화면 위로 끌어올린다는 점에서는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또 하나의 자리는 동년배와 함께 만드는 연례전입니다. 1970년 개띠 사진작가들이 여는 '견(見), 바라보다' 그룹전에 그는 꾸준히 참여해 왔습니다. 제5회는 2023년 12월 16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상도동 예강갤러리에서, 제6회는 서울 인사동 아지트미술관에서 열렸습니다.

같은 해에 태어난 사진가들이 해마다 한 번씩 모여 전시를 여는 일에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같이 나이 드는 사람들이 각자 무엇을 보고 있는지 서로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이 글의 맨 앞에 놓인 볼펜을 다시 떠올린다면, '견(見)'이라는 한 글자를 제목으로 삼은 모임에 라인석이 있다는 사실이 꽤 정확한 배치로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라인석이 씨앗페에 세 점을 낸 이유는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곧다고 믿었던 것이 실은 휘어 있더라는 말을 사진으로 해 온 작가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조금 뜻밖의 방향에서 잘 어울립니다. 예술로 먹고사는 일이 정상적인 금융 제도 안에서 곧게 처리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믿고 있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순서를 이렇게 잡아 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볼펜을 보십시오. 곧아야 할 것이 휘어 있다는 사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다음으로 〈서울타워로부터〉의 표면을 보십시오. 가로로 지나간 결이 작가의 손입니다. 마지막으로 롯데월드타워의 제목에 붙은 날짜를 읽으십시오. 이 시선이 관념이 아니라 어느 날 어느 자리의 일이었음을 그 여섯 자리 숫자가 말해 줍니다.

라인석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 세 점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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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라인석 작가는 어떤 작업을 하나요? A. 사진을 촉각적 매체로 다루는 작가입니다. 인화지 표면을 긁거나 잉크가 마르기 전에 손을 대어 형태를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사진의 물성과 질감을 드러냅니다. 2026년 3월 전주 서학동예술마을 갤러리 AP-9에서 열린 개인전 〈사건들로부터〉가 이 방식을 집중적으로 보여준 자리였습니다.

Q. '휘어진 세계'가 무슨 뜻인가요? A. 카메라에 포착된 직선을 곡선으로 보는 시선을 가리킵니다. 여러 매체가 이 작가의 작업을 "반듯한 직선은 미묘한 곡선으로 흔들린다"는 취지로 서술해 왔고, 작가 자신은 이를 '반듯한 곡선'이라고 부릅니다. 씨앗페 출품작 〈휘어진 세계로부터_모나미볼펜 1〉이 그 시선을 가장 단순하게 보여줍니다 — 흰 바탕 위에 볼펜 한 자루가 활처럼 휘어 있습니다.

Q. 왜 인화지를 긁나요? A. 작가 본인의 설명이 있습니다. "사진은 피사체에 부딪혀 되돌아온 빛으로 만들어진다. 사진은 촉각적 매체인 것이다. 사진이 세계를 만지는 것처럼 나도 사진을 만지고 싶었다."(전북도민일보, 2026년 3월 9일) 사진이 이미 세계와 접촉해 만들어진 물건이므로, 그 표면을 다시 만지는 일이 작업이 된다는 뜻입니다.

Q. 최근 활동은? A. 2026년 9월 조선대학교 미술관 기획전 〈인간이라는 종이 머무는 보편적 순간: 그럴듯하게, 사진으로 벽을 허물다〉(글로컬 대학교 비엔날레 기간)에 애플리케이션과 AI를 활용한 이미지 작업으로 참여했습니다. 또 1970년 개띠 사진작가들의 연례 기획전 '견(見), 바라보다'에 참여해 왔습니다(제5회 2023년 12월 서울 상도동 예강갤러리, 제6회 서울 인사동 아지트미술관).

Q. 씨앗페에 나온 라인석 작품은 몇 점이고 가격대는? A. 세 점입니다. 〈곡선운동의 궤적으로부터 롯데월드타워 230817〉(2023, 30x50cm) ₩700,000, 〈휘어진 세계로부터_모나미볼펜 1〉(2015, 58x42cm, 알루미늄 액자) ₩1,200,000, 〈서울타워로부터〉(2019, 77.5x107.5cm, 하얀색 원목액자) ₩5,000,000입니다.

Q. 라인석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라인석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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