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칼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립니다. 오윤의 목판화 〈칼노래〉(1985)를 검은 틀, 붉은 면, 칼의 곡선, 둘레의 글자꼴, 발끝의 자리 순서로 따라 읽고, 연한 회갈색 태지에 흑백으로 찍힌 한 장과 한지에 붉게 채색된 한 장을 나란히 놓아 봅니다.
오윤 〈칼노래〉 한 점 깊이 읽기 — 검은 틀 안에서 칼을 치켜든 몸, 같은 구성의 두 장

칼을 든 사람이 한쪽 다리를 번쩍 들었습니다. 두 팔은 머리 위로 올라가 있고, 칼은 그 위에서 활처럼 휘어 오른쪽으로 뻗습니다. 몸은 앞으로 숙였는데 발은 땅을 박차는 듯 가볍습니다. 오윤(1946~1986)의 목판화 〈칼노래〉(1985)는 이 한 장면으로 화면 전체를 씁니다. 뉴시스는 이 그림을 "춤인지 투쟁인지 경계가 없다"고 적었습니다.
이 글은 〈칼노래〉 한 점만 오래 봅니다. 작가의 일대기나 전시 안내는 다른 글에 맡기고, 도판에서 눈에 들어오는 순서를 따라 화면을 읽습니다. 먼저 바깥의 검은 틀에서 안쪽의 붉은 면으로, 거기서 인물의 손과 얼굴과 다리로 들어가고, 마지막에 인물을 둘러싼 글자꼴과 날 모양의 검은 조각들을 봅니다. 화면을 다 읽은 뒤에는 같은 구성으로 찍힌 두 장, 곧 연한 회갈색 태지에 흑백으로 찍힌 한 장과 한지에 붉게 채색된 한 장을 나란히 놓아 봅니다. 작품이 놓인 시간과 서지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언론 보도에 기댔고, 출처는 글 끝에 모았습니다.
먼저 틀을 본다 — 검은 면, 붉은 면, 종이의 빛
〈칼노래〉에서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인물이 아니라 색의 겹입니다. 맨 바깥은 화면 둘레를 두른 종이의 연한 아이보리빛 여백입니다. 그 안쪽에 칼로 파내지 않고 남긴 검은 면이 사각 틀을 이루고, 검은 틀 안쪽에는 모서리를 둥글린 큼직한 사각형이 붉게 들어 있습니다. 붉은 사각형의 가장자리는 자로 잰 듯 곧지 않습니다. 목판을 칼로 파낸 선이 그대로 윤곽이 되어서, 변마다 살짝 굽고 모서리마다 조금씩 어긋납니다. 붉은 면 안의 색은 균일하게 칠한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농담이 읽혀서, 손으로 올린 색이라는 느낌이 납니다. 선명한 붉은빛에는 분홍 기가 얼마간 섞여 있습니다.
이 구성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검은 틀 안에 붉은 무대가 있고, 그 무대 한가운데 사람 하나가 서 있다"입니다. 그림 속 인물은 틀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칼끝도, 치켜든 손도, 들어 올린 발도, 모두 붉은 면 안에 있습니다. 검은 틀은 인물을 가두는 벽처럼 보이기도 하고, 인물을 앞으로 밀어내는 어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으로 읽느냐는 보는 사람의 몫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같은 해(1985)에 찍은 오윤의 〈춤〉을 소장품으로 설명하면서, 이 작품이 인물 주변으로 네모의 테두리 선을 둘러 공간감을 주고 인물에 시선이 모이게 한다고 적었습니다. 같은 설명은 손끝이나 발이 바닥에 닿는 부분이 테두리 선을 넘어가 화면 밖으로 공간이 확장되는 느낌을 준다고 짚습니다. 이 설명을 곁에 두고 〈칼노래〉를 보면 두 그림이 같은 틀을 두고 다른 선택을 했다는 것이 읽힙니다. 〈춤〉에서 몸이 틀을 넘는 자리가 있다면, 〈칼노래〉의 인물은 붉은 면 안에서 팔과 다리와 칼을 모두 펼치고, 그 둘레를 검은 조각과 글자꼴이 빙 둘러 감쌉니다. 몸이 밖으로 나가는 대신 둘레가 안으로 모여드는 구성입니다.
칼 — 위로 올라가 오른쪽으로 휘는 한 줄
인물보다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칼입니다. 화면 왼쪽 위에서 칼자루가 시작됩니다. 자루는 마디가 진 원통 모양이고, 흰색과 검은 띠가 번갈아 감겨 있습니다. 자루를 쥔 두 손은 주황빛이고, 하나는 주먹을 쥐었고 다른 하나는 손가락 끝이 보입니다. 손은 머리보다 높은 곳, 화면의 왼쪽 위 모서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자루에서 칼날이 오른쪽으로 뻗습니다. 날은 곧지 않고 활처럼 휘어서, 가운데를 지나 오른쪽으로 갈수록 아래로 내려가며 끝이 뾰족해집니다. 날의 몸통은 검고, 위쪽 가장자리를 따라 연한 보랏빛 한 줄이 비칩니다. 칼은 인물의 머리 위를 지나 화면 위쪽을 가로로 덮고, 칼끝에서 아래로 꺾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오윤의 판화 소재를 정리하며 「동학」·「농부와 아들」·「여공」·「지옥도」 같은 제목을 들고, 1984년부터는 흑백 판화를 고수하던 데서 벗어나 간결한 장식적 색상을 도입했다고 적습니다. 다만 이 글의 첫 도판인 붉은 장은 씨앗페 작품 정보에서 사후 판화, 곧 유족이 원판으로 찍은 판화로 분류되어 있고 재료는 수채 채색으로 적혀 있습니다. 이 배색이 1985년에 오윤이 정한 것인지는 출처에서 확인되지 않으므로, 이 글은 색을 눈에 보이는 사실로만 적습니다.
얼굴과 몸 — 숙인 고개, 넓은 소매, 계단 모양 옷자락
칼 아래로 시선을 내리면 얼굴이 있습니다. 머리에는 검은 모자 같은 형태가 얹혀 있고, 얼굴은 치켜든 팔 아래로 파묻힐 듯 숙여져 있습니다. 주황빛 살색 위에 검은 줄이 촘촘하게 그어져 눈매와 주름이 되고, 표정은 힘이 들어간 듯도 하고 즐거운 듯도 합니다. 칼을 치켜든 사람의 얼굴이 분노나 비장함으로 굳어 있지 않다는 점이 이 그림에서 눈에 남습니다. 얼굴은 크지 않습니다. 화면에서 칼과 팔과 다리가 차지하는 면적이 훨씬 넓어서, 표정은 동작의 일부로 들어가 있습니다.
몸은 흰색입니다. 흰 저고리의 넓은 소매가 칼을 쥐고 치켜든 두 팔을 따라 위로 올라갑니다. 옷은 검은 윤곽선으로 둘러싸였고, 윤곽선 안쪽에는 칼로 파낸 검은 면이 군데군데 박혀 있습니다. 가슴에서 배로 이어지는 자리에는 넓은 검은 덩어리가 놓여 주름의 그림자처럼 보입니다. 이 검은 면 덕분에 흰 옷이 화면에서 두껍게 읽힙니다.
허리 아래에서는 옷자락의 끝이 계단 모양으로 꺾여 있습니다. 곧고 각진 선입니다. 휘어진 칼날과 달리 몸과 옷은 거의 직선과 꺾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오윤의 목판화가 칼로 깎아 만든 직선적인 선으로 대상에 역동성을 부여한 것이 특징이라고 적었습니다. 〈칼노래〉의 옷자락이 바로 그 직선의 꺾임으로 움직임을 만들어 냅니다.
다리 — 번쩍 든 발, 아래로 뻗은 발
다리 쪽으로 내려가면 움직임이 가장 분명해집니다. 한쪽 다리는 무릎을 굽혀 화면 왼쪽 허공으로 높이 들려 있고, 그 끝의 주황빛 발은 왼쪽을 향해 뾰족하게 뻗습니다. 다른 쪽 다리는 몸 아래로 내려와 화면 아래쪽 가운데에서 조금 오른쪽에 발이 놓이고, 그 발끝은 아래를 향합니다. 아래쪽 발도 바닥에 닿아 있지 않아서, 두 발이 모두 공중에 뜬 채 몸이 솟아오른 순간처럼 보입니다.
뉴시스는 이 장면을 "칼을 움켜쥔 사람이 한쪽 발을 번쩍 들었다"고 풀었고, 연합뉴스는 오윤 판화에 칼을 쥔 채 뛰어오르는 사람, 춤추는 호랑이, 북을 치는 사람, 소리꾼 등 움직임이 두드러진 형상이 자주 등장한다고 전했습니다. 연합뉴스는 이어서 작가가 판화에 새긴 춤사위와 리듬이 외가가 부산 동래 학춤을 이어 온 집안이었다는 배경, 1984년 전남 진도에서 접한 씻김굿과 판소리, 북춤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고 적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춤〉 작품 해설도 같은 이력을 짚습니다. 오윤이 요양차 내려간 진도에서 판소리와 육자배기를 듣고 춤을 배우려고 굿판을 다녔고, 아버지인 소설가 오영수, 동래학춤의 대가로 알려진 외조부 김귀조와 외삼촌 김희영이 영향을 준 인물이라는 설명입니다. 〈칼노래〉의 번쩍 든 발과 휘어진 칼은 이 이력 곁에서 보면 더 또렷합니다.
둘레 — 글자꼴과 날 모양의 검은 조각
인물에서 눈을 떼면 붉은 면의 가장자리에 이상한 형상들이 둘러 있습니다. 하나는 검은 삼각형과 초승달 모양의 조각들입니다. 화면 위쪽에 몇 개, 아래쪽에는 크게 휘어진 초승달이 놓였고, 오른쪽과 왼쪽 가장자리에는 가늘고 긴 조각이 줄지어 있습니다. 칼날 조각을 흩뿌린 듯한 이 형태들이 붉은 면을 따라 한 바퀴 돕니다.
다른 하나는 한자 모양을 닮은 획들입니다. 글자꼴로 보이는 새김이 인물을 따라 위, 오른쪽, 아래, 왼쪽으로 둘러서 몇 개씩 놓였습니다. 획은 굵고 모서리가 각져서, 붓글씨가 아니라 칼로 파낸 글자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 글자꼴이 어떤 뜻을 새긴 것인지는 이 글에서 풀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글자꼴이 인물을 따라 한 바퀴 둘러 있다는 점입니다. 글자는 인물을 가두는 울타리처럼도 보이고, 인물의 동작을 따라 휘감아 도는 모양처럼도 보입니다.
둘레의 검은 조각과 글자꼴은 붉은 면의 가장자리를 따라 놓이고, 인물과 둘레 사이에는 붉은 바탕이 고리처럼 비어 있습니다. 그 안쪽에서 인물의 흰 옷이 붉은 바탕과 검은 조각들 사이에 가장 밝게 도드라집니다.
같은 구성, 두 장 — 한지의 붉은 장과 태지의 흑백 장
씨앗페에 올라 있는 〈칼노래〉는 구성이 같은 두 장입니다. 하나는 지금까지 본 붉은 채색본(25x30cm)으로 유족이 원판으로 찍은 사후 판화이고, 다른 하나는 연한 회갈색 종이에 흑백으로 찍힌 생전 판화(25.5x30cm)입니다.

두 장을 나란히 놓고 보면 먼저 검은 면이 같다는 것이 보입니다. 바깥 사각 틀, 인물의 윤곽선, 소매와 가슴의 검은 덩어리, 옷자락의 계단 꺾임, 둘레의 초승달과 삼각형, 글자꼴의 획이 두 장에서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다른 것은 검은 면 바깥의 빛입니다. 붉은 장에서 붉게 칠해진 둥근 사각형의 자리가 태지 장에서는 종이의 빛 그대로 남고, 붉은 장에서 흰 옷이었던 자리, 주황빛 얼굴과 손과 발이었던 자리도 모두 같은 종이빛이 됩니다. 색이 빠지니 인물과 배경이 한 면으로 이어지고, 인물을 구분해 주던 것은 검은 윤곽선뿐입니다. 윤곽선이 두드러져서 칼과 팔의 선이 더 선명하게 읽히고, 글자꼴과 날 모양의 조각이 하나의 띠처럼 인물을 감싸는 모양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 비교 | 붉은 채색본 | 태지 흑백본 |
|---|---|---|
| 크기 | 25x30cm | 25.5x30cm |
| 재료 | 저피지(한지)에 목판화, 수채 채색 | 목판, 태지 |
| 연도 | 1985 | 1985 |
| 구분 | 사후 판화(유족이 원판으로 찍음) | 생전 판화(유족 출품) |
| 둥근 사각 면 | 선명한 붉은색, 군데군데 농담 | 종이 빛 그대로 |
| 옷·얼굴·손 | 흰색과 주황 | 종이 빛 그대로 |
| 칼날 | 검은 날에 연한 보랏빛 한 줄 | 검은 날 |
| 화면 아래 여백 | 연필로 쓴 'A/P'와 제목, 붉은 인장, 희미한 둥근 도장 자국 | 도판에서는 글씨나 도장이 보이지 않음 |
| 현재 | 이미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 씨앗페 온라인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두 장의 화면 아래 여백도 다릅니다. 붉은 장의 아래쪽 여백에는 연필로 쓴 'A/P'와 한글 제목 '칼노래', 오른쪽 끝에 붉은 인장이 있고, 그 곁에는 희미한 둥근 도장 자국이 하나 더 보입니다. 이 장은 유족이 찍은 사후 판화이므로, 연필 표기와 인장은 오윤이 직접 남긴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오윤의 판화에 대해서는 뉴시스가 에디션 번호가 없다고 전했고, 번호를 매겨 희소성을 높이기보다 필요한 만큼 찍어 더 많은 사람에게 이미지를 전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연합뉴스도 오윤이 생전에 "더 많이 찍고 더 많이 나누려고" 판화를 선택했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태지 — 수태를 섞어 만든 종이
흑백 장의 종이는 표면에 작은 티끌 같은 점이 박힌 연한 회갈색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태지(苔紙)를 닥나무 등의 긴 섬유와 파란색을 띤 수태(水苔)를 섞어 만든 종이라고 설명합니다. 중종 때 김안국이 진상하며 알려진 뒤로 널리 쓰였고, 종이의 품격이 매우 고아하여 시전지, 간찰지, 시문지, 서화지, 혼서지 등 특수한 용도로 쓰였으며 오늘날까지 그 전통이 이어진다는 설명입니다.
작품 설명은 이 장을 오윤의 생전판화이자 유족의 출품이라고 밝히고, 태지에 찍은 판화는 유족도 이것 하나만 보았다고 전합니다. 붉은 장이 한지에 채색된 장면이라면 이 장은 종이의 질감이 그림의 일부로 들어온 장면입니다. 같은 구성이어도 종이와 채색이 바뀌면 검은 면 바깥의 빛이 달라지고, 두 장을 나란히 놓으면 그 차이가 보입니다. 목판화를 찍는 재료와 종이의 차이를 더 알고 싶다면 판화 기법 지도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 25.5x30cm · 목판, 태지 · 1985 · ₩75,000,000
- 작품 페이지 →
작품 페이지에는 2018년 서울옥션의 경매 기록 두 건이 함께 올라 있습니다. 2018년 5월 2일과 12월 13일의 기록으로 적힌 금액은 모두 7,500만 원입니다. 연합뉴스는 오윤의 대표작 〈칼노래〉가 2018년 경매에서 7천500만 원에 낙찰되어 당시 국내 판화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전했습니다.
붉은 채색본인 〈칼노래〉(25x30cm, 저피지(한지)에 목판화, 수채 채색, 1985)는 이미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이 글의 첫 도판이 그 장입니다.
이름을 따라가 보면 — 판화집, 개인전, 전집
작품을 한 번 읽은 뒤에는 이름이 어디서 오는지 따라가 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소장자료에는 『吳潤版画集 칼노래(오윤판화집 칼노래)』가 있습니다. 1986년에 그림마당 민이 펴냈고 127쪽으로 구성된 책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오윤 항목도 참고문헌에 『오윤판화집 칼노래』(그림마당, 1986)를 올렸습니다.
뉴시스와 한국일보는 〈칼노래〉를 1986년 서울 그림마당 민에서 열린 그의 유일한 개인전의 표제작이라고 전했고, 뉴시스는 이 작품이 같은 해 출간된 판화집의 제목이기도 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뉴시스는 이 개인전이 오윤의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이었고, 그가 전시를 앞두고 40여 점의 작품을 쏟아냈으며, 미술평론가 유홍준에 따르면 이는 오윤 목판화 전체의 절반에 이르는 양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전시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86년 7월 5일 오윤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일보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전시를 소개하며, 이 개인전에서 굿판을 벌인 영상이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고 전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참고문헌에는 오윤전집간행위원회가 현실문화에서 2010년에 펴낸 『오윤1-세상사람, 동네사람』, 『오윤2-칼을 쥔 도깨비』, 『오윤3-3115, 날것 그대로의 오윤』도 올라 있습니다.
한 장의 크기를 가늠해 본다
〈칼노래〉의 두 장은 가로 25cm 안팎, 세로 30cm 안팎입니다. 이 크기 안에 인물의 몸과 칼과 둘레의 글자꼴이 모두 들어앉았습니다. 볼록판인 목판화에서 검게 찍힌 자리는 칼이 남겨 둔 나무 면이고, 자루에 감긴 띠와 얼굴의 줄 사이사이 밝은 자리는 칼로 파낸 자리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춤〉을 설명하며 짚은 것처럼, 중간중간 칼로 파낸 흔적에서 형태감과 입체감이 드러나 인물의 역동적인 면모가 더 강조됩니다. 〈칼노래〉에서도 이 흔적은 흰 옷 위의 검은 면과 둘레의 조각들에서 가장 잘 보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판화를 "회화의 취약점인 일회성을 극복하고 다량 복제로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판에 새겨서 찍은 그림"으로 풀이합니다. 같은 구성의 〈칼노래〉 두 장이 한지에 붉게 칠해진 모습과 태지에 검게 남은 모습으로 서로 다르게 다가오는 것도, 한 이미지를 여러 장 찍어 내는 판화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전시장에서 이 그림을 만날 때
뉴시스는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에서 〈칼노래〉를 원본으로 만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은 《새김에서 각인으로: 1946—1986, 오윤의 궤적》이라는 이름으로 2026년 9월 23일부터 10월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68 동덕빌딩 B1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주최는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이고, 관람 시간은 10:00~18:00입니다. 오윤이 새긴 판화 전작 187종이 한자리에 걸린 전시로, 생전에 찍은 판화와 유족이 원판으로 찍은 사후 판화를 아울러 187종입니다. 전작이 한 전시장에 걸리는 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예매는 온라인으로만 받으며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 안내에서 할 수 있습니다.
전시장에서 〈칼노래〉 앞에 서면 이 글의 순서를 그대로 가져가 보셔도 좋습니다.
- 틀을 먼저 봅니다. 검은 면이 어디서 시작하고 붉은 면이 어디서 끝나는지, 가장자리가 얼마나 흔들리는지 눈으로 따라갑니다.
- 칼의 선을 한 번에 따라갑니다. 왼쪽 위의 자루에서 오른쪽 끝의 칼끝까지, 선이 어디서 가장 굵어지고 어디서 가늘어지는지 봅니다.
- 얼굴의 줄을 셉니다. 검은 줄이 얼굴의 어느 자리에서 촘촘해지는지 보면 표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입니다.
- 두 발이 가리키는 방향을 비교합니다. 한쪽은 왼쪽 허공, 한쪽은 아래쪽입니다.
- 둘레의 글자꼴을 한 바퀴 돕니다. 몇 개가 어느 자리에 있는지, 글자와 날 모양 조각이 어떻게 번갈아 놓였는지 따라가 봅니다.
- 마지막으로 아래 여백을 봅니다. 연필 글씨와 인장이 있는지, 번호가 적혔는지 봅니다.
판화전과 함께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오윤》을 보시려면 서울의 두 전시를 함께 보는 법이 순서와 시간을 정리해 줍니다. 오윤이 1984년 마당극 「강쟁이 다리쟁이」의 탈을 만든 이야기는 오윤이 만든 탈, 등에 지고 노는 나리들에서 이어집니다. 사후 판화가 무엇인지는 오윤 사후 판화 가이드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작가의 생애는 칼끝으로 시대를 새긴 작가 — 오윤 40주기 특별전이 따로 다룹니다.
〈칼노래〉에 답한 판화
오윤의 〈칼노래〉에는 목판화로 보낸 답장도 있습니다. 박영근의 〈칼노래에 답함〉은 오윤의 〈칼노래〉에서 무사가 쥐었던 칼 자리에 조각도를 세워 화면 전면에 놓은 작업입니다. 화면은 거의 검고, 왼쪽에 얼굴, 가운데에 흰 한자 띠, 오른쪽에 비스듬히 선 조각도가 있습니다. 오윤의 칼이 위로 치켜올라가 곡선을 그린다면, 박영근의 조각도는 곧은 몸으로 비스듬히 서 있어서 두 화면의 칼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이 작품은 씨앗페 온라인 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고, 작가의 이력은 박영근 글에서 따라갈 수 있습니다.
- 53x65cm · Woodcut · 2026 · ₩2,000,000
- 작품 페이지 →
원작을 한 번 읽고 그 답장을 읽으면, 같은 칼이 두 사람의 손에서 어떻게 다른 도구가 되는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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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오윤의 〈칼노래〉는 어떤 작품인가요? A. 1985년에 새긴 목판화입니다. 칼을 머리 위로 치켜든 인물이 한쪽 발을 들어 올린 모습을 검은 틀 안의 붉은 면에 담았고, 인물 둘레에는 글자꼴과 날 모양의 검은 조각들이 둘러 있습니다. 뉴시스와 한국일보는 이 작품을 1986년 개인전의 표제작이라고 전했고, 뉴시스는 같은 해 출간된 판화집의 제목이기도 하다고 덧붙였습니다.
Q. 〈칼노래〉는 언제 어디서 처음 걸렸나요? A. 뉴시스에 따르면 1986년 5월 서울 그림마당 민에서 열린 오윤의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의 표제작입니다. 같은 해 그림마당 민이 『吳潤版画集 칼노래』라는 판화집을 펴냈고,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가 이 책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Q. 씨앗페에서 만날 수 있는 〈칼노래〉는 어떤 작품인가요? A. 태지에 흑백으로 찍힌 〈칼노래〉(목판, 태지, 1985, 25.5x30cm)가 씨앗페 온라인관에 걸려 있습니다. 유족이 원판으로 찍은 사후 판화로, 붉게 채색된 〈칼노래〉(저피지(한지)에 목판화, 수채 채색, 1985, 25x30cm)는 이미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두 장은 인물과 둘레의 글자꼴까지 구성이 같습니다.
Q. 태지는 어떤 종이인가요? A.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닥나무 등의 긴 섬유와 파란색을 띤 수태를 섞어 만든 종이라고 설명합니다. 중종 때 김안국이 진상하며 알려진 뒤로 널리 쓰였고, 시전지·간찰지·시문지·서화지·혼서지 같은 특수한 용도로 쓰였다고 합니다.
Q. 오윤의 판화에는 에디션 번호가 있나요? A. 뉴시스는 오윤의 판화에 에디션 번호가 없다고 전했습니다. 한정된 숫자를 매겨 희소성을 높이기보다 필요한 만큼 찍어 더 많은 사람에게 이미지를 전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유족이 찍은 사후 판화인 붉은 채색본의 아래 여백에는 연필로 쓴 'A/P'와 제목이 있습니다.
Q. 〈칼노래〉 원본을 전시장에서 볼 수 있나요? A. 뉴시스는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에서 표제작 〈칼노래〉를 원본으로 만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전시는 2026년 10월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리며, 온라인 예매와 현장 구매를 받으며, 안내는 판화전 안내 페이지에 있습니다.
Q. 〈칼노래〉의 글자꼴은 무슨 뜻인가요? A. 인물 둘레에 한자 모양을 닮은 굵은 획이 한 바퀴 돌아 새겨져 있다는 점까지가 화면에서 읽히는 사실입니다. 글자의 뜻을 밝힌 자료는 출처에 없어서, 이 글은 획이 인물을 따라 둘러 있다는 것만 적었습니다.
참고한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오윤(이구열), 판화(장충식), 태지(손계영)
-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 오윤 〈춤〉(1985, 천에 목판, 31.5x25) 작품 해설
-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소장자료 — 『吳潤版画集 칼노래(오윤판화집 칼노래)』, 그림마당 민, 1986, 127쪽
- 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칼노래' 오윤 판화 187종 한자리…40주기 특별 판화전」, 2026년 9월 29일 — 원문
- 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오윤이 새긴 민중의 삶과 에너지…판화 187종 한자리에」, 2026년 9월 16일 — 원문
- 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오윤의 구의동 테라코타 발견됐지만…재건축에 멸실 위기」, 2026년 4월 28일 — 원문
- 한국일보, 인현우 기자, 「40년 전 민중을 향했던 판화가의 고민, '집단적 흥'의 경지에 오르다」 —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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